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5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3권 4화
내일 장사를 위해 술은 가볍게 마셨다.
그러나 이야기는 길었다.
어젠 너무 정신이 없어서 서로에 대해 알아 가는 시간을 이제야 갖는 것이다.
요리를 호평 받은 진호는 기분 좋게 뒷정리를 마친 후 방으로 향했다.
“저, 진호야.”
“네, 형.”
“나 중국어 좀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오늘 손님들한테 제대로 응대를 못하니까 좀 그렇더라.”
‘이래서 프로구나.’
절로 겸손해졌다.
“그럼요. 우리 서로 상황을 예측하며 이야기 나눠 봐요.”
“흐흐. 고맙다잉?”
“나도!”
윤서아가 문을 열고 외쳤다.
“응? 누나도요?”
“시간 튈 때마다 나만 멀뚱히 서 있는 거 싫어.”
“그래요. 누나도 같이해요.”
진호와 허경만, 윤서아는 일 층으로 내려가 공부를 시작했고, 그 모습을 모니터로 지켜본 제작진은 혀를 내둘렀다.
“……우리 회차를 더 늘려야 하는 거 아냐?”
“그러게요.”
겨우 1화인 내용에서 분량이 너무 많이 나왔다.
다 주옥같아서 버리기가 아까웠다.
손님들의 반응도 그랬다.
기존 중국인의 이미지를 날려 버리는 예의 있는 모습들과 자유롭던 합석. QR코드로 하는 계산, 옷이 멋져서 어디 브랜드냐고 묻는 반응까지.
단 하나도 날려 버릴 게 없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 캐릭터가 나왔지?”
황재상이 말했다. 바쁜 와중에 자리를 비워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건 모두 진호가 버텨 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지금도 그렇다. 촬영의 중심이 되는 곳엔 언제나 진호가 있었다. 그렇다고 진호가 의도한 것도 아니다.
그냥 묵묵하고 성실히, 그리고 눈치 좋게 일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 보니, 억지로 황재상의 분량을 만들기 위해 진호의 분량을 들어냈다가는 그림이 심심하다 못해 밋밋해질 지경이었다.
“……얘, 뜨겠다. 그것도 곧.”
촬영을 하다 보면 튀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중심에 선 사람은 정말 소수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사람은 운명이라는 듯 언제나 성공했다.
“그렇죠? 몸값 비싸지기 전에 종신 계약 맺어 놓을까요?”
“윤지 너, 저 이진호 편 아니었어?”
“종신 계약을 맺어야 오래오래 보죠.”
“그렇군. 그쪽 매니저와 협의해봐. 그리고 인계받은 짐들은 내일 다 출연자들에게 주고.”
“더 안 하고요?”
“더 해 봤자 의미 없잖아. 이러다간 협찬사 PPL을 하나도 못할…….”
우우웅!
“잠깐만. 네,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박영후 PD는 벌떡 일어났다.
스태프들의 시선이 모였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디올, 지방시, 태그호이어 모두 제작비 지원까지 후원해 주기로 했어. 대체 어떻게 이런 대물들을 끌어온 거야? 박 PD. 나 모르는 라인 있는 거야?
“하하. 그럴 리가요. 네, 그럼요. 알겠습니다. 들어가십시오.”
전화를 끊은 박영후 PD는 어이 없다는 듯 웃었다.
“무슨 일 생겼어요? 대체 뭔데요?”
“잠깐만 있어 봐.”
그는 명함을 하나 꺼내 전화를 걸었다.
“예, 이진호 모델 매니저님 되십니까?”
-아, 연락 주실 줄 알았습니다.
“……역시 그쪽 작품이라는 거군요.”
-진호 씨 옷들은 모두 디올, 지 방시, 태그호이어입니다. 그저 먼저 연결시켜 드린 것뿐입니다. 이용하신다 생각하십시오.
“막 해도 됩니까?”
-진호 씨의 역량이 부족하다 느끼시면 얼마든지.
“…….”
-더 하실 말씀이 없다면, 바빠서 이만 끊겠습니다.
5초 후 전화가 끊겼다.
천장을 보며 헛웃음을 짓던 박영후는 이내 눈빛을 날카롭게 가라 앉히며 스태프들을 보았다.
“숙소 업그레이드 준비하고, 불필요한 협찬 계약들 파기해. 대기업이 붙었다.”
마지막 말이 모든 걸 이해시켰다.
튀어나오려는 만세를 억지로 참은 그들은 핸드폰을 들고 어딘가로 전화하기 시작했다.
“앤 뭐 미워할 거리가 없네.”
모니터를 보며 피식 웃은 박영후 PD도 일어섰다.
“연출진, 작가들 모여. 회의한다.”
“예!”
이젠 잘 준비를 해야 하는 저녁11시. 그들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정말 대박이 터졌다.
* * *
다음 날 역시나 일찍 일어난 진호는 전날처럼 밑 준비를 했다.
“벌써 양파를 다 다듬었네. 지치지도 않아?”
“아, 쉐프님! PD님!”
