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70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3권 21화
정글은 사람을 빨리지치게 만든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질척거리면서도 여러 장애물이 있는 땅과 가도 가도 비슷한 풍경, 고온다습한 기후 때문이다.
특히나 땅은 사람의 체력과 집중력을 급격하게 빼앗는다.
그래서 그들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으흥─.”
진호가 마치 산책을 나온 듯 경쾌하게 걷고 있다.
“괜찮아?”
“괜찮은데요?”
빈말이 아니라 진짜다.
내 방, 내 집처럼 느껴지는데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거기다 걸을 때마다 땅이 발을 밀어 주는 것 같다.
‘에어컨만 있으면 딱인데.’
“어? 쓸만한 덩굴이다.”
진호는 길 옆 나무를 타고 오른 덩굴을 잘라 둥글게 말았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산군과 경만을 응시했다.
“허억! 흐억!”
다 죽어가는 허연 낯빛들. 사람이 바뀐 기분이었다.
서정문은 혀를 내둘렀다.
“이야. 진호가 완전 정글 체질이네. 그런데 그건 왜 챙겨?”
“저녁에 집을 빨리 지으려면 미리미리 챙겨 둬야죠. 아, 누나 그 쪽으로 가지 마세요. 그 나무 위에 구렁이 있어요.”
“뭣?”
김유빈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급히 물러났다.
고개를 위로 드니 정말 김유빈이 기대려던 나무에 구렁이 한 마리가 있었다. 갈색 피부에 검은 반점. 소름이 쫙 돋았다.
사람들은 급히 진호를 보았다. 진호는 구렁이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아, 점심에 구렁이구이 먹을까? 뱀 종류는 한 번도 안 먹어 봤는데.”
‘황재상 쉐프님이 뱀 고기는 닭고기 맛이 포함된 별미라고 했지.’
평소라면 질색했을 테지만, 지금은 먹음직스럽게 느껴졌다.
이 역시도 스킬의 영향인 듯싶었다.
흠칫!
‘뭐 이런 게 다 있어?’
사람들은 동시에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됐다.
서정문도 지금만큼은 웃을 수 없었다.
“아싸, 야생 마늘. 오, 버섯도 있어.”
사람들은 어이가 없었다.
연예인이 아니라 타잔을 데려다 놨다는 댓글이 보이는 듯했다.
“…… 진짜 정글 체질이네.”
* * *
이런 일이 한두 번 반복되자 진호는 일행의 선두가 되었다.
위험 요소를 먼저 알아차리니 당연한 일이었다.
길잡이는 아니었다.
‘극한 생존인데…… 극한 생존이어야 하는데…….’
여정호 PD는 나무 속껍질로 만든 냄비에서 끓고 있는 온갖 버섯과 마늘, 생각, 허브 등을 보며 허탈해했다.
‘리얼, 정글에 가자’ 역사상 이처럼 다채로운 재료를 채집해서 먹은 적은 없었다. 제작진이 알려 주는 거 아니냐는 시청자들의 원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캬! 완전 호화롭네, 호화로워!”
“버섯을 먹어서 그런가 힘이 불끈불끈 솟는데요?”
“아니, 정말 어렸을 때 정글에서 산 거 아냐? 뭘 이렇게 잘 찾아? 모글리야?”
진호는 맛있게 먹는 멤버들을 보며 흐뭇이 웃었다.
이제야 한 사람 몫을 해낸 기분이었다.
그렇게 밥을 먹은 그들은 자리를 정리한 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제작진은 목표 도착까지 대략 5일 정도로 잡고 있었다.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선두에서서 덩굴도 자르고, 길가에 난 허브도 뜯고, 열매도 채취하며 경쾌하게 걷던 진호는 숲의 명암이 조금 어두워질 때 돌연 고개를 들었다.
뒤따르던 서정문이 깜짝 놀랐다.
“왜 그래? 뱀 있어?”
“아뇨. 비올 것 같아요.”
공기가 변했다. 본능이 대비하라며 외치고 있었다.
“뭐?”
둘을 찍던 스태프들도 놀랐다. 마치 정글에서 태어난 사람 같은 진호의 말이다.
서정문은 허투루 듣지 못했다.
“지금?”
“아니요. 한 3시간 후? 그쯤일 것 같아요.”
거기다 제법 큰 비 같다.
