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353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15권 7화
“휘유.”
아마르가 준 전통의상을 걸치고 나온 진호와 서형에게 박수가 쏟아진다. 선물을 한 당사자인 아마르가 제일 열렬히 박수를 쳤고, 진호는 쑥스러워 하는 서형을 이끌고 당당히 걸어 베후인들이 지펴 놓은 불가에 앉았다.
“선물은 잘 사용하고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게 예의인 것 같아서 잠시 실례했습니다.”
베후인들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아닙니다, 친구여.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마음이 놓입……”
아마르는 진호와 서형의 무릎 위에 올라 몸을 마는 모래 고양이와 사막 여우들의 모습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모하메드가 눈을 빛냈다.
“신기하군.”
“제가 동물들에게 사랑을 좀 받는 체질이라서요.”
“……나처럼 늙은 사람에겐 무척이나 필요한 체질이군! 이놈들은 좀 처럼 말을 잘 걸어 주지 않아서 말일세. 늙었다고 무시하는 게지.”
“모, 모하메드!”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모하메드님!”
친할아버지를 비롯해 노인들의 뼈 때리는 농담을 많이 겪어온 진호는 난처해하기는 커녕 아무렇지도 않아 했다.
“하핫. 아, 좀 안아 보실래요?”
“그래도 되겠나?”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모래 고양이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작게 속삭였다.
“야옹!”
‘귀찮아하지 마라, 인마.’
작은 발을 아장아장 움직인 모래고양이는 모하메드의 무릎 위에 올라 몸을 말았다. 손안에서 느껴지는 작고 따뜻한 생명에 모하메드는 혀를 내둘렀다.
“야생의 모래 고양이는 참 경계심이 많은 동물이거늘……”
그래서 옛 베후인들은 모래 고양이를 먼저 다가오면 ‘오늘은 운수가 좋겠구나’라고 말할 정도였다.
우연인지 아닌지 모래 고양이가 먼저 다가오는 날엔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다든지, 생각지 못한 오아시스를 찾는다든지 등 행운이 생기곤 했기 때문에 행운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그것도 몇 십 년 전의 이야기였다.
어느 순간부터 모래 고양이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베후인들은 어두운 사막에서의 작은 등불 하나를 잃어버렸다.
이런 모하메드의 설명에 진호는 탄성을 터트렸다.
‘그래서였구나.’
이제야 모래 고양이를 향한 이들의 범상치 않았던 반응이나 이쪽을 신기한 동물 살피듯 보며 고개를 주억거리던 모습이 이해되었다.
‘뭔가 더 숨겨진게 있는 것 같지만……’
왜인지 귀찮아질 것 같아 진호는 그걸 묻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그래서 그런데 이 아이를 어떻게 할 건지 물어도 되겠나?”
모하메드의 검은 눈이 투명하게 번들거리며 진호를 응시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모인 베후인 전원의 시선이 집중됐다.
짙은 흥미 속 무기질 같은 눈빛이 온몸을 발가벗기는 것 같은 기분에 진호는 역시 라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잘 돌봐 줄 수 있는 분들에게 맡겨야죠.”
흠칫!
“……망설이지 않는구만.”
“정이라는 욕심으로 그 아이의 생을 망칠 수는 없으니까요.”
담담하게 내뱉어진 그 말은 베후인들의 가슴을 크게 울렸다.
그러나 아직 진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 이 아이들까지 부탁드리겠습니다, 모하메드.”
흠칫!
“오늘 만난 나를 믿는다는 건가?”
“아뇨. 사막에서 만났다 하나 낯선 이에게 스스럼없이 선물을 주는 선인 아마르가 존경하는 모하메드에게, 모든 아랍인들에게 존경을 받는 베후인에게 맡기는 겁니다. 부디 잘 키워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스킬: 골드 아이]로 모래 고양이 와 사막 여우들을 보니 눈을 뜨지 못할 만큼 빛이 나고 있다.역시나 지금이 결정이 최선이라는 뜻이었다.
