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371
외전 1화
1. If story: 1989년생 이진호
2018년 12월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어왔다.
어두운 골목에 기대 앉아 저 멀리 사람들이 바삐 오가는 서울역을 바라보는 30세 이진호의 눈동자가 덤덤하다.
불규칙한 식사와 술로 인해 거대하게 부풀어 버린 몸뚱이에 트러블이 가득한 얼굴과 퀭한 눈.
“하아아.”
끝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후련하기까지 했다.
마음을 정리한 듯 진호는 허름한 옷과 더러운 신발을 벗어 곱게 개고, 새 옷을 입었다.
“드디어 마지막이네……”
7년. 그 인내의 끝을 고할 때가 드디어 찾아온 것이다.
‘참 길었어.’
애증. 어쩌면 휴식처였다.
심호흡을 크게 한 진호는 핸드폰을 들어 버튼을 길게 눌렀다.
“치-즈!”
찰칵!
핸드폰을 보니 가지런히 갠 옷과 신발이 너무도 멋지게 찍혀 있었다.
“여기도 아니라면 다른 역으로 가야 하는데……”
그는 ‘리셋 라이프’라는 모바일 게임을 켜서 프로필 사진을 바꿨다.
띠링!
“……끝났다.”
무려 7년을 투자한 게임이었다.
이리저리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굉장히 우연히 받을 수 있었던 게임. 이제야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는 위치 기반 증강 현실 시스템을 무려 7년 전에 구축한 갓게임.
각기 다른 99가지의 삶, 인생, 스토리.
어느 스토리에선 4수 고시생으로 시작해 검사가 되어 재판장에서 봤고, 어느 스토리에선 홍대 길거리 가수로 시작해 빌보드 1위를 찍어 봤다.
서울은 게임 화면 속에서 미국이 되기도 했고, 일본이 되기도 했다.
현실에선 이룰 수 없기에 동경하고, 죽어라 노력했던 삶이었다.
그런 99가지 삶의 끝을 모두 본것이다.
뿌듯하고, 자랑스럽고, 후련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외로 미쳐 날뛸 정도로 기쁘지는 않았다.
허탈했다.
“이제…… 뭐하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대를 다녀온 후 취업 전선에 뛰어들면서부터 함께해 와서 그런지 진한 탈력감이 온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우우우웅!
어머니였다.
“응. 엄마.”
-아들, 퇴근했어?
목소리에 반가움과 걱정이 가득하다.
“응. 이제 막 퇴근했지.”
-밥은 먹었어? 김치 안 떨어졌고? 김치 보내 줄까?
“시간이 몇 신데. 엄마는요? 아버지는?”
-우리도 먹었지. 된장찌개 맛있게 끓여서 먹었어.
“크-. 울 아줌마 된장찌개 맛있지. 먹고 싶다.”
-그럼 휴일에 내려와! 엄마가 삼겹살도 구워 줄게!
간절하기까지 한 어머니 나진희의 목소리에 진호는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요?”
-아들, 엄마가 무슨 일이 있어야만 전화해?
섭섭함이 가득한 목소리지만, 진호는 알고 있다.
“보험료야?”
-……미안해, 아들. 엄마가 언제나 이렇다. 아직 젊은데 아들한테 손이나 벌리고…….
“미안하긴. 엄마랑 아버지가 날 키워 준 게 얼만데. 알았어요. 내일 넣어 드릴게요. 그 계좌로 넣어드리면 되죠?”
-엄마나 아빠 월급 들어오면 바로 갚을게.
“됐어요. 그건 두 분이서 쓰세요. 용돈 넉넉하게 보내드리지 못해서 미안하구만. 끊을게요. 쉬세요.”
-그래. 아들도 푹 쉬어. ……미안해.
전화를 끊은 진호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11년 전 비교적 젊은 나이에 퇴직을 하신 아버지. 곧바로 아파트 경비직을 구했지만, 작년에 다시 권고퇴직을 당하신 아버지.
어머니는 그때부터 부쩍 아쉬운 소리를 하시게 되었다.
‘엄마 마음도 마음이 아니겠지.’
두 분이 편의점과 반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시고 계신다지만, 사람이 사는 데는 참 많은 돈이 들었다.
