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78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4권 4화
진호의 고모부는 굉장히 의심스런 시선을 보내다 이내 누군가를 발견하곤 환하게 웃었다.
“오, 박 프로. 퇴근하나 봐?”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군기가 바짝 들어 인사하는 여성은 화장기 없이 수수하면서도 귀염상의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화장하면 엄청 예쁠 것 같아.’
그것도 정반대의 이미지가 될 것 같았다.
‘아니, 밤 약속이 엄청 많은 것 같은데?’
거의 지워진, 희미하지만 화려한 향수 냄새, 간과 신장에 문제가 생겼다는 증거인 입 주변과 볼에 난 여드름.
판사 다음으로 옷차림이 단정해야 하기에 신기가 불가능한 발목과 발등 부분에 좁고 얇은 띠를 두른 스트랩 힐.
외향적이고 술을 굉장히 좋아하는 게 틀림없었다.
“아, 이쪽은 내 처조카 이진호. 알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인기를 끄는 드라마 천 년의 노래에서 무이 역할로 나오고 있어.”
‘아차.’
이 스킬 역시 실시간으로 변하는 거라서 사람을 관찰하는 재미에 너무 정신이 팔려 버렸다.
2차 해금에서는 관찰력을 얻게 됐고, 그들의 직업을 알아맞히면서 그 이유에 대해 검색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녀가 남긴 흔적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었다.
“반갑습니다. 이진호입니다.”
“아, 네. 박서연입니다.”
박서연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그걸 목격한 고모부는 둘을 번갈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박 프로. 저녁에 약속 있어?”
“……없습니다.”
굳이 관찰력이 아니더라도 억지로 대답한다는 게 보였다.
“오, 잘됐네. 그럼 우리랑 저녁이나 같이하지. 내 처조카가 일식을 산다고 하거든. 돈 많이 버는 놈이라 얻어먹어도 괜찮아. 사건 파일로 도움도 줬잖아.”
그렇다면 신세를 갚아야 할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사무관이 고생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관찰한 게 맞는지 확인해 보고 싶기도 했다.
“그럼 같이 가셔야죠. 소주나 사케가 싫으면 와인 드셔도 돼요.”
‘아, 동요한다. 와인을 좋아하시나 보네.’
진호는 박서연을 향해 결정타를 날렸다.
“일식과 어울리는 와인도 많거든요.”
결정타가 맞았다. 눈동자가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어라?’
“……죄송합니다. 제가 끼어들 자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유혹을 이겨 냈다. 조금은 아쉬운 순간이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고모부는 허락 해 주었다.
처음엔 당연히 안 된다고 했지만, 정말 아무 현장이나 상관없고, 아무 짓도 안 하고 현장만 본다고 하니까 마지못해 허락해 주었다. 지난 일주일간 맨날 술 상대를 해 드린 효과가 발휘된 것이다.
“죄송합니다, 박 검사님.”
“……아닙니다. 반차 쓰게 돼서 좋습니다.”
‘잘생긴 사람에게 크게 데인 적이 있나 보네.’
멀찍이 거리를 두는 그녀의 모습에서 작은 경멸이 느껴졌다. 머리를 긁은 진호는 어느 주택 앞에 설치된 폴리스 라인을 넘었다. 주인이 없는 틈을 탄 빈집털이 사건이었다.
무서워 친척집에 있던 주인 내외는 오늘 오후에 온다고 했다. 현장엔 흙발로 걸어 다닌 흔적이 가득했다.
그 순간 진호의 눈앞에 얼굴 없는 투명한 형체가 나타났다.
‘아, 얻었다.’
[스킬 : 셜록의 후예]는 ‘현장이라고 인식、순간 갖춰진 정보와 단서를 통해 범인을 투영시킨다. 일종의 이미지 트레이닝이다. 권투 선수가 쉐도우 복싱을 할 때 상대를 투영시키는 것 같은.그 외에도 여러 부수적인 능력들이 있다.
