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33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2권 8화
다음 날인 일요일, 진호는 아버지 이형만의 친구분이 일하고 있는 대형 병원으로 향했다.
작은 체구에 다 벗겨진 머리칼, 새치가 많아서 본래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는 강신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만이한테서 나올 얼굴이 아닌데?”
“엄마가 예쁘잖아요. 흐흐흐, 잘 계셨죠?”
“아, 그건 인정하고, 나야 언제나 잘 있지. 그런데 갑자기 웬 알바야? 요새 잘나간다며?”
‘1차 조건을 해금해야 돼서요.’
1차 조건은 일주일 동안 하루 여섯 시간 이상 병원에 있을 것. 의사를 꿈꾸었지만 아버지가 크게 다치면서 고졸로 학업을 마치고 알바를 하던 주인공은 병원에서 아버지 병간호를 하면서 의사들의 실상을 알게 된다.
잠을 못 자는 인턴, 백일 당직 등 언제나 수면욕에 시달리는 그들의 모습에 주인공은 한 가지 의문을 갖는다.
왜 사람은 잠을 자야 피로가 풀리는 거지?
막일꾼이었던 아버지도 피로를 이기지 못해 공사장에서 떨어졌고, 그 자신도 세 개 이상 하는 알바로 인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는 이때부터 피로와 수면에 대해 파고든다.
2차는 수면의학과 피로, 약초와 의약, 마사지에 관한 서적 20권 돌파다.
이 스킬은 4차 해금까지 있는데, 그래 놓고 얻는 스킬이 너무 사소 했기에 잊어버리고 있었다.
‘3차가 문제긴 한데…….’
리셋 라이프에서는 가상의 캐릭터라 아무렇지 않았지만 지금은 너무도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그래도 해야지. 잠을 위해 선데!’
무작정 있으면 눈치가 보이기에 이렇게 일을 자처한 것이었다.
“설명드렸다시피 과제 때문이에요. 병원에도 경영은 필요하잖아요. 그걸 의약품 소모로 풀어 보려고요.”
진호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병원 안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때 울 수도 있지만, 그래서는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역시 한국대! 학업의 질이 다르구나!”
“아, 삼촌도 한국대 나오셨죠?”
“동문이 됐다는 소리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아, 그래서 저번 처럼 창고에서 일한다고 했구나? 돈은 안 받아도 되니까.”
진호는 예전에 이 스킬을 얻기 위해서 이곳 병원에 출근 도장을 찍은 적이 있었다.
실상은 만날 게임만 하는 진호가 걱정된 부모님이 주말에 뭐라도 해 보라고 밀어 넣은 것이지만. 마침 우연히도 그 스토리를 공략 하고 있던 진호는 얼씨구나 하고 알바를 받아들였다.
“과제를 위해서인데 돈을 받을 순 없죠. 그런데 가능할까요?”
“의약품명만 밝히지 않으면 돼.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서약서 가져오셨죠?”
강신일은 당연하다는 듯 서약서를 내밀었고, 진호는 사인을 했다. 강신일은 이를 위해 일요일인데도 나왔던 것이다.
“아, 혹시 지금 일하시는 분이 계시나요?”
“약품 빼돌리던 거 걸려서 내쫓았다. 그것 때문에 몇 명 모가지가!”
입술을 비틀며 목을 긋는 강신일의 모습은 심장을 서늘케 했다.
“그래서 이번엔 얼마나 있을 거냐? 열흘 안에 사람 구할 거다.”
“아, 그 정도면 충분해요. 주일엔 오후에 출근할 거고요.”
“흐음, 알았다. 위치는 알지?”
“감사합니다! 아, 이건 선물이요. 오늘 출근하시게 했잖아요.”
“뭘 이런 걸 가져와. 그래도 잘 받으마. 그리고 오늘 수고해.”
“네!”
씩 웃은 진호는 강신일이 넘겨준 직원 카드를 목에 매고 창고가 있는 지하로 향했다.
띠이! 철컹!
“피휴, 냄새.”
온갖 의약품들로 가득한 지하 창고에 도착한 진호는 수량 점검부터 시작했다.
