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63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3권 13화
5. 알려지다
제작 발표회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바빠졌다.
이승준이 지나가듯 우스갯소리로 웰 컴 투 헬이라 말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번에도 [스킬 :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가 아니었다면, 3일 만에 뻗었을지도 몰랐다.
우우웅!
“음? ”
일이 있어서 들른 회사. 촬영장을 가기까지 시간이 남기에 소파에 앉아 있던 진호가 핸드폰을 들었다.
허경만이었다.
“예, 형.”
-어디야?
“회사요.”
-뭐 해.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역할창조 》를 읽고 있습니다.”
-음? 그거 연기 배울 때 쓰이는 책이잖아.
“제가 이론이 부족하잖아요.”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는 알고 가야 했다.
그래야 스킬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건 한번 몰입해 버리면 그 잔상이 좀 오래 남기에 쉬는 시간에는 이렇게 연기 이론 서적을 읽고 있었다.
-논란 때문이야?
제작발표회 이후 출연진 신상이 공개되면서 진호에게 연기 논란이 일어났다. 이르다거나, 이럴 줄 알았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연기를 시작한 이상 당연한 행동인 거죠.”
-오, 역시 성실해.
“흐흐흐.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요새 바쁘시잖아요?”
어디까지 먹힐까로 인해 허경만은 여기저기 불려 다니고 있었다.
-안 그래도 스케줄 가는 중이야. 그보다 너 요새 가수 누구 좋아하냐? 20대 가수 중에. 싱어송라이터건, 아이돌이건.
뜬금없는 물음이었지만, 이내 오늘 그가 출연하는 곳에 게스트로 가수가 출연한다고 생각한 진호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디플라스트요.”
-잉?
“친구 때문에 알게 된 미튜브 크리에이터인데 음색이 깡패더라고요. 커버곡을 부르죠.”
-그, 그 외에는?
“딱히…….”
우우웅! 문자가 왔다.
‘너무해요.’라는 문자를 보낸 사람은 이설아였다.
“아, 이설아 씨도 있죠. 이설아 씨가 진짜 음색 깡패, 실물 깡패죠. 그보다 형. 방송이라면 방송이라고 말을 해야죠.”
-아, 아닌데? 방송 아닌데?
“헉!”
마케팅 실장이 벌떡 일어나 진호를 보았다.
‘생방송? 라디오?’
“저희 회사 직원분들 엄청 유능 하세요. 라디오죠?”
-안녕하세요! 김진영의 심심한 오후 타파입니다! 진호 씨 얼굴을 보기가 너무 어려워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드린 거예요!
“네, 안녕하세요. 현재 연기자에 도전하고 있는 이진호입니다. 거기 옆에 계시는 형에게 만나면 소갈비라고 전해 주세요.”
-안돼, 진호야! 통장 빵꾸나! 형이 잘못했다-!
“안 들려요. 끊겠습니다.”
-잠깐, 진호 씨. 시청자들에게 한 말씀 남겨 주시겠어요?
“앞으로 경만이 형, 서아 누나, 쉐프님 많이 사랑해 주시고, 설아 씨도 사랑해 주시고, 저도 사랑해 주세요.”
-아니, 다른 분은 몰라도 이설아 씨가 출연하시는 건 어떻게?
“끊을게요.”
전화를 끊은 진호는 다급히 직원을 보았다.
모니터를 빤히 바라보던 마케팅 실장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후다닥 뛰쳐나온 다미앙이 환하게 웃으며 들고 있던 태블릿으로 한 커뮤니티 사이트를 보여 주었다.
정말 몇 초 전에 말한 것뿐인데, 벌써부터 개념 연예인이라는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잘하셨습니다.”
“그러게요……”
고개를 저은 진호는 책을 덮으며 몸을 일으켰다.
“회식 갈 시간이죠?”
“예. 정 대리를 부르겠습니다.”
오늘 첫 화가 방송되는데, 출연진 제작진 모두 모여 술 한잔과 함께 시청하기로 했다.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허경만에게 고맙다는 문자를 넣으며 발을뗐다.
-어휴. 저게 내 동생이었어야 되는데…….
┗힐링 되는데. 힐링이 되는데…… 어휴우.
-역시 CG라서 이렇게 철이 없을 수 있나 봐요.
┗이건 거의 생활 연기 수준 아님?
-오빠. 지못미.
-하. 저 철부지를 보면서도 침 흘리는 나란 년.
