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349
15권 3화
각 팀이 출발할 도시를 정하는 방법은 제비뽑기였다.
“순번은 선·착·순으로 하겠습니다.”
‘와, 이 양반.’
진호는 자신을 쳐다보는 제작진들의 눈빛에서 악의마저 느꼈지만 콧방귀를 뀌었다.
방 안에 있는 물품을 모두 챙겨서 시작이 좋은 것도 있지만, [스킬: 골드 아이]가 있기에 동선 낭비가 없는 출발 도시를 선택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세상에 운 좋은 사람이 많다는 걸 간과한 판단이었다.
‘어? 그건……’
“꺄! 라스알카이마!”
라스알카이마, 동쪽 끝에 위치한 도시다.
‘잠깐! 그건 안돼!’
“울랄라-! 아부-다비-!”
지금 당장 출발할 수 있는 아부다비.
이럴 땐 운을 볼 수 있다는 게 저주 같았다.
스타트 지점으로 좋은 도시들이 점점 줄어들수록 절망의 그림자는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저것만은 제발! 제발!’
“자, 진호 씨!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참 해맑다. 그러나 진호는 나연석의 손에 들린 하나 남은 제비를 보고는 꿈틀거리는 입가를 억지로 눌러야 했다.
하지만 이내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응? 알 고웨이파트?”
서쪽 끝, 지도에도 잘 표시되지 않는 도시의 지명이었다. 아니, 도시라기보단 거대한 물류집하장이라고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뭐지?’
그러나 나쁘지 않았다.
‘동선은 좋은데……’
“쳇. 동선이 좋네.”
‘어이, 여보세요!’
진호의 어이없다는 시선에 나연석은 몸을 돌려 출연자 전원을 바라보았다.
“자, 모두 자신이 갈 스타트 지점을 모두 숙지했나요?”
“네-!”
진호도 크게 외쳤다.
“특별히 스타트 지점까지는 저희 제작진이 옮겨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
‘아냐. 환호하지 마.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몰라.’
모든 의도가 불순한 사람이 나연석이다.
“그럼 30분 동안 마지막 점검을 하고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살아서 보도록 하죠! 어메이징 서바이벌 스타-트!”
“스타-트-!”
“와아아아아!”
……따악!
슬레이트가 쳐지며 메인 카메라들의 불이 꺼지자 진호는 엠마 샬롯과 에이미 샤크에게 다가갔다.
둘은 진호를 보자마자 안겨 왔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요!”
진호가 아니었다면 졸쫄 굶은 채로 출발할 뻔했다.
출연자들은 그런 둘을 부러워할수밖에 없었고, 진호는 그런 그들의 시선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고마워?”
나지막하게 울리는 진호의 음성에 나연석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갑자기 미치도록 불길해진 그는 급히 몸을 돌렸지만, 아직 진호에 대해 잘 모르는 엠마 샬롯과 에이미 샤크는 눈물마저 글썽이고 있었다.
“그럼! 진짜 네가 아니었다면……”
“진짜? 진짜 진짜?”
“그렇다니까요!”
“그럼……. 우리 물물교환 하자!”
“응?”
……휘릭.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진호에게로 몰렸고, 한국 측 피디들의 얼굴이 하얗게 물들었다.
“잠깐-!”
진호는 나연석을 불퉁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왜요? 출연자들끼리 물물교환하지 말라는 소리는 안 하셨잖아요.”
“……그건 그런데! 하지만 그건!”
“룰 넘버 8. 모든 출연자는 물물교환을 통해 생존에 필요한 물품을 얻을 수 있다!”
로비에 정적이 내려앉았고, 진호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여기 어디에 ‘현지인과만’이라는 단어가 있나요?”
이야기를 하는 진호의 표정이 얼마나 얄미운지, 나연석을 그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걸 간신히 억눌렸다.
“……야, 너! 와-!”
“아니면 합당한 무언가를 주시던가요? 제작진과도 물물교환 할 생각이 있습니다.”
나연석은 입을 꾹 다물었다. 진호와 거래를 해서 이겨 본 역사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에 미국 측 감독들은 입을 떡벌린 채 진호와 나연석을 번갈아보았다.
“흐흐흐. 그러게 룰을 잘 짜셨어야죠.”
