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4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2권 19화
본 녹화가 시작되었다.
환한 조명 아래 A자 형태로 놓인 테이블과 조리 도구들과 싸한 인공 구조물 냄새 사이에 숨겨져있는 식재료의 냄새. 누군가 가슴을 누르는 것 같았다.
‘다미앙 씨는 평소처럼 하라고 했지만…….’
실수는 하지 않을지, 말을 잘못하지 않을지 온갖 걱정이 들었다. 거기다 삼국 대결에 예민한 셰프들.
“아직 입장하는 거 아닙니다! 들어가지 마세요!”
진호가 고개를 돌려 보니 스태프들이 긴장감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몇몇은 하품도 했다. 왠지 맥이 풀렸다.
‘나만 긴장한 건가?’
아니었다. 오늘 대결할 둘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진호는 방금까지 자신도 저랬다고 생각하자 웃음이 나왔다. 따르르 떨리던 입술도 부드러워졌다.
“스으읍! 후!”
진호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와 함께 팔뚝의 잔 근육이 역동 했다.
그 여유로운 모습에 하시마와 웨이홍은 놀라고 말았다.
“녹화 시작 1분 전! 슬레이트 치면 웃으며 입장해서 자기소개하면 됩니다!”
세 나라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지 스태프가 영어로 외쳤다.
‘어떤 세프님과 함께하게 될까? 조리가 모두 끝나면 나오지?’
조리할 동안은 오직 대화로만 오더를 내리는 세프는 조리가 마쳐 지면 그제야 이 스튜디오로 내려온다. 토크를 책임지는 메인 MC 와 패널들 역시 말이다.
각자 추구하는 요리 철학이 모두 다른 세프들. 진호는 오늘 무슨 요리를 배우게 될지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다.
“3! 2!”
따악!
진호는 스튜디오를 향해 성큼 발을 내디뎠다.
‘그래, 즐기자!’
카메라와 시선이 집중된 순간 너무도 맑고 선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안녕하세요! 이진호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현장에서 아바타들에게 말을 걸며 분량을 확보할 현장 MC마저도 굳어 버렸다.
다른 스튜디오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던 메인 MC와 세프들도 마찬가지였다. 무명이나 급수가 비교적 낮은 연예인이 아닌 톱 배우 외모가 나타났다.
“……진호네? 점마가 와 저기 있노?”
사람들의 시선이 박 코흐트에게로 향했다. 아까 전 대기실에 있었던 PD도 헛숨을 삼키며 그녀를 보았다.
“아는 사람이세요, 누님?”
“내가 주방에 데려가려고 침 발라 놓은 천재. 한국대 경영학과에 다니는 놈이다. 전체 수석 입학이랬제, 아마?”
“하, 한국대요? 여기 프로필에는 모델이라고 적혀 있는데요? 한국 남자 모델 최초로 파리에서 디올 옴므 패션쇼 메인에 선!”
메인 MC가 다급히 말했다.
“그래서 얼마나 아쉬운지 모릅니다. 내가 그 두 개만 아니믄 벌써 오스트리아로 납치했을 거라예. 하, 진짜 감각 하나는 타고난 놈인데……. 아, 불 다루는 능력은 나 보다 더 예민할 겁니다. 몸이 그냥 온도계입니더, 온도계.”
“에이, 저렇게 젊은 사람이 어떻게 박 셰프님보다 나아요.”
“보소, 저게 보통 실력으로 보입니꺼?”
다시 모니터를 본 사람들은 입을 벌렸다.
악랄한 제작진 때문에 홁이 잔뜩 묻어 있어야 할 무가, 그 껍질이 마치 종잇장처럼 얇게 깎여지고 있었다. 그것도 껍질 깎는 칼이 아닌 일반 식칼에 의해서 말이다.
-와, 칼 잘 든다. 어느 브랜드지? 수제품인가?
태연하게 중얼거리는 진호를 보며 박 코흐트는 엄마 미소를 지었다.
“호랑이가 날개를 달았네.”