짧은 침묵이 그들 사이에 내려앉았다.
“……허어. 새로 생긴 친구가 알고 보니 현자였던 건가.”
‘이렇게 선량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니!’
모하메드는 그것이 너무 기껍고, 또 기꺼웠다.
“과분한 칭찬입니다.”
“훌륭한 친구를 사귀는 건 신의 인도가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지. 오늘은 참 기쁜 날이 될 것 같네.”
모하메드는 베후인들을 둘러보았고, 그들은 흐뭇이 웃으며 몸을 일으켜 각자의 천막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에 진호는 놀랐다가 이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바로 가야 하는 건가?”
“아뇨. 그게……”
진호는 어메이징 서바이벌과 그룰, 그리고 본인들의 처지에 대해 설명을 하였고, 모하메드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이 아이와 물물교환을 하는 걸로 치는 게 어떤가?”
……씨익.
진호의 입가가 환한 미소를 그렸다.
“그 말을 해 주시길 기다렸습니다, 모하메드.”
“하하하하핫!”
타다다라당! 타다다라당!
붉어져 가기 시작한 하늘 위로 잼베처럼 생긴 타악기의 경쾌한 선율이 울리는 베후인의 쉼터.
불가에서 몸을 흔드는 서형과 진호, 그 주위를 돌며 팔짝팔짝 뛰는 네 마리 동물들에게 환호가 쏟아진다.
마치 동화 속한 장면 같은 모습에 모하메드도 아이처럼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고, 그걸 찍는 나연석은 꽉 쥔 주먹을 부르르 흔들었다.
‘이건 대박이다. 진짜 대박이야!’
모든 아랍인들에게 존경을 받는 게 베후인이다 보니 이들을 촬영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고, 또 베후인도 그런 걸 싫어한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사진이 아니라 영상으로 찍을 수 있게 됐다. 예능 방송으로는 전 세계 역사상 최초였다.
‘역시 이진호 이 미친 놈!’
나연석은 지금 진호와 서형의 입에 들어가는 양고기와 술 정도는 눈감아 주기로 했다.
그런 나연석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의 흥겨운 밤은 깊어져 갔다.
진호와 서형의 웃음은 더욱 커져갔고, 대접을 하는 모하메드의 눈빛도 흡족함으로 물들어갔다.
* * *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깜깜한 새벽, 주섬주섬 일어난 베후인들과 진호, 서형은 떠날 준비를 마쳤다.
“하루만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워 하는 아마르와 모하메드의 모습에 진호와 서형도 아쉬워했다.
하지만 이젠 정말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벌었던 시간을 다 까먹었어.’
어쩌면 지금쯤 추월을 당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언젠가 인연이 되면 다시……”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작별 인사를 건네던 진호는 베후인들이 내미는 황금 핸드폰들에 입을 다물었다.
모하메드가 짓궂게 웃었다.
“베후인이라고 해서 문명과 떨어져 사는 건 아니라네.”
“……푸핫! 제가 실수했네요.”
실수를 인정한 진호는 그들과 전화번호를 교환한 후 다시 작별 인사를 건넸다.
“자주 연락할게요.”
“나도, 그리고 우리도 현자 친구의 행보를 내 일처럼 생각하며 지켜보겠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아이들도 잘 부탁하고요.”
“안녕히 계세요!”
“그래, 잘 가게나.”
“잘 가시오! 친구여! 꼭 우승하길 바라겠소!”
베후인들은 떠나는 진호와 서형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진호와 서형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미소로 가득하던 그들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자 때문이었습니까, 모하메드.”
3일 전 밤하늘을 본 모하메드는 갑자기 그들의 이동을 만류하였고, 베후인은 결국 이곳에 더 머물기로 하였다.
방금 전까지 친근한 할아버지 같았던 모하메드의 눈이 아직도 어둔 하늘을 바라보며 형형하게 빛났고, 밝아지는 하늘에 희미해지는 별무리들이 모하메드의 눈을 가득 채웠다.