“……잠깐마안?”
나연석은 급히 몸을 돌려 회의를 소집했고, 진호는 그 모습을 보며 실실 웃었다.
“진호 씨, 저렇게 회의를 하게 둬도 되요?”
“네. 돼요. 결국 허락할 수밖에 없으니까.”
“아까도 진호 씨가 그렇게 말하기는 했는데……”
진호는 지켜보면 안다는 듯 긴급회의를 소집한 피디들을 바라보았다.
“이건 무슨……”
“허어. 지노가 저렇게 허를 찌를 줄 아는 사람이었을 줄이야.”
미국 감독들은 룰을 만들 때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상황이 펼쳐지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고, 나연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합니다. 모두 제 불찰입니다.”
그 역시도 이런 상황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전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생각보다 생존 물품을 찾은 팀이 적기 때문입니다.”
진호와 서형을 제외하면 겨우 두팀만이 생존 물품을 찾았다. 그런데 그 두 팀도 생존물품을 모두 찾은 게 아니었다.
“이대로 시작하면 3일도 지나지 않아 반절 이상의 팀이 리타이어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중간 지점 미션은 각 팀들이 출발을 하고 최소 이틀 뒤에나 행해지기 때문이다. 이미션을 통과하지 못하면 백퍼센트 중도 포기다.
“……설마 지노는 이것까지 예상해서?”
“예, 아마 그럴 겁니다. 아니, 진호는 저희가 이 물물교환을 거절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한국 피디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미국 측 감독들은 혀를 내둘렀다.
“대체 어떤 환경에서 촬영을 했기에 연예인이 제작진의 수를 넘겨짚을 수 있는 겁니까?”
아니, 이건 컨트롤을 하는 것이다.
나연석과 박영후, 여정호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진호를 예능 괴물로 만든 사람이 바로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크흠. 그럼 모두의 뜻이 이러니 물물교환을 인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수수료를 붙이기로 하죠.”
수수료라는 말에 미국 측 감독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후우. 이거 지노를 따라가면 영혼까지 털리겠군요. 난 다른 팀을 괴롭히겠습니다.”
“저도 지노를 욕심내지 않겠습니다. 디렉터 나, 부탁합니다.”
조나단 파블로와 레이몬드 감독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진호와 가장 좋은 케미를 보일 사람은 나연석이라는 걸 말이다.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전달하겠습니다.”
나연석은 진호에게 다가가 회의 내용을 전달했고, 진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었다.
“오케이! 서형 씨, 좌판 펴요!”
“……네!”
정말 될 줄 몰랐던 서형은 머뭇거리며 품에 한가득 끌어안고 있던 이불 커버를 바닥에 펼쳤고, 사람들의 눈은 동그래졌다.
“헉! 뭐, 뭐야? 저것들은?”
“저, 저 많은 걸 다 챙겨 왔다고?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많다. 뭔가 너무 많다. 나연석은 중복된 물품이 너무 많은 좌판에 다시금 경악하며 진호를 보았다.
“너, 설마……”
진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본인 숙소에서만 챙길 수 있다고도 안 하셨잖아요.”
그랬다. 진호는 남은 시간에 다른 사람의 숙소, 너무 급하게 나가느라 문을 열어 놓은 다른 출연자들의 숙소에 들어가 생존 물품들을 모두 가져온 것이었다.
“또 회의하실래요?”
“…….”
“흐흐. 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야!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코펠 하나에 초콜릿 한 봉지-! 낮에는 그늘, 저녁에는 이불로 쓸 수 있는 이불 커버가 육포 한 봉지! 값어치만 맞으면 다 교환됩니다! 싸다, 싸!”
조나단 파블로와 레이몬드는 다시금 깨달았다.
진호를 따라가지 않은 게 정말 잘한 일이라고 말이다.
* * *
결국 예상했던 것보다 10분 늦게 출발하게 된 진호는 차에 오르자 마자 넋을 놓고 있는 나연석에게 손을 내밀었다.
……짜악!
“잘 했으!”
“흐흐. 제가 피디님과 한두 번 예능하나요. 생존 물품이 숨겨져 있을 때부터 다 이런 상황을 예측했죠.”
