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273
11권 25화
“안 가면 안돼요?”
“지노, 가지 마.”
바짓단을 잡으며 떼를 쓰는 두공주의 행동에 난처해진 진호는 그저 말없이 둘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아쉽네요.”
“아, 왕비님.”
“저도 딱 하루만 더 있어 달라고 마에스트로를 붙잡고 싶지만, 그럴수는 없겠죠?”
진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일주일이 되는 법이었다.
아직 둘러볼 곳도 많고 할 일도 많은데, 이곳에서 이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 역시 어쩔 수가 없네요.”
왕비는 두 공주를 다독이며 진호에게서 떼어 내 물러났다.
그러자 이번엔 국왕이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악보가 들려 있었다.
“자네가 준 이 선물. 스페인의 젊음이라는 제목처럼 스페인을 위해 쓰도록 하겠네. 함께해서 즐거웠고, 앞으로 하는 모든 일에 신의 은총이 깃들길 빌겠네.”
“스페인의 앞날에도 신의 축복이 함께하길 바라겠습니다.”
고개를 푹 숙인 진호는 마지막으로 레오노르와 소피아를 쓰다듬은 다음 몸을 돌려 왕궁을 빠져나가 차에 올랐다.
탁!
“역시 지노와 함께 있으면 별의 별 경험을 다 한다니까.”
“왕궁 생활은 재밌었어요?”
“재밌다 뿐일까. 아내와 딸이 무척이나 부러워하더라고!”
“푸하핫! 그래요? 그런데 독일에서 어쩌려고 놀리셨어요?”
생각하길 포기한 월터는 뒷좌석에 놔둔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는 진호를 보며 의아해했다.
“뭐하게?”
“아, 사진 좀 옮기게요.”
“사진?”
진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스페인왕가 일가를 찍은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어떻게 예쁘게 보정할까?’
친해지게 된 레오노르와 소피아에게 보낼 선물이니 전력을 다해 보정해야 할 듯싶었다.
“흠. 그럼 다음 목적지는? 원래 예정대로 발렌시아로?”
“아니요, 바로셀로나로 가요. 거기서 별다른 추천 없이도, 즉 일반인도 참가 가능한 국제 콩쿠르가 열리거든요.”
“갑자기?”
“네. 갑자기.”
‘불이 붙어 버려서요.’
오랜만에 진심을 다해 피아노를 치니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콩쿠르에 참가해 좋은 성적 거두기’가 떠올라 버렸다.
불이 붙은 이상 무조건 해야 했다.
“지원서와 데모테이프 보내 놨어요.”
“그건 또 언제 한 거야? ……그런데 괜찮겠어?”
“이번에 처음 개최하는 대회라서 주목도가 거의 없다시피 할 테니 괜찮아요. 다미앙 씨에게 전화 받을 일 없어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정말이지? 지노 네가 사고 치면 나도 같이 혼난다고.”
월급을 지불하는 창구가 팀 이진호다 보니, 팀 이진호의 헤드인 다미앙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괜찮아요. 절대 없어요. 그 음악 좋아 하시는 왕비님도 모르는 대회인데 한국에서 알 리가 없잖아요.”
“흠, 알았어. 출발할게.”
다시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대회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절대 알 리 없지.’
* * *
입을 다문 다미앙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마우스를 움직였다.
달칵!
……대회 이진호 우승!
스페인을 울린 연주!
스페인 왕비도 극찬한 연주! 스페인 왕비 눈물을 흘리다!
이진호는 정말 외계인?
“아.”
한국 언론사들이 보내온 기사 초고를 확인한 다미앙은 뒷목을 주물렀다. 스페인 국왕에게 초대되어 표창장을 받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한 번 사고를 거하게 쳤다.
“정말 내 연예인은 쉬질 않는군.”
그렇게 말하는 다미앙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 했다.
알아서 이슈를, 그것도 좋은 이슈만 만들어 내는데 싫을 리가 없었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며 기획부의 직원이 들어 왔다.
“알아보니까 외교 라인을 통해서 증권가에 퍼진 거래요.”
“외교 라인?”
“스페인 국왕이 한국 대사를 불러다가 극찬을 했다나 봐요. 위대한 음악가들을 배출하는 한국이 참 부럽다고요.”
“……에밀리 대표의 숨넘어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군요.”
“연주회 문의가 폭주하고 있데요.”
최봄, 이해솔 등 진호가 끌어모은 피아니스트들을 관리하기 위해 불러온 카터 에이전시의 대표, 에밀리 카터.
돈이 아니라 소속 피아니스트의 건강을 더 우선시하는 그녀이기에 지금 쯤 스케줄을 조율하느라 정신이 없을 터였다.
‘그에 내 결혼 자금도 착실히 늘어나겠지.’
고개를 끄덕인 다미앙은 입을 열었다.
“진호 씨가 찍은 사진들에 대한 반응은 어떻죠? 잠잠해졌습니까?”
기획부 직원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더 시끄러워지고 있습니다.”
발단은 패션계에서 제법 유명한 어느 사진작가의 러브콜이었다.
