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196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8권 23화
8. 원저
“초대장을 전해 드리러 왔습니다, 진호 리.”
여성 요원이 한국어로 말하며 한 장의 카드를 내밀었다.
“왜요?”
“예?”
“왜 저를 초대하시는 건가요?”
‘그것도 아침부터 미행하면서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영국 왕실이 흥미를 가질 만큼의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진호는 앨리스 루이스를 떠올렸다가 고개를 저었다.
영국에서 인연이 있는 사람 중 귀족은 그녀뿐이었지만, 초대장을 발부한 사람의 이름이 달랐다. 어딜 봐도 남성의 이름이었고, 성도 루이스가 아니라 웨식스였다.
“저흰 그저 전달자입니다. 이유는 초대장에 적혀 있으니 읽어 보시길.”
“흐음.”
여전히 핸드폰을 귀에 댄 채 초대장을 받아든 진호는 내용을 확인하고는 의문이 들었다.
‘파티쉐로서 초대하는 거네? …… 설마 그 프로그램을 본 건가?’
곽종훈과 제과제빵의 어린 천재 3명과 함께했던 런던 생활에서 출연하게 된 특집 방송이 떠올랐다. 그가 케이크를 만들었던 그 방송 말이다.
옅게 웃은 진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귀에 댄 핸드폰에 향해 입을 열었다.
‘인연을 맺어서 나쁠 건 없지.’
그게 어떤 이유라고 해도 말이다.
“아무래도 영국에 하루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스케줄을 조정하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어? 오시게요?”
-파트너로서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또 어떤 사고를 치실 줄 알고.
“설마 이보다 더 한 사고를 칠까요.”
그렇게 말하는 진호도 장담은 할 수 없었다.
전화를 끊은 진호는 남녀 요원들을 보았다.
“초대에 응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네. 여기 제 개인 번호를 드릴 테니까 더 이상 미행은 하지 말아주시고요.”
“죄송합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월급 받고 일하시는데 어쩔 수 있겠어요. 그럼 수고하세요.”
요원들은 이내 물러났고, 진호는 초대장을 보며 머리를 긁었다.
“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네드 시런과 매니저 존이 놀라서 물었고, 진호는 사정을 설명했다.
“……뭐?”
“영국 왕실, 아니 웨식스에서 저를 초대했다고요.”
“웨, 웨식스면 에드워드 왕자님이잖아! 계승 서열 7위의!”
매니저 존이 새파랗게 질린 낯빛으로 꽥 외쳤다.
“오! 높은 분이었구나.”
그러나 진호는 딱 그 정도의 감흥밖에 일지 않았다. 왕족이 먼 나라의 이야기라서 그렇게 느껴지는 지도 몰랐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네드 시런이 오늘 있었던 일을 자랑하듯 말하자, 아담 시런은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도 가고 싶다고 난리를 쳤다. 네드 시런의 어머니도 말은 하지 않았을 뿐 눈으로는 가고 싶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낸 진호는 다음 날 저녁, 다미앙과 함께 웨식스에서 보내 준 차를 타고 웨식스의 저택으로 향했다.
‘이게 저택이야, 궁전이야?’
아르노 베르베우와 웨이양, 저우 지엔의 저택과는 다른 웅장함이 있었다.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호 리.”
새하얗게 샌 머리칼을 올백으로 넘긴 노인이 맞이해 주자 진호는 눈을 빛냈다.
‘집사다!’
마치 영화 속의 집사처럼 깐깐함이 꼿꼿한 등을 타고 발끝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진호입니다. 이쪽은 제 파트너인 다미앙 토마소입니다.”
진호의 정중한 인사에 노집사의 눈이 빛났다.
“패션계의 젊은 사냥꾼 위명은 많이 들었습니다.”
“과찬이십니다. 다미앙 토마소입니다.”
진호는 노집사의 뒤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초대한 사람이 안 나오셨네?’
약간 불쾌해졌다.
“왕자님께선 먼저 저택부터 안내 해 드리라 하셨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러한 진호의 기색을 알아차렸는지 노집사가 그를 향해 설명했다.
‘아, 원래 저택부터 구경하고 만나는가 보구나.’