“그래, 잘 했어. 정말 너 아니었으면 끔찍했을 거다.”
결국 모든 이들에게 생존 물품이 적절하게 배분되었다.
이제부터 참가자들이 탈락하는 건 제작진이 아니라 그들의 잘못이었다.
“으흐흐. 아주 식겁했겠네요. 그나저나…… 사람들이 간식을 그렇게 많이 숨겨 뒀을 줄은 몰랐네요.”
“그들도 생각을 한 거겠지.”
“확실히. 외국 예능들도 상당히 험하긴 하죠.”
1, 2주짜리 예능이면 다 압수했을 테지만, 촬영 기간이 무려 한 달 반이었다. 비상식량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으음. 그런데 문제는 이불 커버들인데……. 왜 다들 안 샀지?”
이불 커버는 딱 한 팀만 구매했다. 그것도 한 장이었다.
진호는 이 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불 커버가 필요해? 괜히 무겁기만 하잖아.”
“생존에 가장 필요한 물품인데 무게가 무슨 상관이에요.”
“뭐?”
둘의 대화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서형도 깜짝 놀라 진호를 보았다.
“제가 아까 팔 때 말했잖아요……. 아니다. 그냥 내일 보시면 알아요.”
“아, 뭔데?”
“자, 출발합시다!”
진호는 서형의 손을 꼭 잡으며 눈을 감았고, 우물쭈물거리던 나연석은 한숨을 내쉬며 출발하라 신호를 주었다.
그렇게 차가 출발하자 진호는 서형에게 아까 잘 했다며 말했고, 서형은 배시시 웃으며 그의 어깨에 기댔다.
* * *
자정이 넘어 도착한 알 고웨이파트는 무더웠던 낮과 달리 굉장히 싸늘했다.
‘역시 사막인가……’
“자, 골라.”
“이건 뭐에요?”
나연석이 내민 건 어메이징 서바이벌이라는 글귀가 적힌 두 개의 종이 카드였다.
“별거 아니야. 그냥 대충 뽑으면 돼.”
진호는 직감했다.
‘엄청 중요한 거구나.’
또 약을 팔고 있었다.
고개를 저은 그는 카드를 뽑았다.
“응? 도로?”
“……씁.”
작가들도 아쉬워했다.
진호는 재빨리 나연석의 손에 들린 나머지 카드를 뺏었다.
“엇!”
진호는 X라 적힌 카드를 보며 의아해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거 설마……”
“어흠흠.”
생각이 맞았다.
“멱살 잡아도 되죠? 아, 된다고요? 감사합니다.”
“어허. 그러는 거 아니야. 어허! 씁? 오지 말라니까? ……지금부터 그 누구도 카메라 끄지 마!”
도로와 X. 그 뜻은 하나다.
도로를 따라 걷느냐, 아니면 도로가 아닌 길을 걷느냐.
“……도저히 못 참겠다! 죽어라, 이 사탄아-!”
진호는 나연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결국 진짜 출발은 새벽 1시가 넘어서야 가능했다.
“어떻게 할래요, 서형 씨? 하룻밤 자고 갈래요?”
“……아뇨. 일단 조금이라도 걷도록 해요. 내일을 위해서라도.”
“여윽시.”
엄지를 치켜세운 진호는 이제 방관자로 돌아선 제작진을 째려보고는 알 고웨이파트 너머를 향해 힘차게 발을 내딛었다.
그런 그의 손에는 아부다비의 호텔 로비에서 뽑은 뽑기 용지가 들려 있었다.
‘이게 가장 빛났지……’
대박 시나리오를 보는 듯 운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왜일까……’
의문이 그의 머릿속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 * *
사막이라서 그런지 해가 무척이나 일찍 떴다.
주문 제작한 초경량 A형 텐트에서 빠져나온 진호는 어스름히 떠오르는 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막에서 보는 일출도 아름답네.’
서형을 깨워서라도 같이 보고 싶은 진풍경이었다.
우두둑!
“으음.”
뒤튼 허리에서부터 퍼진 시원함이 잠을 몰아내자 그는 아침 식사준비에 들어갔다.
부스럭 부스럭 통통통
육포를 잘게 찢고 칼등으로 잘게 두드려 반합에 넣고 물을 자박하게 채운 그는 압축고체연료에 불을 붙였다.