PD도, 진호가 있는 스튜디오에서 숨어 있는 다미앙도 아빠 미소를 지었다.
‘시청률이 쭉쭉 올라가겠구나.’
‘브랜드 관계자가 좋아하겠군.’
* * *
거치대에 놓인 핸드폰을 통해 울리는 세프들의 오더를 제외하면 스튜디오는 숨이 막힐 만큼 조용 했다.
사각사각 타타타타타타!
오직 진호의 자리에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것 같았다.
‘왜, 왜 저렇게 잘해?’
‘요리 좀 할 줄 아는 연예인이 아니라 셰프였어?’
-이젠 그린 칠리 살사소스를 만들 거예요. 재료는…….
세프가 일단 기억할 수 있게 몇 개의 재료만 말했다.
-고수 알아요? 구분할 수 있겠어요?
“네! 걱정 마세요!”
진호는 야채 등을 진열해 놓은 곳으로 향했다.
라벨이 붙지 않은 열 개의 플라스틱 용기에 열 개의 허브가 담겨 있었다. 정확히는 이 스튜디오 안에 있는 모든 식재료 및 조미료, 향신료 등에는 라벨이 없었다. 정말 악랄했다.
물론 진호에겐 통하지 않았다. 박 코흐트에게 플레이팅을 배우며 함께 강의 받은 게 식재료 고르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어? 비슷한 게 둘……. 아, 이거다.’
단번에 반 움큼 집어 드는 그의 행동에 제작진은 다시 놀랐다. 지켜보고 있던 MC 및 다음 대결의 세프들은 혀를 내두르거나 아빠 엄마 미소를 지었다.
식재료를 모두 골라 담은 진호가 돌아서려 할 때 어두운 낯빛의 웨이홍이 다가왔다.
진호는 자리로 향하려 했지만 웨이홍의 힘없는 말투가 발목을 잡았다.
“타임이…….”
-모르겠으면 포기하세요! 칼질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타임을 찾습니까!
‘으아.’
한국 셰프와는 차원이 다른 박력과 비꼼이 터지고 있었다.
진호는 오더를 내리자마자 척척 해내기 때문에 한국 세프가 잔소리를 못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형, 거기 좌측에서 네 번째 게 타임이에요.”
모두의 시선이 진호에게로 향했다.
“요리는 절대 급해선 안돼요. 천천히, 차분히. 그래야 안다쳐요.”
“……그래, 고마워.”
대기실에선 그렇게 호탕하게 웃던 사람이 왜 이리 풀 죽었는지 모르겠다. 혀를 찬 진호는 그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웨이홍의 자리였다. 도마 옆 잘린 식재료의 상태가 가관이었다. 스튜디오는 다시 숨을 죽였다.
“자, 봐요. 칼질의 기본자세는 이거라는 건…… 그냥 잊어버려요. 급하게만 하지 않으면 어떤 자세든 돼요. 형님이 촌각 안에 요리를 내놔야 하는 요리사예요? 아니잖아요. 시간 많아요. 충분해요. 칼 쥐고 제 옆에서 봐요.”
“이, 이렇게?”
“아뇨, 이렇게. 칼질의 자세는 중요하지 않지만 칼을 쥐는 건 중요 해요. 그래야 칼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거든요. 자, 천천히. 스 윽. 스윽. 스윽. 보세요, 쉽죠? 이젠 형님이 해 봐요.”
“흠.”
“입으로 스윽. 스윽. 스윽. 어허, 이게 마법의 주문이라니까요?”
“……큼. 스윽. 스윽…… 스윽? 어?”
웨이홍은 제대로 잘린 양파를 보고 깜짝 놀랐다.
진호는 자신의 머리를 툭툭 쳤다.
“리듬감, 요리는 리듬이죠. 칼이 좋으니까 리듬만 타면 그냥 의도 대로 잘려요. 아셨죠? 그럼 수고 하세요. 어? 료 형님! 그거 탑니다! 얼른 뒤집어요!”
“아, 응!”
