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202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9권 4화
2. 오리콘 차트.
부스럭.
내리쬐는 햇살아래 새하얀 이불이 뭉개지듯 접히며 매끈한 허벅지가 드러났다.
커다란 개구리 인형을 끌어안은 채 몇 번 뒤척이던 나키시마 유카는 돌연 상체를 일으켰다.
“……끄으으으. 응?”
기지개를 펴며 잠을 몰아내던 그녀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머리가 맑았다.
너무도 오랜만에 뒤척이지 않고 푹 잠들었다.
“……얼마 만이지? 이렇게 푹 잔 게?”
양측이관개방증은 잠을 잘 때도 귀와 머릿속을 괴롭히는 병이다. 심장이 뛰는 소리, 혈관에 피가 흐르는 소리, 숨소리.
그 모든 것이 혼합되기에 수면제나 술에 의존하지 않으면 쉬이 잘 수가 없다.
물론 어제도 술을 마시기는 했다.
가수로서의 복귀에 희망이 생겼으니 말이다.
그러나 작곡가인 진호와 함께하는 자리라서 많이 마시지는 못했다. 평소 주량의 절반 정도. 그럼에도 이렇게 푹 잤다.
맑다 못해 가뿐한 머릿속에 세상 마저 다르게 보일 정도였다.
“설마?”
그녀는 재빨리 침대 옆 테이블을 보았다.
다 타 버린 8개의 향초가 있었다. 진호가 모두 한꺼번에 태우라며 준 향초였다.
“……맞아. 이 냄새를 맡으니까 긴장이 느슨하게 풀렸어.”
그녀의 두 눈이 흔들렸다.
“이렇게 귀한 걸 처음 본 나에게 선물해 주다니…….”
그녀도 향초를 써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만큼 효과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는 [스킬: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주인공인 세계수면의학의 일인자가 불면증 환자에게 처방하는 향초였으니 말이다. 하늘이 내려 준 재능을 지닌 한 사람의 일생의 집념과 노하우가 모두 담긴 향초가 일반 향초와 같을 리 없었다.
“아차!”
오늘 다시 오기로 한 진호가 도착하기 전에 어젯밤 술자리의 흔적을 치워야 했다.
다급히 침대를 빠져나온 그녀는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콧속으로 흑 파고드는 국과 생선 냄새에 굳어 버렸다.
‘어, 엄마?’
화들짝 놀란 나키시마 유카는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굳어 버렸다.
이쪽을 향해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커다란 키의 사내.
“일어났어요?”
“자, 작곡가님?”
“아, 부엌을 썼다고 화나신 건 아니죠? 어제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하지만 그건…….”
‘인스턴트나 레토르트 음식을 덥혀 먹는 걸로만 생각했지! 이런건 내가 대접했어야 하는데! 사쿠라-!’
분명 거실의 소파에 앉아 이쪽을 쳐다보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 하는 매니저 사쿠라가 문을 열어 준 게 분명했다.
“……왜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제가 잠이 별로 없어서요. 그리고 식사는 다 같이 하는 게 좋죠. 씻고 오세요. 얼른 식사하고 상태 점검해야죠. 그래야 어떤 곡을 드릴지 정할 수 있으니까요.”
“……네.”
당혹스러워하다가 낯빛을 굳힌 그녀가 몸을 돌려 부엌을 빠져나가자 진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수면향초 효과를 본 것 같네.”
세계수면의학의 일인자로 성장하는 [스킬: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 과는 다르게]의 주인공. 그렇다 보니 그는 불면증을 비롯해 온갖 희귀한 병으로 잠에 들지 못하는 환자들을 만나고, 또 치료하였다. 개중엔 양측이관개방증으로 인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환자도 있었다.
“어떤 병이든 스트레스를 푸는 게 중요하지. 그 스트레스를 풀려면 잠부터 제대로 자야 하고.”
피톤치드가 가득한 산림원에 가서 몸과 마음을 힐링을 해도 그날 밤 잠들지 못하면 말짱 황이다.
“의사도 고개를 젓는 병을 내가 뭐라고 고칠 수 있겠냐마는…….”
