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305
13권 8화
3. 늪
이번 드라마는 굉장히 베일에 싸여 있다.
괴짜 레이몬드가 어떤 식의 괴팍한 오디션을 진행했다는 말만 나돌 뿐, 그 스토리나 배우들이 하나도 오픈되지 않은 것이다.
‘이에 기자와 파파라치들이 바싹 약이 올라 있다고 했지.’
“아씨.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냐?”
신인의 마음으로 약속 시간보다 1시간 30분 일찍 도착한 총 리딩장소.
진호는 리딩을 해야 할 본인보다 더 떨고 있는 정 실장을 보며 피식 웃었다.
정 실장은 발끈했지만, 이내 본인이 해야 할 말을 했다.
“진호야, 1시간 정도 더 차에 있을래? 아님 긴장 좀 풀리게 마사지를 받을까? 네가 할리우드에서 신인일 뿐이지, 몸값은 할리우드 톱스타들과 견주어도 꿇리지가 않잖아! 진짜 1시간 반은 에바야. 여기 애들 뜨면 엄청 도도해지는 거몰라? 네가 이렇게 일찍 오면 얕잡아 볼 수 있어.”
“에휴, 얕보긴 뭘 얕봐요. 신인이라면 일찍 오는 게 당연하죠.”
그렇게 말했지만, 진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다.
‘얕잡아 본다고? 그렇다면 잡아먹으면 돼.’
드라마의 좋은 점이 그것이다.
출연하는 배우가 많고 장편이기 때문에 작가가 언제든 노선을 틀어 버릴 수 있다는 점 말이다.
물론 확고한 주연의 자리는 범접할 수 없지만, 역량에 따라 서브주연까지는 충분히 넘볼 수 있었다.
“그것도 이리 주세요.”
“……하아, 진짜.”
씩 웃은 진호는 좀 이따가 보자는 말을 남기며 총 리딩 장소인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벌컥!
“진호 리 입장합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스태프가 열어 준 문을 통해 들어간 진호는 한국의 총 리딩 장소와 별반 다를 게 없는 내부의 풍경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인물을 발견하곤 화들짝 놀랐다.
‘감독님? 이 시간에?’
“안녕하세요! 감독…… 님?”
우렁차게 인사했던 진호는 본인이 들고 있는 에코백들을 향해 시선이 꽂힌 감독의 모습에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왜인지 기대하는 것 같은데? 왜지?’
“그게 소문으로 듣던 진호 리의 간식 입니까?”
‘……아!’
순간 터질 뻔한 웃음을 겨우 삼킨 진호는 그에게 다가가 에코백을 뒤졌다.
“견과류나 파인애플에 알레르기가 있으신가요?”
“아뇨, 뭐든 잘 먹습니다.”
“축복받으셨네요. 여기 건강 쿠키와 파인애플 음료입니다.”
알레르기가 없다는 건 정말 큰축복이었다.
부스럭, 부스럭! 와사삭!
“……호오.”
마치 공기를 씹는 듯 가볍게 부서지는 과자 식감사이로 제대로 갈아 가루로 만든 견과류의 고소함이 번진다.
이가 약한 사람조차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별미였다.
진호는 등 뒤로 들리는 감탄에 속으로 웃으며 먼저 도착해 있는 배우와 스태프들에게도 쿠키와 주스를 나눠 주었다.
그에 누군가는 얼떨결에 받아 들고, 누군가는 경쟁심에 거부하기도 했다.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두 번 권하지 않은 진호는 본인의 명패가 놓인 자리에 앉았다가, 테이블 위에 놓인 두꺼운 종이 뭉치를 발견하곤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뭐지? 설마 배경 설정인가? 아, 그럼?’
한국에는 캐릭터의 설정부터 배경 설정, 대사, 지문까지 모두 통제하는 작가가 있다.
티끌만큼의 에드리브도 인정을 하지 않는 대작가.
‘흐음. 그분 같은 타입으로 보이진 않았는데…… 응?’
제본이 된 종이 뭉치의 첫 장을 넘긴 진호는 화들짝 놀라며 레이몬드 감독을 보았다.