참 어렵게 산다 싶었다.
“네, 부디.”
“감사합니다. 그럼 이쪽으로.”
진호는 몸을 돌리는 노집사의 등을 보며 눈을 빛냈다.
‘왕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예술품이 엄청 많겠지?’
네드 시런의 아버지인 아담 시런이 오고 싶다고 난동을 부렸던 이유인 영국 왕실만의 비밀 컬렉션. 훔칠 생각은 없지만, 두 눈엔 꼭 담아 보고 싶었다.
* * *
“이것도 아니야. 이것도!”
커다랗고 화려하게 꾸며진 드레스 룸에서 옷들이 날아다닌다. 난장판이 된 드레스 룸 입구에 선 여성 고용인들의 낯빛은 하얗게 질려 갔지만, 그 범인들은 신경 조차 쓰지 않았다.
야시시한 속옷 차림인 앨리스 루이스는 드레스 룸의 모든 옷을 꺼내 드는 자신의 친구들을 보며 눈 살을 찌푸렸다.
“나 추운데…….”
“참아! 여름이잖아!”
“이것도 아니야! 앨리스, 넌 왜 이렇게 옷이 없는 거야!”
앨리스는 어이없다는 듯 친구들을 보았다. 여름용 옷만 모아 둔 이 드레스 룸에 있는 옷만 해도 수백 벌이었기 때문이다.
“내 옷은 저기 애나에게 맡기면 안 될까?”
“안돼! 원래 이럴 때 드레스는 친구들이 골라 주는 거야!”
“그런 거야?”
앨리스는 맞냐는 듯 전속 스타일 리스트인 애나를 보았다.
하얗게 질린 고용인들의 앞에서 있던 금발의 중년 여성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맞나 보구나.’
“그런데 이럴 때는 무슨 상황을 말하는 거야?”
“…….”
그녀는 갑자기 침묵하는 친구들을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대체 무슨 상황인 거지? 난 진호 리를 파티쉐로 초대해 빵과 초콜릿을 만들어 달라고 한 것뿐인데…….’
그녀는 이 상황 어디에 이렇게 유난을 떨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지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며 여성용 정장을 입은 중년 여성이 들어왔다.
“손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앨리스의 몸이 순간 들썩였다. 벌써부터 맡아지는 것 같은 빵과 초콜릿 냄새에 그녀의 몸이 배배 꼬이기 시작했다.
“……꺄악! 빨리!”
“옷! 옷 어디 있어!”
앨리스는 더 부산을 떠는 친구들을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
“나 그냥 아무거나…….”
“찾았다! 메리, 이거 어때?”
“……그래, 그거야! 얼른 가져 와!”
앨리스는 친구들이 내민 자주색 드레스를 입고는 전신 거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반절 정도 드러났지만, 썩 괜찮았다.
“이제 됐지? 이제 손님을 맞이하러 가야…….”
“무슨 소리!”
“왜 또!”
“드레스를 골랐으니까 이젠 구두와 장신구를 골라야지!”
“그리고 헤어스타일도! 이제부터 시작이야!”
“뭐어!”
경악한 그녀는 살려 달라는 듯 고용인들을 보았고, 그녀들은 엄지를 치켜들고는 드레스 룸을 빠져 나갔다.
“애나-!”
앨리스의 눈이 배신감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도끼눈을 뜨며 친구들을 노려봤다.
“진짜 적당히 해!”
“……브라가 거슬려! 벗겨! 누브라로 간다!”
“응!”
“진짜-! 까, 꺄악!”
* * *
‘와우!’
진호의 고개가 휙휙 돌아갔다.
생전 처음 와 본 왕족의 저택이 니만큼 그 모든 걸 머릿속에 각인 시키고자 눈을 바삐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건 르네? 오! 모네 그림도 있다. 저건 최소 100만 달러……에이 씨! 또 허튼 생각!’
그런데 허튼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작품인지를 모르다 보니 내셔널 갤러리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생각 외로 그림이나 조각품이 없네요?”
“그러십니까?”
집사의 말에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 같은 걸 보면 복도의 벽에 명화가 줄줄이 서 있고, 예술 작품도 세워져 있잖아요.”