최소한 그날 받은 스트레스는 모두 풀도록 도울 순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컨디션을 어느 정도 돌려놔야 뭐라도 할 수 있었다.
‘1차 해금 조건도 해제됐고.’
[스킬: 재생사]의 1차 해금 조건은 ‘몰락한 스타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기’였다. 어떻게든 아주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면 1차 조건이 해금된다.‘이건 거의 뭐 치트키인데?’
이 1차 조건을 해금하기 위해 수 많은 노력 기울이고, 그것도 모자라 리스타트를 수없이 반복했던 지난날의 노가다가 떠오르자 진호는 잠시 아련하게 웃고 말았다. [스킬: 재생사]의 스토리를 진행 할 때는 [스킬: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의 향초를 구할 방도가 없었고, 게임 내에서 만들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킁? 아차!”
옅게 웃은 진호는 코끝을 스치는 진한 생선 냄새에 재빨리 몸을 돌렸다.
“으아, 육즙 샌다!”
그렇게 나키시마 유카와 매니저 사쿠라에게 아침을 먹인 후 나키시마의 목 상태를 점검한 진호는 일본에서의 스케줄을 진행했다.
‘우리들의 1987’이 OST뿐만 아니라 드라마로써도 인기를 끌고 있어서 스케줄이 제법 있었다. 그 시절 서민의 이야기는 비슷했기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형님!”
“마사토!”
진호와 마사토가 끌어안자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
“잘 지냈어?”
“예. 형님도 잘 계셨습니까? 초단 준비도 잘되십니까?”
“아니. 어후, 왜 이렇게 해야 할게 많냐?”
“흐. 그래도 형님이시라면 곧 따실 겁니다. 그러면…….”
“국제 대회에서나 만나면 각오해야 할걸?”
“당연합니다. 그땐 저도 이전의 마사토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오, 그래?”
진호의 눈에 호승심이 들어찼다. 그건 마사토도 마찬가지였다.
둘이 형제처럼 지낸다지만, 승부는 별개의 이야기였다.
“진 짱! 둘이서만 이야기 하기야?”
우에토 유리가 허리에 손을 얹은 채 도끼눈을 떴다.
진호는 푸근히 웃으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출연해 줘서 고마워요, 유리 씨.”
그녀는 진호와 친분이 있는 일본 연예인으로서 오늘 토크쇼의 게스트로 출연한다. 마사토도 마찬가지다.
“분유값 벌어야지.”
“하핫.”
진호는 그녀의 몸을 아래위로 훑었다.
“붓기가 많이 빠졌네요?”
“엄청 노력했지. 히 짱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히로 씨를요?”
진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숍에서 제대로 꾸며 놔도 누구 한 명 시선조차 안 줄 것 같은데…….”
“아니야. 세상을 편하게 살려는 못된 것들이 아주 많거든.”
“아…….”
이해한 진호는 그녀와 함께 의자에 앉았다.
“작품은 검토해 봤어?”
우에토 유리가 눈을 초롱초롱 뜨며 물었다.
“좋던데요?”
대사나 꾸며 내는 상황이 꽤 웃겼다.
캐릭터도 좋았고, 그래서 욕심이 많이 생긴 상태였다.
“둘 다 좋아서 어떤 걸 해야 할 지 고민이 될 정도였어요. 뭐 어떤거든 일단 보호구는 착용하고 다녀야 할 듯싶지만…….”
두 작품 모두 달달하다.
그냥 달달한 게 아니라 우에토 유리의 남편인 마츠다 히로가 칼을 들고 쫓아을 수 있을 정도로 달달했다.
“아하하하하. 힘내!”
“그걸 당신이 밀하면 안 되죠.”
우에토 유리는 더 크게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낯빛을 굳히며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어떻게 됐어? 하기로 한 거야?”
“……그건 또 어떻게 아셨어요?”
[스킬: 괴도 루팡]과 [스킬: 갓 오브 워]를 통해 나키시마 유카가 사는 아파트에 몰래 들어갔고, 몰래 나왔다.아직 외부에 노출될 만한 행동이 없었음에도 우에토 유리가 그 사실을 알고 있자 의문을 표한 것이다.