“감독님, 이건……”
진호가 자리에 앉을 때부터 그를 주목하던 레이몬드 감독의 입가에 짓궂은 미소가 번졌다.
“예. 모두 이번 드라마의 소재로 쓰인 주식들의 정보입니다. 그 조짐부터 마무리까지 모두 기록되어 있으니 천천히 살펴보십시오.”
‘미친? 정말 돌았구나!’
지금 감독이 요구한 건 이거다.
너희들이 연기할 때 매수하고 매도 할 종목의 모든 걸 꿰뚫어 보고 있어라.
순간 넋이 나갈 만큼 어이가 없어졌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런 타입이면 연기하기가 편하지.’
배경 설정이 디테일할수록 연기에 몰입하기가 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건 기회야! 내가 그토록 원하는 기회!’
진호는 1시간 30분 먼저 오기로 한 과거의 자신을 열렬히 축하하며 재빨리 자료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식 판에서는 이미 사라져 버린 그때의 파도가 진호의 머릿속에서 그려지기 시작했다.
‘어라? 이거 봐라? 첫판부터 장난질이라고?’
진호가 파도가 일어날 조짐을 예측할 때, 즉 어떤 파도가 일어나려고 할 때 가끔 보이는 움직임. 신기술 발표 같은 호재가 있기 전 내부 거래자들이 은밀히 주식을 매입하는 그 움직임이 보이고 있었다.
진호는 재빨리 따로 챙겨 온 연습장과 펜을 들어 그것들을 낱낱이 분석하기 시작했고, 드라마에는 꼭 필요한 일이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배우들의 골치 아파 하는 모습을 기대했던 레이몬드는 눈을 크게 떴다.
‘외계인이 설마 또?’
순간 어떤 기대감이 훅 차오른 그는 재빨리 진호에게 걸어갔다.
“주, 주식에도 조예가 있을 줄은 몰랐군요.”
“아, 이번에 배웠습니다. 존 리는 아이비리그 중 한곳의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바로 월 스트리트에 입사한 재원이니까요. 그런 사람이 학창 시절 주식 관련 클럽에서 활동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흠?”
“어? 모르셨어요?”
“……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그건 가상 투자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럴 리가요. 저도 대학생 시절선배들에게 이런 저런 정보들이나 투자하는 방법도 들었는 걸요? 워낙 쟁쟁한 선배님들이 많아서 동문회에 참석하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주워듣게 돼요.”
명문의 무서움이 이 점이다.
위에서 습득하고 정리 된 경험이 아래로 대물림 된다는 것.
물론 그중에는 실패한 경험을 성공한 것처럼 꾸민 것도 있고, 잘못된 정보도 많고, 확실한 것이라도 욕심을 버리지 못해 크게 다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과외로 번 돈을 경험 삼아 주식에 투자하는 이들도 제법 있어요. 아니지, 감독이라면 존경하는 선배가 정말 확실한 정보라고 말해 주는 주식에 투자하지 않을 자신 있나요?”
“……없습니다. ……허. 명문이란 그런 곳이군요.”
조사가 미흡했다는 것을 반성한 그는 진호를 기이하다는 듯 보았다.
‘캐릭터를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연구하다니!’
정확히는 진호가 명문대학교에 다녔기에 가능한 디테일임을 알지만, 레이몬드는 흡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파악된 점이 있습니까?”
“아, 네. 여길 봐 주시겠어요.”
‘여기서 존 리의 캐릭터 설정을 바꾼다!’
스킬을 얻으면서 더 크게 키운 욕심.
‘주연들이 왕좌를 얻기 위해 무조건 얻어야 하는 괴물로!’
그렇지 않아도 그러려고 했는데, 감독이 이렇게 판까지 깔아 주었다. 욕망이란 불길에 기름을 끼얹은 진호는 방금 전 자신이 파악한 걸 설명했고, 레이몬드는 그 말도 안 되는 말에 경악했다.
“이 조짐을 알아차리는 게 가능하다는 겁니까?”