그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세레나데로 같이 작업하자는 메시지를 남겼고, 이에 지니어스는 물론이고 진호의 SNS에 들르는 수 많은 사람들도 뒤집어졌다.
“각 분야에 이름을 알린 사진작가들이 러브콜을 날리고 있어서 가라앉을 생각을 안 합니다. 그중엔 내셔널 지오그래픽 공모전이나 퓰리처의 단골들도 있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퓰리처의 단골이면 사진 쪽에서 대가 소리를 듣는 이들을 말한다.
“……정말 어디까지 재능을 가져야 만족할지.”
다미앙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 그런데 팀장님.”
“네?”
“진호 씨가 찍은 이베리아 시라소니 무리 사진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이젠 답을 줘야 하지 않을까요?”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비롯한 세계 유명 잡지들과 공신력 있는 주간지들이 진호가 찍은 사진을 원하고 있다.
시라소니의 습성 때문에 여태까지 그 누구도 찍은 적 없고, 앞으로도 찍을 수 없는 너무도 진귀한 사진들. 동물원이라는 갇힌 세상이 아니라 대자연이라는 광활한 세상을 배경으로 찍었기에 더욱 그런 사진들.
이 때문에 세계 각국 동물 연구소에서도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스페인 정부에 몇 장을 넘긴 것때문에 더 난리던데요……”
“흠, 그럼 이렇게 하죠. 저희가 정해서 넘기는 것보다는 그들끼리 알아서 정하게 만드세요. 진호 씨와 이제야 연락이 닿았다는 변명도 해 주시고요.”
“……아,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환하게 웃은 직원이 문을 닫고 나가자, 다미앙은 검지로 책상을 톡톡쳤다.
“그래, 아직은 거만해질 수 없지. 어차피 진호 씨의 재능이 만개한 이상, 진호 씨의 사진은 계속 수요가 있을 테니까.”
지금도 그렇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비롯한 잡지사들은 이베리아 시라소니 무리 사진들을 어떻게든 확보하려 들면서도 진호가 찍은 다른 사진들도 욕심 냈다.
“여기서 눈표범 사진마저 찍으면 정말 난리가 날 테지만……”
히말라야 산맥에서 목격된다는 눈표범.
어느 작가는 몇 년을 기다려 겨우 찍었다고 할 만큼 인간이 발견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동물이었다.
그땐 그 어떤 잡지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아직은 일렀다. 권위는 단숨에 얻으면 꼭 문제를 일으키고 마는 성질의 것이니 말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 아시아를 여행한다는 소린 안 했으니까.”
‘……그렇겠지?’
갑자기 불길해진 다미앙은 재빨리 핸드폰을 들었다.
그 순간.
띠리링!
‘……쯧.’
“네, 다미앙 토마소입니다.”
-팀장님, 정구호 실장입니다! 이제 막 비행기에 탔습니다!
다미앙은 눈을 빛냈다.
안식년임에도 잡힌 LVMH 스케줄을 위해 출국하는 팀 이진호의 스타일리스트 팀.
달걀은 한 바구니에 담는 게 아님에도 큰 결정을 내린 LVMH의 황제 아르노 베르베우를 위해 다미앙도 나름의 드림팀을 보내기로 했다.
“네. 도착하면 연락주세요.”
-넵! 그럼 14시간 뒤에 다시 전화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다미앙은 한손에 쥔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이내 갈무리했다. 하지 말라면 꼭 해 버리고 마는 성격과 운을 가진 진호이기에 그냥 처음부터 말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 나도 이제 일본으로 넘어가야겠군.”
다미앙은 팀 이진호의 헤드이자, 일본에 있는 아시아 총괄지사의 치프 디렉터였다.
* * *
“나 안식년인데……. 안식년은 쉬는 날만 계속 있으니까 안식년인건데……”
눈가가 거뭇거뭇해진 진호는 넋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려 20일 동안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광고를 찍었기 때문이다.
진호는 원망을 담아 정 실장을 노려봤다.
스케줄을 이렇게 잡은 건 기획부의 장경아 실장일 테지만, 눈앞에 있는 건 그였기 때문이다.
화들짝 놀란 정 실장은 재빨리 핸드폰을 들며 몸을 돌렸다.
“네. 여보세요?”
“스톱. 지금 도망치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 괴롭힐 거예요.”
“……살려 줘.”
진호는 코웃음을 쳤고, 정 실장은 다급해졌다.
그는 진호의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어이구, 우리 연예인 피곤하지? 배고프지? 어떻게 저녁은 미슐랭에서 먹을까? 아님 한식 먹을래? 그래, 한식이 좋겠다. 한식 먹은지 오래됐지?”
갈등하던 진호는 이내 한숨을 내뱉었다.
“됐고, 조건들은 어떻게 돼요?”
“아. 조건은 패션브랜드들보다 좀 높아. 일단 기본적으로 대가성 없는 후원금이 한화로 약 60억. 이것저것 다 합하면 거의 그 두 배 정도야.”
진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쪽에서 잘도 그런 계약을 받아들였네요.”
생각보다 훨씬 큰 액수였다.
“역시 주류 회사라 통이 큰 건가?”