창고 일은 별게 없다. 의약품이 일정 이상 소모되면 보고하고, 가끔 환기시키고, 관계자 외출입 금지만 지키면 된다. 딱 그것뿐이었다. 그래서 월급이 무척이나 적다. 청소는 병원에 소속된 업체에서 따로 하고, 진열과 수량 관리도의 약품 회사에서 해 준다.
즉, 창고 관리직은 혹시 모를 절도를 막기 위한 경비원이었다.
“끄으, 다 끝났다.”
시계를 보니 아직 저녁 시간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혀를 찬 진호는 허름한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꺼냈다.
타다다다다다!
띠잉! 철컹!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다가 고개를 돌린 진호는 긴 생머리를 한, 하얀 가운의 여우상 미녀와 눈이 마주치자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나누나?’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누구신데 의약품 창고에 계신 거죠?”
“……아, 오늘부터 열흘 동안 창고 관리를 하게 된 이진호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2차 해금을 위해 리얼 타임으로 하루면 충분했는데도 그에게 거의 한 달 동안 출근 도장을 찍게 만들었던 이유, 그녀는 진호의 두 번 째 짝사랑 상대였다.
‘옛날의 나 따윈 아마 기억도 못하겠지.’
진호는 씁쓸한 마음을 가리고자 더 밝게 웃었다.
* * *
병원에 미남이 강림했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 갔다.
“김 닥, 김 닥, 창고에 꽃미남이 왔다는 이야기 들었어? 그것도 무려 흉부외과 과장님 조카래!”
닥. 닥터의 줄임말로 그들만의 언어다. 그녀의 말에 간호사들의 귀가 종긋 솟았다.
“응, 그래. 들었어.”
직접 보기도 했지만 김이나는 동기에게 말하지 않기로 했다.
“……어휴, 이 냉혈마녀. 그래서 결혼은 하겠니?”
“면허 시험 준비는 다 끝내 놓은 거지?”
“……나쁜 년.”
“선생님 ─!”
이쪽을 향해 우르르 달려오는 여자아이. 차갑게 굳어 있던 김이나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응, 지혜야. 왜?”
“어후, 저 아수라 같은 년.”
말하는 소리가 오직 김이나에게 만들리도록 작았다. 이나는 무시 했다.
“나 콜라 마시고 싶은데, 간호사 언니가 못 먹게 해! 혼내 줘!”
“안돼요. 콜라 마시면 배가 아야 해요. 나중에 병 다 나으면 그때 많이 마시자? 그럴 수 있지?”
“딱 한 입만, 응? 딱 한 입만!”
“음, 그럼 솜에 묻혀서 조금만 빨자. 아니면 안돼.”
“힝. 솜 맛 이상한데……. 알았어요.”
시무룩한 지혜를 안아 들어 머리를 쓰다듬은 김이나는 과거 일을 생각했다.
‘이진호……. 옛날에 똑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었는데.’
약 3년 전, 그녀가 막 레지던트가 되었을 때 창고에서 만난 뚱뚱 했던 소년. 김이나는 덩치에 맞지 않게 쑥스러움이 많았던 그 소년이 기억났다.
레지던트가 됐다고 좋아했던 이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당직과 실수, 선배들의 갈굶에 몸과 정신이 지쳐 갔다.
그럴 때마다 진호가 슬그미니 다가와 먹어야 힘낼 수 있다, 힘내라며 캔 커피, 초코바 등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건 정말로 힘이 되었다.
‘새빨개진 얼굴도 귀여웠고…….’
“쿡쿡.”
‘갠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아마 이제 스무 살쯤 됐을 것이다.
“선생님?”
“응? 가자!”
“응!”
김이나는 활짝 웃으며 병원 내 편의점으로 향했다.
* * *
“으허?”
순간 진저리를 친 진호는 재빨리 귀를 후볐다.
“……이상하다. 어제 귀 팠는데.”
역시나 나오는 건 없었다.
띠잉! 철컹!
고개를 돌리자 수줍은 얼굴의 간호사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아…….’
“이, 이거 마시면서 해요.”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그, 그럼!”
후다닥 도망친 그셔가 나간 문을 바라보던 진호는 손에 쥔 캔 커피와 앞에 있는 철제 책상을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수북이 쌓여 있는 과자와 사탕, 음료들.
“이러다 정말로 살이 찔수도 있겠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선물 받은 거라서 버릴 수도 없었다.
띠잉! 철컹!
