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203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9권 5화
쏴아아!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간다는 말이 이런 감각일까.
‘아차-!’
“안녕하십니까! 이진호입니다-!”
진호는 허리를 숙여 보지 못했지만, 이 우렁찬 인사에 깜짝 놀란 두 레전드가 급히 면발을 삼키다가 얹혀서 가슴을 두드렸다.
그들은 물을 마셔 겨우 내려보낸 뒤 몸을 일으켰다.
“나 알아요?”
묵직한 목소리가 진호의 귀를 파고들었다.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가 저희 어머니 애창곡이십니다!”
“……와, 이렇게 젊은 사람이 날 어떻게 알지?”
“오, 그러면 나도 아니?”
“예! 기타 배울 때 리바이벌 노래와 선배님 연주곡을 많이 들었습니다!”
“오! 재범아, 나도 안대!”
“이 대한민국에 형님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까? 아차, 편하게 있어요. 우리 그렇게 무서운 사람들 아니에요.”
“예!”
재빨리 허리를 편 진호는 시선을 슬쩍 돌려 이쪽을 보며 낄낄거리는 두 철없는 삼촌들을 노려봤다.
‘이분들이 오셨다면 오셨다고 말을 해야지!’
그랬다면 술과 안주를 더 사 왔을 것이다.
“풋! 태원이 형, 재범이 형. 쟤가 우리 쳐다보는 것 좀 봐요.”
“어휴, 무서워라.”
‘이 삼촌들이!’
진호는 김재범과 윤태원이 이쪽을 보자 최대한 선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두 레전드는 김대원과 나이열을 타박했다.
“너흰 이렇게 좋은 사람을 놀리고 싶냐? 바쁜 와중에 시간 쪼개서 대원이 가녹음을 봐주겠다고 온 사람을?”
“쯧쯧. 인성하고는.”
“……헐. 진호가요?”
“형님들 속지 마세요. 쟤 속이 아주 시꺼먼 놈입니다.”
“조용히 해, 이 못난 놈들아.”
“와-.”
김대원과 나이열은 가슴을 두드리며 진호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 보라는 듯 눈짓을 줬지만, 진호는 그럴수록 더 선한 미소를 지었다.
‘난 아무것도 몰라요.’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웃음이 나는 선한 미소라서 그런지, 결국 아빠 미소를 지어 버린 김재범과 윤태원은 진호가 양손 무겁게 든 커다란 검은 봉지들을 보았다.
“젊은 사람이 센스까지 있네. 이 자리가 노는 자리인지는 또 어떻게 알고.”
“여기 있습니다.”
“오, 땡큐.”
윤태원과 김재범은 희희낙락거리며 다시 컵라면 앞에 앉았다. 김대원과 나이열에게도 맥주를 넘겨준 진호는 두 레전드의 소탈한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 보았다.
“야, 우리도 정말 유명한 가수들이거든?”
나이열이 발끈하듯 말하였다.
“하지만 손색이 있으시죠. 요만큼?”
진호는 검지와 엄지를 아주 조금 뗐다.
“캬역시 우리 진호가 삼촌들 마음을 알아.”
“흐흐흐. 그런데 저분들은 어떻게 오신 거예요?”
“대원이가 정말 오랜만에 앨범 내잖아. 그것도 네드 시런과 함께 작곡한 곡.”
“아아.”
“아냐. 그런 핑계로 나들이 나온 거야. 불러 줄 사람이 없어서 집에서 방구들만 파는 양반들이거든.”
나이열의 말을 잇는 김대원의 말에 김재범과 윤태원이 발끈했다.
“야! 누가 뒷방 노인네야!”
“젊은 사람 앞에서 망신 주기냐? 너 녹음 할 때 한 번 혼내 볼까?”
“죄송함돠! 게임도 하십니다!”
“그렇지! 우린 게임도 하지!”
“요새 모바일 게임이 얼마나 재밌는데. 현질 하는 재미가, 크-. 그런데 돈슨은 왜 이렇게 현질을 유도 하는 거냐?”
진호는 금세 떠들썩해지는 넷을 보며 풀썩 웃고 말았다.
‘소문처럼 무서운 분들은 아니시구나.’
안심한 그는 김대원을 보았다.
“녹음하실 거죠?”
솔직히 김재범과 윤태원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화제를 돌린 것이었다.
노래와 기타를 배울 때 많이 듣고 참고했던 그들.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이거야. 나 목 푸는 동안 들어 봐.”
김대원이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가자 진호는 그가 가리켰던 노트북 속의 파일을 재생시켰다.