“그래. 저 청년이 수년 전 하늘에 떴던 보호하고 인도하는 별이란다, 알리.”
“헛?”
베후인들은 화들짝 놀랐다.
수년 전, 갑자기 모하메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수 많은 별들을 모으는 커다랗고 밝은 별이 갑자기 하늘에 우뚝 솟았다는 말을 말이다.
그것은 수 많은 것을 보호하여 새 시대로 인도하는 별.
그런 대단한 운명을 가진 별이기에 그들, 아니 모든 베후인은 여태까지도 새로운 왕의 재목이 나타나는가 싶어 그 당시 태어난 신생아들을 주의 깊게 살폈었다.
“어찌 동양인이……. 그것도 노래나 부르는 연예인이……. 아니, 그보다 나이가……”
모하메드도 그게 의문이기는 하였다.
“……이 또한 신의 뜻이겠지. 어찌 일개 피조물인 인간이 위대한 신의 뜻을 알까……. 저곳을 보거라, 베후인이여.”
모하메드가 하늘의 한 곳을 가리켰다.
“너희의 흐린 눈에도 이젠 수 많은 저 별무리가 보일 터.”
“으음…….”
“허어. 진짜 였다니……”
보인다. 여태껏 보이지 않았던 별무리 속에서 밝게 빛나는 푸른 별이 말이다.
이 기이한 상황에 그들은 모하메드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들로 인해 그 인도자와 얽힌 것이군요.”
고개를 끄덕인 모하메드는 아직까지도 진호가 떠난 방향을 응시하는 모래 고양이와 사막 여우들을 쓰다듬었다.
‘연예인. 그것은 그의 수단 중 하나일 테지……’
분명 사막만 바라보며 좁아진 자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일들이 진호에겐 많았을 것이고, 저렇게 수 많은 별들과 함께 나아가는 지금의 진호가 만들어졌을 터였다.
‘선량하기까지 하니 더할 나위가 없구나.’
모하메드는 이제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모든 아미르 형제들에게 연락을 하거라, 알리.”
“모하메드!”
“이것은 베후인의 아미르인 나모하메드의 부탁이자 마지막 명령인즉, 우리 사막의 형제들도 이젠 새 시대로 나아갈 때가 되었다고 전하여라.”
부르르!
베후인의 아미르. 알리를 비롯한 베후인들은 더 이상 항변을 하지 못했다.
“예! 아미르!”
“아, 그리고 이 아이들을 보호할 사람들도 좀 보내라 하고.”
베후인들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 핸드폰을 꺼내어 아미르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모하메드는 몸을 돌렸다.
‘그의 성품이라면 사소한 도움도 잊지 않을 터. 아미르들의 통 큰행동에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군.’
아미르. 그 말이 뜻하는 것은 통치자.
즉, 모든 아랍국가의 왕들을 뜻하는 단어였다.
‘그나저나 늦진 않았으면 좋겠군.’
모하메드는 부디 진호의 마음에 아랍도 담기기를 기도하였다.
* * *
투두두두두두!
진호와 서형은 자신들이 떠나온 방향으로 향하는 헬기를 힐끔 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드디어 도착한 알아인에 비하면 헬기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른 팀들과 얼마나 차이 나요?”
“……음. 가장 빠른 팀보다 30분 늦었어. 너희가 3번째야.”
진호와 서형은 혀를 찼다.
베후인들과의 만남은 무척이나 즐거웠지만, 그 때문에 시간이라는 큰 무기를 잃고 말았다.
나연석은 전의를 다지는 둘을 향해 사악하게 웃었다.
“자, 그러면 특별……”
“하지 마세요. 뭔지 모르겠지만, 말하지 마세요.”
“또 무슨 짓을 시키려는 거죠, 악마 PD님!”