“네가 안식년이었던 게 컸지.”
“……아, 그럼 직원 분들이 일을 잘 해 주신 거네요. 역시 우리 직원들!”
“네가 믿고 맡겨 준 건데 이 정도는 당연하지 않겠냐.”
“푸흐흐.”
서로 믿어 주고, 서로 그 믿음에 보답해 준다.
정말 이런 사람들을 만난 건 축복이었다.
“기분입니다. 제 사비로 이번 달전 직원 보너스 백 퍼센트!”
“사랑한다, 진호야!”
정 실장뿐만 아니라 스타일리스트 팀 모두 만세를 외쳤다.
뒷정리를 하던 프랑스 스태프들은 그런 그들을 보며 의아해했다.
“그런데 그 아르노라는 분도 꽤 성격 나쁘시네.”
“음? ……아. 하하.”
아르노는 각 주류 회사들에게 진호를 모델로 쓰라고 해 놓고, 정작 계약에 관한 문제는 주류 회사들에게 위임해 버렸다.
그 결과, 이런 말도 안 되는 계약들이 성사된 것이다.
‘후계자 때문이겠지.’
LVMH 그룹 내에서 디올이라는 특수성과 그간의 승승장구로 인해 피에트로가 가장 유력한 후계, 차기 LVMH의 주인으로 꼽힌다지만 아르노는 주인이 된 입장으로서 피에트로만 예뻐할 수 없다.
또한 아르노 베르베우에게는 LVMH 그룹 내에서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자식들도 있다.
그렇기에 아르노는 언제나 시험하고 또 시험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만든 LVMH가 영원하길 원할 테니까.’
뚜벅뚜벅!
“음?”
진호는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슈트를 입은 노인을 발견하곤 경악했다. 그는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입니다, 무슈 리.”
“그동안 잘 계셨죠, 까미유 집사님? 손녀분께서 결국 원하시는 대학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늦었지만 축하드려요.”
방금 전 말한 아르노 베르베우의 대저택의 소사를 담당하는 까미유 집사장.
“허헛. 늦다니요. 무슈 리께서 보내 주신 입학 선물은 정말 잘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걱정해주신 덕분에 별 탈 없이 주인님을 모시며 잘 지냈습니다.”
“휴, 다행이네요. 그러면 아르노씨가 절 부르신 건가요?”
“예. 주인님께서 오늘 저녁이 아니면 시간을 내기가 힘드시기에 이렇게 실례를 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부디 응해 주시겠습니까?”
“그럼요. 무려 까미유 씨를 이렇게 보내셨는데 응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허허헛.”
진호와 까미유 집사는 서로를 향해 기묘한 눈빛을 보냈다.
“대신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화장을 아직 못 다 지웠거든요.”
“예약 시간까진 충분합니다.”
“예약?”
“아차. 죄송합니다. 주인님께서 오늘은 저택이 아니라 단골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대접하고자 하십니다.”
“아르노 씨의 단골 레스토랑?”
지구의 모든 산해진미를 맛볼 권력과 재력을 가지고 있는 그 아르노가 단골로 삼은 레스토랑.
프랑스에 있는 수 많은 미슐랭 스타의 레스토랑 이름들이 떠올랐지만, 진호의 마음이 쏠리는 건 딱한 곳이었다.
“혹시…… 그곳이 라 파르 뒤인가요?”
까미유 집사의 눈이 번뜩였다.
“아십니까?”
‘역시! 아르노 씨와 어울리는 곳은 거기밖에 없지! 조용하면서도 넓고, 음식 맛이 환상적인.’
프랑스 현지인조차 잘 모르는 숨겨진 맛집이었다.
“들어 봤어요. 미슐랭을 비롯한 모든 미식가들의 평가를 거부 하지만, 이곳의 코스 요리를 먹지 않으면 프랑스의 맛을 논하지 말라는 그곳이잖아요.”
‘그리고 프랑스 요리 관련 스킬과 연관된 장소.’
프랑스 요리 관련 1차 해금 조건이 ‘라 파르 뒤에서 코스 요리 먹기’였다.
“정확합니다. 역시 무슈 리께선 식견도 대단하시군요. 그러면 전차에 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금방 갈게요!”
그렇게 까미유 집사장이 사라지자 진호는 멍해 있는 직원들을 보았다.
‘마음 같아선 여기 있는 직원들 모두 라 파르 뒤에 데려가고 싶지만……’
여기 직원들이 아르노 베르베우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를 감당못한다.
‘어쩔 수 없나.’
“아무래도 오늘 저녁은 여러분끼리 드셔야 할 것 같네요. 회식은 내일 하도록 해요.”
“어…… 뭐 나쁜 일은 아니지? 네가 꽤 놀란 것 같아서.”
“그럼요. 아니에요. 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 편히 쉬고 계세요.”
“……진짜지?”
“그렇다니까요.”
우물쭈물하던 그들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다시 진호의 화장을 지우기 시작했고, 진호는 눈빛을 가라앉혔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기에 무려 까미유 씨를 보낸 걸까?’
원체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을 가진 아르노라서 머릿속이 좀 엉클어졌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