나이열과 김재범, 윤태원도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이야, 이 악물고 다듬으셨는데?’
고칠 점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 노래는 김대원을 위한, 그리고 김대원만이 부를 수 있는 맞춤 곡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진호는 목 푸는데 여념이 없는 김대원을 보았다. 눈이 마주친 그가 ‘왜?’라고 물어 오자 진호는 마이크에 걸린 헤드셋을 가리키며 음향기기에 있는 버튼 하나를 눌렀다.
-어? 왜?
“다 좋은데 피아노 비트만 좀 달리하는 게 어때요?”
– 피아노를?
나이열을 비롯한 세 레전드가 놀라서 진호를 보았다.
“네. 좀 늘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 부탁 좀 하자.
“옙. 5분이면 돼요.”
손을 비빈 진호는 피아노 음원을 드러내 고치기 시작했다.
“……너희들 짰냐? 저 젊은 사람을 우리들에게 소개시켜 주려고?”
김재범이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나이열은 피식 웃었다.
“소개시키려는 건 맞는데, 그렇다고 해도 이런 돼먹지도 않은 방식으로 소개시키겠습니까? 형님들 눈치 빤히 아는데?”
“……천재라는 거야?”
“소문 못 들어 보셨어요?”
“저 젊은 사람 소속사에서 포장 한 건 줄로만 알았지.”
김재범의 말에 윤태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열은 코웃음을 쳤다.
“형님들이 뭘 보고 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모두 진실이에요. 그리고 그 모두 진호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요.”
“정말 저 젊은 사람이 여기 태원이 형 같은 재능을 가졌다고?”
“훨씬 더 훌륭하죠. 프로듀싱 능력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그 외 나머지는 최고. 막말로 태원이 형이나 재범이 형은 빌보드에서 인기 끌은 적 없잖아요.”
나이열의 마지막 말에 김재범과 윤태원은 입을 다물었다.
“짜식이, 아픈 곳 찌르네.”
“흐흐흐.”
“아무튼 저 젊은 친구가 그 정도란 말이지?”
나이열은 살짝 놀랐다. 김재범이 아무에게나 ‘친구’라 칭하지 않는 걸 알기 때문이다.
“뭘 그렇게 놀래? 저 피아노 소리 들으니까 네 말이 진실인 걸 알겠구만.”
고개를 끄덕인 윤태원이 덧붙였다.
“그럼. 저 소리 듣고도 지적하면 그게 막귀지.”
어찌 보면 굉장히 단조로운 음률이다.
그러나 그게 다른 악기 소리들과 함께 어우러지자 김대원의 노래가 방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해졌다.
김재범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김대원의 가녹음은 의외로 오래 걸렸다. 오랜만에 내는 앨범이라서 그런지 기합이 잔뜩 들어갔기 때문이다.
진호는 버튼을 눌러 그를 제지했다.
“가녹음이잖아요. 목 나가실 거예요?”
-아…… 쩝. 오케이.
땀에 젖은 머리칼을 넘기며 나온 김대원은 진호가 내미는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캬아-! 좋다! 어땠어?”
“이 앨범 나오면, 한 달 후에나 앨범 발표를 해야겠다?”
“으하하하핫! 그렇지? 좋지?”
“진호야, 네 앨범은 그냥 겨울에 내. 대원이 들어가면 이 삼촌이 낼 거야.”
“아, 좀! 이 형은 왜 동생이 즐기는 꼴을 못 보지? 나한테 억하심정 있수?”
“진호의 관심을 독차지해서 그런다, 왜!”
“아, 그랬어? 그럼 계속 질투해.”
진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김재범과 윤태원은 혀를 찼다.
“어이그. 철은 대체 언제 들래?”
“알잖아요. 난 철들면 이런 음악 안 나와요.”
김대원이 검지를 좌우로 흔들자 나이열이 손을 번쩍 들었다.
“나도-!”
“자랑이다! 와서 술이나 마셔!”
“근데 형이 뭔 일입니까? 맥주를 다 마시고? 소주파잖아요.”
김대원의 말에 윤태원이 코웃음을 쳤다.
“있는 술이 이것밖에 없는데, 이거라도 마셔야지. 나온다고 말했으면 소주를 사다 두는 게 예의 아니냐? 짜식들이 나이 들었다고 아주 빠졌어, 응?”
눈을 동그랗게 뜬 진호는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를 어느새 다가온 김재범이 잡아 눌렀다.
“괜찮아요. 저 형님 맥주도 잘 마시니까.”
“하지만…….”