“저는 되더라고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는 급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윽고 한 50대 중년인이 총 리딩 장소로 들어왔다.
“이쪽은 이번 드라마에 수 많은 자문을 해 준 제 지인입니다. JP모건에서 매니징 파트너를 하고 있는 인물이죠.”
‘……정말 또라이네, 이 사람!’
감독의 말은 오늘 총 리딩은 주식 강의도 같이 받는다는 것이었다. 분명 기초적인 것을 가르칠 테지만, 그래도 총 리딩에서 할 일은 아니었다.
“오우, 테마 우량주 진호 리를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 만나서 반갑습니다. 잭 윌슨입니다.”
“아하하. 역시 그렇게 평가받네요.”
테마주는 주식시장에 새로운 사건이나 현상이 발생해 증권시장에 큰 영향을 주는 일이 발생할 때 이런 현상에 따라 움직이는 종목군을 뜻하는데, 다양한 스킬을 얻은 진호는 그 행보 하나하나가 수 많은 종목군에 영향을 끼치게 만든다.
“반갑습니다. 진호 리입니다. 저때문에 돈은 많이 버셨는지 모르겠네요.”
“하하하.”
둘 사이에 훈훈한 분위기가 풍기자 레이몬드가 급히 입을 열었다.
“그럼 인사는 다 끝난 것 같으니, 진호 리? 방금 제게 해 준 설명을 이 사람에게 다시 해 줄 수 있겠습니까?”
“예, 뭐.”
진호는 레이몬드에게 했던 설명을 그대로 잭 윌슨에게 다시 설명했고, 잭 윌슨은 경악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요. 일단 여기를 봐 주시겠어요?”
진호는 자료 중 주식 그래프 표와 거래 유동량을 표기한 부분을 펼쳐 몇 가지 부분에 체크를 했다.
“이 부분과 이 부분, 그리고 이부분. 이외에도 여러 부분들에서 비슷한 패턴이 보이고 있어요. 단순히 사고파는 걸 반복하는 것일수 있지만, 유동량을 보면 계속 쌓이고 있다는 게 보이죠. 또한 이부분은 유난히 튀지 않나요? 마치 교란을 하듯 말이죠.”
잭 윌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진호가 설명한 건 그 본인도 파악한 점이었기 때문이다.
이 정보를 에피소드로 써먹으라고 던져 준 본인이니 모를 리가 없었다.
“이 정도의 분석력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니……. 현직 펀드 매니저라고 해도 믿을 정도입니다.”
“정말 인가!”
레이몬드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진호는 그런 그의 모습에 눈을 빛내며 얼른 핸드폰을 켜 모바일홈 트레이딩 시스템에 접속했다.
“그리고 이 IT 벤처 기업의 주가도 현재 이와 비슷한 패턴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아마 근래에 새로운 기술을 발표하지 않을까 싶어요.”
“예?”
재빨리 진호의 핸드폰을 낚아채주가 유동량을 살핀 잭 윌슨은 눈을 부릅뜨며 진호와 핸드폰을 번갈아 보았다.
“……맙소사. 외계인이 주식에도 이런 끔찍한 재능이 있을 줄이야! 마음 같아서는 당장 스카우트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지금 둘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잭, 그게 무슨 말이야?”
차오른 흥분을 단숨에 가라앉히는 레이몬드의 재촉에 잭 윌슨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미 지나간 일을 분석하는 건 그 어떤 펀드 매니저, 아니 애송이 대학생이라도 가능해. 하지만 여기 진호 리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분석하여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있지. 이건 즉…… 월 스트리트에 있는 수 많은 펀드 매니저 중 소수, 괴물이라고 불리는 펀드맨들만 가능한 영역이고, 감각이야. 일반 펀드 매니저들은 아무리 보여 줘도 모른다고. 이 말은 무슨 뜻인지 알겠어?”
“……그런.”
“혹시 이게 얼마만큼 될 지 예상이 됩니까?”
“공짜로요?”
“음……. 10퍼센트, 아니 15퍼센트 드리죠.”
