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178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8권 5화
2. 그때 그 시절
한국으로 복귀할 때는 비즈니스 석을 탔다.
그러고도 돈이 너무 많이 남아서 남은 돈은 출연진과 방송국 이름으로 불우 이웃을 돕기로 했다.
기이잉.
“어흐.”
“어후.”
나이열, 김대원을 비롯한 30대 이상의 사람들이 입국 게이트를 나서며 허리를 두드렸다.
“모두 수고하셨고, 제작 발표회 때 봅시다.”
나연석의 말에 제작진과 출연진은 다시 한번 서로를 끌어안으며 ‘수고했다’는 말을 전했다.
진호와 김대원, 나이열도 입국 게이트 앞에서 헤어졌다.
산토리니에서 술을 옴팡지게 마시며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어깨를 잡은 진호는 목을 좌우로 꺾으며 걸음을 옮겼다.
“진호야.”
“아, 네.”
진호는 옆으로 다가온 나연석을 보며 의아함을 드러냈다.
“무슨 일이세요?”
“올해 들어가는 작품 있나 물어 보려고.”
‘작품?’
“영화 하나 찍어요. 그 이후는 딱히 정해 놓은 건 없고요. 왜 그러세요?”
“있으면 본방사수, 아니 영화관 가서 보려고 했지. 알았어. 수고해.”
‘뭐야?’
진호는 멀어지는 나연석을 보며 의아해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예능 하나 더 찍으려나 보지.”
진호는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깨를 으쓱이는 그에게로 정 대리, 아니 정 실장이 다가왔다.
“고생했어.”
“잉? 실장님이 여기까진 왜 왔어요? 박 대리님은요?”
박 대리는 저번에 새로 들인 드라이빙 매니저다.
“네 케어는 내가 해야지. 근데 너 왜 캐리어가 늘었어?”
진호가 끌고 있는 캐리어는 두 개였다.
당황해하는 그의 모습에 진호는 미간을 좁혔다.
“뭔데요? 무슨 사고가 터진 건데요?”
정 실장의 표정과 몸짓이 경직되어 있다.
“사, 사고 아냐. 가, 가자.”
“설마…….”
움찔!
“고생했다고 환영회 같은 거 준비하신 거면 전 완전 땡큐입니다. 으흐흐.”
“……아하하.”
“선물도 사 왔어요.”
“오, 그래? 뭔데?”
둘은 이야기를 나누며 공항을 벗어나 차로 향했다.
드륵!
“오랜만이에요, 최 실장…… 님?”
차 안에 사람이 있기에 반사적으로 인사했던 진호는 순간 질겁했다.
스타일리스트 최 실장이 아니라 ‘천 년의 노래’에서 함께한 최은수 작가였다.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자, 작가님!”
‘이래서 정 실장님이 굳어 있었구나!’
다리를 꼬고 앉은 그녀는 여전히 포스가 넘치고 있었다.
‘분명 작가님이 그렇게 하라 시킨 것일 테지만…… 또 속였어!’
진호는 속으로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잘 놀다 왔니?”
“……에이. 서프라이즈로 선물 보내 드리려고 했는데.”
“선물?”
최은수 작가의 눈이 반짝였다.
캐리어 하나를 연 진호는 그 중에서 박스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산토리니에서 산 체스 세트고, 하나는 러시아에서 산 마트료시카예요. 둘 중 어느 게 마음에 드세요?”
“그럼 난 체스 세트. 체스 말이 특이하게 생겼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이에요.”
살짝 놀란 그녀는 이내 박스에 그려진 사진을 보곤 만족스럽게 웃으며 선물을 갈무리했다.
“그런데 너 설마 선물 보관하려고 따로 캐리어를 산 거니?”
“따로 보관할 곳이 없더라고요. 대본다 쓰신 거예요?”
“어? 아, 응. 들어와.”
“실례하겠습니다.”
“풋.”
“으흐흐.”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은 진호는 최은수 작가가 넘겨준 대본을 받아 들었다.
“그럼 난 여기서 이만 가볼게. 선물 고마워.”
“아니 같이 타고 가시죠, 작가 님.”
“미안해. 정 실장. 내 대본을 읽는 배우와 같은 차를 타고 가기엔 내 낯이 그렇게 두껍지 못해. 수고 하고, 진호도 고생했어.”
