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280
12권 7화
3. 연말
투다다다당! 쾅! 광!
추레한 골격만 드러낸 커다란 건물이 아래서부터 천천히 꽃단장을 해 간다.
총 12층짜리의 건물의 공사장 밖에 선 다미앙은 눈을 반짝였다.
오직 HU 에이전시 팀 다미앙만을 위한 건물.
허름한 셋방살이에서 드디어 이곳까지 온 것이다.
‘일개 캐스팅 디렉터였던 내가 이곳까지 온 거다.’
세계를 주름잡는 캐스팅 디렉터들 중 극히 소수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게 이런 건물이다.
작렬하는 태양빛을 견뎌 가며 브라질의 작은 동네들을, 하루 종일 내리는 부슬비를 맞아 가며 어느이름 모를 나라의 뒷골목을 뒤지고 뒤져 결국 최고의 원석을 찾아낸 캐스팅 디렉터만이 이룩할 수 있는 업적이며, 성공의 증표다.
땅값이 싼 서울 외각이 아니라 세계에서 땅값 비싸기를 따지면 꼭 10위안에 드는 강남 한복판이라서 더더욱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모두 진호 씨 때문이지.”
다미앙은 이진호라는 인물을 처음 발견했을 때를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그는 가공이 되지 않은 순수한 원석이었음에도 마치 최고의 장인이 전력을 다해 커팅을 마쳐 놓은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있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
지금 진호가 이룩해 놓은 결과물들을 보면 정말 그렇게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지금의 다미앙 토마소는 없었을 테지.’
고작 30대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시아 총괄 지사장을 노리는 다미앙 토마소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그저 치프 디렉터의 자리에 올라 총괄 지사장 자리를 노릴지, 아님관리하는 모델들을 데리고 독립을 할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좀 아쉬움 점이 있다면……”
“땅을 구매해서 저희의 입맛대로 건물을 올리지 못한 겁니다.”
“아, 장 실장. 왔습니까?”
장경아 실장은 안경을 추켜세우며 건물을 보았다.
그런 그녀의 눈도 감동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PJY를 나올 때만 해도 강북 어느 빌딩의 한 층 전세면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PJY도 비싼 땅값 때문에 쉽사리 들어오지 못하는 강남에 건평까지 넓은 12층짜리 고층 건물을 사서 인테리어를 하고 있다.
심지어 같은 강남에 먼저 입주해 있는 SY보다 층수가 더 높다.
“그 말도 안 되는 8 대 2의 계약으로도 이렇게 단기간에 이런 건물을 살 수 있다니……. 거기다 진호 씨를 제외하면 주력 수익 모델은 패션모델인데도……”
그녀는 진호와 다미앙이 맺은 그 계약 때문에 성공의 지표를 낮게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PJY라는 대한민국 3대 기획사를 퇴사한 것은 진호의 외모도 외모지만, PJY를 이루는 모든 것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다.
뜨고 나니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연예인들.
그런 연예인들을 감싸고만 도는 회사.
낙하산 타고 내려와 사무실과 현장을 개판으로 만드는 투자자의 지인들.
그 짜디짠 월급은 또 어떤가.
그렇다 한들 배운 것이라곤 이 바닥일 뿐이라 퇴직하지 못해 살아가던 중 다미앙의 헤드헌팅은 마치 뜨거운 사막을 걷다 만난 오아시스처럼 달콤했었다.
“정말 팀장님과 진호 씨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다미앙은 고개를 저었다.
“모두가 함께 잘 해 준 덕분이죠. 저희 둘만 있었다면 아마 이것의 30퍼센트조차 이루지 못했을 겁니다. 본사가 이렇게 건물 대금을 지원하는 일도 없있겠죠.”
이 건물의 매입 대금 중 반절은 HU 에이전시 본사가 지원했다.
진호도 진호지만, 중국과 일본의 아이돌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것에 대한 일종의 보너스였다.
이 역시도 HU 에이전시 역사상 유례없는 보너스 액수였다.
“……그렇게 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품는 생각입니다. 지금의 이 성공은 모두가 잘 해 준 덕분에 이룩한 것이라고.”
옅게 웃은 다미앙은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무슨 일입니까?”
“……몇 번 연락을 드렸는데 받지 않으셔서 이렇게 찾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요?”
아웃도어 점퍼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을 꺼낸 다미앙은 입맛을 다셨다.
부재중 전화가 무려 7통이나 와 있었다.
“미안합니다, 장 실장.”
“아닙니다. 팀장님이 국내에서 함흥차사가 되시면 꼭 이곳에 계시니 찾기가 편합니다.”