웨이홍과 하시마, 현장의 PD를 비롯한 스태프들은 자리로 돌아가는 진호를 멍하니 바라봤다. 도전, 세프의 아바타에 전무했던 캐릭터가 나타났다.
자리로 돌아온 진호는 다시 칼을 들어두 번째 요리의 밑 준비에 들어갔다. 현장 MC가 다가왔다.
“와, 진짜 요리 잘하시네요.”
“하하, 도구가 좋으니까 그렇게 보이나 보네요. 만날 혼나기만한 실력인데.”
“요리를 배우셨어요?”
동그랗게 뜬 눈이 아름다운 현장MC 최보아.
요리 스킬을 얻은 후 진호는 하루에 하나 이상의 요리 프로그램을 시청하는데, 그중 골목 상권 식당은 빠지지 않고 본다.
그 프로그램엔 성공을 향한 공략본과 노하우가 있는데, 눈앞의 최보아도 애청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였다.
진호의 입이 절로 열렸다.
“네. 박 코흐트 셰프님인데, 제가 다니는 대학 축제 주점에서 인연이 되어 요리를 배우게 됐거든요. 저번 달에는 오스트리아로 돌아가셨고요.”
‘응?’
최보아가 갑자기 어색하게 웃었다. 눈을 굴리던 그녀는 대화를 하면서도 계속 자른 마늘을 옮겨 담는 걸 보곤 눈을 빛냈다.
“아, 그런데 생강과 마늘을 함께 담아도 되나요?”
“예?”
-안 됩니다. 둘이 섞이면 안돼요. 설마 섞은 건가요?
자신이 저지른 사태를 본 진호는 하얗게 질렸다.
‘교수님이 이걸 보면 날 죽이려 들 거야!’
“죄송합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최보아는 재빨리 움직이는 진호를 묘하다는 듯 보았다.
‘이런 사람은 처음이야.’
벌써 현장 MC만 열 번째였다.
그동안 출연한 사람들 중에서 이렇게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실수를 슬쩍 덮으려 들거나 당황하여 더 큰 실수를 저질렀다. 아니면 무시하거나.
한정된 시간인 40분 안에 요리를 만들어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요리를 미완성하거나 실패하는 모습도 이 프로그램의 재미라서 아무도 말하지 않을 뿐이었다.
‘이렇게 잘생긴 사람도…….’
최보아는 다시 마늘과 생강을 자르고 다지는 진호를 멍하니 바라 봤다.
-보아 씨, 지금 그림 좋네. 시청자들이 좋아하겠어. 여덟 살 차이. 카.
흠칫! 그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하시마 료에게로 향했다.
* * *
어느새 시간이 다 흘렀다.
헤매는 하시마 료도 도우며 즐겁게 요리를 마친 진호는 드디어 대면하게 된 셰프를 보곤 깜짝 놀랐다. 박 코흐트처럼 스타 세프라 불리는 이였다.
“……PD님, 이분 세프였어요?”
이대로 손님에게 내놔도 손색이 없을 플레이팅이었다.
PD는 어색하게 웃을 뿐 답을 하지 못했다.
“어디 맛도 그런지 볼까요?”
“네, 부디.”
“호, 자신감이 넘치네요.”
따로 담아 놓은 요리를 입으로 가져간 세프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모두 맛 보고는 진호를 응시했다.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어느 주방에서 일했어요?”
진호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런 적 없습니다.”
“그래요? 그럼 내 주방에서 일할래요? 딱 1년만 일하면 부세프 시켜 드릴게요.”
부세프. 생선 요리사, 육류 담당 요리사 등 한 종류의 식재료나 한 종류의 요리만을 만드는 주방 서열 3위의 요리사다.
이런 그의 말에 스튜디오가 뒤집어졌다.
“치아라! 내가 침 발라 놓은 놈 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스튜디오 입구로 향했다.
빠르게 다가온 박 코흐트가 진호를 지키려는 듯 그를 등 뒤로 세웠다. 진호는 멍하니 그 작은 등을 보았다.
