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6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3권 14화
“크크크!”
“푸하하핫!”
참았던 웃음들이 터진다.
박찬성 PD도 웃음을 참지 않았다.
“그럼 각자 바스트 따고 가겠습니다. 배우들 감정 계속 유지해 주세요.”
이윽고 각자 여러 각도로 바스트 샷까지 찍은 진호는 박강호를 털어 내며 PD에게로 향했다.
“와, 울컥하네.”
“진짜 상황 파악 못한다. 정말 한 대 때려 주고 싶어.”
“아뇨. 그건 참아주세요.”
박찬성 PD는 김숙경 작가를 보았다.
“진짜 다 좋네. 숙경이 넌?”
“뭘 물어?”
5화 시청률이 16퍼센트를 돌파해서 그런지 둘은 굉장히 너그러워진 상태였다.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중박 이상. 이 추세라면 10화 이전에 20퍼센트를 넘기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진호가 이렇게 잘해 주면 나도 응답해 줘야 하는 게 답랜데……. 아닌 게 아니라 네 분량 요구하는 의견도 많아지는 추세고.”
잘생긴 애 옆에 잘생긴 애. 그 옆에 미치도록 잘생긴 애였다.
훈남 풍년이라고 커뮤니티 사이트가 떠들썩했다.
“분량이 많아지면 저야 감사하죠
“오케이. 떠오르는 거 있으니까 지금부터 누구도 나 부르지 마.”
아무래도 쪽 대본이 나오려는 듯 싶었다.
툭툭 장난스레 옆구리를 치는 이선아의 행동에 씩 웃은 진호는 기지개를 펴며 박강호를 털어 냈다. 제어하지 않으면 가끔 불쑥불쑥 존재감을 드러내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
“자, 그럼 오늘은 집에 눌러앉은 박강호 때문에 정신이 팔린 이선아가 실수를 연발하는 모습만 찍고 끝냅시다.”
스태프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내일은 쉬는 날이라서 더 그랬다. 김혜림을 제외하면 NG가 잘 나지 않았기에 스케줄대로 진행할 수 있어서 이렇게 시간이 남았던 것이다.
진호는 준비하러 가는 박혜선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렇게 그녀의 연기를 모두 지켜 보고 돌아서자 새벽 1시였다. 뒷정리를 도우려고 했지만, 뒤늦게 도착한 김혜림 때문에 스태프들의 조기 퇴근은 불발이 되어 버렸다.
PD도 아차하며, 스태프들에게 사과했다.
“어휴, 걘 눈치도 없나? 아니 이 시간에 왜 와?”
“녹화가 늦게 끝났다잖아요. 그보다 누나, 들어가는 길에 얼큰한 감자탕 어때요? 오는 길에 있던데.”
“좋지! 오늘은 열심히 일했으니까 먹을 수 있어!”
감자탕의 뼈는 쪽쪽 빨아먹으면서 선지와 내장은 싫어했다.
참 이상한 누나였다.
우우웅! 전화가 울렸다. 이승준이었다. 맨날 촬영 분량이 있으나 없으나 촬영장을 찾아서 그런지 다들 친해진 지 오래였다.
“네, 형.”
-너 지금 혜선이랑 같이 있지? 술 한잔하게 넘어와. 선생님과 경호 형도 있어.
전화는 그대로 끊겨 버렸다.
“왜? 승준이가 한잔하재?”
“어떡하실래요? 선생님과 경호 형도 계신대요.”
“당연히 가야지. 내일은 스케줄 하나 없으니까. 흐흐. 이게 얼마만의 술이야?”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는 게 아무래도 오늘은 집에 걸어 들어가기가 힘들 것 같았다.
* * *
“느아앙! 아직 더 마실 수 있어. 더 마실 꼬야!”
“매니저 불러라. 얘 갔다.”
“큭쿡. 조금만 더 찍고. 카, 뭘 얻어 먹을까?”
술주정 부리는 박혜선과 그런 그녀를 핸드폰으로 찍는 이승준.
김을수는 3시가 되자 돌아갔다.
잘못 택시를 불렀다가는 내일 포털사이트가 뒤집힐 수 있기에 진호는 박혜선의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돌아가지 않았던 것인지 바로 들어온 매니저는 그녀를 수습해서 나갔다. 도와주기 위해 나온 진호는 아직 퇴근하지 않은 정 대리를 보곤 깜짝 놀랐다.
“먼저 들어가시라니까요.”
“얼마나 마셨어? 숙취해소제 사다 줄까?”
“에휴. 같이 사러 가요.”
느낌상 술자리가 길어질 것 같았다.
둘은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새벽녘 찬 바람이 몽롱해 가던 정신을 깨웠다.
“날이 춥네요.”
“11월이니 그럴 수밖에. 곧 겨울이 되겠어.”
딸랑!
“이것만 사고 돌아가시는 거예요.”
“그래, 알았어.”