-얼굴이 갑이구나.
-근데 오빠가 입는 저 옷은 어디 건가요?
달리는 차 안. 남는 시간을 틈타 기사에 달린 댓글이나게시판 글들 중 자신의 것만 살피던 진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좋은 거 맞죠?”
“맞습니다.”
다미앙이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유치한 제목인 ‘달려라, 박 과장’은 첫 화 9.3퍼센트로 제법 순조롭게 출발했다.
김경호, 김을수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연기는 당연하게도 호평을 받았다.
코믹 속에 들어 있는 온갖 어두운 감정이 꽤 많은 시청자들의 입 맛을 사로잡은 것이다.
댓글이나게시판 글 중 대부분이 그들의 연기를 찬양했다.
그런 와중에 진호도 제법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프로 불편러들이 있기는 했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최소한 논란은 완전히 사라졌지 않습니까.”
팬들이 고맙게도 방어 댓글을 써 주었지만, 흐름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댓글 같은 걸 신경 쓰지 않는 진호도 꽤 거북할 정도였다.
그런 그 악플들이 첫 화가 방영된 이후 모조리 사라졌고, 이렇게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철부지 동생으로 바뀌게 되었다.
허경만과의 통화에서 한 발언도 도움이 되었다.
분명 좋은 현상이지만, 뭔가 억울 했다.
“재준이가 하던 짓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런 재준마저도 요즘 만날 땐 혐오스럽다는 듯 보았다.
친구 드라마 모니터링을 해 주는 게 참 고맙기는 했지만, 주먹이 울었다.
흠칫!
“이젠 정신 차렸어요.”
“큼.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표정으로 다 말했지만, 진호는 모른 척했다.
“그보다 저는 예능에 출연하지 않는다고요?”
“예. 겨우 모델 겸 방송인의 이미지를 벗어가는 중입니다. 예능은 서브, 혹은 주연이 됐을 때 해도 늦지 않습니다.”
“승미 누나는 연락 없고요?”
도전 골든 빅 벨의 작가로서 같이 이탈리아에 갔던 김승미는 메인 자리를 달며 방송국을 옮겼다.
“그분도 이해해 주셨습니다. 그보다 이것들을 봐 주시겠습니까?”
쿵! 테이블 위로 영화와 드라마 대본들이 놓였다.
“이제 2화 방영했잖아요.”
“그만큼 인정을 받았다는 소립니다.”
대본들을 향해 눈길을 주었던 진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달려라 박 과장에 집중 하고 싶어요.”
매 순간마다 배울 점이 생겨 하루하루가 즐겁다.
지금은 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훌륭한 생각입니다.”
“진짜 너무 칭찬만 하는 거 아네요?”
“잘하고 있는데 굳이 질책할 필요는 없죠. 그럼 내리시죠.”
“네.”
핸드폰을 집어넣은 진호는 몸을 일으켰다.
피부 숍에 갈 시간이었다.
성형 의혹 때문이었다.
예능과 드라마의 시청자 층이 완전히 다르듯 그런 그들의 예측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어느 인터넷 신문사에서 성형 의혹에 관한 기사를 냈고, 그게 커뮤니티 사이트까지 옮겨 갔지만 이내 ‘내가 아는 분이 피부숍 원장님 인데’로 시작된 댓글에 의해 빛을 발하지도 못하고 묻혀 버렸다.
이후 촬영장에 도착한 진호는 언제나처럼 스태프들에게 인사하였고, 그들도 웃으며 반겨 주었다. 그런 그들의 미소는 조금 힘이 없었다.
그 이유를 알고 있는 진호는 씁쓸히 웃었다.
아니나 다를까 안쪽에서 뾰족한 고성이 터져 나왔다.
“그따위로 연기할 거면 때려쳐!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으아.’
진호는 습관처럼 주머니를 뒤졌다.
작은 사이즈의 무언가들이 만져지자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뗐다. 입가를 가린 김혜림이 멀어지는 게 보였다. 몇몇 조연들이 그녀를 따라가는 것도 보였다.
‘더 잘하자. 안주하지 말고.’
경각심을 마음에 새긴 진호는 세트장 테이블에 앉아 시근덕거리는 이금화가 화를 가라앉힐 때까지 기다렸다.
극중 몰입을 위해 김을수에게 했던 것처럼 이금화에게도 엄마엄마 하지만, 지금 다가갔다가는 불호령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비겁하더라도 안절부절못하는 스태프를 외면해야 했다.
