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42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2권 17화
6.
날씨가 미쳤다.
그저 완연한 여름이 되기 전의 예방 접종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여름의 상징인 매미조차 울지 않고 저녁엔 바람조차 불지 않는 무더위. 사람을 잡기에 딱 좋았다.
‘늦으면 안돼!’
“학원 다녀왔습니다!”
땀으로 목욕을 한 여고생 김희연은 재빨리 씻고 나와 TV 앞에 앉았다.
“공부 안 하니!”
“방금까지 하고 왔잖아! 리노 오빠만 보고 할게! 딱 한 시간만!”
창백한 딸의 얼굴을 보자 그녀도 마음이 약해졌다.
“그놈의 리논지 레몬인지.”
“엄마!”
“……음료수 줄까?”
“사랑해!”
“어이구, 말이라도 못하면.”
엄마가 부엌으로 가자 TV로 시선을 돌린 김희연은 환하게 웃었다.
“시작한다!”
“자, 구호 외치면서 시작합시다! 우리 동네 스포─츠!”
“파이팅!”
한때 국민 MC라 불린 강호중이 나오고 정형동등이 나오지만, 희연의 관심은 온통보이 그룹 멤버 인 빅스비의 리노에게로 쏠려 있었다.
“히헛.”
“아주 TV 속으로 들어가겠네. 공부를 그렇게 해 봐라.”
“땡큐, 잘 마실게요.”
이 정도 핀잔이야 일상이었다.
“그렇게 좋니?”
“그럼─! 내가 우리 리노 오빠 때문에 사는 걸?”
“이런 걸 딸이라고.”
“아이엉.”
“에휴, 그래서 리노란 사람이 누군데?”
“당연히 저기서 제일 잘생긴….”
TV를 본 김희연은 그대로 얼어 붙었다. 그녀의 어머니도 놀랐다.
“어, 어머? 저, 저 청년이 리노니?”
“아, 아니?”
“제일 잘생겼는데?”
“그, 그러니까.”
‘미, 미쳤다.’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서 빅스비와 리노란 단어가 사라졌다.
* * *
-오늘 우리 동네 스포츠 보신분. ㅜㅜ
┗저도 봤어요. 제작진이 만든 CG 인가요?
┗오늘 안구 정화가 무슨 말인지 알게 됐습니다.
┗일해라, 네티즌 수사대!
┗이진호 20세. 한국대 경영학과 1학년이고, 패션계에서 가장 핫한 모델이에요.
┗방송 출연을 싫어했는데…….
┗원래 다니던 클럽이에요. 제가 회원이라서 잘 알아요.
┗설아 때문이니, 진호야? 잘 어울리지만, 이 누난 허락 못한다!
┗아뇨. 우리 진호, 먹을 거에 낚였어요. ㅜㅜ 소고기에 랍스터. 나라도 낚일 듯. 하, 쓸데없이 돈 많은 우리 클럽아재들. 식탐 많은 우리 진호.
┗ㅋㅋㅋㅋ
인터넷이 시끄럽다.
단 3분 정도의 분량이었지만, 너무도 충격적인 비주얼이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우리 동네 스포츠’, ‘우리 동네 스포츠 그분, 우리 동네 스포츠 이진호’ 등이 1위부터 7위까지 줄을 섰다.
따르르르릉!
“네, 디올 코리아입니다. 아뇨, 그건 저희 소관이 아닙니다.”
“네, 여보……. 죄송합니다. 연락처는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디올 코리아의 모든 전화가 울린다. 사무용, 핸드폰.
대부분의 업무가 마비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팀 존스가 직접 만든 스포츠 웨어를 입었기에 예약 문의 전화도 함께 폭증 하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모든 방송국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순간 시청률 10.7퍼센트. 6퍼센트의 무난했던 평균 시청률이 순간 이라지만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이후로도 8퍼센트를 유지했다. 시청률에 죽고 사는 방송국의 눈이 뒤집혔다. 방송가 움직임에 몸이 단 기획사들도 다시 움직였다.
‘이 이상은 힘들어.’
캐스팅 및 소속 모델 관리는 그들 역시 한다. 그렇기에 여태까지 진호를 케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것과 성질이 다르다. 감당할 수 있는 선과 범위도 넘어서 버렸다.
