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325
14권 4화
2. 한 방
마돈나의 옆에는 지팡이를 짚고 있는 고령의 여성이 있었다.
엎드려 있던 대회반 학생들은 갑자기 등장한 마돈나에 경악했다가 이내 고령의 여성을 보곤 벌떡 몸을 일으켰다.
특히 대학에 진학한 이들이 제일 격렬하게 반응했다.
“서,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의아해하던 진호는 뒤를 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학원의 문을 열고 들어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바로 보이는 사진들 중 가장 앞자리를 차지한 여성이 늙으면 딱 저럴 것 같았다.
“아.”
그 마돈나의 스승이자, 미시건 출신의 수 많은 프리마돈나를 배출해낸 입지적인 인물이며, 그 본인조차도 영국 로열발레단의 프리마돈나였던 여성.
그녀와 눈이 마주친 진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고, 그녀는 푸근히 웃었다.
덥썩!
“응?”
“가자.”
“마돈나?”
“갈게요, 선생님! 다음에 또 봐요!”
“그래, 멀리 안 나간다.”
“가자!”
“어? 어어어? 저, 저 갈게요, 볼스카야 선생님! 곧 다시 오겠습니다!”
“오긴 뭘 와!”
마돈나에게 손목이 잡혀 속절없이 끌려가는 와중에도 메리 볼스카야에게 인사한 진호는 마돈나의 스승에게도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고, 조나단 파블로와 촬영 스태프들은 다급히 둘의 뒤를 따랐다.
“도나! 같이 갑시다! 얼른 정리해!”
“네!”
그렇게 폭풍이 몰아친 발레 학원.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가라앉자 메리 볼스카야는 우울한 분위기의 수강생들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저게 세계 레벨이야. 알겠어?”
단순히 알겠냐는 물음이 아니라 수 많은 질책이 서린 말.
“……네!”
“예-!”
“흥.”
콧방귀를 뀌며 돌아선 메리 볼스카야는 그 본인이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계속 그림자처럼 따라붙고, 거대한 벽이 되어 앞을 가로 막았던 자신의 모친을 보았다.
“어때요? 계속 지켜보신 소감이?”
세월의 풍랑에 깎이고 찌든 노파의 얼굴이 발그스름 달아올랐다.
“오랜만에 욕심이 나더구나. 하지만 아서라. 발레가 다 담지 못할 아이야.”
“그건 지켜봐야 알죠.”
“그 나이를 먹어서도……. 쯧쯧쯧. 먼저 가마. 저녁은 오트밀로 할 거니까 일찍 들어와. 알았지?”
“내가 아직도 애로 보여요?”
“나한테는 아직도 애란다.”
노파는 지팡이를 허리 뒤춤에 대며 발레 학원을 나섰고, 메리 볼스카야는 그런 모친을 가만히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건물을 나선 노파는 청명하게 맑은 하늘을 보며 흐뭇이 웃었다.
“죽을 때 웃으며 가겠구먼.”
83년부터 마돈나 때문에 즐거웠다면, 이젠 진호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품을 뒤져 핸드폰을 꺼내었다.
“응. 그래, 날세. 잘 있었는가?”
그녀는 선생으로서 오랜만에 찾아온 제자, 또 그녀의 후계자를 위해 작은 도움을 주기로 했다.
* * *
‘아직 배울 게 많이 남았는데…….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이게 뭐야.’
메리 볼스카야도 메리 볼스카야지만, 그 귀엽고 사랑스런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못했다. 진호는 부루퉁한 얼굴로 마돈나를 노려봤지만, 그녀는 콧방귀조차 뀌지 않았다.
“이제야 이젤 위에 백지를 올려뒀네. 그러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지?”
“……다음 단계요?”
그녀를 향한 작은 원망이 깔끔하게 사라져 버리게 만드는 말이었다. 6밀리 카메라만 들고 탄 조나단 파블로도 눈을 빛냈다.
“그래, 다음 단계. 이제 진짜 댄스를 배워야지.”
방금 전 질투로 빛났던 그녀의 눈이 다시금 먹잇감을 포착한 맹수의 그것이 되었다.
진호는 침을 꼴깍 삼켰다.
“사라! 뉴욕으로!”
진호의 다음 행선지는 뉴욕이었다.
기이이이잉!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진호는 옆자리에 앉아 계속 카메라를 들이미는 조나단 파블로를 향해 입을 열었다.
“힘드실 텐데 이제 그만 내려놓으세요.”
“흠. 그럴까?”
조나단 파블로가 카메라를 내려놓자 진호는 옅게 웃었다.
“이제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수 있을 것 같네요.”
그가 콘텐츠 제작팀과 함께 갑작스레 도착한 이후 지금까지 간단한 안부 인사를 제외하면 이야기를 제대로 나눠 본 적이 없다. 메리 볼스카야와 마돈나가 번갈아가며 쪼아 대느라 쉬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말 어떻게 지내셨어요?”