잠시 후 그녀의 화가 가라앉는 것이 보이자 진호는 모른 척 다가갔다.
“……왔니?”
“옙! 오늘은 녹차 양갱입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 이금화는 한 입 크기의 녹차 양갱 포장지를 벗겨 입에 집어넣었다. 달면서도 씁쓸한 게 들어와서 그런지 그녀의 표정이 더 누그러졌다. 그러나 화가 다 누그러진 건 아니었다.
“예능 따위 할 시간에 연기나 더 배울 것이지! 어디서 저딴 게 굴러들어 와서는!”
김혜림은 현재 크고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로 주목을 받아 각종 예능에 출연 중이었다.
이승준과 박혜선도 예능에 나가 특유의 입담을 보이고 있었다.
“너도 잘해!”
“예. 죄송합니다! 노력하겠습니다!”
“에휴. 내가 알아서 잘하는 애한테 왜 화를 내는지. 방금은 미안. 나간다.”
다행히 어찌어찌 다 찍긴 한 것 같았다.
진호와 스태프 모두 허리를 숙였고, 촬영장의 분위기는 조금 나아졌다. 때를 잘 맞춘 것인지 피해 있었던 것인지 여주 이선아 역할의 박혜선이 들어왔다.
오늘은 그녀와 호흡을 맞추는 날이다.
“오셨어요.”
“응. 그래도 넌 쟤를 따라가지 않네?”
한쪽을 바라보는 박혜선의 눈이 매섭게 떠졌다.
진호는 씁쓸히 웃었다.
“제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입장인가요. 그리고 도움을 청한 것도 아닌데 주절주절 해서 뭐 해요. 실없는 사람만 되지.”
만약 그녀가 맡은 악녀 최희연이 박현호를 노리지 않고 진호 자신을 노렸다면 대처가 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오구, 예뻐라. 오구오구.”
기특하다는 듯 엉덩이를 두드리는 손길이 참 따뜻했다.
착각인지는 몰라도 그 발언 이후 선배님들이 더 친근하게 대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괜찮겠어?”
“응? 아.”
오늘 찍을 신에서 먹을 음식을 말하는 것 같다.
호불호가 굉장히 갈리는 음식이다.
“저 엄청 좋아하는데요?”
“……으엑. 난 정말 싫어. 그런 걸 어떻게 먹어?”
진호는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보았다.
“아, 몰라, 몰라. 나 화장하러 간다.”
후룩! 후루룩!
진한 선지와 돼지 내장에 피를 넣어 만든 암뽕 순대가 쉼 없이 넘어간다.
박혜선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맛…… 있어요?”
“죽이는데? 엄청 고소해. 와, 내가 왜 이런 요리를 모르고 살았을까? 너 엄청 대단한 요리사 밑에서 자랐구나? 쉐프, 최고야!”
환하게 웃는 박강호의 이에 선지 조각이 가득하다.
박혜선의 표정은 더 썩어 간다.
“솔직히 말해 봐요. 당신 박 팀장 아니죠?”
“홍보 5팀장 박강호라면 맞는데? 명함 보여 줘?”
“그럼 맛있을 리가 없잖아요. 만날 저녁마다 스테이크를 써는 당신이 내장국밥을 맛있어할 리 없잖아!”
“하 참, 서민들이란……. 지들이 돈 없어 못 배워 놓고 돈 많아 잘 배운 사람을 보며 왜 열폭하는지 모르겠네. 야, 사원아. 원래 내장 요리는 우리같이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먹었던 거야. 프랑스 요리 중 양 위에…….”
박강호가 일장 연설을 늘어놓자 박혜선은 입을 떡 벌렸다.
세상 무식한 박강호에게 못 배웠다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이걸 왜 주웠을까!’
그녀는 비틀 일어났다.
“나 출근할 거예요. 먹고 올라가요. 회사엔 언제 출근 할 거예요?”
“우리 엄마 화 풀리면.”
머리를 누른 이선아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 나갈게. 이 사람 좀 챙겨 줘!”
“으응, 그래. 어서 가. 늦겠다.”
“응!”
“쉐프. 여기 순대라는 것 좀 더 줘!”
“……돌겠네.”
딸랑!
“오케이, 컷! 좋다!”
만족스럽다는 듯 외치는 박찬성 PD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