“……누가 보면 진짜 인 줄 알겠다, 서형아. 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잖아.”
“퍽이나!”
진호는 이젠 일반인에게까지 악마 소리 듣냐며 나연석을 한심한 눈으로 보았고, 나연석은 그대로 삐져 버렸다.
“그래, 내가 다 잘못한 거지. 그래서 그냥 아예 계속 잘못하련다.”
‘뭣?’
순간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갔다.
“자, 잠깐! 에헤이……”
“어메이징 서바이벌이 시작된 지도 벌써 어언 23일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버텨 주신 참가자분들의 끈기와 생존력을 축하하고, 또 저희 제작진이 그동안 너무 느슨했다는 자책의 의미로 여러분께 하나의 특별한 미션과 새롭게 추가 된 룰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새롭게 추가 된 룰. 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불길했다.
진호와 서형은 나연석의 사악한 미소에 새파랗게 질렸다.
“새, 새롭게 추가 된다는 룰이 뭐죠?”
“별거 아닙니다. 앞으로 부턴 메리트 카드로 인해 쓰이는 모든 돈을 모두 참가자들이 부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앞으로는 자급자족인 셈이죠.”
“……네?”
진호의 운빨로 인해 메리트 카드를 다량으로 획득하면서도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젠 제작진에서 돈도 안 준단다.
울컥!
“이야-. 너무 기뻐서 말이 나오지 않나 보군요.”
“……그게 말이냐, 방구냐-!”
인내의 끈이 끊긴 서형은 나연석을 덮쳤고, 이미 그녀의 반응이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던 진호는 재빨리 그런 그녀를 잡아 세웠다. 진호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방송 사고는 막아야했다.
“진정해요, 서형 씨!”
“하지만 저 인간이! 저게-!”
“쉬쉬. 웃어른한테 저거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진호는 재빨리 다음 말을 하라고 나연석에게 신호를 주었고, 나연석은 이 말을 꺼내기 전부터 예상했던 아주 멋진 그림에 헤벌쭉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특별 미션도 새롭게 추가 된 룰과 연관이 되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오늘 하루 동안 1, 000디르함 벌기!”
움찔 진호와 서형의 몸이 굳었다.
잘못 들은 건 아닌지 눈을 껌뻑인 진호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나연석을 보았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세요? 진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돼요?”
“그렇습니……”
“나 이것도 얻었는데? 그리고 여기는 사람이 많은 도시인데?”
진호는 모하메드가 선물로 주어 배낭에 메어 놓았던 잼베 비슷한 악기를 보여 주었다.
의기양양했던 나연석과 제작진의 표정이 새까맣게 죽었다.
“아……”
이번엔 진호와 서형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서형 씨.”
“네!”
“검색해요. 여기 알아인의 최대 번화가가 어딘지!”
1, 000디르함. 아니, 겨우 그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여긴 거지도 억대를 번다는 아랍에미리트잖아?’
진호는 오늘 전 세계 예능에서 이런 종류의 미션 역사상 최고액을 찍어 볼 생각을 가졌다.
* * *
만약 어메이징 서바이벌의 모든 참가자 중 진호 본인 혼자만 연예인이었다면 이런 방법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노래가 아니라도 방송이라는 특성상 발품만 팔면 1, 000디르함 정도는 금방 벌 테니 말이다.
‘하지만 모든 참가팀에는 연예인이 한 명 이상씩 있지.’
진호는 카메라들을 몰고 다니는 이쪽을 주시하며 사라지는 사람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번화가라지만, 부유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그것도 이 아침에……’
[스킬: 괴도 루팡]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저들의 지갑은 무척이나 두둑하다고 말이다.
“진호 씨, 정말 돈을 벌 수 있을까요? 지금은 출근 시간인데……”
“걱정 마요.”
‘저 사람들은 출근 따윈 걱정하지 않으니까.’
자리를 잡고 짐을 푼 진호는 잼베 비슷한 악기를 통통 두드리며 시선을 더욱 끌어 모았다.