“유카 짱이 나에게 그동안 예민하게 굴어서 미안했다고 말하더라고.”
진호는 그제야 이해를 했다.
“네, 하기로 했어요.”
“고마워!”
“고맙기는요. 목소리가 마음에 들어서 수락한 건데요.”
코앞에서 직접 들어 본 그녀의 목소리는 스피커로 들었던 것보다 훨씬 더 한이 맺혀 있었다. 영감이 파파박 떠올라 이 방송국으로 오는 동안 벌써 한 곡을 작곡했을 정도였다.
“……설마 나 때문인 건 아니지?”
“아니에요. 정말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어요.”
진호의 눈을 빤히 바라본 우에토 유리는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가능하겠어?”
그녀의 표정이 다시 변했다.
그녀의 얼굴에 어린 짙은 걱정에 진호는 피식 웃었다.
“노래는 고음을 질러야만 노래가 아니거든요.”
“응?”
“네드 시런의 노래를 떠올려 보세요.”
네드 시런뿐만이 아니다.
노래 안에 고음이 포함되지 않은 가수는, 정확히 말하자면 고음을 어려워 하는 가수는 의외로 많다.
“……아!”
“그리고 사람들이 망가졌다고 말한 그 목소리를 재가공할 방법도 생각해 놨고요.”
“저, 정말?”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창. 그걸 배우게 해야 해.’
한을 풀어내기 위해 존재하는 발성법인 창.
나키시마 유카의 한이 가득한 목소리를 1차 가공하려면 창이 필요 했다. 분명 창은 몸 안의 모든 한 과 소리를 끌어내는 듯한 고음의 발성법이기에 고음을 올린 이후 음정 박자가 흐트러지는 그녀에게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대선배님들과의 만남도 필요하지.’
허스키하다 못해 한 맺힌 쇳소리라고 불리는 한국의 여러 레전드 가수들. 그들의 조언과 노하우가 필요했다.
도입부의 단 한 소절로 모든 관객들의 눈과 귀, 마음을 사로잡는 그들의 표현력에 창을 버무린 후에야 나키시마 유카의 한이 가득한 목소리는 비로소 빛을 발할 준비를 마쳤다고 할 수 있다.
‘일이 커지는 것 같지만, 뭐…….’
그녀의 목소리를 빛나게 만들기 위해선 이 방법이 가장 좋고 빨랐다. 이후 2차 가공을 통해 그녀의 목소리는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음악 관련 스킬들뿐만 아니라 재생사도 그렇게 말하고 있어.’
그 후 얻은 감각도 진호 자신의 조언이 옳았다고 외치고 있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에그. 눈물이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히-!”
눈물이 고인 눈으로 배시시 웃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하지만 유부녀! 이모뻘!’
꼬집!
“악! 왜, 왜 그러세요!”
“나 아직 안 늙었거든!”
“……제가 설마 육성으로 말했나요?”
“얼굴에 다 써 있었어!”
“……응. 그래, 마사토. 뭐라고?”
“예?”
“진 짱! 말 돌리지 마!”
일본에서 스케줄을 모두 소화한 진호는 한국으로 향했다.
작곡이란 게 장소를 가리지 않다 보니 굳이 일본에 있을 필요가 없었고, 한국에서 할 일이 많기도 했다.
“명창을 섭외하는 건 어찌어찌한다 쳐도…….”
“네?”
진호는 차 안 옆자리에 앉은 정 실장을 보았다.
“그분들은 어쩌지? 레전드 가수 님들 말이야.”
“……아, 다들 한 성격씩 하시죠, 참.”
여차하면 말보다 욕과 주먹이 먼저 날아간다는 소문이 있는 레전드들.
“그러니까! 아오, 이럴 줄 알았으면 친분이라도 미리 쌓아 두는 건 데!”
진호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정 실장을 보며 눈을 껌뻑였다.
“그걸 왜 정 실장님이 고민하세요?”
