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29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2권 4화
구영재는 눈살을 찌푸렸다.
“흠, 아이디어는 좋은데 그래서는 적자야.”
술을 직접 판매하는 것만큼 이윤이 남지 않는다. 그리고 주점에 동원할 수 있는 예산은 한정적이었다.
“그러니 무알코올 칵테일도 파는 거죠. 1리터 한 병에 만 원. 손님도 섞고, 우리도 섞고.”
침울해지던 선배들의 얼굴이 다시 굳었다.
1리터에 만 원이라면 시중 판매가보다 훨씬 싸다. 그런데 과일 음료만 섞는다면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다.
진호는 씩 웃었다.
“그렇게 하면 문제가 없지 않을까요? 어차피 꼼수는 다 차단됐으니까 처음부터 서로 상부상조하는 거죠.”
리셋 라이프를 할 때도 그랬다. 커뮤니티가 살아 있을 적 정말 안 풀리던 스토리의 공략법을 참고한 적이 있고, 또 누군가 진호 자신의 공략법을 따라 해서 완료 했다고 댓글을 단 적도 있었다. 이렇게 기쁨이나 슬픔은 서로 나누면 배가 되는 법이었다. 즐기려고 하는 일인데 괜히 혼자 끙끙 앓을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음식도 퀄리티 있게. 큐브 스테이크도 볶고, 조개탕도 끓이고.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하죠. 제육이나 부침개 같은 거 내놓지 말고요. 식품영양학과에게 꿇린다면서요.”
이야기를 들어 보면 대학 축제는 빈약한 안주를 내놓고 엄청난 돈을 받는다고 했다.
축제의 주점이 만남의 장이라지만 맛있는 걸 사랑하는 진호로서는 그게 좀 싫었다. 음식은 그 가치에 맞는 값을 받아야 한다. 그럴싸한 말에 선배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러다 안오면?”
“야, 얘가 있잖아.”
주점에 진호가 있다. 이야기는 끝났다.
“끙. 그래도 박리다매로 가면 다른 과에서 항의할 텐데……. 이윤도 얼마 남기지 못할 테고.”
“아니, 진호의 말이 맞아. 따져 보면 예산도 그렇게 들지 않고.”
마장동이나 도매점에서 사면 된다. 발품을 좀 더 팔면 되는 거다. 이런 구영재의 설명에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처음 겪는 축제인데 재미없었다는 소린 듣기 싫어요. 술이란 조커를 뺏겨서 더.”
“들었냐?”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만족스러운 듯 웃은 구영재가 그들을 둘러봤다.
“어차피 술이란 전제 조건이 사라지면서 어떻게든 손님을 끌어들여야 하는 판이 펼쳐졌어. 일반 학생들은 몰라도 우리 집행부는 도 태되지 않으려면 뭐든지 해야 돼. 우리 경영학과답게 경영학적으로 가자.”
그 말이 결정적이었다.
어차피 세상은 무한 경쟁 사회였다. 사람들의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이로써 방향은 정해지게 되었다.
구영재는 벌써 네 개째 조각 케이크를 작살내고 있는 진호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입학한 지 두 달 조금 넘은 신입생이 대한민국 모든 대학생들의 고민에 돌파구를 만들어 버렸다. 볼 때마다 새로운 매력이 드러나고 있었다.
“진호야, 너 집행부에 안 들어올래?”
“죄송합니다.”
“……왜, 인마!”
“저 바쁩니다. 6월엔 파리도 가야 해요.”
정식으로 초청장이 날아왔다.
“그, 그렇긴 한데, 너무 빨리 대답한 거 아니냐?”
“사랑합니다.”
진호는 재빨리 영재의 품을 파고 들었다.
“……아오?!”
“진호야! 그런 털북숭이 말고 누나한테 안기렴!”
“네!”
“품이 너무 싸잖아!”
“좋은 건 서로 나누는 거죠.”
자신이 좋은 거라고 인정해 버리는 그의 말에 집행부 선배들은 실소를 짓고 말았다.
진호도 히죽 웃으며 여선배의 손에 머리를 맡겼다. 좋은 게 좋은 거였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중요한 건 요리와 무알코올 칵테일 인데…… 누구 칵테일 만들 줄 아는 사람?”
“내가 만들 줄 알아. 여친 사귀면 만들어 주려고 배웠는데…….”
뒷말은 듣지 않아도 됐다.
“그럼 요리는…….”