전혀 알아듣지 못한 표정이었다.
“알았어. 진짜로 갈게.”
그제야 표정을 누그러트린 진호는 냉장고에서 숙취해소 음료들과 커피를 골라 카운터로 향했다. 계산은 법인 카드였다.
원래 이런 것까지 활동 지원비로 잡는다고 했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어서 이럴 때마다 실랑이를 벌였지만, 그때마다 패배하여 이젠 완전히 포기한 진호는 고맙게도 알아봐 준 아르바이트생에게 사인을 해 주곤 멍하니 편의점 바깥을 보았다.
‘PD 님과 스태프들은 퇴근했을까?’
아닐 확률이 컸다.
아마 차 한 대 지나지 않는 저 적막한 도로에 다시 차가 가득 찰 때가 돼서야 퇴근을 할 것이다.
‘어?’
무언가를 본 진호는 잠시 고민하다가 발을 뗐다.
“먼저 나가 있을게요.”
계산 중이라 대충 대답한 정 대리는 이윽고 봉지를 들고 나왔다가 깜짝 놀랐다.
“어? 너 후드짚업은?”
진호는 무슨 일인지 얇은 긴팔 티셔츠 하나만 입고 있었다.
“뒤에가 크게 찢어졌더라고요. 그래서 버렸어요.”
“뭐? 어휴. 그게 얼마짜린데! 그냥 수선을 맡기지.”
“술 마셨잖아요. 술주정 부리는 거죠, 뭐.”
어이없다는 듯 웃은 정 대리는 이내 정색했다.
“일단 차로 가자. 차에 옷 있어, ”
“예!”
옷을 입은 진호는 봉지를 넘겨받으며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들어가세요. 이번에도 안 들어가면 정말 화낼 거예요.”
“에구. 알았다. 적당히 마시고 들어가. 부모님 걱정하셔.”
“걱정 마세요.”
진호는 봉지를 들고 술집안으로 들어갔다.
“왜 이렇게 늦게 와? 혜선이가 땅바닥 구르디?”
“형들을 위한 숙취해소제 좀 사 왔습니다. 이거 마시고 더 달려야죠.”
“오, 센스.”
“캬! 우리 진호 진짜 센스 있어. 응? 옷이 바뀌었네?”
“국물이 묻었더라고요. 그래서 차에 놔 뒀어요. 매니저님은 방금 가셨고요.”
진호가 자리에 앉자마자 술잔이 돌았다.
남자들 셋만 남게 되니 이야기 주제가 달라졌다.
걸그룹, 여자 배우, 스포츠, 게임. 남자들의 원초적인 이야기였다. 아침까지 하는 술집이라 그들은 느긋이 술을 마셨다.
딸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재밌는 이야기를 하던 와중 이라 눈이 돌아가지 않았다.
“진호야.”
“넵?”
“넌 왜 그렇게 연기를 잘해? 이제 스무 살이잖아.”
눈을 빛낸 김경호의 물음에 진호는 얼굴이 터질 듯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짓궂은 농담인가 싶었는데, 김경호의 눈빛은 너무도 진지 했다. 이승준도 흥미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진호는 자세를 바로 했다.
“주연 배우님들께서 그렇게 물으니 참 쑥스럽네요. 저도 형들과 똑같습니다. 배역에 몰입하고, 연구하고, 부족한 점을 찾아 노력하고. 그 결과물이 운 좋게 잘 나왔고, 고맙게도 잘 봐주신 것뿐이에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어요.”
둘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몰입을 해도 안 될 때가 있잖아. 그런 건 어떻게 생각해?”
“몰입을 해도 안 된다는 건 몰입을 하지 못했다는 게 아닐까요? 그건 그만큼 노력을 안 했다는 거고.”
“노력이라…… 넌 한국대 들어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어? 내 사촌 동생이 내년에 고3이라서 그래.”
갑자기 화제가 넘어갔지만, 술자리였다.
진호는 머리를 긁었다. 어차피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다.
“한 5만 권 외웠을걸요, 교과와 교과에 관련된 단어가 하나라도 들어간 서적을 외운게. 참고서든, 외국 문학 소설이든.”
김경호와 이승준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 그게 가능해?”
“저랑은 비교도 안 되는 애들 많아요. 그날 아침에 산 문제집을 하교할 때 버린 미친 자들도 있을 정도니까요. 시험 일주일 전부터 시험 끝날 때까지 총 3시간 잔 애들이나.”
“대단하네. 왜 한국대라고 하는지 알겠어.”
둘은 혀를 내둘렀다. 김경호의 눈빛이 다시 가라앉았다.
“그런 네가 봤을 때 노력은 객관적인 걸까, 상대적인 걸까?”
“네? 음, 그건…….”
“흑!”
타다닥! 딸랑!
“응?”
고개를 돌린 진호는 흔들리는 문을 보며 의아해했다.