“에휴…… 가자, 가.”
그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게임을 끄기 위해 핸드폰을 보았던 진호는 경악했다.
“어? 끝이 아니야?”
뭐가 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지만, 절로 웃음꽃이 피었다.
요즘은 취미 생활도 돈이라 택하게 됐던 리셋 라이프.
어떨땐 퇴근 후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한두 시간, 어떨땐 휴일 전부. 교통비만 있으면 세상 어디든 갈 수 있기에 무척이나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
동경했던 삶이 연장됨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시크릿 스토리인가? 혹시 크리에이트? 흠……”
진호는 자신이 클리어한 99가지의 스킬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머릿속으로 방금 전 어머니와의 통화가 스쳐 지나갔다.
“그래, 골라야 한다면 이거지.”
스킬이 하나 계승된다면, 새로운 게임을 진행하는 중에 다른 스킬도 얻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이번 스토리는 어떤 엔딩인지 모르겠지만, 그렇다 해도 답은 하나였다.
“일단은 돈이 있어야 하니까.”
가난에 구애 받지 않을 돈. 마음의 여유. 시간을 구속하는 족쇄를 튕겨 낼 방패.
진호는 고민하다가 [스킬: 블랙펄의 선장]을 꾹 눌렀다.
그 순간.
빠지지지지지!
“끄으윽?”
온몸이 뻣뻣하게 굳으며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런데 감전이 문제가 아니었다.
머릿속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지식들이 마구 샘솟고 있었다.
* * *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병원 응급실을 빠져나온 진호는 날이 밝은 하늘을 보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쓰러진 사람을 119에 신고해 준 것은 참 고맙지만, MRI 촬영으로 인해 약간 멀어진 전셋집을 생각하면 명치가 쓰리다.
게거품을 물고 온 것도 모자라심각한 감전 증상이 보이기까지 했다니 왜 MRI를 찍었냐고 탓할수도 없었다.
큰맘 먹고 샀던 새 겨울옷을 잘라 버린 것도 말이다.
그 상황에서도 놓지 않았다는 종이백 속 헌 패딩 점퍼가 아니었다면 제법 난처한 상황이 일어날 뻔했다.
진호는 다 타 버린 핸드폰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 예상외 지출의 주범이었다.
“핸드폰 배터리 출력이 사람을 감전시킬 수도 있나?”
설사 있다고 하면, 핸드폰을 쥐고 있던 손에 화상을 입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보다 분명 무슨 말을 들었는데 말이야……”
뭔가 단 한 번도 배우지 않았던 지식들이 떠올랐던 것 같기도 했다.
파직.
“아, 이씨. 아직도 몸속에 전기가 돌아다니나. ……그보다 이건 살릴 수 있으려나 몰라.”
안에 있는 사진이야 둘째 치더라도 연락처는 어떻게든 복구시켜야했다.
“못 살리면…… 아니, 못 살려도 돈이네.”
10개월이나 남은 할부 값이 눈앞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오늘이 수요일이라는 점이었다.
한숨을 푹 내쉰 진호는 가까운 핸드폰 대리점으로 향했다.
띵!
-7층입니다.
스릉.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온 그는 햇빛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복도에 줄줄이 붙어 있는 문들을 힐끔 보고는 비상구 쪽으로 향했다.
드르륵! 철컥 덜컹!
활짝 열리는 문을 통해 12월의 높은 하늘과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녹색의 방수 도료가 깔린 넓은 바닥과 난간 너머로 작고 큰건물들이 눈 안으로 파고들었다.
“여기가 풍경은 좋단 말이지.”
죽다 살아난 경험 때문인지 만날보는 풍광이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원래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모텔이었던 원룸.
진호는 비상구 바로 옆에 세워진 간이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른 방들보다 약 2배 넓고 주방도 분리형이지만, 난방이 가스가 아닌 기름에다 외벽이 샌드위치패널이라 월세가 15퍼센트 싼 이방은 본래 모텔 달방을 위해 불법으로 지었던 것이라고 했다.
여름엔 참 덮고, 겨울엔 참 추운 방.
