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308
13권 11화
4. 불어오는 바람
배역에 몰입한 커프 서덜랜드가 등장해 카리스마로 짓누르면서 상황은 일단락되었고, 배우들은 배역에 몰입한 상태로 촬영을 이어 갈수 있었다.
그리고 컷 사인이 울리자마자 사과를 했던 진호는 덩치 큰 50대백인 남성에게 키스 세례와 꾸짖음을 동시에 받아야 했다.
대기실로 돌아온 진호는 소파에 무너지듯 앉으며 숨을 길게 내뱉었다.
“괜찮아?”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눈가를 매만졌다.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지가 벌써 며칠째 인지 모른다.
“이렇게 빡세게 촬영하는 게 오랜만이라서 그래요. 곧 적응할 테니까 걱정 마세요.”
“그래도……. 하, 진짜 이게 말이 돼? 아니, 어떻게 2월에 크랭크인을 한 드라마가 3월에 방영을 할 수 있는 거야! 여기가 한국이냐! 아니, 한국도 이렇게 하지는 않겠다! 장 이사님은 왜 이런 걸 말해 주지 않은 거야!”
그랬다. 지금 이 때문에 철야 촬영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기획부의 장 이사는 미리 통보된 이 내용을 진호에게 전달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 몰랐다.
“됐어요. 신입 직원의 실수였잖아요. 신입이면 그럴 수 있죠.”
“넌 그 말을 믿냐?”
“그럼 안 믿을까요? 장 이사님이 이런 걸 실수하는 분이에요?”
“그건…… 아니지.”
“거봐요. 그 일로 인해 미국 지부를 만드는 게 결정됐으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죠.”
아무리 인터넷이 있다지만, 시차로 인해 생긴 소통의 딜레이. 다미앙은 다시 이런 일이 생기는 걸 방지하고자 다미앙 지사 미국 지부를 만들기로 했다.
어차피 한국에서 열심히 배우고 있는 각국 연습생들 중 까타레나를 비롯해 미국에서 데뷔할 이들을 위해서라도 미국에서 손과 발이 되어 줄 지부가 필요했었기에 지부 창설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건 진짜 부처님인지, 예수님인지……”
“외계인입니다.”
“……속 좋은 놈.”
“푸흐흐. 끄아아!”
진호는 기지개를 펴며 일어섰다.
“어디가?”
“요 앞 카페요.”
“커피? 기다려. 바로 사다 줄게.”
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벌써 햇빛을 제대로 못 본 지 5일이 지났어요. 광합성 좀 해야죠. 나오지 마세요.”
“아.”
진호는 노트북을 챙겨 들고 대기실을 나섰고, 정 실장은 그런 진호의 등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캠핑 트레일러를 사야 하나?”
햇빛을 제대로 못 봤다는 말이 무척이나 걸렸다.
“……건의해 봐야겠군.”
내 연예인을 위해서라면 그깟 돈은 백억이고, 천억이고 쓸 수 있었다.
타닥 탁.
“흐음? 흠.”
거미가 새끼를 치듯 돈이 돈을 벌고 있다.
벌어들인 자본을 다시 주식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각국 증시를 모두 건드리고 있다보니 이젠 총 자산이 얼마인지 바로 계산되지 않을 정도였다.
“……끄으으! 좋다!”
가게 밖 테이블에 앉아 온몸으로 햇볕을 쬐고 있자니 기분이 상쾌했다.
“역시 사람은 광합성을 해야 한다니까……”
찰칵, 찰칵!
“응?”
진호는 고개를 들어 한쪽을 보았다.
커다란 카메라를 든 40대 백인남성이 마치 보물을 발견한 탐험가처럼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이쪽을 찍고 있었다.
‘파파라치?’
눈이 마주치자 움찔 몸을 굳힌 그는 다시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그에 월터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진호는 피식 웃으며 월터를 말린 후 파파라치를 향해 이쪽으로 오라며 손짓했다.
“옆을 왜 돌아봐요! 이리 오세요!”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을까. 크게 당황하던 파파라치는 슬금슬금 진호에게 다가왔다.
“어흠. 반갑습니다. 아서 첸들러입니다.”