“넵! 곧 연락드릴게요.”
손을 흔든 최은수 작가가 핸드폰을 들며 공항 안으로 사라지자 진호는 차 문을 닫았다.
“출발해 주세요. 그리고 정 실장 님은 선물 없어요.”
“……박 대리, 출발.”
최은수 작가의 부탁이니 거부할 수 없었을 테지만, 그래도 괘씸했다.
콧방귀를 뀐 진호는 대본을 펼쳤다.
그리고 굳어 버렸다.
“……이게 이렇게 연결되나?”
진호는 피식 웃었다.
최은수 작가가 넘겨준 대본의 가제가 ‘1987년도의 용문동’이었다. 용문동이라는 지명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1987년이라는 시간이 중요했다. 김윤식이 같이 찍자고 말한 영화 가제 ‘그때 그 시절’의 시대도 1980년도, 정확히는 1987년이었기 때문이다.
“재밌네…….”
눈을 게슴츠레 뜨며 연출진을 살핀 진호는 익숙한 하나의 이름에 잠시 굳었다가 다시 웃어 버렸다.
“이래서 그런 걸 물어본 거구나.”
감독이 나연석이었다.
“암튼 진짜…….”
믿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 * *
이틀을 쉰 진호는 가칭 ‘그때 그시절’의 대본 리딩 장소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안으로 들어간 진호는 자신을 향한 우렁찬 인사에 화들짝 놀랐다. 생전 처음 본, 하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단역들이 진호 자신을 향해 인사를 했기 때문이다.
진호는 재빨리 그들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그냥 봐도 진호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배우가 한 명도 없었다.
“왔니?”
진호는 김윤식의 이북 사투리에 픽 웃었다.
“벌써 스탠바이 들어가셨어요?”
“다른 사투리다 보니까 익숙해져 야디.”
“역시…… 그런데 너무 어깨가 너무 펴지신 거 아니에요?”
“아, 그래?”
미간을 좁힌 김윤식이 어깨를 정말 살짝 좁혔다.
그러며 그가 뿜어내는 기질도 미세하게 바뀌었다.
“이건 어때?”
“굿! 딱 1밀리미터만 더 좁히시면 될 것 같아요.”
김윤식은 다행이라는 듯 웃었다. The J때도 느꼈지만, 미세한 손 끝의 차이가 만들어 내는 연기의 완벽함은 진호가 한 수위였기 때문이다.
밀리미터의 연기. 김윤식은 그걸 진호가 모델이었기에 지적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스킬 : 내가 제일 잘나가]와 여러 연기 관련 스킬이 만들어 낸 시너지 효과였다.
“뭡니까, 형님. 설마 얘한테 연기 배우세요?”
“헉! 안녕하십니까!”
김정우,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배우라 부를 수 있는 존재였다.
“손짓, 걷는 것 등 몸짓 캐치하는 건 내가 만나 본 사람들 중에서 진호 눈이 가장 정확하더라. 밀리미터 단위로 피드백 줄 수 있거든.”
“아, 그래요? 그런 연기자라면 친해져야지. 반갑다, 김정우야. 편하게 형님…… 아니, 삼촌이라고 불러 퀑?”
유쾌한 스타일인 것 같았다.
“하하. 네! 이진호입니다!”
둘은 전화번호를 교환하며 술 약속을 잡았다.
“캬. 내 뒤를 잇는다는 미남 배우가 이렇게 잘생겼구나. 그래도 어후, 왜 이렇게 잘 생겼어? 난 좀 떨어져 있어야겠다.”
‘아, 이분도 스탠바이 들어가셨구나.’
걷는 자세나 살짝 구부러진 등이 부장검사인 고모부와 흡사했다. 진호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아, 여행 다녀왔다며.”
“……여행이라면 여행이겠죠. 나 연석 피디님 예능이었거든요.”
“푸핫. 기래?”
“말도 마세요. 기차 여행 5일째엔 얼마나 지루하던지…….”
“푸하핫!”
둘은 이야기꽃을 피워 갔고, 단역들은 그런 진호를 부러워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속속 도착하고, 감독과 작가도 도착하면서 리딩이 시작되었다.
* * *
가칭 ‘그때 그 시절’의 대본 리딩이 끝나고 5일 뒤, 진호는 최은수 작가의 부름에 가제 ‘1987년도의 용문동’의 미팅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먼저 도착해 있는 사람을 보곤 미간을 좁혔다.