헌옷들을 벗어 정리한 진호는 침대에 털썩 앉으며 어제 오늘 일을 다시 떠올렸다.
“와-. 진짜……”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고개를 저은 진호는 씻고 나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결국 연락처를 복구하지 못했기에 혹시나 클라우드에 백업해 놨는지 확인해 봐야 했다.
하지만 역시 나였다.
핸드폰으로 하는 짓거리라곤, 코코아톡과 인터넷 서핑, 너튜브 시청, 그리고 리셋 라이프가 전부였던 과거의 진호는 클라우드 백업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아…… 이젠 리셋 라이프도 못한다는 거네.”
지난 7년간 리셋 라이프 클리어를 위해 모아 온 방대한 자료도 자료지만, 리셋 라이프가 추억이 되어 버렸다는 게 더 아깝다.
“시크릿 스토리는 아직 시작도 못 해 봤는데……. 숨겨진 스토리는 어떤 내용일까 정말 기대했는데!”
맘 같아서는 다시 7년을 투자해서라도 시크릿 스토리를 보고 싶었으나, 다시 다운로드를 받을 수도 없었다.
리셋 라이프를 다운받을 수 있는 홈페이지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혹시 누군가 애플리케이션 파일을 업로드해 두지 않았을까 샅샅이 뒤져 보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하아아.”
아쉬움은 이제 접어야 했다.
“정말 이젠 뭐하냐……”
리셋 라이프 때문에 눈이 너무 높아져서 평범한, 아니 대작이라고 말하는 모바일 게임이나 RPG게임조차 눈에 차지 않았다.
다시 한숨을 내쉰 그는 리셋 라이프 같은 게임이 없나 하며 포털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 그 순간.
“영?”
진호는 포털 사이트 하단을 보며 눈을 껌뻑였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말문이 막힌다는 게 이런 걸까.
그는 포털사이트 하단 코스피, 코스닥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는 마우스를 움직여 코스피를 눌러 보았다.
지이잉!
“여보세요.”
-오, 바로 받네?
“오늘 쉬는 날.”
-오오오! 휴일이었어?
“응.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
-네가 웬일이냐? 리셋 라이프 안해?
“핸드폰 박살……”
‘잠깐. 리셋 라이프?’
“……그래! 리셋 라이프! 블랙 펄의 선장!”
그랬다.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는 어디서 많이 봤던 현상은 현실에서도 있었으면 했던 그 간절했던 재능이었다.
-뭐, 뭐야! 왜 그래! 무슨 일인데!
다급한 친구 재준의 목소리에 번쩍 정신을 차린 진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야, 만약에 누가 너한테 상한가 치는 주식이 뭔지 알려 주면 어떻게 하겠냐?”
‘언제 상한가를 칠지, 언제 하한가 칠지 알 수 있으면 어떻게 하겠냐?’
-뭔 개소리야? 미쳤냐? 어떤 미친 놈이 그딴 걸 알려 줘? 그딴게 있으면 자기 혼자 독식하지. 왜? 너희 회사 아저씨가 그런 거 있다고 사기 치디? 너도 이제 서른 넘었으니까 뻘짓 하려고?
“그렇지?”
‘근데 난 이제 알아.’
어찌 된 영문인지, 신의 농간인지는 모르지만 인생 역전의 기회가 찾아왔다는 걸 말이다.
‘내 인생을 살라는 게 이런 뜻일줄이야……’
소리 없이 방방 뛰던 진호는 이내 침착하게 생각에 잠겼다.
‘아니야. 아직 확실한 건 없어.’
1시간일지, 반나절일지, 하루일지, 어쩌면 한 달일지.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능력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주식 거래 통장을 만들어야겠네!’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한 진호는 다급히 옷을 챙겨 들며 입가에 흥분으로 가득한 미소를 그렸다.
[스킬: 블랙 펄의 선장] [인생은 파도의 연속이고, 그 파도 속을 헤쳐 나가는 삶이란 배의 키를 잡은 건 너 자신이다. 태풍을 두려워하지 마라. 표류하는 걸 두려워 마라. 약탈당하는 걸 두려워마라. 키에서 손을 놓지 않으면 결국 목적지에 도달한다.]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