“……안 되겠어.”
미영은 낯빛을 굳히며 발을 뗐다. 디올 코리아의 사장과 크리스찬 디올의 CEO 피에트로, 그 둘의 의견이 필요했다.
그리고 캐스팅 디렉터 다미앙도 움직였다.
* * *
우웅! 우웅! 우웅!
진동으로 돌려놓은 메신저 알람이 마치 전화가 온 것처럼 울린다. 결국 무음으로 돌려놓은 진호는 한숨을 내뱉었다.
‘고작 3분 정도만 나온 것뿐인데…….’
정말 잠깐 나온 것뿐인데 지인들에게서 연락이 빗발친다.
NBS1 골든 빅 벨의 작가 승미는 곧 NBS2 예능국으로 옮긴다며 예능 하나 같이하자고 졸랐다.
“아들.”
“응, 엄마.”
“미영이다. 전화 좀 받아 봐.”
올 게 온 것 같았다.
“네, 이모.”
-계속 통화중이네?
“친구들이 괴롭혀서요. 먼저 연락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이모 쪽은 좀 어때요?”
-역대 최고로 시끄럽지!
“풋, 그래요?”
그녀의 밝은 목소리를 들으니 진호는 한결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계속 이러면 힘들어. 아들도 이해하지?
역시나 생각했던 대로였다.
“당연히 알죠. 제가 선택한 결과 인데요. 알았어요. 수고하셨어요. 앞으로 전화는 제게 돌려 주세요.”
-그냥 이 기회에 전속 계약 맺을래?
“아뇨.”
-……단호하네. 섭섭해, 아들.
“피에트로에게는 제가 연락할게요.”
-이모가 에이전시를 알아봐 줄까? 매니저나 개인 에이전시.
“아, 그러면 감사하죠. 고마워요.”
-그래, 메일로 보낼게. 끊는다.
“네, 수고하세요.”
전화를 끊은 진호는 피식 웃었다.
‘역시 쿨하다니까.’
그간의 매출 상승을 생각하면 잡을 법도 한데 미영은 그런 기색을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이게 뭔 일이라니.”
나진희도 지인, 친척들 때문에 핸드폰이 불날 뻔했다.
“모두 아들이 잘나서 그런 거지.”
“연예인 되려고?”
“아들 TV에 나왔을 때 어땠어?”
“……저녁에 갈비찜 해 줄까?”
“맵게! 땡초 많이!”
“네 아빠가 못 먹잖아!”
“쳇.”
“갔다올게.”
“네, 다녀오세요.”
어머니가 집을 나서자 진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결국 부딪칠 수밖에 없나.”
이번 일은 어찌어찌 수습한다고 쳐도 앞으로가 문제였다. 평생 카메라를 피해 다닐 수는 없다. 피한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서까지 자유를 억압받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이는 변명이다.
이미 그 마약 같은 재미를 알아 버린 이상 평생토록 외면할 수는 없었다.
진호는 자신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과거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테지.’
그만큼 박현과의 대결은 흥분됐고, 격렬했으며, 만족스러웠다. 이설아와 함께 숨 쉰 그 시간도 참 좋았다.
잠깐 나온 것뿐이지만, TV에 나온 자신의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주었다.
“정말 세상은 하고 싶은 일만하며 살 순 없는 건가?”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참 많은 것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진호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 아니, 투명한 유리구슬처럼 냉정해졌다.
‘매니저가 진짜 필요해.’
그것도 한 명 가지고는 모자랐다. 단체가 필요했다. 우산이 되어 줄 커다란 기획사가 필요했다.
마침 기회도 좋았다. 축제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다. 이젠정말 원하는 대로 계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일이 원인 겸 명분을 제공해 주었다.
“흠……. 아차.”
진호는 재준에게 연락했다.
-어, 왜?
“방송 괜찮아?”
-야.
정색한 친구의 목소리가 순간 숨을 몇게 했다.
“아, 많이 힘들어? 내가 곧…….”
-아니, 너 좀만 더 존버하라는 건데?
존버, 존나 버로우란 뜻으로, 계속 숨어 있으란 말이었다.
“……푸하핫! 왜? 후원 많이 해?”