‘아……. 응?’
진호는 벌떡 일어났다.
“삼촌!”
안으로 들어온 강신일은 철제 책상을 보곤 피식 웃었다.
“잘하고 있는 것 같네.”
“아직 퇴근 안 하셨어요?”
벌써 저녁 아홉 시다.
“수술이 이제 막 끝나서 말이다. 별일 없으면 커피 한잔하자.”
“아, 예!”
둘은 병원 건물 앞 벤치로 향했다.
여름이 유난히 빨리 다가오는 것 같은 날, 서늘한 바람이 선물처럼 불어오자 진호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할 만해?”
“일이랄 게 있나요.”
“원무과에서 평이 좋더라. 인턴, 간호사들도 네 덕분에 쉽게 찾았다고 하고.”
병실에서 응급 상황이 벌어졌는데 의약품이 없으면 결국 당직 인턴이나 간호사가 달려와야 했다.
“가끔 오는 사람과 매일 있는 사람이 같나요.”
그게 아니란 건강신일이 더 잘 알았다.
대형 병원에서 쓰이는 의약품의 종류는 천 가지가 가볍게 넘는다. 진호는 단 이틀 만에 그걸 다 외운 것이다.
“의대는 생각 없냐?”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요.”
“연예인도?”
“그것도요.”
“욕심이 많다.”
“흐흐흐.”
“녀석……. 그래, 수고해라. 난 들어간다.”
왜인지 일어서는 그의 어깨가 작아 보였다.
“……혹시 테이블 데스예요?”
테이블 데스, 수술 중 사망을 뜻한다.
움찔한 강신일이 힘없이 웃으며 진호의 머리칼을 헝클어뜨렸다.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수고 해.”
“삼촌…….”
진호는 병원 밖이 아닌 장례식장쪽으로 향하는 강신일을 보다가 한숨을 내뱉었다. 주제넘게 참견할 상황이 아니었다.
“하아.”
‘의사라…….’
툭. 옆을 보니 처음 본 여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똘망똘망한 귀여운 외모를 지닌 아이는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안녕, 아저씨?”
“안녕, 꼬마 아가씨? 이름이 뭐야?”
“아빠가 처음 본 사람한테는 이름 알려 주는 거 아니랬어.”
“그 아빠가 처음 본 사람한테는 다가가지 말라고는 안 했어?”
“괜찮아. 아저씨는 잘생겼으니까. 댕댕이처럼 잘생겼어.”
댕댕이는 강아지를 뜻하는 말이었다.
띵. 아찔했다.
“그, 그러니? 아, 사탕 먹을래?”
“안돼. 콜라, 사탕,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등 위에 자극 줄 수 있는 건 다 안돼. 난 소아 소화성 궤양이라고 하는데, 뭔지는 잘 몰라.”
“……똑똑하고 기특하네. 그런데 친구는 없어?”
진호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없어.”
“같은 병실의 친구도?”
힘없이 고개를 흔드는 소녀의 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근데 아저씨는 연예인이야?”
“음, 모델 겸 테니스 선수 겸 기타리스트 겸 요리사 겸 스타일리스트야. 연예인은 아직 관심 없어.”
“……머리가 아픈 사람이었구나. 쯧쯧.”
울컥! 순간 진호는 아이의 머리를 쥐어박을 뻔했다.
“아저씨가 증명해 줄 테니까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오렴.”
귀여운 아이는 언제든 환영이었다.
“음, 그럼 기타 쳐 줄 수 있어? 우리 아빠도 옛날에 기타를 치셨다는데…….”
“지혜야! 지혜야!”
“어? 선생님이다! 어? 아빠도 왔다! 아빠-!”
조르르 달려가는 지혜를 바라보던 진호는 순간 굳었다.
‘이나누나.’
그리고 그 옆에는 잘생긴 30대 중반의 남성이 서 있었다.
진호는 왠지 힘없어 보이는 남자의 얼굴이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너무 잘 어울리는 둘의 모습도. 입 맛이 많이 썼다.
이쪽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김이 나에게 마주 고개를 숙인 진호는 이내 머리를 긁으며 병원 안으로 향했다.
‘과제나 하자.’
강신일과 함께 나와 있던 시간만큼 더 있어야 하기에 오늘은 조금 더 늦게 들어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