‘그렇지. 이래야지. 자, 그럼 시작해 볼까?’
탕다다당! 탕다다라랑!
동겹고 경쾌한 선율이 허공을 울리자 진호는 이곳 모든 이들의 시선과 걸음을 붙들기 위해 입을 크게 벌렸다.
일단 시작은 영화 알라딘의 프린스 알리였다.
절로 발이 붙들린 사람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고, 나연석을 비롯한 제작진은 이마를 짚었다.
3. 겹경사
알아인 거리에서 시작된 작은 콘서트. UAE를 울리다.
한국에서 온 작은 거 인의 재능기부 행진. 그의 빵은 특별하다?
이것이 기부다! 가벼운 주머니에서 나온 진정한 기부!
후자이라! 특별한 예술의 거리를 만들겠다.
가수와 예술가를 위한 특별한 거리 조성!
라스알카이마. 우리도 바뀔 때가 되었다. 후자이라와 연계!
사우디아라비아! 다음 시즌은 우리 나라에서 찍어 달라!
오만, 진호 리에게 투어 콘서트를 제의하다.
단골 카페에 앉아 태블릿 PC를 살피던 아르노 베르베우는 어이 없다는 듯 웃었다.
“그 콧대 높은 기름 장수들이 율법을 어겨 가면서까지 뮤즈를 떠받든다?”
본디 무슬림은 아무 곳에서나 노래를 부를 수가 없다.
축제 같은 특별한 날을 제외하면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인물만이 부를 수가 있다.
이를 비추어 보면 진호는 분명 엄청난 벌금을 맞아야 했다. 한데 벌금은 커녕 아랍에미리트라는 연합국 전체가 자국인들에게, 아니 무슬림 전체에 진호를 알리고 있다.
“대체 왜지?”
아르노는 맞은편에 앉은 피에트로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답을 구했다.
“아마, 그 기부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재능 기부뿐만이 아니다.
진호는 미션으로 번 돈의 일부를 써서 빵과 요리를 만들어 거지를 비롯한 없이 사는 사람들이나 고아들에게 나눠 주었는데, 그게 UAE 국민들의 마음을 울린 듯싶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완전히 아니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뮤즈는 빵과 요리뿐만이 아니라 음악과 미술적 재능도 아낌없이 기부했습니다. 솔직히 돈이면 다 된다는 기름 장수들의 삭막한 기부와 다른 방식이기에 사람들에게 더 와닿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뮤즈와 각국 왕가들이 얽혔습니다. 뮤즈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래, 그런 거겠지. 그렇지 않다면 현재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할 수가 없으니까.”
아랍에미리트뿐만 아니라 산유국으로 유명한 다른 나라들에서도 콜이 왔다. 이미 진출한 LVMH 자회사 브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브랜드들도 진출해 달라고 말이다.
이는 왕가들의 허락이 있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노골적인 일을 말이야.”
그들은 디을 UAE가 아니라 디올 차이나를 통해 디올의 상품을 구매하고 있었다. 진호와 아주 긴밀한 관계에 있는 이미영이 지사장으로 있는 디올 차이나에서 말이다.
“이젠…… 정말 올려야겠군.”
“예?”
아르노는 의아해하는 피에트로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내숭을 떠는 건가?”
“……하하.”
아르노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면서도 그 눈은 다음에 할 말을 강렬하게 갈망하고 있는 피에트로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이후에 할 일은 굳이 묻지 않아도 알겠지.’
지금의 피에트로라면 분명 해낼 수 있을 터였다.
아르노는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일어섰다.
“디올 CEO 자리는 안젤라에게 넘기고, 자넨 LVMH를 맡아봐.”
부르르!
‘드, 드디어!’
너무 길고 길었다.
‘과거에 뮤즈를 택한 내 선택은 정말 옳았다!’
피에트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예!”