“왔어?”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드는 여성.
“야, 우리 그만 만나면 안 될까?”
김세연은 환하게 웃으며 주먹을 들었다.
싱긋 웃은 진호가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한 손으로 잡았다.
꽈아악!
“악! 탭! 탭탭! 아파파파파-!”
진호는 손을 놓았다.
“씨잉. 머리 찌그러지는 줄 알았네. 야! 내가 욕한 것도 아니잖아!”
“오빠한테 함부로 덤빈 벌.”
“풋. 둘이 진짜 친하구나?”
“아, 죄송합니다.”
“아냐, 아냐. 보기 좋은데 뭘.”
최은수 작가는 미팅룸 안에 설치 된 카메라를 의식한 건지 순화해서 말했다. 원래 그녀의 성격이었다면 한 소리 내지는 배꼽을 잡고 웃었을 거다.
자리에 앉은 진호가 최은수 작가를 보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우리들의 1995, 우리들의 1998, 우리들의 2002.
이 세 작품을 통해 스타 감독이 된 신연호 PD는 소위 나연석 사단이라 부르는 곳의 피디다.
즉, 이번 작품의 메가폰을 나연석이 맡는다고 해도 그 메인 작가는 최은수가 아니라 나연석 사단의 작가가 되어야 했다.
이런 진호의 설명에 최은수는 다리를 꼬았다.
“음…… 도전?”
“작가님이요?”
최은수는 지금 당장 수첩에 아무 줄거리만 써서 보내도 지상파 3사에서 모셔 갈 대작가다.
“좀 그렇지?”
“네.”
김세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엄밀히 말하면 김세연은 이런 작품에 출연할 급이 아니다.
정확히는 단독 여주인공이 아닌 이상 김세연이 출연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승낙을 한 데에는 작가가 최은수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진호도 마찬가지다.
가칭 그때 그 시절도 김윤식이 같이 하자고 해서 승낙한 것뿐이다. 아니었다면 고사했을 것이다.
“내가 연석이에게 빚이 좀 있거든.”
‘그렇다고 한들 진호 네가 없었으면 내가 했겠니?’
애초에 계약 조건 자체도 진호를 섭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내 다음 작품에…….’
최은수는 그 속내를 꾹 삼켰다. 진호가 착한 것은 알지만, 공은 공이었다.
진호가 승낙을 해도 진호의 회사에서 막을 수 있었고, 또 어떤 작가가 좋은 작품을 들이밀지 몰랐다.
이건 그때를 위한 포섭이었다.
그렇다고 대본을 허투루 쓴 건 아니었다.
진호를 다음 작품에 캐스팅하기 위해 진심을 다해 썼다.
이런 그녀의 속내를 모르는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된 것이었다.
“작가님이 아니라 나 피디님의 도전이네요.”
여태껏 드라마는 단 한 번도 연출해 보지 않은 나연석에게 있어서 이번 일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왜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연석의 도전 정신을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정점에 오른 사람이 다른 곳에 눈을 돌리는 건 흔한 일이니 말이다.
“그런 거지.”
“연출은 신 피디님이 도와주실 테고.”
“Of course.”
진호는 미간을 좁혔다.
최은수의 대사와 신연호의 연출, 나연석의 돌발성.
이 세 명이 한 팀을 이룬다고 생각하자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이쪽도 드림팀인가?”
“무슨 말이야?”
김세연도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때 그 시절’이요. 저 이번에 거기 출연하잖아요.”
“……아. 확실히 거긴 드림팀이라 부를 수 있겠다.”
김윤식, 김정우를 비롯해 기라성같은 배우들이 포진해 있다. 감독이나 작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아으. 나도 거기에 출연하고 싶었는데.”
김세연이 아쉽다며 발을 동동굴렸다.
“그러게 적당히 촌스럽지.”
“……맞을래?”
진호는 혀를 삐죽 내밀었고, 김세 연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최은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너무 편하나?”
“너무 애정 하니까 본모습을 보여 드리는 겁니다!”
“저희가 사랑하는 거 아시죠, 선생님?”
“암튼 말이나 못하면…….”
픽 웃은 최은수는 앞에 놓인 커피를 언제나처럼 우아하게 마셨고, 이내 곧 다른 배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