안부 인사를 나누며 묻기는 했지만, 마돈나가 심부름을 시켜서 제대로 듣지 못한 채 유야무야 넘어가게 된 질문.
“영화 제작이나 방송 제작 말고요.”
그는 마지막으로 만난 이후 총 2편의 영화와 1편의 다큐멘터리 예능 방송을 제작했고, 썩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조나단 파블로는 앞에 놓인 샴페인을 입으로 가져가며 생각에 잠겼다.
“흠, 흐음…….”
“푸훗. 엄청 평범하셨나 보네요.”
“이 나이에 평범하지 않으면 그게 더 문제인 거지. 그보다 제니는 만났나?”
제니퍼 로제. 진호는 웃는 것으로 대답을 회피했다.
조나단 파블로도 그냥 물어봤다는 듯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꺼냈고, 그렇게 둘은 두런두런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풀어 갔다.
그러다 결국 촬영 이야기가 나오고 말았다.
“저 어땠어요?”
“아쉬웠어. 처음부터 찍지 못한 것이.”
더할 나위 없는 극찬이었다. 가슴이 절로 뻐근해졌다.
“하지만……”
“예?”
“아니야. 피곤할 텐데 조금이라도 자.”
‘흠, 뭐가 걱정이지?’
“……네. 파블로 씨도 주무세요.”
의아해하던 진호는 결코 입을 열지 않으려고 하는 조나단 파블로의 모습에 그냥 눈을 감았고, 그는 진호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게 외계인인가……’
마치 예전에 발레를 극한으로 배웠던 사람이 예전의 폼을 찾아 가는 듯했던 모습.
마지막에 찍은 코르 드 발레는 어떠 한가.
그것은 춤에 대해 거의 모르는 조나단 파블로의 눈으로 봐도 분명 이질적이고, 기괴하면서도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여기서 진짜 댄스를, 퍼포먼스를 배운다?’
부르르!
‘얼마나 더 엄청난 모습을 보여주려는 거지, 외계인?’
그는 두 눈에 열망을 담아 진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걸리는 점이 있었다.
‘분명 말이 나올 거야.’
방금 생각했던 대로 진호는 마치 예전에 발레를 극한으로 배웠던 사람이 예전의 모습을 찾아 가는 듯한 경이로운 모습을 보였다.
이는 자칫 기만으로 비춰질 수, 아니 아무리 좋게 편집을 해도 그렇게 비춰질 터였다.
특히 발레를 하는 사람들이 발레를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며 악의적인 이야기를 퍼트릴 수도 있었다.
‘언론 통제가 잘 되는 한국이라면 모를까. 이 미국에서는……’
초대형 기획사의 말에도 코웃음을 치며 무시하는 삼류 가십지들.
‘사람들은 그런 가십지를 좋아하지.’
조나단 파블로는 진호가 날개를 채 펴 보지도 못하고 가라앉는 건 아닌지 무척이나 걱정이 되었다.
한편 눈을 감은 진호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진짜 댄스라……. 힙합 댄스에 관한 스킬도 얻어야 하려나?’
현대 모든 춤의 기본인 힙합 댄스.
‘그거 얻으려면 한국과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으음.’
진호의 고민은 깊어져 갔다.
* * *
“힙합?”
진호는 결국 힙합을 배우는 거냐고 물어보았고, 마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배우긴 배워야지.”
“아, 그래요?”
‘역시 스킬을 얻어야……’
“하지만 굳이 배우지 않아도 될 걸?”
“네? 그게 무슨…….”
“가서 보면 알아.”
진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마돈나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설명해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들은 제법 커다란 건물 앞에 도착하였다.
총 3층의 건물은 양옆으로 굉장히 넓었다.
“여긴?”
건물 꼭대기에 걸린 커다란 간판, 그 이름은 분명 어디선가 들어 본 이름이었다.
“내 학원.”
“네?”
진호는 화들짝 놀랐다. 마돈나가 학원을 만들었다는 소리는 그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내 옛 댄서이자, 친구가 만든 학원이지. 다만 저 건물을 내가 샀을 뿐이야.”
“어……. 그렇다면 도나의 학원이 맞네요.”
‘근데 진짜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인데……. 정 실장님도 아는 눈치고……’
진호는 의문을 뒤로한 채 마돈나의 뒤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오! 도나!”
“짐.”
짐이라 불린 대머리 남성이 마돈나를 격하게 끌어안으며 반가움을 표했다.
진호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춤을 가르쳐 줄 사람이기에 기합이 잔뜩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이진호입니다!”
“……존 리! 반가워요, 미스터리. 이 케일라의 오너이자, 메인 댄서인 짐 볼입니다!”
그렇게 인사한 짐은 다시 마돈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촬영 팀을 끌고 온다는 말만 하고 끊었잖아.”
‘아, 도나! 좀 -!’
