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377
외전 7화
진호의 원룸을 나서 도로로 나온 도명안은 담배를 물었다.
“정말 멍청하다 할 정도로 착한 사람이군.”
그 어떤 건물주가 세입자를 위해 변호사를 부를까.
‘저런 사람이 있었다면……’
두 눈에 과거의 아픔이 스쳐간 도명안은 이제 더워져 가기 시작한 늦봄의 맑은 하늘을 보며 옅게 웃었다.
“세상 참 살 만 해.”
사무실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 * *
이설아의 예측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단 일주일 만에 7층 원룸 건물의 모든 방이 주인을 찾은 것이다. 초반의 두 명을 제외한 모든 세입자는 녹색으로 빛났고, 초반의 두 명 역시 옅은 노란색이라서 나쁜 세입자라 볼 순 없었다.
리셋 라이프를 얻은 이후부터 운이 따르는 게 분명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른 원룸건물들의 계약도 마무리되었다.
둥!
사인을 한 순간 명치가 둔중하게 울리며 몸속의 무언가가 교체되는 느낌이 들었다.
‘아, 얻었다.’
얼른 계약한 건물을 살피며 완벽히 습득한 [스킬: 갓물주의 눈]을 실험해 보고 싶어졌다.
계약을 끝마치고 밖으로 나온 진호는 자신의 옆에서 걷는 도명안을 힐끔 바라보았다.
‘능력이 좋으면 계속 함께할 텐데……’
사람의 성정만 믿고 일을 맡기기에는 너무 많은 돈과 재능을 가지고 있고, 사회의 어두운 면모를 너무 많이 보고 겪으며 살아왔다.
‘가장 좋은 건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거지만……’
일이 생긴다면 그게 분기점이 될 터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저야 사인밖에 한 게 없는 데요, 뭘. 수고야 변호사님이 다 하셨죠. 수임료는 언제나 처럼 계좌에 넣어드리겠습니다.”
도명안은 옅게 웃었다.
‘이런 의뢰인이 늘어난다면 참 좋을 텐데……’
하지만 욕심이라는 건 그도 알고 있다.
“예. 언제든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찾아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바로 건물로 가실 겁니까?”
“네, 그래야죠.”
“차는 어디다 주차하셨습니까? 거기까지 제가……”
“아뇨. 아, 저기 오시네요.”
“예?”
푸드등.
거친 소리를 내며 진호의 앞에 멈춰선 1톤 포토 트럭.
옆의 도명안이 소개시켜 주고 첫번째 원룸 건물을 완벽하게 공사해준 CCU HOUSE의 사장 최철규가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어, 도 변호사. 오랜만이야?”
“전 이분 차 타고 가면 돼요. 그럼 들어가세요.”
“……예,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최철규의 차에 올랐고, 차는 그렇게 출발했다. 최철규는 방금 전 다섯 번째의 원룸을 현금으로 샀는데도, 네 개 원룸을 동시에 내부 공사를 하는데도 태연한 진호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사장님, 어떻게 이번에도?”
진호의 입가가 꿈틀거렸다.
“예. 모두 다 뜯어 버리고 새로 하세요. 제 첫 번째 원룸처럼!”
* * *
“많이 힘드시죠? 이것 좀 드시면서 하세요.”
“어이쿠. 잘 마시겠습니다.”
진호는 각종 가전 기기들로 채워지고 있는 공간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바로 6개의 커다란 모니터를 설치한 컴퓨터다.
“다 설치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진호는 설치 기사들이 모두 나가고 휑해진 방안을 둘러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좋네.”
지금은 비록 밤이지만, 낮엔 햇빛이 아주 잘 들어오는 곳에 놓인 비싼 침대만 아니면 정말 완벽한 사무공간이다.
“여기가 이제부터 내 사무실이라는 말이지……”
내 집, 내 건물, 내 사무실.