“잠깐, 우리가 지금 여기쯤 왔을 테니까…….”
1일차 목표로 정한 곳까지 2시간은 더 걸어야 한다.
그때쯤이면 숲은 더없을 만큼 어두워진다.
조명이 있지만, 저녁에 정글을 걷는 건 자살 행위다.
한 번은 정말 큰일 날 뻔한 적도 있다.
입술을 깨물며 고민하던 서정문은 흔들리지 않는 진호의 눈동자를 보곤 결국 무전기를 들었다.
“정호야.”
쏴아아아아아-
아아 비는 전조도 없이 쏟아졌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쏟아지는 비는 무서울 정도였다.
뒤쪽 면이 진흙으로 막혀 있기까지 한 역대 최고로 큰 삼각형 움막에 앉은 그들은 밖을 보며 어이 없어했다.
정말로 비가 왔다.
그들은 파이어 스턱을 꺼내 드는 진호를 보았다.
이렇게 크게 지은 것도 진호가 적극 주장해서다. 뒤를 진흙으로 막는 것도 말이다.
“……쟨 정말 쉬지를 않네.”
“부지런한 게 천성이야, 천성.”
사람들은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생존 캠프에서부터 지금까지.
인정을 할 수밖에 없는, 진심으로 친해지고 싶은 동생이 생겼다. 그들의 눈빛이 뜨거운 온기를 머금었다.
서정문과 여정호가 슬그미니 다가왔다.
“진호야.”
“예?”
“이렇게 크게 지을 생각은 어떻게 했어?”
서정문은 감탄하고 있었다.
처음엔 약간 회의적이었는데, 모든 사람이 합심해서 달라붙으니 정말 만들어졌다. 2시간도 남아서 배수로까지 깊게 팠다.
뒤에 세운 벽의 진흙은 그걸로 만들었다.
여태껏 4시간, 5시간 노력해서 겨우 몸 뉘일 공간만을 지었던 그로서는 굉장한 충격이었다.
지금 이 집은 카메라맨 음향까지 총 12명이 들어왔는데도 공간이 남았다.
진호는 별거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미튜브 보니까 혼자서도 잘 짓더라고요.”
“미튜브?”
“네. 정말 리얼 그 자체로 서바이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진호는 자신이 찾아본 채널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극한 생존이라기에 혹시나 싶어 찾아봤었다.
미튜브에는 온갖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 사람도 혼자서 이런 움막을 하루 만에 짓는데, 저희 여섯 명이라고 못 지을 거 있나 싶더라고요. 저 빼고는 다들 베테랑이시잖아요.”
“아니, 그런 게 있어? 그럼 야자수 잎을 수십 장씩 묶어서 가져오는 것도 거기서 배운 거야?”
지붕으로 쓸 것을 대량으로 ‘묶어서’ 옮긴다.
여태까지의 ‘리얼, 정글에 가다’에서는 없던 개념이다.
정글에서의 생존이 목표지만, 어디까지나 출연자들이 이야기를 만드는 예능이니 말이다.
‘출연자들이 이만큼 노력을 한다’를 보여 주는 예능. 딱 그만큼만 보여 주는 예능. 그마저도 못 버텨해 울음을 터트리는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동안 서정문은 얼마나 화를 삭였는지 모른다.
지금은 달관해 버렸지만 말이다. 진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서 좀 아쉽죠. 거기선 토기도 만들고, 기와도 만들고, 숯도 만들고, 읍?”
“스톱. 거기까지. 우리 진호 착하지?”
식겁해 달려온 산군이 진호의 입을 막았다.
하지만, 늦었다.
“호오 ─.”
“그런 게 있단 말이지.”
“정호 형, 정문이 형. 그 생각 머릿속에서 지워. 나 안 해.”
“왜? 난 좋을 것 같은데?”
“나도.”
“야이 씨!”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진호도 웃음을 터트렸다.
여정호 PD는 그런 진호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일단 생존력만 놓고 보면 정문도 울고 갈 정도다.
거기다 절대 쉬지 않는 성실함에 독특한 창의력, 준비성까지 갖췄다.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즐기는 게 눈에 보였다.
여기에, 이전까지 외모를 담당했던 사뮤엘의 비쥬얼을 그림자처럼 흐릿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미모를 가지고 있다.