“누구 왔다 가셨어요?”
“우리 세 사람의 미모가 너무 빛나서 도망간 거 아닐까?”
이승준을 바라본 진호의 눈이 짜게 식었다.
“형. 턱에 고추장 소스 묻었어요.”
“으흐흐흐. 괜찮아. 남이 보면 뱀파이어가 먹다 흘린 피라고 생각 할 거야.”
진호는 김경호를 보며 이승준을 가리켰다.
“이 형 취했으니 보내고 2차 가시죠.”
“왜? 맞는 말했는데. 우리가 한 미모 하는 건 맞잖아.”
“아, 이 형님도 취하셨네. 안녕히 계십시오. 전 이만 집에 가보겠습니다.”
“가긴 어디 가. 지금 나가 봐야 택시도 못 잡아. 어플로도 잡기 힘들어.”
한숨을 내쉰 진호는 다시 엉덩이를 붙여야 했다.
술자리는 새벽 5시가 돼서야 끝을 맺었고, 집에 들어간 진호는 일어나 등짝 스매시를 맞아야 했다.
촬영은 이후로 순탄하게 이어졌다.
무슨 일인지 김혜림이 NG를 내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 촬영장에 있는 시간도 많아졌다.
8시가 촬영 시작이라면 6시에 나와 준비를 했다.
그녀의 대본은 갈수록 해졌고, 촬영 속도는 그만큼 빨라졌다. 촬영장의 분위기도 좋아져 갔다. 선배님들도 그녀의 변화에 썩 만족스런 표정을 지어 갔다.
“오케이 컷!”
PD의 사인이 떨어지자 사람들이 모두 진호와 이금화를 보았다. 진호는 허리를 넙죽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드디어 박강호와 이금화, 박 회장과 박현호의 마지막 신이 끝났다. 후련하면서도 섭섭했고, 허전하면서도 만족스러웠다.
“수고했어!”
“그래, 진호도 정말 수고했다!”
“형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사님!”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어휴. 이 주말 막장. 드디어 끝났네. 아니 처음엔 괜찮더니 왜 계속 막장으로 가? 오빠 안 그래요?”
“음. 이번엔 죽지 않았어. 난 그걸로 만족해.”
“하하하하하!”
스태프뿐만 아니라 친해진 배우들도 다가와 토닥여 주었다.
“자! 얼른 마무리 찍고 뒤풀이하러 갑시다─!”
“으랏차!”
“아자! 아자!”
사람들은 바삐 움직였다.
마지막 신의 주역인 김경호와 박혜선은 물론이고, 진호와 다른 배우들도 그들을 쫓았다.
“드디어…….”
박 회장의 회장실에 앉은 박 과장이 후련하지만 왠지 찝찝한 시선으로 명패를 쓸어내린다.
복수의 끝. 원래 가졌어야 할 자리에 앉은 것뿐이지만, 막중한 부담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그의 손에 거칠지만 하얀 이선아의 손이 얹어진다.
“잘 해낼 거예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그래.”
싱긋 웃은 박 과장은 창밖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젠 세상을 상대로 달려야 할 때였다.
“오케이 컷트-!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우와아아아아!”
“으아아아아!”
정말로 끝났다.
사람들은 전력을 다해 소리를 질렸다.
진호도 그 사이에 끼어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배우들까지 합세해 뒷정리를 순식간에 끝내 버린 그들은 예약한 뒤풀이 장소로 향했다.
우르르, 콘셉트 룸에 도착하니 벌써부터 음악이 울리고 있었다. 오늘을 위해 내일 스케줄을 비워 놨기 때문인지 그들은 초반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박찬성 PD가 입을 열었다.
“초대박은 아니라서 휴가 여행은 보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모두 수고 많았고, 다음에 또 봅시다. 김을수 선생님은 그때도 끝까지 살려 드리겠습니다.”
“그럼 나야 좋지! 죽음 전문 배우는 이젠 지긋지긋해!”
“하하핫!”
“푸하하핫!”
이어 김숙경 작가와 다른 배우들도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고, 이내 진호의 차례가 되었다.
김을수가 술을 따라 준 잔을 쥔진호는 사람들을 보았다. 사람들도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 몇 개월간 함께하며 감정을 공유했던 사람들. 불이 모두 꺼진 쓸쓸하고 적막한 세트장을 보았을 때처럼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러나 지금의 이별은 끝이 아니다.
핸드폰 속엔 그들의 전화번호가 잠들어 있었다.
활짝 웃은 진호는 입을 크게 열었다.
“모두 정말 못난 저 때문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시 또 만났을 땐 지금보다 더 나은 연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수고하셨고, 몸 건강하십시오!”
“그래! 진호도 수고했다!”
“지켜본다! 잘해!”
“오오오오오!”
사람들은 웃으며 술잔을 들었고, 진호도 술을 단숨에 원샷 했다. 분위기가 한층 더 후끈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