눈을 빛낸 진호가 손을 번쩍 들었다. 주점이란 말을 들었을 때부터 꼭 해 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제가 할게요!”
“네가? 할 줄 알아? 뭐 할 줄 아는데?”
“화끈한 게 좋으세요, 우아한 게 좋으세요?”
“그게 뭔 소리야?”
진호는 대답 대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돈 좀 쓰겠다.’
* * *
집이 비었단 소리에 냉큼 달려온 재준은 진호의 집안에 펼쳐진 광경을 보곤 잠시 눈을 비볐다.
“……아버님과 함께 사고 쳤냐? 어머님이 내일부터 카레만 먹이신대?”
부엌 식탁 위에 막대한 양의 파, 양파, 감자, 당근, 고기 등이 쌓여 있었고, 김장할 때 쓰는 대야도 몇 개 놓여 있었다.
“요리사를 꿈꾸는 한 청년이 있었어. 손재주가 좋아서 칭찬도 많이 받았지. 하지만 하늘은 그를 돕지 않았어. 정식으로 웍을 잡은 날, 눈에 기름이 튄 거야. 아주 끔찍한 사고였지.”
사람들이 택한 건 화려한 요리였다.
“썩을 놈이 사고 쳤냐고 물으니까 개소리를 하네.”
“수술은 성공했지만, 시력은 맹인 수준이 되었지. 소년은 낙담했지만 이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어. 그런데 그 순간…….”
재준은 진호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열은 없는데. 동공도 멀쩡……. 어? 렌즈 했네?”
“난 지금부터 그 청년이 되려고 해.”
진호는 부엌칼을 보며 싱긋 웃었고, 재준은 119를 눌러야 할지 진호의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야 할 지를 고민했다.
“그래서 어머님과 아버님은 어디 가셨는데?”
“외갓집에 제사 지내러 가셨어. 내일 휴일이라 주무시고 오신대.”
“넌 안 갔네?”
“애 태우기라는 건가 봐. 말했잖아, 우리 집 사정.”
“……아, 무시를 좀 받았다고 했지.”
고모 삼촌들을 금전적으로 도와 주었던 아버지와 못났던 진호 본인의 영향이 컸다.
명문 대학에 진학했던 어머니가 지방출신인 아버지에게 시집을 감으로써 아버지가 이모와 외삼촌들에게 많은 무시를 받았다고 한다.
더욱이 그 자식들마저 명문고와 좋은 대학에 진학해 버리니 어머니는 더 이상 외가를 찾지 않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캬! 어머님, 아주 다 압살하러 가셨네!”
“안 그래도 온몸을 디올로 치장 하고 가시더라.”
“그럼 이건 뭐야?”
“……요리사를 꿈꾸던 한 소년이 있었어.”
“시끄러워! 밥 줘! 배고파!”
“……아 놔, 이 돼지 새끼. 점심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혀를 찬 진호는 거실의 TV를 가리켰다.
“닥치고 놀고 있어. 게임기 사다 놨으니까.”
“헉! 플스 4! 시, 시디들도!”
재준이 날듯이 달려가자 진호는 흐릿한 시야로 칼을 보았다.
처음은 재료 다듬기다. 시력을 거의 잃은 소년은 손의 감각만으로 재료를 다듬었다.
‘후우, 시작하자.’
바닥에 엉덩이를 붙인 진호는 양파를 들고 칼을 가져다 댔다.
스억!
양파 살을 파고 든 칼이 순식간에 왼손가락에 닿았다. 진호는 급히 칼을 멈췄다.
“……후우우.”
섬뜩한 칼날의 감촉이 심장을 세 차게 뛰게 만들었다.
도마에 대고 자르면 편하겠지만 재료 다듬기는 오직 칼과 손만 써야 했다. 중식에서 주로 쓰이는 양파, 대파, 마늘, 고추, 당근을 각각 백 개씩 다듬는 게 1차 해금 조건이었다.
이를 악문 진호는 양파 껍질에 칼을 가져갔다.
찌익! 껍질이 뜯겨지며 속살이 드러났다.
아주 살 떨리는 광경이었다.
손가락이 반창고투성이인 진호의 몸에서 풍기는 박력과 열기도 대단했다.
윽윽, 비명을 지를 때부터 지켜보던 재준은 이질적인 무언가를 느껴야 했다.
‘……어?’
스악 스악!
칼이 당근 껍질을 거침없이 벗겨 내고 있었다.