“이진호예요. 절 기다리신 거예요?”
“……지노 리도 기다린 겁니다.”
“와, 정직하시네요. 기다리시느라 힘드셨죠? 커피? 음료수? 식사는 하셨어요?”
“아니, 그럴 필요는……”
“아, 샌드위치 드셨네. 월터, 미안하지만 커피 차가운 걸로 한 잔만 사다 줘요.”
“헉?”
“……기다려.”
진호는 경악한 아서 첸들러를 향해 싱긋 웃어 줬다.
“볼에 홀그레인 머스타드 소스 묻어 있어요.”
“흡!”
아서 챈들러는 재빨리 볼을 닦았고, 얼굴을 붉혔다.
그런 그의 눈은 혼란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제가 불러서 많이 놀라셨죠?”
“……지노같이 저희를 부르는 스타는 소수니까요.”
“그럴 수밖에요. 사생활 침해하는 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것도 그 침해한 자료를 가지고 돈을 버는 사람들을.”
스타의 유니크한 사생활 사진은 장당 수천 달러, 엄청난 스캔들의 증거라면 만 달러 이상까지 값이 치솟는다.
거기다 파파라치들은 한밤중에 마구잡이로 플래시를 터트리며 스타들의 안구를 테러한다.
“……훈계하려고 부른 겁니까?”
아서 챈들러의 얼굴이 붉어지자 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자제해 달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어차피 곧 제 사진은 똥값이 될 테니까.”
“무슨…… 설마?”
진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지니어스 미국 지부의 홈마스터 세 명만 불러도 당신들이 찍을 사진은 똥값이 돼요. 아시죠? 지니어스가 얼마나 질서정연한지? 그들은 절대 제게 피해를 안 끼쳐요. 아니면 제 사비로 따로 사진팀을 꾸려도 돼요. 그런 그들이 양질의 사진을 뽑아내 각 잡지사, 신문사들에게 넘기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
아서 챈들러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진호의 말처럼 되면 정말 진호의 사진은 똥값이 된다.
실제로 그렇게 되어 버린 스타가 여럿 존재한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파파라치를 거부하지 않은 스타들. 그것도 성격이 괴랄할 정도로 착해서 집, 촬영장, 피트니스 센터 등 정해진 루트만 돌아다니는 성실한 스타들이 바로 그렇다.
그리고 진호도 그런 성실한 스타이자 셀럽중 한 명이었다.
그럼에도 진호의 사진이 귀한 건 그가 미국에 얼굴을 비친 적이 극히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호를 발견했을 때 그렇게 기뻤던 것이다.
진호는 낯빛이 어두워지는 그를 향해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오래오래 돈 버셔야죠. 앞으로 계속 미국에서 활동할 건데.”
아서 챈들러의 눈이 번쩍 떠졌다.
‘트, 특종?’
“저, 정말 입니까!”
“네. 앞으로 주 활동 무대는 미국이 될 거예요. 때문에 지금 지부로 쓸 부지도 알아보고 있어요.”
‘트, 특종이닷!’
“안 적으세요?”
“아, 예! 예!”
진호는 허등지등 적을 것을 찾는 그를 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어차피 한 번 쯤은 인터뷰를 해야됐어. 이건 좋은 기회야.’
지부 창설을 말한 것도 그 이유때문이다.
본격적으로 미국 활동을 개시하면 세계 1위 모델이라는 이름값을 탐내는 모든 이들이 달려들 터였다. 그렇게 되면 진호 본인을 얻기 위해 그들끼리 경쟁을 할 것이고, 그럴수록 몸값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더 로드 오브 월 스트리트, 아니 존 리가 미국인들에게 사랑을 받아야한다는게 선결과제지. 그것도 손님으로 취급받고 있는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 주연은 못할 거야.’
손님과 거주자의 차이, 이미 국에서 동양인에 대한 배척은 그만큼 심각했다.
이 모두 괴팍한 레이몬드가 지금까지도 별다른 언론 홍보를 하지 않고 있었기에 세울 수 있는 계획이었다.
진호는 이 계획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분위기를 잡았다.
“엄청난 특종이죠?”
흠칫!
“……예. 십만 달러는 족히 받을 특종입니다.”