“……아하하.”
머리를 긁적인 다미앙은 이내 정색 했다.
“그래서 무슨 일입니까?”
무려 팀 다미앙의 기획부서의 탑인 장경아 실장이 부하 직원을 보내기보다 직접 찾아온 일이다. 일의 경중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고, 다미앙은 최악의 가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진호 씨에게 무슨 일이라도? 알프스에서 조난이라도 된 겁니까?”
다미앙의 발끝이 당장이라도 뛰어갈듯 돌아섰다.
장경아 실장은 다시 안경을 추켜 세웠다. 그런 그녀의 손끝이 따르르 떨리고 있었다.
“진호 씨와 연관된 일이 생긴 것은 맞는데, 인명 사고가 아닙니다.”
“……그럼?”
“청…… 후우.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예? 어디요?”
“청와대에서 연말 귀빈 초청 행사, 아니 파티에 진호 씨를 초대했습니다.”
“……예?”
다미앙은 장경아 실장을 보며 눈을 껌뻑였다.
* * *
알프스라고 해서 모든 것이 새하얗게 물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늘 높이 솟은 나무들은 비록 그 푸름은 저물었을지라도 제 색을 뽐내며 모여 있고, 이름 모를 잡초들은 대지를 수북하게 덮은 눈을 뚫고 올라와 미약한 존재감을 표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한들 어둔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는 하얀 수증기만 못하지만 말이다.
타닥타닥타닥!
커다란 돌들을 품은 채 춤을 추는 모닥불 옆. 성인 남성의 허벅지 높이까지 파인 넓은 구덩이 속에서 눈을 녹인 물이 수증기를 내뿜고 있다.
“이건…… 정말 천국이군.”
팬티조차 벗은 채 탁한 물속에 몸을 담근 아르노는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에 맺힌 땀을 훔쳐 내며 탄식을 뱉어 냈다.
“그래요?”
진호는 피식 웃었다.
알프스에 오르기 전 갑작스레 찾아왔던 아르노.
겨울의 산은 견디지 못할 거라몇 번이고 만류했지만, 그는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데려왔는데,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노는 그런 진호를 고맙다는 듯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이곳에 오기 전까지 머릿속을 채웠던 모든 시름과 걱정이 하찮다 느껴질 정도야.”
정말 그랬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밤하늘을 수놓은 별무리 아래 사람 한 명 없는 겨울 숲속에서 한 잔의 맥주와 함께 이렇게 온천욕을 즐기니왜 그동안 아등바등 살아왔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태초로 돌아가 만끽하는 자유가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그것도 불법적으로 누리는 자유가 아니라 합법적으로 누리는 자유라서 더 기껍게 느껴졌다.
이젠 포토그래퍼로도 이름을 알린 진호가 알프스의 이곳저곳을 찍으며 산맥 안에서 캠핑을 하고 싶다고 하자 스위스 관광청은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아니, 되려 희귀한 동물들이 있는 곳들을 알려 주며 은근히 욕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죠. 물론 이런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 참 고생했지만요.”
삽과 곡괭이로 언 땅을 파고, 방수천을 깔고, 주위에 있는 눈들을 모아다가 모닥불로 달군 돌들을 던져 만든 온천탕이다.
“그건 그렇지.”
너무도 오랜만에 해 보는 삽질은 뼈마디를 시리게 했었다.
그럼에도 불만 없이 계속 했던건 ‘겨울 숲에서 온천욕을 해 보는게 어떠냐’는 진호의 유혹 때문이었다.
세상 모든 걸 해 본 아르노로서도 결코 해 보지 못했던 경험.
‘아니, 사실 이런 캠핑조차도 내겐 낯설지.’
아르노 본인의 인생은 LVMH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따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내 몸이 견딜 수 있으면서도 단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
아마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 날에 다시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싶은 순간이었다.
아르노는 이런 경험을 하게 해준 진호를 온기 서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남자의 그런 눈빛은 사양인데요……”
“……하하하하핫! 그런데 이렇게 해도 되는……아, 되는 거였지, 참.”
진호는 허락을 받을 때 땅을 좀 파거나 모닥불을 피울 수 있다 말했고, 스위스 관광청은 불만 나지 않도록 해 달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아르노는 돌연 진호를 째려봤다.
“이렇게 좋은 것들을 혼자만 즐기고 다닌 건가?”
갑작스런 그의 표정 변화에 반사적으로 놀랐던 진호는 이내 히죽 웃었다.