“얘 춤 좀 가르쳐 주려고.”
“오, 그래? 어느 정도 기본은 배운 건가?”
“발레만 배웠어.”
“음. 그러면 중급 클래스에 넣어야겠네.”
진호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마돈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달랐다.
“아니.”
“음? ……아아, 초급 클래스인가?”
진호도 살짝 실망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기본부터 배우는 게……’
“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응?”
“네?”
“당연히 댄서 클래스지! 무대에서는 전문 댄서 클래스!”
진호와 짐은 눈을 껌뻑거렸다.
그러다 동시에 입을 떡 벌렸다.
“에에엑?”
조나단 파블로도 경악했다.
* * *
“헉! 마돈나다!”
“마, 마돈나야! 꺄악!”
마돈나의 퍼포먼스를 보고 자란 세대인 댄서들은 갑자기 나타난 마돈나를 보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진호도 그들을 보며 깜짝 놀랐다.
“저, 저 사람들은?”
미튜브에서 커버 댄스를 하는 사람들이지만, 그 춤의 선이 너무도 예술적이었던 이들.
진호는 그제야 이 학원의 이름이 낯익었던 이유와 정 실장이 아는 눈치였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여기가 그 케일라 스튜디오였다니……”
“호오- 아나 보군?”
“……예, 뭐. 저도 아이돌 육성을 해 봤으니까요. 그래서 저분들 중 한 분이라도 댄스 트레이너로 고용할 수 있을까 문의를 해봤지만, 한국은 너무 멀다며 가멸차게 거절당했죠. 그런데……. 여기가 도나의 학원일 줄이야.”
세상 참 좁다는 생각이 갑작스레 들었다.
“당연하지. 스케줄이 안돼서 한국에 못가.”
“그렇죠. 빌보드 무대에 서는 전문 댄서들이니까요.”
그랬다. 눈앞의 사람들은 빌보드 톱스타의 무대에서 춤을 추는 댄서들이었다. 세계 대회 입상 정도는 기본 커리어로 깔고 가는 엘리트 댄서들.
“그리고 한국에는 2밀리언 스튜디오가 있으니까 더더욱 안 가지. 서로의 사업 영역은 지켜야 하니까.”
“네. 그래서 저도 그곳에서 트레이너과 안무가를 헤드 헌팅 했어요. 그런데…… 제가 저분들에게 댄스를 배운다고요?”
진호의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춤이 팍팍 늘겠네.”
마돈나는 그런 진호를 보며 의아해했다.
“무슨 헛소리야? 저들과 함께 저기 짐에게 배우는 거지.”
덜컥!
몸이 굳은 진호는 마돈나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벌써 치매인 것 같지는 않고……”
탁!
신경질적으로 진호의 손을 치운 마돈나가 이쪽을 보며 꺄악거리는 댄서들을 응시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보면 알아, 보면……. 짐?”
“……흐음. 오케이. 실력을 보여주라는 말이지?”
자존심이 상한 얼굴. 진호는 속으로 이마를 잡았다.
“괜찮은 놈들은 내 복귀 무대에 세울 거야.”
“……오우! 그런 거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짐 볼은 제자들에게 다가가 마돈나의 의뢰를 설명했고, 댄서들은 눈을 부릅뜨며 마돈나를 응시했다.
마돈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은 황급히 벽 한쪽을 다 차지한 거울 앞에 서서 대형을 이룬 채 몸을 풀기 시작했다.
“도나, 아니 마돈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괜히 나 때문에 무리할 필요 없어요!”
“무리? 내가?”
코웃음을 친 마돈나가 진호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애송이. 내가 방금 말했지. 보면 알게 될 거라고.”
“하지만 제가 어떻게……”
아무리 [스킬: 무중력]을 얻으며 춤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해도 이제 막 재능이 개화한 것뿐이다. 빌보드에서 전문 댄서로 활약해 온 저들과 비교 대상이 될 수는 없었다.
이들의 춤은 평범한 춤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이었다.
“보고 나서 말해.”
“……하아. 그래요, 그래.”
‘내가 당신을 어떻게 말리겠습니까?’
이래서 같이 작업을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다시 한숨을 내쉰 진호는 댄서들을 바라봤고, 마돈나는 짐 볼에게 신호를 주었다.
“그럼 시작한다!”
퉁! 쿵쿵!
현재 가장 유명한 댄스곡이 흘러나오자 진호는 될 대로 되라는 듯 몸에 힘까지 빼며 댄서들을 보았고, 이윽고 그들의 몸이 움직였다.
그 순간이었다.
‘……어라?’
진호는 절도 있게 춤을 추는 그들을 보며 눈을 끔뻑거렸다.
곡이 끝났다.
마돈나는 얼이 빠진 진호를 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어때?”
진호는 헉헉거리는 댄서들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출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예술이라 생각했던 그들의 춤. 왜인지 너무 쉬워 보였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