“내 이럴 것 같아서 좀 일찍 일어났지.”
머리가 까치집인 PD가 말없이 카메라를 들었다.
진호는 미안함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괜찮아. 오랜만에 철가방 들고 다녔을 때 생각나서 좋은 걸 뭐.”
“초등학교도 졸업 못하셨다고.”
“그땐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었지.”
“……그렇게 힘드셨나요?”
그 시절을 겪어 보지 않았기에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하는 척을 하면 안 된다. 그건 기만이었다.
“그땐 다 그랬어. 여자들은 국민 학교 졸업하면 공장에 가고, 남자들도 장남아니면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고. 먹고살려고 참 아등바등. 내가 짜장면 원 없이 먹으려고 중국집 문을 두드렸잖아. 진호 너는?”
“저는 뭐…….지방 도시에서 살다가 올라온 후 만날 핸드폰 게임만 했어요. 학창 시절 기억은 정말 그것밖에 없어요.”
“아니, 네가? 부모님이 뭐라고 안 하셨어?”
“당연히 하셨죠. 니가 사람이냐, 짐승이냐부터 시작해, 어후. 숨만 쉬어도 몸무게는 계속해서 불어만 가지, 공부는 하기 싫지. 참 속 많이 썩였죠.”
“몸무게?”
“최고 몸무게가 137킬로그램이었어요. 얼굴과 몸도 온통 여드름투성이고.”
어차피 밝혀질 진실이다.
황재상과 PD가 입을 벌렸다.
“이거 빼려고 선본사까지 내려가서 갓바위 부처님을 향해 매일같이 108배를 올렸어요. 제발 살 좀 빠지게 해 달라고 매일 빌었죠.”
“……그럼 살 속에 그 미모가 묻혀 있었던 거야?”
분명히 나올 의혹이었다. PD도 눈을 빛냈다.
어차피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 진호는 예전에 생각해 뒀던 대답을 했다.
“어머니가 엄청난 동안 미녀세요. 명문 여대 다니던 그런 어머니를…… 이 이상은 부모님의 프라이버시라 함구하겠습니다.”
“푸하핫! 아버님이 그때부터 승리자셨네. 그 외에는 운동한 것 없고?”
“네. 물살이라서 그런지 쭉쭉 빠지더라고요. 77일 걸렸나?”
경악한 황재상과 박영후 PD의 눈이 강렬하게 빛났다.
“어디라고? 선본사?”
“경북 경산에 있는 팔공산의 선본사요. 거기에 있는 갓바위 부처 님이 소원을 들어주시기로 유명해요.”
‘시주는 필요 없다 하셨으니, 이렇게라도 은혜를 갚겠습니다, 큰스님.’
“그리고 행자 스님들은 초코파이에 열광하시죠.”
“푸하핫!”
“……이게 서커스야, 뭐야?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야?”
부스스한 얼굴로 내려온 허경만과 윤서아가 눈을 비볐다.
진호와 황재상은 오직 서로만 바라보며 식재료를 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웃음 가득한 이야기꽃을 피우며 말이다.
두 번째 메뉴는 짜장면이었다.
달고 진한 맛을 좋아하는 상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오전에 시장을 보고 다시 밑 준비를 한 그들은 어제의 그 자리로 향했다가 굳어 버렸다.
우글우글.
“뭐, 뭔 사람들이 벌써부터 줄을?”
아직 오픈 준비도 안 했는데, 10 미터의 긴 줄이 형성되어 있었다. 대부분이 젊은 여자였다.
“여기 맞아?”
“응. 링링이 어제 여기서 봤다고 했어. 어? 저 사람이다!”
손가락질을 당한 진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
2. 열풍이 불다
짜장면은 통했다.
진호가 사진을 찍어 줘서가 아니라 맛에서 호평을 받았다.
오징어와 새우, 두툼한 고기가 들어간 짜장면은 어제처럼 좋은 반응을 보였다.
백짬뽕도 반응이 좋았다. 어린아이를 데려온 부모는 무조건 백짤뽕이나 짜장면을 시켰다. 문제는 사람이 사람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테이블에 앉아 연신 감탄하며 먹는 사람들과 길게 늘어선 줄 때문에 근처를 지나던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며 다가왔다가 진호의 외모와 한국의 대가라는 말에 줄을 서 버렸다.
구경을 하는 사람이나 수첩에 무언가를 기입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 그릇 먹고는 은근슬쩍 푸드 트럭을 준비한다며 레시피를 물어 오거나 제자로 받아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혼이 빠질 것 같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것 같았다.
반찬 냉장고를 연 진호는 하얗게 질렸다.
“쉐프님! 15인분 정도밖에 안 남았습니다! 모두 다요!”
“1시간 반밖에 안 됐잖아!”
오늘은 넉넉하게 100인분을 준비해 왔다. 어제 진호가 건의한 대로 넉넉하게 담아도 100인분이 나오도록 말이다.
“경만아. 숙소 가서 재료 가져와! 닥치는 대로 다 가져와!”
“예!”