-장난 아냐. 막 천 원에서부터 만 원까지 엄청나다. 캬─. 역시 사회인들! 나 요 3일 동안 백만 원 찍었잖아. 그러니까 딱 일주일 만 더 존버하면 안 되겠니? 형이 진짜 크게 쏠게.
“장난해? 5 대 5로 해야지.”
진호는 마음이 크게 놓였다.
-크큭. 난 괜찮으니까 걱정 마, 인마.
“그래, 고맙다. 들어가고, 쉬어라.”
-오냐. 아, 맞아. 다미앙 씨한테 서 연락 왔어. 한번 보자는데?
“흠.”
눈빛이 더 진중하게 가라앉은 진호는 알았다 하고 끊고는 연락처에 별표까지 하며 저장해 놓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피에트로.”
-그렇지 않아도 당신의 연락을 기다렸습니다, 진.
“예?”
-안젤라에게 들었습니다. 매니지 먼트가 필요하게 되었다고요? 축하드립니다.
“네, 그래서 그러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해야 할 지 진호는 가슴이 답답했다. 비즈니스 관계를 넘어 사람과의 관계, 신의였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한 가지를 얻으려면 한 가지는 포기해야 했다. 그게 세상의 이치였다.
“후, 그래서 이젠 더 이상 디올의 후원만은.”
-진, 그다음은 제가 말해도 되겠습니까?
“네? 네.”
-지금부터 제가 하려는 말은 패션 그룹 LVMH 산하 크리스찬 디올의 CEO로서 디올 옴므의 뮤즈에게 건의하는 것입니다.
말에 실린 무게가 무겁다.
“예, 듣고 있습니다.”
-저희 디올이 아니라 LVMH 모든 계열사의 뮤즈가 되어 주십시오.
진호는 잠시 최신형 핸드폰의 성능을 의심했다.
* * *
어느 커피숍, 사람들이 한 곳을 힐끔힐끔 쳐다본다.
차가운 커피를 쪽쪽 빨아 먹으며 진호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양심이 찔리는데…….’
한 번 거부를 해서 그런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아, 다미앙 씨.”
“오늘도 여전히 그 미모는 빛을 발하는군요. 공짜 브랜드 노출에 웃고 있을 이 커피숍 체인 회장을 떠올리니 배가 아픔니다.”
진호는 풀썩 웃었다.
“커피 드실래요?”
“괜찮습니다. 먼저 주문했습니다.”
다미앙이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들어 올렸다.
“제 일 때문에 오셨는데, 죄송합니다.”
“아뇨, 진호 씨 일이라면 하늘이 무너져도 와야죠. 오히려 저를 불러 주셔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잔잔한 다미앙의 미소가 진호의 양심을 더욱 자극했다.
“솔직히 다미앙 씨가 가장 먼저 생각나더라고요.”
진호의 말에 다미앙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참기분이 좋군요. 이번 일에 대해서는 들었습니다. 참 힘드셨겠습니다.”
갑작스런 공격이었지만 진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 때문에 조언을 구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다미앙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조언이 아니라 이 사태도 해결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목적으로 진호 씨에게 연락을 드린 겁니다.”
진호는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결과는 HU 에이전시 소속이 되는 것일 테고요.”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보며 진호는 옅게 웃었다.
“다미앙 씨는 이래서 좋은 분이에요.”
결코 허언을 뱉지 않고, 언제나 솔직했으며, 물러설 때를 알았다.
방금도 그랬다. 다미앙은 진호의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래서 믿음이 갔고, 그래서 가장 먼저 연락을 했다. 이런 진호의 진심이 다미앙을 흔들었다.
“요 며칠 동안 가만히 생각해 봤어요. 대체 내 무엇이 그렇게 사람들을 자극했는지에 대해.”
“큼, 외모 때문입니다.”
진호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눈을 빛냈다. 이제부터가 승부의 갈림길이었다.
“맞아요. 무얼 하든 돋보일 수밖에 없는 이 외모 때문이죠. 무엇을 하든 빛날 수밖에 없는.”
순간 다미앙의 몸이 굳었다.
‘스스로의 가치를 이해하고 있다?’
알고 있다와 이해하고 있다는 엄청난 차이를 가진다.
‘그런데 왜 축제때 그런 말을…… 서, 설마?’
오싹! 다미앙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넥타이를 느슨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