고개를 끄덕이며 카페를 빠져나온 아르노는 어둔 밤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못난 것들……’
제아무리 철혈의 황제로 불린다지만, 아비로서 자식이 눈에 밟히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인 LVMH를 위해서는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부족한 둘에게 그가 만들고 가꿔 온 그의 모든 걸 넘겨줄 순 없었다.
“……후우. 이젠 나도 은퇴할때가 되었군.”
‘내 뜻대로 안 되는 일들이 많아졌으니 은퇴할 수밖에……’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
더 이상 추해지고 무기력해지기 전에 물러나는 게 옳았다.
“……뮤즈가 시간이 많아야 할 텐데 말이야.”
그는 은퇴 후의 일을 생각하며 홀가분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패션계의 거성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 * *
“하아. 하.”
메마른 입술이 달디단 숨을 뱉어내고, 무거운 발이 힘겹게 내딛어 진다.
“자요.”
이서형은 진호가 넘긴 물통을 입에 가져갔다.
꿀꺽꿀꺽!
불교의 감로수가 이럴까.
신의 넥타르가 이럴까.
미지근하다 못해 뜨거워진 물이건만 멍해져 가던 정신을 번쩍깨울 만큼 감미로웠다.
진호는 그런 그녀를 안쓰럽다는 듯 보았다.
‘솔직히 나도 힘들었는데, 서형씨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42도가 훌쩍 넘는 땡볕 더 위에서 무려 한 달 반 동안 걸었다.
그 한 달 반 중 3분의 2는 노숙을 했고, 물로 몸을 씻은 건 고작 10번에 불과했다. 또 도시마다 진호 본인을 따라다니며 같이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보조하며 체력과 정신력을 소모했다.
‘정말 고마워요.’
여기까지 버텨 줘서 고맙고 또 고마웠다.
“조금만 더 힘내요.”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두바이다.
저 멀리 빌딩 숲이 보이고 있음에 정말 조금만 더 걸으면 된다.
“서형 씨는 할 수 있어요. 아자, 아자 파이팅!”
“……아자 아자 파이팅!”
‘다 와서 쓰러질까 보냐!’
서형은 이를 악물며 발을 내딛었고, 진호는 그런 그녀를 대견하다는 듯 보며 보폭을 맞추었다.
그렇게 한 발, 두 발.
제작진이 보내는 무언의 응원과 꼭 잡은 손에 의지한 둘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걷는 속도를 높여 갔다.
“이젠 정말 다 왔어요. 백 미터……. 구십 미터……”
“팔십 미터……”
와아아아아아!
“음?”
“…… 무슨 축제 같은 걸 하나본데요? 아니면 엄청 유명한 사람이 오는 것인지.”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에 수 많은 인파가 모여서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이를 테면 저희?”
“에이……. 설마요.”
“왜요. 진호 씨 인기 많잖아요. 버스킹할 때 완전 스타였잖아요.”
“헐, 사돈 남 말하는 건가요? 남자들이 죄다 서형 씨한테 환호 보냈던 거 잊었어요?”
“……뭐야, 뭐야? 진호 씨, 지금 질투해요?”
“…….”
“그랬구나. 우리 진호 씨도 질투하는 구나-.”
“됐고, 얼른 가기나 합시…… 응?”
지노-! 서욘-!
힘내라! 힘내라!
‘응?’
“……진호 씨. 나 너무 힘들어서 귀가 망가졌나 봐요.”
“우, 우연이네요. 나도 귀가 망가진 것 같아요.”
진호와 서형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 고맙기 때문일까.
무슨 이유 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차오르며 눈과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결승 지점에 선 채 흐뭇하게 웃고 있는 나연석의 미소가 더 울컥하게 만든다.
“……가요.”
“……네!”
“와아아!”
“이제 정말 조금 이야! 힘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어-!”
투욱!
진호와 서형의 가슴이 허공에 길게 늘어진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 순간.