그런데 이곳에는 작품들이 아주 띄엄띄엄 전시되어 있었다.
“마치 그게 부를 드러내는 인테리어처럼…….”
‘인테리어?’
진호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옛 영국이 어떤 것을 부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삼았는지가 떠올랐다.
진호는 뒤를 휙 하고 바라보며, 자신이 걸어왔던 길의 풍경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이 뭘 놓치고 있었는지 말이다.
쿵!
둔중한 충격이 진호의 전신을 강 타했다.
“뭐, 뭐야, 이건? 이게 말이 돼?”
“왜 그러십니까?”
진호는 집사의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벽에 걸린 명화 한 점, 꼿꼿이 선 갑옷, 천장에 걸린 전등까지 모두. 이 저택 전체가 철저한 기획하에 만들어진 거대한 예술 작품이었다.
보는 순간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며 온갖 영감을 떠올리게 만드는 거장의 명화조차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장구한 시간을 기울여 단장하는 인테리어라니…… 이런 스케일이라니……. 이게 현재 진행형이라니…….”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이 자체로도 완전체인 인테리어임에도 작은 요소를 수없이 추가시킬 여백이 있다.
아니, 벽에 걸린 거장의 명화와 예술품 모두 그저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인테리어 소품에 지나지 않았다.
움찔!
집사뿐만 아니라 다미앙도 놀랐다.
“……호오. 눈썰미가 좋으시군요.”
‘외부인 중 이걸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그것도 영국의 귀족이 아닌 동양인이.’
집사는 눈을 빛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사회 저명의 인사들과 예술가들이 이 저택을 찾았지만, 이 저택 전체가 예술 작품임을 깨달은 사람은 없었다. 왕족과 귀족이야 어려서부터 들은 일이라 논외로 친다지만, 집사, 아니 집사장 본인도 선대의 집사장이 은퇴하기 전에 알려 주었기에 알았던 사실이었다.
‘흐음…….’
눈을 가늘게 떴던 집사장은 몸을 돌렸다.
“이쪽입니다.”
“아, 예.”
진호는 단 하나라도 놓칠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뜨며 집사장의 뒤를 쫓았다.
집사장이 안내한 곳에는 머리가 벗겨져 60대처럼 보이는 중년인이 있었다.
‘아, 이분이었구나!’
언젠가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본 기억이 있는 영국의 왕자.
“처음 뵙겠습니다. 이진호입니다.”
“다미앙 토마소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왕자님.”
“내 보석이 그토록 바라던 파티쉐가 자네였군. 내 집에 온 걸 환영하네. 에드워드일세.”
‘보석?’
“오늘 저녁 디저트를 부탁하지.”
“아, 예.”
“마음 같아선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공무가 많이 쌓여 있군. 필요한 게 있으면 옆의 집사장에게 말하면 되네.”
서글서글 웃은 에드워드는 살짝 손을 저었고, 집사장은 진호와 다미앙을 데리고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흐음…….’
너무도 짧은 만남에 형식적인 인사였지만, 진호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손님이 아니라 파티쉐로 초대된 것이니 기분이 나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걸리는 점이 있었다.
‘왜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거지?’
그는 사람 좋게 웃었지만, 그건 분명 미약한 못마땅함 위에 덧씌운 가식이었다.
자기 이름으로 초대를 했음에도 말이다.
‘대체 뭐가 뭔지……. 확 돌아가 버려?’
진심으로 생각했던 진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젯밤 따뜻하게 맞이해 준 네드 시런과 그의 부모님이 눈에 밟힌 탓이다.
‘에혀.’
“더 둘러보고 싶은 곳이 있으십니까?”
“아뇨. 바로 주방으로 가죠.”
‘그래. 디저트만 만들어 주고 돌아가자.’
“알겠습니다. 이쪽입니다.”
그렇게 안내를 받은 주방에 들어선 순간, 진호는 눈을 크게 떴다. 호텔의 주방을 연상시킬 만큼 거대한 주방과 새하얀 조리사복을 입은 채 돌아다니는 사람들.
주방과 그들이 내뿜는 온갖 향기가 진호에게 다시금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와-. 이런 냄새라니…….”
‘미쳤다.’
진호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비싼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