여태껏 잘한다는 소리를 들은 모든 연예인들의 장점만 긁어모아도 비교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첫날 멍 때리고 독이 든 열매를 먹은 게 정말 이해되지 않을 정도였다.
“진호 씨.”
“예?”
“우리 프로그램 고정 할래요?”
“……네?”
진호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지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 * *
비는 새벽 5시 즈음에야 몇었다.
진호도 그즈음에 몸을 일으켰다.
원래는 3시에 일어났지만, 할 일이 없어서 그냥 멍 때리고 있었다.
“아, 불 꺼진다.”
진호는 더듬더듬 손을 뻗어 장작을 가져와 불에 던져 넣었다.
다시 타닥타닥 타오르며 춤을 추는 불은 생각에 잠기게 하기에 충분했다.
메이저 예능 프로그램 고정.
욕심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좋아했고, 또 지금은 스킬과 사람들 때문에 더 좋아지게 된 ‘리얼, 정글에 가다’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혼자서 정할 수 없는 문제다.
일반적인 기획사와 다른 구조의 회사다 보니 다미앙과 직원들 의견을 들어 봐야 했다.
짧으면 한 달 반, 길면 두 달에 한 번 열흘에서 보름 가량을 이 프로그램만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 이런 진호의 입장을 이해한 여정호 PD는 언제든 연락을 달라는 말만 하고는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대범한 모습을 보였다.
“흠.”
“드르렁!”
“크르릉!”
집이 무너질까 걱정될 정도로 시끄러운 코골이 소리에 진호는 형수님들이 많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경만이 형은 솔로지.”
같은 솔로라도 자신은 21살이다.
피식 웃은 진호는 어제저녁 혹시 모를 생리 현상을 위해 스태프들이 두고 간 손전등을 들고 숲으로 들어갔다.
어제 야영지 근처에서 버섯과 열매들을 봤다.
오늘 아침을 위해 남겨 둔 것이다.
아침을 일찍 먹어야 어제 못 간 2시간의 거리를 상쇄시킬 수 있다.
스태프를 깨울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젯밤 일찍 잠자리를 펴게 되어 모닥불 앞에 앉아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과 사뮤엘 강, 허경만이 더러워진 옷을 갈아입으면서 근육질 상체도 보여 주었기에 분량은 넘쳐 났다.
“후우─.”
숲으로 들어오자 숲도 깨어나려는지 맑은 공기를 뿜어내며 온갖 소리를 내뱉었다.
캬우우! 끼익! 끽! 끼! 짹짹짹짹짹!
저 멀리 희미하게 들리는 맹수의 기상 울음부터 제법 가까이에서 들리는 원숭이 무리의 놀랐다가 무시하는 소리.
새가 먹이를 찾는 소리.
바람에 흔들린 나뭇잎이 물을 떨어트리는 소리.
깨어나는 숲은 경이 그 자체였다.
스킬에 의해 구분되는 온갖 소리는 감동 또 감동이었다.
“아아,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나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울리고 싶다.’
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나도 여기 있어.’
그 순간 그를 중심으로 숲이 조용해져 갔다.
그러다 이내 다시 시끄러워졌다.
자연이 그를 인정한 것이다. 자연의 구성원들이 그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것은 다시 엄청난 감동을 주었다.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
활짝 웃은 진호는 저 멀리를 보았다.
‘맹수…….’
보고 싶다는 욕망이 울컥 솟았지만,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잠깐 보려다가 황천길 가는 수가 있었다.
“아, 저기 있다.”
옷으로 만든 보따리는 빠르게 부풀어 갔다.
-칙! 진호 씨 어디세요?
“잠깐 아침 먹을 걸 채취하러 왔어요. 지금 갑니다.”
마침 해도 어스름 떠오르고 있었다.
진호는 야영지로 걸음을 옮겼다. 다들 일어나 있는지 야영지가 부산한 소리가 났다.
파스스!
“아.”
“음?”
진호는 갑자기 몰린 시선들이 멍해지자 살짝 놀랐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얼떨결에 인사를 받는 모습이 좀 의아했지만, 진호는 묵직한 어깨에 만족해하며 움막 안으로 들어갔다. 여정호 PD와 스태프들은 그런 진호의 등을 멍하니 좇았다.
“……찍었어?”
“네.”
카메라를 든 스태프들이 마른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