“엄청 짠데요? ……뭐, 그래도 앞으로 이 드라마에 자문을 해 주실분이니까……”
심각한 고민을 하는 레이몬드의 모습에 속으로 크게 웃은 진호는 옅게 웃으며 말했다. 판을 어지럽힐 괴물이 되기 위해선 이 정도 정보는 얼마든지 줄 수 있었다.
“저는 대략 8달러는 넘을 거라고 봐요.”
“……호오.”
지금 주가가 2.02달러니, 무려 4배 가까이 뛰는 것이다.
“그건 감입니까?”
“네, 감이에요. 그동안 벤처 기업들 중 신기술 발표를 했을 때 일어나는 주가 변화를 연구한 것도 있고요.”
“……허헛. 진호 리가 JP모건에 입사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군요. 만약 그랬다면 제게 경쟁자가 한 명 늘어나는 꼴이 됐을 테니 말입니다.”
고작 감이라 치부할 수 있지만, 그건 월 스트리트에서 살아남는데 아주 중요한 재능이기도 했다.
“하하. 그런가요?”
그렇게 둘은 화기애애 이야기꽃을 피웠고, 레이몬드 감독은 그런 진호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정말 그 정도의 능력이라면…….’
괴물, 괴물이라……
그 순간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른 레이몬드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고, 진호는 그걸 못 본 척하며 속으로 환하게 웃었다.
‘정말 일찍 와서 다행이네!’
“빌 케이머 입장합니다!”
* * *
빌 케이머를 시작으로 배우들이 속속 도착했다.
누군가는 먼저 도착해 있는 진호를 발견하곤 호들갑을 떨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경계를 하기도 했다.
진호는 그들과 인사를 나누며 눈을 빛냈다.
‘이야. 다 모르는 얼굴들이다.’
정확히는 미국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한두 번 본 배우들이긴 했지만, 개인적인 친분은 커녕 패션쇼에서 관객과 모델로도 만나지 못한 이들이었다.
“마크 프리먼 씨 입장합니다!”
‘뭣?’
진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크 프리먼, BBC 셜록 홈즈의 그 왓슨이었다.
‘와…… 진짜다.’
안으로 들어오던 그는 진호를 발견하곤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커프 서덜랜드 씨 입장하십니다.”
‘미친?’
미드 ’24’로 모든 수식어가 해결되는 그 배우다.
그도 안으로 들어오다가 진호를 발견하곤 깜짝 놀라며 숨겨진 카메라가 있는 지를 찾았다.
‘이 라인업은 뭐지?’
감독을 향한 존경심이 팍팍 차오르기 시작했다.
레이몬드는 생각이 괴짜일 뿐, 그 능력은 엄청난 감독이었다.
“진호 리…… 맞죠?”
“넵! 이번에 존 리를 맞게 된 이진호 입니다!”
“……와우.”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을 잇지 못하는 마크 프리먼뿐만 아니라 커프 서덜랜드도 놀랐다.
“반갑습니다. 코리안 셰프와 아마존 스튜디오에서 수입한 중국 드라마 잘 봤어요.”
“난 아마존에서 생존하는 그 한 국 방송도 잘 봤습니다. 무척이나 재밌더군요.”
“여, 영광입니다!”
진호는 벅차오르는 감격에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에밀리아 클록 씨 입장하십니다.”
‘……돌았냐-!’
이번엔 왕좌의 게임, 용엄마였다.
‘와, 라인업 정말 미쳤네.’
너무도 화려하고도 현란한 라인업.
진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거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까딱하다가는 정말 박살 난다.
이젠 단순히 괴물이 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들의 연기력에 밀렸다가는 할리우드에서 망신을 당해 버린다.
‘……아니, 씨! 난 어떻게 편하게 찍는 날이 한 번도 없냐-!’
진호는 긴장을 날카롭게 세우며 감독을 노려보았다.
“자, 이제 배우들이 다 모이고 소개도 다 한 것 같으니, 리딩에 들어가도록 하죠. 신 넘버 1-1.”
그렇게 첫 번째 리딩이 시작되었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