퍼퍼펑! 하늘을 향해 꽃가루 축포가 쏘아지고, 나연석은 양팔을 활짝 벌리며 크게 외쳤다.
“어메이징 서바이벌! 그 최종승자는 이진호 이서형 커플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이겼구나.’
솔직히 완전히 실감 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해야 할 일은 알았다.
진호는 서형의 손을 잡은 팔을 하늘 위로 높이 쳐들었다.
“우와아아아아아!
* * *
“어메이징 서바이벌이 그렇게 인기가 있었다니……. 방송도 안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죠?”
두바이 7성급 호텔의 황금 욕조에서 피로를 푼 서형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끙끙 앓았다.
“어메이징 서바이벌이 아니라 우리가 인기 있었던 거예요.”
“……네?”
진호는 이 호텔에서 만난 정실장이 넘겨준 모니터링 정리본을 서형에게 내밀었다.
“……우리가 이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고요? 아랍권 나라들이 모두 러브콜을 보내올 만큼?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죠?”
“무슬림은 TV 말고는 즐길 수 있는 게 극히 제안되어 있으니까요.”
중국과는 다른 의미로 뭐든지 다 할 것 같은 아랍인들은 의외로 즐길 거리가 적다. 그들의 율법이 예술적 활동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이런 진호의 설명에서 형은 크게 놀랐다.
“그럼 진호 씨의 천재성이 그들의 율법을 깨부순 거네요?”
“하하, 말이 그렇게 되나요? 정말 그렇다면 같이 깨부순 거죠. 7페이지를 봐 보세요.”
의아해하며 페이지를 넘긴 이서형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녀는 풍랑을 맞은 듯 흔들리는 눈으로 진호를 보았다.
“이, 이게 뭐에요?”
“SJ 그룹, 아니 호텔을 비롯한 유통 쪽 매출과 예약이 크게 늘었어요. 서형 씨가 다니는 증권사에도 중동 쪽의 투자금이 엄청나게 들어간 상황이고요. 서형씨가 가방에 붙인 증권사 엠블럼이 큰 효과를 발휘한 것 같네요.”
이는 오늘 호텔에 들어와 전 세계 증시를 살피던 진호가 개인적으로 조사한 것이었다.
“이게 대체……”
그녀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미리 자료를 살핀 진호는 꽤나 냉정했다.
“오일 머니의 큰손들이 움직인 것 같아요. 저도 요 며칠 사이에 매출이 엄청나게 늘었거든요.”
“지, 진호 씨도요?”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까지 낸 모든 노래 앨범에 재주문이 들어왔다.
각 앨범당 최소 100만 장씩 말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DVD와 스트리밍 서비스는 말할 것도 없고, 진호가 출품한 미술 작품이나 사진 작품들이 거래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중동 쪽 부자들이 마구잡이로 사들이고 있다고 했다.
덕분에 다미앙 지사는 쉴 틈 없이 일하는 중이었다.
“와아. 축하해요!”
“흐흐흐. 감사합니다. 그래도 운이 좋았어요.”
“……확실히 그건 맞아요.”
진호의 천재성이 제아무리 뛰어났다고 해도 어메이징 서바이벌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이슈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촬영 팀이 아니었다면, 노래를 부를 수도 없었을 터였다.
‘운까지 따르는 사람……’
물론 그렇다고 해도 진호의 실력이 나빴다면 이렇게까지 이슈가 되지 않았을 터였다.
서형은 태블릿 PC에 무언가를 적으며 체크하고 있는 진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진호 씨.”
“네?”
진호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진호 씨는 꿈이 뭐에요?”
“꿈이요?”
서형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무슨 꿈을 꾸기에, 무슨 목표가 있기에 저렇게 다재다능하고, 한 번 드러난 재능을 결코 놓치지 않는 걸까.
이렇게 운이 좋은데도 왜 저렇게 계속 노력을 하는 걸까.