유일하게 면허증이 있는 경만이 다급히 달렸고, 윤서아가 서빙과 주문 및 계산을 담당하게 됐다.
“쉐프님, 제가 짜장 잡을까요?”
“……어제 술안주 만든 것만큼만 해!”
“감사합니다!”
진호는 얼른 황재상의 옆에 놓인 육수 냄비를 내리고 웍을 잡았다. 화르르르! 강하게 올라온 불이 웍을 달궈 갔다.
양손에 재료가 담긴 쟁반을 든 진호가 웍을 노려보았다.
‘아직…… 아직…… 지금!’
촤아아악!
기름에 야채 튀겨지는 소리가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더니 이내 시선도 사로잡았다.
그때부터 진호의 손에 들린 웍과 국자가 춤을 추기 시작했고, 손님들은 조용히 핸드폰을 들었다. 길 거리에서 구경을 하고 있던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면을 삶고, 짜장소스 볶으며, 황재상에게 재료도 주고, 설거지도 해야 했다. 그러면서 손님들과 사진도 찍고, 대화도 나눴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다.
‘분신술 스킬은 없나!’
아쉽게도 없었다.
“경만이 형 커트해 주세요! 17인 분밖에 안 남았어요!”
“오케이! 하나 둘 셋, 딱 열다섯 명!”
“그리고 2번, 5번 테이블에서 손님 나가셨어요! 4번 밑반찬 떨어졌고요!”
“알았어! 미안!”
“서아야, 나 해물 좀! 진호 넌 주방만 신경 써!”
“네, 쉐프님!”
정말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힘낼 수 있는 건 솔드 아웃까지 이제 17인분, 아니 14인분 남았다는 점이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일하던 진호는 순간 콧속으로 빨려 드는 친숙하면서도 이질적인 냄새에 고개를 들었다.
‘……쉐프?’
뜬금없다고는 할 수 없다.
우연히 앞을 지나다 줄을 선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거슬리는 점이 있었다.
‘이 시간에? 아직 5시밖에 안 됐는데? 오늘 토요일인데?’
주말의 저녁 식사 시간, 쉐프라면 한참 장사를 준비할 시간이다. 거 기다 한 명도 아닌 세 명이었다. 모두 몸에서 기름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의아해하며 제작진을 본 진호는 황재상에게 몸을 기울였다.
“쉐프님. 저 미션이 뭔지 알 것 같아요.”
오늘 숙소를 나서기 전 제작진이 숨겨진 미션이 있다고 했다.
미션의 내용은 장사가 끝나면 알려 준다고 했다.
또 그런다며 경만이 대표로 PD의 멱살을 잡았다.
“미션? 무슨 미션? ……아, 맞아. 있다고 했지. 너무 정신없어서 잊어 먹고 있었네. 그래, 뭘 것 같아?”
“평가요. 저희 요리에 대한 평가. 두 번째에 계신 세 분, 중식 쉐프세요.”
황재상의 표정이 굳었다.
“아는 사람들이야?”
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모두 쉐프님처럼 몸에서 향긋한 기름 냄새가 나요.”
“……대체 코가 얼마나 좋은 거야? 향수 감별사야?”
그 정도는 아니다. 기름 냄새 속에 숨은 식재료 냄새는 맡을 수가 없다. 박 코흐트의 몸에서 온갖 냄새를 맡은 건 그녀가 축제 때 주점에 등장하기 전까지 여러 요리를 했기 때문이었다.
“흐흐흐. 어떻게 할까요?”
“어떡하긴. 별거 없어. 지금처럼 만 해. 평가고 뭐고 저 사람들도 똑같은 손님이야.”
분명 흔들렸는데, 금세 진정하는 모습을 보니 감탄만 나왔다.
“저기요, 잘생긴 쉐프님.”
“네?”
“네?”
“아뇨. 이쪽의 젊고 잘생긴 쉐프 님요.”
“……에이. 나도 젊어서 미남 소리 많이 들었는데.”
어색하게 웃은 진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또래의 여성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네. 무슨 일이세요?”
“혹시 내일도 여기서 장사하나요?”
“아뇨. 다른 곳으로 옮길 거예요.”
“어디로요?”
“그건 저희도 잘. 저기 팔짱 낀 악독하게 생긴 PD님께서 정하실 문제거든요. 그래도 상해 내에 있을 거예요.”
“……확실히 얄밉게 생겼네.”
“아하하. 그런데 왜 그러시죠?”
“음. 아니에요. 내일 봐요.”
‘내일?’
뭔가 이상했지만, 진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내일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단골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팬클럽에도 가입했어요. 내일 봐요. 가자.”
“어? 자, 잠!”
그렇게 그들이 떠나자 진호는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팬클럽이 있냐 물어봐서 알려 줬더니 그새 가입한 것 같았다.
‘이거 중국에서도 팬미팅을 열어야 하나?’
김칫국을 마시는 것 같았지만, 기분은 정말 좋았다.
“진호야, 손이 멈췄다.”
“죄송합니다!”
정신을 차린 진호는 음식을 받아 들고 가는 쉐프들을 조용히 응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