그동안 그토록 원하였던 걸 이루었기 때문인지 맥이 탁 풀려 가던 몸에서 활력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개미 이진호가 아니라 법인 JH의 첫 번째 거래.
눈을 형형하게 빛낸 진호는 마우스를 잡았다.
그 순간.
벌컥!
“야, 이 또라이 자식아!”
“응?”
진호는 새빨개진 얼굴로 버럭 화를 재준을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잠깐, 나 이 장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기시감이 강렬하게 몰려왔다.
“이 자식은 진짜 미친 놈인가?”
친구가 이사했다는 소식에 퇴근을 하자마자 달려온 재준은 옥탑방을 보곤 이마를 잡았다.
“드디어 그 거지 같은 옥탑방에서 벗어나는가 싶더니, 또 옥탑방이라고?”
분명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넓고 깨끗하지만, 옥탑방은 옥탑방이다.
“야, 너 솔직히 말해. 이거 계약할 때 술 처먹었지? ……아, 그러네! 얼마 전에 그 지랄했을 때 계약한 거네!”
3차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술에 취해 노래를 불렀던 그때를 말하는 것이었다.
재준은 옥탑방에서 벗어날 생각을 않는 친구를 옥상 밖으로 던져버릴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진호는 사정을 모른 채 길길이 날뛰는 재준을 보며 씩 웃었다.
‘말해야지.’
재준이 이곳을 자주 드나들다 보면 결국 언젠가 알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저렇게 길길이 날뛰는 지금 이야기를 할 순 없었다.
‘좀 이따가.’
한 잔의 술이 마음의 빗장을 열때야 편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재준아, 저기 저거 보이냐?”
진호의 두 눈이 갑자기 타오르기 시작했다.
옥탑방에서 살며 무척이나 하고 싶었던 로망들을 이제 이뤘다고 생각하니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돌린 재준은 의아해했다.
“말 돌리지 말고…… 응?”
‘옥상에 왜 잔디가?’
옥상 한구석에 자갈들이 많이 섞인 잔디가 넓게 깔려 있고, 그 주위를 발목만 한 높이의 나무판자가 감싸고 있다.
투명한 지붕 아래 조명까지 설치되어 있다.
진호는 재준을 툭 치고는 옥탑방 옆에 따로 만든 창고 문을 열었다.
“어? 어어? 너, 너 이……”
큰 사이즈의 검고 둥그런 물체.
다리가 네 개 달린 그것은 분명 바비큐 그릴이었다.
“이 미친 새끼! 그렇게 바비큐 그릴 노래를 부르더니 결국!”
나이와는 전혀 맞지 않았던 소망들에 얼마나 질책했던가. 나이에 좀 맞게 놀라며 참 화를 냈었다.
“생각해 봐. 이런 밤하늘, 저기서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술을 마시는 거야.”
‘그래. 고기를 맛있게 구워 먹어야지!’
갑자기 얻고 싶은 스킬이 생겼다.
의미심장하게 웃은 진호는 넋을 놓으려는 친구의 모습에 얼른 정신을 차리곤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귓가로는 좋은 노래들이 들려오는 거지. 때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거야.”
‘아, 씁?’
얻고 싶은 스킬이 또 생겼다.
“또 때론 저기에 설치한 스크린을 내려서 너 좋아하는 인터넷 방송이나 축구, 나 좋아하는 영화를 봐도 돼.”
“아……”
재준의 눈이 몽롱하게 풀려 간다.
“여기서 끝이 아니야.”
진호는 옥상에 세워진 또 다른 건축물의 문을 벌컥 열었다. 뒤따라온 재준은 입을 떡 벌렸다.
족히 커다란 풀과 샤워 시설, 그리고 한쪽에 세워진 커다란 TV.
“어때, 죽이지?”
최철규 사장이 노력해 준 결과물에 진호는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었고, 마치 녹이 슨 기계처럼 힘겹게 고개를 돌린 재준은 그런 진호를 보며 입을 열었다.