“야, 야! 다쳐! 다친다고, 인마!”
“응, 괜찮아. 이제 안다쳐. 감왔어.”
손끝에서 확실하게 느껴진다. 칼날이 다가옴을 느끼는 왼손가락의 감각과 왼손 전체로 느껴지는 재료의 무게, 단단함의 정도. 칼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안에 무른 부분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려 주는 오른손.
콧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식재료의 냄새.
이 모든 게 너무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거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처럼 실시간으로 바뀌는 스킬이다!’
촉각과 후각, 방금 그 두 개를 얻었다.
진호는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미친!”
놀라 펄쩍 뛰었던 재준은 이내 경악해 버렸다.
당근 껍질이 두루마기 화장지를 풀 듯 벗겨지고 있었다.
툭!
당근 껍질이 떨어져 내리자 진호는 식탁 위에 올려 두었던 안경을 쓰며 자신의 작품을 감상했다.
“……흐흐, 좋았으! 그럼 이제부터 썰어 볼까?”
썰기와 조리하기. 이번 스킬은 3 차 해금까지 있었다.
“기다려 줘서 땡큐. 먹자.”
저녁 열한 시,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았지만 참고 있던 재준은 상 다리가 부러질 듯 차려진 음식들을 보곤 입을 벌렸다.
“뭐, 뭘 이렇게까지 차렸냐? 그리고 음식은 언제 배웠고?”
“언젠가 한번 이렇게 차려 주고 싶었어. 날 많이 도와줬잖아.”
재준이 아니었다면 진호는 벌써 예전에 어긋나거나 히키코모리가 됐을 것이다. 부모님의 사랑과는 다른 사랑이었고, 그로 인해 그나마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었다.
“……친구끼리 돕긴 뭘 도와. 아무튼 고맙게 먹으마.”
“그래, 부족하면 말해.”
“부족하겠냐?”
고개를 푹 숙이며 뜨끈한 요리를 한 젓가락 크게 먹은 재준은 강하게 엄지를 치켜세웠고, 진호는 안 도와 행복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렇게 두 친구의 밤이 깊어 갔다.
* * *
관악대동제의 날이 밝았다.
정확한 명칭은 총장배 한국대학교 종합체육 대회지만, 대부분 관악대동제로 부르는 편이었다. 한국대 곳곳에서 체육 경기가 벌어졌다.
“경영학과 파이팅!”
“달려!”
열기가 뜨겁다.
“패스해! 좌측에 있잖아! 아아…….”
“와아아아아!”
“슈웃! 고올!”
“우와아아아악!”
진호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또 골을 먹고 말았다.
경영학과의 분위기는 선수들이나 응원석이나 침울 그 자체였다. 진호는 어깨를 늘어트린 선수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괜찮아! 괜찮습니다! 침착하게 만들어가자고요-! 아직 시간은 많습니다!”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분위기는 살아나지 않았다.
4 대 1, 남은 시간은 9분. 3분에 한 골씩 넣으면 동점이었다.
진호는 살아나지 않는 분위기에 입술을 삐죽 내밀며 울상을 지었다. 축구를 응원하러 온 경영학과 선배들은 그런 진호를 기이하다는 뜻 바라보았다.
경영학과는 공부벌레 중에서도 공부만 하던 이들만 모아 놔서 그런지 운동에는 소질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거의 모든 구기 종목에서 조기 탈락은 예상된 일인데, 진호 혼자만 진심으로 열을 내고 있었다.
그 처절하기까지 한 응원에 가슴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우쭈쭈 우리 진호, 슬퍼요?”
“그러다 맞으면 아프다. 나 여자도 때린다.”
“있어 봐. 이 누나들이 응원이 뭔지 보여 줄 테니까.”
눈을 마주친 18학번 여동기들이 일어서 입 앞에 손을 모았다.
“선배님들! 비기면 백호대 경영학과랑 미팅시켜 드릴게요─!”
“이기면 가람대 모델학과랑 미팅??!”
뾰족한 외침이 운동장을 가르자 경영학과 선수들 사이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으라아아앗! 경영학과!”
“이기자악?!”
순식간에 파이팅이 달라졌다.
진호는 그런 그들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내가 응원할 때는 그저 그래 놓고는…….’
물론, 그도 저런 응원을 받는다면 저토록 열을 낼 테지만, 뭔가 허탈 했다.
‘콱 삐뚤어질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