“최 셀, 닌 상도덕도 옮나? 우리 기본은 지키고 살제이!”
“……누님이 먼저 찍었어요?”
“찍기만 했겠나. 내가 가르쳤다! 이놈 기저귀 찼을 때부터 칼 쥐는 법부터 시작해 내가 완성시켰다 잉!”
“아니, 가르치신 건 겨우 한 달 정도.”
“닌 조용히 해라! 이리 손발 안맞아서 어따 쓰겠노!”
“교수님 주방에도 안 갈 건데요.”
“흥! 그건 봐야 알제!”
그 말에 진호에게 오더를 내렸던 세프가 눈을 빛냈다.
“그렇죠. 그건 끝까지가 봐야 알죠.”
“전쟁을 하자는 거가?”
“선의의 경쟁을 하자는 거죠, 누님. 이렇게 재능 있는데 이렇게 잘 생긴 청년은 없잖아요. 홀에 놔둬도 손님을 박박 긁어 오겠네.”
‘내 요리 실력이 탐나는 걸까, 내 외모가 탐나는 걸까?’
애매해서 기분이 오묘했다. 고개를 저은 진호는 환하게 웃는 PD도 무시한 채 어느새 심사석에 앉은 심사위원들을 향해 접시를 옮겼다.
두 세프의 싸움 때문인지 기대 가득한 눈빛들이었다.
하지만 진호는 걱정 없었다. 전력과 진심은 다했다.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진호는 뒤따라와 접시를 내려놓는 웨이홍과 하시마 료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둘도 진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심사위원들이 젓가락을 들었다.
짝짝짝짝짝!
“수고했어요, 웨이홍 형님, 료 형님.”
“언제 한번 중국에 오라고, 동생. 내가 홍콩과 상해를 안내해 줄 테니!”
“도쿄에 한번 놀러 와. 아키하바라 구경시켜 줄게.”
“게임의 성지!”
“풋. 그래, 거기.”
유일한 브로맨스는 관객들을 흐뭇하게 했다.
서로를 끌어안은 팔을 푼 셋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등을 돌렸다. 드디어 네 시간에 걸친 녹화가 끝났다.
인터뷰도 하고 다른 참가자의 촬영도 보는 등, 꽤 재밌던 시간이었다. 진호는 두 셰프들이 계속 옆에 붙어 있어서 난처했지만 말이다. 결과는 아쉽게도 한국의 패배였다. 진호가 압도적으로 승리하긴 했지만 뒤 참가자들이 죽을 쒔다.
“끄으─.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여기 커피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 하지 마세요. 제가 손이 없나요, 발이 없나요?”
“훗.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잘하셨습니다.”
“그런가요?”
“네, 정말 더없을 정도로. 역시 진호 씨는 언제나 제 예상을 벗어나는군요.”
“흠?”
다미앙의 말처럼 평소처럼 했을 뿐이다. 어깨를 으쓱인 진호는 커피를 쪽 빨았다. 달달한 시럽과 씁쓸한 커피, 얼음이 머리를 흔들어깨웠다.
“아마.”
“네?”
“웨이훙 배우와 하시마 료 씨는 오늘 일로 인해 뜰 겁니다. 하시마 료 씨는 지하 아이돌을 벗어나 방송에 입성하겠죠.”
“오, 그래요? 그럼 잘되길 빌어야겠네요! 아, 밥 사 주면 좋겠다. 다들 형이니까 밥 사 주겠지? 그래, 내가 거기까지 가는데…….”
오늘 자신이 한 행동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지 전혀 모르고 있는 진호의 모습에 다미앙은 풀썩 웃고 말았다.
‘이러니 좋아할 수밖에.’
“네?”
“아뇨, 가시죠. 집까지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어? 더 이상 스케줄이 없나요?”
“아직은. 하지만 곧 생길 겁니다. 걱정 마십시오.”
“네?”
진호는 장담하는 그를 보며 의아 해할 수밖에 없었다. 곧 현실이 될 것도 모른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