“형, 여기 원룸 방 남았어?”
* * *
치이익!
미처 숯을 사 놓지 않아서 어쩔수 없이 전기 그릴에 구운 훈제오리를 입에 넣은 재준은 화려한 야경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진호는 훈제 오리의 맛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 진짜 맛있네.’
숙성삼겹살보다는 좀 못하지만, 비싼 값을 하는 맛이었다.
요 몇 달간 장어와 함께 꽂힌 이유가 있었다.
“진짜 돌았다, 돌았어. 차라리 주택을 사지 그랬냐.”
“주택은 관리하기가 불편하잖아. 그리고 이런 야경도 못 보고.”
야경을 못 본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그건 그렇다지만……. 근데 여기 허가는 난 거야?”
“어, 증축 허가 받았어. 여기 8층 건물이야.”
“그렇다면 다행이네. ……아, 그런데 진짜 아쉽다. 아까 한 말 반쯤은 진심이었는데.”
회사 생활에 쌓인 스트레스를 클럽에 가서 푸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10년 동안 클럽을 다니다 보니 질려 버렸다.
이젠 이런 식의 힐링이 필요했다.
그는 갑자기 진호가 부러워졌다.
“……아, 엄마한테 결혼자금 좀 미리 땡겨 달라고 할까?”
“어머님 성격에 퍽도 그러시겠다. 너 결혼 날짜 잡히기 전까지는 절대 안 해 주실걸?”
일찍이 남편을 사별하고 재준이 중학생 정도 됐을 때, 청담동 목 좋은 자리에 빌딩을 사신 것도 모자라 그 1층에 편의점까지 운영하시는 분이 바로 재준의 어머님이다.
물론 거기에 재준의 아버님이 남긴 유산이 큰 도움이 됐지만, 그녀가 여장부라는 건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아니, 그냥 머리 밀어 버리고 절에 처넣을 수도 있지.’
재준의 어머님이라면 충분히 그러실 수 있었다.
“그리고 옥탑방 개조는 어떻게 하려고? 건물주가 허락해 주겠냐?”
“나라면 해 준다. 내가 돈 들여서 설치해 두면 오히려 좋아할걸? 나다음 세입자에게 월세 비싸게 받을 수 있을 테니까.”
“헛소리 말고 그냥 찾아 와. 왜 엄한데 돈을 쓰려고 해?”
‘부러워서 그러지. 부러워서!’
“……에이.”
괜히 친구를 질투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아진 재준은 핸드폰을 꺼냈다.
“뭐하려고?”
“너 이렇게 잘 산다고 울 엄마한테도 보여 주려고. 엄마가 네 걱정 많이 했어.”
“……그래?”
생각지 못한 말을 들어선지 진호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니지. 그런 분이셨지.’
가세가 기운 후 참 이것저것 챙겨 주신 분이 재준의 어머님이다.
진호가 대학 진학을 포기했을 때, 크게 화를 내며 ‘내가 등록금을 주겠다’고 말하실 정도로, 아니 실제로 한 학기 등록금을 이체해 주실 정도로 정말 친아들처럼 대해 주신 분이다.
진호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어머님을 잊고 있었다니……’
“아무래도 근 시일 내에 시간을 내서 찾아 봬야겠네. 어머님 여전히 편의점에서 일하시지?”
“엄마가 너 얼마나 걱정한지 알아차렸으면 내일이라도 찾아 봬라. 알았냐?”
“알았어, 인마. 그럴 테니까 걱정마.”
“흥! 당연히 그래야지. 오리 좀 더 구워 봐. 엄마한테 자랑…… 엉?”
“왜?”
재준이 바라본 방향을 본 진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옥상으로 통하는 문 앞에 한 여성이 서 있었다.
‘이설아?’
“사, 사장님?”
재준의 고개가 휙 진호에게로 돌아갔다.
“너 이 새끼?”
진호의 얼굴이 순간 하얗게 질렸다.