“흐흐. 저랑 월터 씨 둘이서 즐긴거죠. 유럽횡단의 테마가 힐링이라서요.”
“부럽군!”
진호는 눈을 빛냈다.
“그럼 같이 다니실래요?”
움찔!
‘아, 고민한다.’
진호는 진심으로 갈등하는 아르노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르노가 이렇게 찾아온 이유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진호가 부르고뉴의 별장에 해 놓은 일로 인해 앙심을 품었을지도 모를 앙트완과 델핀에게서 진호를 보호하기 위해서 온 게 아니다.
아니, 그 부분이 없잖아 있지만, 결국 아르노는 벗어나고 싶어진거다. 평생토록 친구로 지낸 외로움에게서 말이다.
‘에휴, 그래도 가족인데…….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아르노 씨의 언행이 가장 클 테지만…… 뜻.’
그래도 저 나이에 함께 훌쩍 떠날 사람이 없다는 건 참 서글픈 일이었다.
이런 진호의 마음을 알아차린 아르노는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이 아르노를 동정한다라…….’
이전에 진호를 처음 저택에 초대했을 때도 그랬지만, 굉장히 생소함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때도 그랬듯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날 LVMH의 주인이 아니라 일개인 아르노 베르베우로 보기에 그런 것일지도……. 그래, 이런 기회가 흔할까.’
안식년을 끝낸 진호는 아마 더 높은 곳으로 향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일 터였다.
즉, 다시 오지 못할 기회일 수도 있었다.
오늘 일로 더 쉬고 싶어진 아르노는 이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 그러면 서로 스케줄을 정리해서 만나도록 하지.”
‘한 일주일쯤 시간을 낼 수 있을테지.’
진호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저도 일단은 중국에서 열릴 연말 시상식에 참여해야 하니까요.”
장칭과 약속을 했으니만큼 시상식에는 반드시 참석해야 했다.
“시상식만 끝나면 바로 넘어와서 다시 여유롭게 여행할 수 있을 테니……”
“바로 넘어올 수는 없겠어, 지노. 새해까진 한국에 있어야 할 것 같아.”
“응?”
진호는 약간 떨어져 있는 군용천막에서 팬티 바람으로 걸어 나오는 월터를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게 무슨 말이세요?”
“방금 치프에게서 위성전화로 전화가 걸려 왔는데, 청와대에서 연말 파티에 지노를 초대했다는군.”
“……왜죠?”
너무 놀란 진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고, 월터는 어깨를 으쓱였다.
둘의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한 아르노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 * *
완벽히 뒷정리를 마치고 아르노와 잠깐의 이별을 한 후 알프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은 진호는 시상식이 가까워지자 중국으로 향했다.
“오랜만이에요. 다미앙 씨.”
“마담 메시어와 그랑 크루아 베르베우에게 사랑을 듬뿍 받게 됐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진호씨. 그 소식을 듣고 정말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장난기 가득 오버 액션을 취하는 그의 모습에 진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자면 하루로도 모자랄 거예요.”
진호는 공항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그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무조건 참석해 달라고요?”
코리안 쉐프 때문에 초청을 한 청와대.
“예. 위성전화로 전달한 것처럼 청와대가 진호 씨의 불참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왜죠?”
한국과 중국의 문화 교류에 관한 상징으로 코리안 쉐프가 꼽혔다지만, 그래 봤자 정치인들 입장에서 보면 일개 영화일 뿐이다.
더욱 이 이번 행사는 올 한 해 대한민국을 빛낸 이들을 대규모로 모은 초청 파티다. 연예계를 비롯한 예체능, 정재계 인사 모두 참석한다는 소리다.
그래서 진호는 안식년을 방해받지 않고자, 그리고 정치인들과 어울리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불참을 하려고 했는데 청와대가 이를 용인하지 않고 있었다.
우해진도 코리안 쉐프의 주역으로서 참석하는데 말이다. 분명 표면상의 이유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다는 소리였다.
“저희도 여러 채널을 통해 알아보고 있지만……”
“쯧. 골치 아프게 됐네요.”
‘그냥 확 한국 활동을 접어 버려?’
울컥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좋을지 나쁠지도 모르는 상황 때문에 그런 큰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래, 참석만. 딱 참석만 하고 돌아와야겠…… 음?’
청와대 관계자가 들으면 기겁할 생각을 머릿속으로 하던 진호는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노인을 발견하곤 언제 심각했냐는 듯 환하게 웃었다.
“할아버지-!”
후다닥 달려간 그는 마중을 나온 장칭을 와락 껴안았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