“……응?”
“왜 유카 씨와 유카 씨 소속사가 해야 할 일을 정 실장님이 고민하시냐고요.”
“어…… 네가 제의한 거라서?”
“그렇죠. 제의는 제가 했죠. 하지만 실행해야 하는 건 그쪽이잖아요.”
“그건…… 그렇지. 하, 하지만 네가 향초도 만들어서 줬잖아.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 주기로 했고!”
“그거야 제가 편하려고 하는 거죠. 저 작업할 때 신경 예민해지는 거 알면서.”
작업을 할 때 원하는 만큼의 목소리와 감정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게 계속 반복된다면 어떤 심한 말을 할지 몰랐다.
그로 인해 부서질 서로의 멘탈을, 최대한 그 시기를 늦추려면 그녀의 컨디션이 좋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좋은 사람에게 그 정도도 못 해 주나요?”
나키시마 유카는 좋은 사람이다.
그동안 찾아본 일본 매체 속의 나키시마 유카와는 달리 굉장히 귀여운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이야 병으로 인한 기나긴 공백에 자존감이 밑바닥까지 떨어져 음악에 대한 소신조차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지만, 그래도 친구가 되고 싶을 만큼 좋은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직접 대선배님들 과 연결시켜 주고 싶지만, 이런 문제는 회사 대 회사로서 만나는 게 더 깔끔하지.’
이미 접근하려는 의도 자체가 순수하지 않기에 비즈니스로서 만나는 게 백배 천배 낫다.
‘뭐, 아는 대선배님도 없고.’
나이열과 김대원은 논외였다.
“어…….”
“나랑 다니면서 대체 뭘 본 건지……에휴.”
진호는 입을 다무는 정 실장을 외면하며 고개를 저었다.
“박 대리님, 저기 마트 앞에 세워 주세요. 갈 때 술 좀 사 가게.”
“어? 오늘 김대원 씨 녹음 봐주려는 거 아니었습니까?”
김대원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네드 시런과 함께 놀며 작곡한 곡을 오늘 아침에서야 모두 다듬었다고 했다.
“이열 삼촌도 오는데 녹음이 제대로 될까요?”
“……아.”
“그리고 어차피 오늘은가 녹음만 할 거예요.”
“가이드 녹음을 말하시는 겁니까?”
“대충 그런 거죠.”
누군가를 주려는 게 아니라 김대원 본인이 느낌을 잡기 위한 가이드 녹음이었다.
“뭐 이렇게 놀 듯 녹음하는 것도 대원 삼촌이 사장님이라서 가능한 일이지만.”
지금 가려는 곳은 김대원이 운영 하는 녹음 스튜디오였다.
행사를 뛰며 한푼 두푼 모아서 만든 스튜디오는 홍대의 가난한 뮤지션들을 위해 싸게 대여해 주고 있었다.
스르르!
차가 서자 진호는 내리며 입을 열었다.
“전 있다가 바로 집으로 갈 테니까 두 분은 이만 퇴근하세요.”
“그래, 수고.”
“옙!”
그렇게 차가 떠나자 마트에 들어가 술을 잔뜩 산 진호는 헤실헤실 웃으며 김대원의 스튜디오로 향했다.
“이럴 때 술을 마시는 거지. 최 작가님이 뭐라고 하면 대원 삼촌과 이열 삼촌이 억지로 먹였다고 알리바이도 댈 수 있고. 흐흐흐.”
술은 마실 기회가 있을 때 마셔야 했다.
벌컥!
“저 왔습니다!”
술 마실 생각에 문을 힘차게 연 진호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어, 왔어?”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드는 김대원과 나이열 때문에 굳은 게 아니었다.
“여기 이 형님들 알지?”
안다. 모를 리가 없었다.
“기, 김재범 선배님. 그, 그리고 유, 윤태원 선배님…….”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 중 한 명이라 꼽히는 김재범과 대한민국 최고 록 그룹 리바이벌의 더 이자 기타리스트며 작곡가인 윤태원.
그 레전드 두 명이 컵라면의 면발을 입에 문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