* * *
진호와 재준, 그리고 이설아는 한 자리에 앉았다.
이설아는 재준의 사탕발림에 아주 중요한 참고인 내지 증인으로서 앉을 수밖에 없었다.
진호는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내곤 재준에게 맥주를 내밀었다.
“아까 말하려고 했어. 내가 한 말 잘 생각해 봐.”
“……그러네. 했데가 아니라 했어라고 했지. 마치 네가 증축 허가를 받은 것처럼.”
재준의 표정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돈은?”
“너 가고 나서 이런 저런 호재가 좀 터졌어. 그래서…….”
“이 원룸을 샀다?”
“언제까지 벌 거라고 장담할 순 없으니까. 안정적인 돈벌이 수단은 있어야지.”
“그렇다고 해도 부족했을 텐데?”
“너 이거 얼마에 산 거 같냐?”
“원룸은 보통 십 몇 억은 하지 않아?”
“대충 6억 정도에 샀어. 그중 절반은 전 소유주의 대출금.”
“어? 그렇게 싸?”
재준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3억 정도면 충분히 살만 했다.
내부 공사를 했어도 총 5억이 넘지 않았을 것이다.
“……썩을 놈. 말을 해 주지.”
“말하려고 했다니까.”
“그럼 저게 너 사는 집은 아니겠네?”
“사무실이야. 집은 이따가 보여줄게.”
“개놈의 새끼.”
그렇게 재준의 화가 풀린 것 같아서 웃을 수 있게 된 진호는 뻘쭘하게 앉아 있는 이설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와 제 친구 때문에 많이 곤욕스러우셨죠?”
“아, 아뇨.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이쪽이 말을 잘못해서 상황이 이렇게 됐다.
물론 억울하지만, 그래도 눈치가 없진 않은 그녀였다.
진호는 자신의 잘못이라고 고개를 저으며 화제를 돌렸다.
“기타 치시러 오셨나 봐요?”
그녀의 옆에는 기타케이스가 내려져 있었다.
“네, 하루라도 연습하지 않으면 티가 나거든요.”
‘오?’
자부심이 넘치는 표정이 굉장히 멋져 보였다.
“그런데…… 아하하.”
“괜찮아요. 언제든 올라오셔서 치세요. 저희가 있어도 상관 마시고요.”
“네? 그, 그래도……”
“아, 맞아. 사과 선물 드릴게요.”
“네? 아뇨! 괜찮아요!”
“저도 괜찮아요. 같은 건물 사람끼리 나누며 사는 거죠.”
진호는 냉큼 비닐봉지에 오리 훈제 한 팩을 담아 내밀었다.
이설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이건 너무 비싼데……”
“괜찮아요. 이웃끼리 이렇게 나누면서 사는 거죠!”
‘박재준 나이스!’
진호와 재준은 푸근히 웃었고, 이설아는 결국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가,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네. 안녕히 주무세요.”
봉지를 꽉 쥔 이설아는 연신 인사를 하며 옥상을 빠져나갔고, 엘리베이터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 올때 쯤 진호와 재준은 하이파이브를 했다.
“나이스 어시스트. 역시 박재준!”
“너도 멘트 좋았어. 그래, 다음에도 이렇게만 해! 아, 그런데 아까 그분, 그 아웃렛에서의 그분 아냐?”
“역시 미인은 잊지 않는구나.”
“남자라면 누구라도 잊지 못할 외모지.”
“내 건물 첫 번째 세입자야. 인연이 그렇게 이어지더라고.”
“오올.”
“그래서!”
진호의 두 눈이 붉어졌다.
“나 기타 좀 배울까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갑자기, 그리고 아주 간절하게 기타가 배우고 싶어졌다.
재준은 불타오르는 친구를 향해 한 마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굿.”
아주 베리 굿이었다.
그렇게 김칫국물을 마시는 두 남자의 밤은 깊어져 갔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