“와우. 부자 되시겠네요. 그럼 더 부자 되시라고 소스를 하나 더 알려 드릴까요?”
움찔!
“……제게 원하는 게 뭡니까?”
진호는 놀라워했다.
이렇게 눈치가 빠를 줄은 몰랐던 것이다.
“홀딩. 더 로드 오브 월 스트리트의 3화가 방영될 때까지. 어쩌실래요?”
“……자신 있는 겁니까?”
‘와. 눈치 진짜 빠른데?’
아서 첸들러는 지금 3화 안에 미국인을 홀릴 만한 임팩트를 줄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의 질문은 정확히 진호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다. 파파라치가 아니라, 기자를 방불케 하는 통찰력이었다.
실제로 진호가 그에게 홀딩을 제안한 이유는, 3화가 방영될 때쯤이면 자신을 미국인들에게 충분히 알릴 수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기사가 나가기 시작한다면 이슈는 더욱 극대화될 터였다.
“제 작품들 안 봤어요? 그럼 실망인데……”
“미안합니다. 크게 보답하겠습니다.”
“그런 보답 말고 아서 씨가 제 전속이 되어 주세요.”
아무리 피로한 상태에다가 주가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팔렸다지만, 셔터음이 들릴 때까지 [스킬: 갓 오브 워]나 [스킬: 괴도 루팡]이 반응하지 못했다.
‘이 사람은 사람의 사각을 파고드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파파라치야. 이런 사람에게 셔터음이 나지 않게 조작한 카메라를 쥐어 준다면?’
“……딜. 다른 파파라치들을 모두 물리쳐 드리죠. 어떻게든.”
“저도 딜. 저도 오직 아서 씨만 보도록 하죠.”
진호는 씩 웃었다.
‘어차피 미국에 활동하는 이상 파파라치를 떼어 낼 수 없어.’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 같은 게 아니라 그냥 더럽게 끈질긴 진드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방패로 삼는 게나아.’
아서 첸들러는 이제 돈을 위해서라도 모든 파파라치를 제거할 것이다. 팀으로 조직하든, 물리적 힘을 쓰든 어떻게든 말이다.
“그럼 소스를 알려 드리죠.”
꿀꺽!
“프로젝트 J.”
“예?”
“더 로드 오브 월 스트리트의 인트로 및 인물 테마곡 3개, OST 2곡을 만든 아티스트 프로젝트 J가 저예요.”
……쿠당탕!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아서 챈들러는 너무 경악한 나머지 말을 잇지 못했고, 진호는 익살맞게 웃었다.
“어때요? 제 미국 활동 개시와 함께 버무리면 20만 달러는 족히 받지 않을 것 같나요?”
“……. Holly Jesus.”
아서 챈들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드라마 성공이라는 전제 조건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도 일개 파파라치인 그가 감당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는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 그게……”
“여기 있었군.”
아서 챈들러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가 눈을 크게 떴다.
그건 진호도 마찬가지였다.
‘커프 서덜랜드!’
“어? 커프 씨도 광합성 하러 나오셨어요?”
그렇게 묻긴 했지만, 진호는 그게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의 전신이 말하고 있는 작은 망설임.
커프 서덜랜드는 분명 어떤 부탁을 하기 위해 진호 본인을 찾아 온것이었다.
“푸하핫! 그래, 그 말대로 나도 광합성 하러 나왔지. 그런데 이쪽은…….”
“제 전담 파파라치요. 성함은 아서 첸들러.”
커프 서덜랜드의 낯빛이 단번에 굳었다.
‘잠깐?’
“전담? 파파라치에게 그런 게 있다고?”
물론 있긴 있다. 그러나 찍는 스타의 사진값이 추락하면 파파라치도 떠나는 법이다.
“거래를 했거든요.”
“거래?”
진호는 거래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고, 눈을 크게 뜬 커프 서덜랜드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런 수가 있었군!”
“전담팀을 만든다면 부수입도 생겨서 좋잖아요.”
“들통이 나면 언론들이 뒤집어지겠어.”
그러나 대중은 스타들의 편일 터였다.