그녀는 그게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이런 그녀의 설명에 쑥스러워한 진호는 태블릿 PC를 내려놓으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열린 커튼 사이로 비추는 밤하늘의 무수한 별과 달이 무척이나 밝았다.
진호의 입이 나지막이 열렸다.
“저 별보다 많고 빛나는 수 많은 사람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모두가 나를 아는 것.”
‘……그리고 리셋 라이프의 모든 스킬을 얻는 것.’
아직은 말할 수 없는 비밀. 죽기 전엔 말할 수 있을까 하는 비밀.
“그게 제 꿈이에요.”
리셋 라이프를 얻는 순간부터 품어 왔던 목표이자 꿈이었다.
“……아.”
두근, 서형은 크게 박동하는 심장에 다시 한번 진호에게 반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하하. 일단 그러기 위해서는 가까운 목표를 이루는 게 먼저지만요.”
“그, 그게 뭐에요?”
진호의 표정은 더욱 진지해졌다.
“그래미 어워드, 에미 어워드, 오스카 아카데미에서 최고상을 타는 것이죠!”
진호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단호했고, 격정적이었다.
‘일단은 이것부터 이뤄야지. 그래야……’
서형은 너무도 커다란 꿈을 가까운 목표라 말하는 진호의 모습에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껴야했다.
‘이런 사람이 내 남자구나.’
무척이나 든든하고, 또 가슴이 설랬다.
“응원할게요. 도울게요. 그러니……”
서형도 몸을 일으켜 진호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우리 함께 걸어요.”
“…… 고마워요.”
‘이런 사람이 내 여자구나.’
포개진 입술에서 가득 느껴지는 열기에 진호는 가슴이 뻐근해질 만큼 뿌듯했다. 그는 자연스레 서형이 입고 있는 가운의 허리끈을 잡아갔다.
그렇게 에어컨이 켜진 방안의 공기가 뜨거워지려는 순간이었다.
우우웅!
“……아오오!”
“풋! 어서 받아 봐요.”
아드득 이를 간 진호는 눈치도 없이 전화한 사람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이 삼촌이 갑자기 왜?”
“삼촌? 누구요? 친삼촌? 외삼…… 이재정? 이런 이름을 가진 삼촌이……. 잠깐. 서, 설마 그 이재정이에요? 수양대군?”
“네. 그 배우 이재정 삼촌이죠.”
서형은 입을 떡 벌렸다.
진호는 전화를 받으며 짜증을 토해 냈다.
“여보세요!”
-……뭐야, 얼레리 꼴레리 하는 중이었어?
“아쉽게도 얼레리 꼴레리 하려고 할 때 전화하셨죠. 정말 아쉽네요. 예비 숙모님께 삼촌의 그렇고 그런 과거를 고자질할 수 있었는데!”
-행! 내 과거는 이미 모두 알려……에휴, 됐다. 말해서 뭐하냐. 아, 그리고 이제 예비 숙모님 아니다.
“헐? 헤어지셨어요? 설마 힘드니까 술 마시자고 전화하신 거예요?”
-……야, 인마! 왜 잘 만나는 커플을 깨트려? 나 결혼한다고, 결혼!
“……넹?”
진호는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귀를 후볐다.
‘이거 환청을 듣는 것 같은데……내가 나도 모르게 많이 피곤했나?’
그렇지 않고는 마흔이 넘어도 결혼할 생각을 안 하여 주위 모든 사람을 걱정시키다 못해 포기하게 만든 둘이 결혼을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들려 올리가 없었다.
-……호야! 듣고 있냐!
“아, 네. 이젠 잘 들릴 것 같아요. 뭐라고요?”
-나 결혼하니까 와서 축가 좀 불러 달라고! 부탁한다!
“아씨, 잠깐만요. 또 환청이 들리……”
-나 진짜 결혼한다고! 인마-!
우렁찬 외침에 핸드폰을 귀에서 땐 진호는 핸드폰을 빤히 바라봤다.
“……헐?”
환청은, 환청이 아니었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