“벌써부터 육포를 쓰는 거야?”
리얼 정글에 가다의 카메라 감독이 다가와 물었다.
리얼정가에 있어 육포는 무척이나 사치스런 물품이었다.
“다른 참가자들과 물물교환을 한 것도 있지만, 뷔페에서도 많이 챙겨서 괜찮아요.”
“그건 또 언제……. 아, 육포가 나온 것부터 에러였구나.”
육포는 숨기기가 매우 용이한 물품이다. 바지 주머니나 양말에 숨겨도 되고, 갈아입을 옷 속에 숨겨도 된다.
“예능 원데이 투데이 찍는 것도 아니고. 챙기라고 놔둔 건 챙겨야 예의죠.”
“……아주 머리 꼭대기에 섰구나, 섰어.”
“왜요? 다른 팀은……. 아, 못 챙겼겠구나.”
“케이크나 치킨 몇 개 챙긴 게 다라고 하더라.”
“쯧쯧. 굶어 죽겠네. 그만큼 다해 준 이상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진호는 콧노래를 부르며 불기 시작한 육포를 빤히 바라보다가 그안에 건포도와 비스킷을 부숴 넣었다.
아침은 간단히 먹을 수 있지만 고열량인 죽이었다.
“챙겨 온 조미료도 좀 넣고……. 음. 이대로 끓이면 되겠다.”
사박사박.
얼굴이 퉁퉁 부은 나연석이 다가왔다.
“……맛있겠네.”
비주얼은 꿀꿀이 죽 같은데 참기름의 고소한 향기가 식욕을 강렬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제작진들이 먹는 고기와 바꿔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이거 다섯 배 끓여 주면 소고기 100그램 콜.”
“……훠이. 저리 가요. 음식에 모래 들어갑니다.”
사부작.
텐트 안에서 서형이 크게 몸을 뒤척였다.
“으으응.”
“일어났어요?”
“……네.”
텐트 안에 있는 카메라를 발견하여 얼굴을 가렸던 서형은 약간 갈등을 하다가 결국 텐트를 빠져나왔고, 둘은 서바이벌 생존이라는 테마와 아주 어울리는 죽으로 아침 식사를 한 후 짐을 정리해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몇 시간 걷지 못하고 멈춰서야 했다.
‘와-.’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건 바람이 아니라 햇볕이라고 했던가. 내리쬐는 햇빛과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온몸을 달구고 있었다.
‘더 이상 걷는 건 무리야.’
진호 본인이야 [스킬: 나는야 자연의 왕자]가 있어서 충분히 버틸수 있다지만, 서형은 아니었다.
제작진도 거의 죽어 가는 눈빛으로 이쪽을 향해 제발이라는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쉬었다 가죠.”
“후우욱! 네.”
“크아아!”
뜨거운 숨을 뱉어 낸 서형은 그자리에 주저앉았고, 제작진은 재빨리 다른 사람과 교대하며 뒤따라오는 차를 향해 달려갔다. 진호는 A형 텐트의 스틱과 이불 커버를 조물조물 만지기 시작했다.
다가오던 나연석은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해했다가 이내 눈을 크게 떴다.
“다 됐다. 그늘 완성! 서형 씨, 얼른 들어와요!”
“네!”
서형은 재빨리 그늘 안으로 들어갔고, 나연석은 혀를 내둘렀다.
그의 머릿속으로 어젯밤 진호가 한 말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무게가 무슨 상관이냐고 말한 거구나.”
“그렇죠.”
제아무리 무겁더라도 생존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감내해야 한다.
그게 생존의 비결이었다.
“하지만……”
“응?”
나연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왜인지 갑자기 불길함이 온몸을 엄습했기 때문이다.
진호는 그런 그를 보며 씩 웃었다.
“이렇게 그늘을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죠.”
“……그, 그럼?”
“서형씨! 얼른 칼 꺼내요! 옷 만들게!”
“네!”
“뭣?”
진호는 나연석을 보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이 나라 사람들이 왜 하얀색의 긴 옷을 입고 다니겠어요?”
하얀색 천은 이곳 사람들의 삶의 지혜였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