파파라치와 기자들의 무분별한 사생활 침해는 이미 대중들도 질려 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래. 어차피 찍힐 사진, 내가 찍어 버리면 되는 거지.”
커프 서덜랜드는 진호를 기이한 생물을 보듯 바라봤다.
‘역시 외계인이라는 건가……’
생각이 아니라 사물을 보는 관점부터 일반인과 달랐다.
드라마 촬영도 그렇다.
진호는 모든 배우들 가운데 유일하게 촬영 중 진실로 주식 투자를 하고 있었고, 제법 큰 수익을 내는 것도 모자라 JP모건에서 자문 나온 잭 윌슨과 동등한 선에서 수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에 새로운 투자 기획이나 더 좋은 투자 방식 등이 나오게 되면서 레이몬드 감독은 대본을 수정하기 바빴고, 존 리는 촬영이 거듭될 수록 ‘더 로드 오브 월 스트리트’의 새로운 메인 캐릭터로 변모해 가고 있었다.
‘더 로드 오브 월 스트리트’의 디테일도 기하급수적으로 정교해지고 있었다.
거의 절대의 반지와 같은 수준의 존재감이었다.
영화 왕의 반지는 호빗이나 엘프, 오크들이 메인이 아니라 절대의 반지가 메인인 영화였다.
절대의 반지가 일의 시초이자, 끝이니 말이다.
정말 주연으로서 피가 마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아.”
‘이런. 역시 들킨 건가.’
눈치와 눈썰미가 거의 소설 속 탐정급인 진호.
커프 서덜랜드는 아서 첸들러를 보며 머뭇거렸고, 그에 아서 첸들러는 눈치 좋게 몸을 일으켰다.
“홀딩. 하겠습니다.”
“다음 달 즈음에 식사 한번 해요.”
“하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아서 챈들러 가 멀어지자 진호는 커프 서덜랜드에게 자리를 권했다.
때마침 월터가 차가운 커피를 들고 왔다.
“고맙습니다.”
큰 부탁이라 목이 타는 건지 커피를 벌컥벌컥 마신 그가 진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내게……”
진호는 그의 다부진 표정에 그가 과연 어떤 부탁을 해 올지가 궁금해졌다.
‘그래, 어떤 부탁일까?’
할리우드의 중견 배우 커프 서덜랜드. 결코 쉬운 부탁은 아닐 것이다.
“내게 주식을, 아니 투자를 가르쳐 줄 수 있을까? 빌 케이머나 다른 조연들에게 알아듣기 쉽게 가르쳐 주더군.”
“……넹?”
‘주식? 투자?’
너무도 의외인 말.
“진짜 치프가 되고 싶어.”
“아……”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진호는 씩 웃었다.
‘이분이 시작이 되겠네.’
촬영장을 장악할 단초. 그리고 할리우드 배우들을, 할리우드의 스타들을 소개시켜 줄 안내자.
‘조력자는 만드는 거지.’
진호의 미소가 짙어졌다.
“얼마든지요.”
* * *
“이 동네는 회식도 없나? 첫 방이면 어? 다 모여서 소주, 아니 맥주 한잔 마시면서 가슴 두근두근 첫 화 시청을 어? 그러면서어?”
“없다는데 어떡해요. 그러려니 해야지. 다들 스케줄도 안 맞잖아요.”
“아, 진짜 이건 아닌데……. 이러면 다 같이 으쌰으쌰 하는 맛이 없는데……”
진호도 그 말엔 동감이었다.
‘흠. 그런 문화를 만들어 볼까?’
진호에게 주식과 투자를 배운 빌 케이머가 약세를 보이자 모여든 조연들을 꼬드기면 어찌어찌 될 것 같기도 했다.
‘흐음.’
“아, 시작한다!”
진호는 재빨리 자세를 바로 하며 TV를 응시했다.
그리고 그 순간.
딴, 따다다, 딴, 딴, 따.
“……캬아! 인트로 좋고! 아주 귀에 확확 감기네! 어? 너 나온다! 으아! 진짜 누구 연예인이기에 이렇게 멋있냐-!”
진호는 TV에서 나오는 본인의 모습을 보며 눈을 빛냈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본격적인 미국 활동이 말이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