“말만 저렇게 하는 거예요. 막상 젊은 친구가 소주 사러 가면 미안 해서 견디지 못할걸요?”
진호는 깜짝 놀랐다.
‘응? 어? 날 어느 정도 인정했다?’
왜, 라는 생각부터 떠올랐다.
말한 번 제대로 나누지 못한 상태였으니 말이다.
“왜 그래요?”
“아, 아뇨. 아,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한참 후배입니다.”
“그건 우리가 서로 더 친해지면 응? 무슨 말인지 알죠?”
“하하, 예!”
‘젠틀하시네.’
웃음도 무척이나 선했다.
진호는 마음을 좀 더 놓을 수 있었다.
“이번 OST 들었어요. 좋던데요? 네드 시런 노래도.”
“아, 감사합니다.”
진호는 뿌듯이 웃었다.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만든 OST이기에 예의 상이라도 쑥스러워한다는 건 그 노력에 대한 배신이었다.
김재범은 그런 진호의 모습에 살짝 놀랐다가 이내 더 기꺼워했다.
‘그렇지. 진짜 뮤지션이라면 이런 소신이 있어야지.’
그는 다시 웃으며 진호의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이번에 일본 가수와도 작업하신다면서요?”
진호는 깜짝 놀랐다.
“그, 그걸 어디서…….”
“그쪽에서 연락해 왔더라고요.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아, 그래서 여기에 오신 거 군요.”
‘어쩐지. 대원 삼촌이 올 거냐고 굳이 물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그런데 이야-. 유카 씨 소속사 행동력 좋네.’
“대원이 컴백 앨범도 궁금해서 겸사겸사 온 거죠. 그보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예. 말씀하세요.”
“대체 창은 왜 하라고 한 겁니까?”
“그것까지 말한 건가요…….”
김대범 입장에서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창이라는 건 들어 본 적 없는, 혹여 들어 봤어도 잘 모르는 미지의 것일 테니 말이다.
“스토리가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판소리! 국악!”
“네. 제가 익히게 하려는 것은 판 소리입니다.”
무릎을 탁 친 김재범은 웃음을 터트렸다.
“스토리가 명확하기에 어느 부분에서 어떤 감정을 불어넣어야 할 지 알게 된다?”
“네. 단순히 그분의 창법을 바꾸기 위해서 창이란 발성법을 익히라고 조언한 게 아닙니다.”
양측이관개방증은 겨우 발성법을 바꾼다고 음정 박자가 잡아질 만큼 호락호락한 병이 아니다.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다.
이렇게 부르라고 강요해 버리면 된다.
아니, 정확히는 강요되어 버린다.
창이란 가요처럼 고작 5분짜리로 함축시킨 짧은 순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사람 혹은 어느 인물들의 인생 전부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걸 알게 해선 안 된다. 의식해 버리는 순간 음정 박자가 다시 흐트러질 테니 말이다.
그래서 굳이 창이라고 말한 것이었다.
이런 진호의 설명에 김재범은 입을 벌렸다.
“그런 방법이 있을 줄이야…….”
“이것도 모두 유카 씨가 한 시대를 풍미한 대가수였기 때문에도 전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요.”
“그렇죠. 성공한 가수로서의 감각은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죠. 하지만 현재는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서 백지나 다름없을 상태……. 그래서 창이었군요. 가부키가 아니라.”
한국에 창이 있다면, 일본엔 가부키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아, 그건 아닙니다. 유카 씨의 목소리를 다듬기 위해서는 창이 가장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까? 허허.”
‘같이 작업하려는 가수를 위해 이런 조언까지 하는 작곡가가 있었던가? 아니, 그 이전에 이렇게 젊은 나이에 성공한 사람이 그런 걸 할 수 있을까?’
물론 이는 가수의 자존심을 뭉개는 행위이기도 하다.
네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바꾸라는, 그 가수가 이룩한 모든 것을 깔아뭉개는 행위.
그러나 김재범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그냥 심성이 착해서 망가져 버린 사람을 두고 보지 못한 거다. 그래서 미약하게 남은 가능성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조언을 해 준 것이다.
활짝 웃은 김재범은 손을 내밀었다.
“다시 인사합시다. 나 김재범입니다. 그 사람과 작업 끝나면 나와도 작업합시다.”
진호는 경악했다.
‘날 완전히 인정했어?’
“……예, 이진호입니다. 오리콘을 정벌하고 찾아뵙겠습니다.”
“푸하하하하핫!”
스튜디오를 쩌렁쩌렁 울리는 그 웃음에 김대원과 나이열은 놀랬지만, 윤태원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진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