움직이는 투명한 형체를 따라 눈동자를 움직이던 진호는 이내의 아해졌다.
“박 검사님. 범인이 초범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렇습니다. 경찰은 방황하듯 번잡하게 돌아다닌 흔적과 흙 묻은 발자국으로 보아 초심자일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고, 잡은 피의자도 동종 전과가 없지만 여러 물의를 일으켰던 이였습니다. 현장에서 반항도 거겠죠.”
당시 이 집의 작은 불빛조차 비추지 않았다고 했다.
‘아닌데? 이 사람 꾼인 것 같은데? 다급한 흔적이 전혀 없어.’
게다가 이 더운 날 장갑을 껴서 지문이 없다.
잠시 고민하던 진호는 확신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 사람이 소파에 앉아서 쉬기도 하나요?”
“……예?”
거실 소파로 걸어간 진호는 마치 맹인이 벽을 짚어가며 걸은 듯한 흔적 중 발자국 두 개를 가리켰다.
“여기 좀 보세요. 한 번 앉았다가 일부러 몸을 비틀어 일어난 흔적 같지 않아요? 그리고 이쪽 안방의 동선. 여기 문가에 있는 화장대로 갔던 사람이 바로 등 뒤의 장롱으로 향했죠. 이렇게 벽을 따라 움직이지 않고. 거실 모습과 안 어울리잖아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고모부가 준 사건 파일에 똑같은 패턴의 사건이 하나 있다.
이것 때문에 확신했다.
“자, 잠깐! 정말입니까?”
“네, 확실해요. 아마 5년 전 사건 일 거예요. 똑같은 빈집털이였지만, 목격자와 지문이 있어서 3일 만에 잡았죠. 당시 거주지는 옆 동이었고요.”
진호는 사건 파일 번호를 말했고, 그녀는 다급히 수사관에게 연락했다. 잠시 후 다시 연락이 왔고, 박서윤은 멍하니 진호를 보았다. 진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스킬 : 셜록의 후예] [범인을 가리키는 단서는 언제나 숨겨져 있다.]2.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며칠 후, 회사가 뒤집어졌다.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진호를 범죄 예방 홍보대사로 위촉하겠다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일을 한 겁니까?”
“글쎄요?”
무슨 일을 하긴 했다.
진범이 잡히고, 피의자는 무죄가 되었지만 연루된 무전취식이 있어서 다시 구속되었다. 경찰 폭행죄가 추가돼서 말이다.
어찌 보면 경찰 검찰 둘 모두 망신을 당할 뻔한 사건이었다.
덕분에 고모부와 박서연 검사는 금일봉을 하사받았다.
그런 속사정을 말할 수 없는 진호는 어깨를 으쓱였고, 다미앙과 직원들의 의심 가득한 눈빛은 더욱 짙어졌다.
“제가 천사남이라 불리고, 마침 고모부가 서부지검 부장검사로 계시잖아요.”
이해될 듯하면서도 이해되지 않은 직원들은 찝찝해하면서도 언론 홍보를 준비해 갔다.
‘크리미널 크라임’ 촬영 날짜가 됐다.
이미 사전 미팅이 아닌 1회 촬영을 모두 마친 후 역할을 분배받았던 진호는 스타일리스트 최 실장과 함께 촬영장소로 향했다.
1회를 촬영했는데, 출연자와 연출진이 기 싸움을 한 것이었다. 그게 출연료 인상에 도움이 되는 행위 중 하나라고 했다.
경비복을 입고 나타난 진호의 모습에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경비가 왜 이렇게 잘생겼어? 여기가 어디 갤러리라고?”
“그런데 피곤해 보이네? 어제 못 잤어?”
여자 출연자 두 명 모두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다.
무슨 일인지 축 처진 어깨에 굽은 등, 피로에 전 진호의 낯빛 때문이었다. 다른 출연자나 연출진도 걱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영진은 아니었다.
“푸하하하하! 와! 이번 시즌 진짜 대박이다. 나 진호가 범인하면 포기할래. 못 잡아.”
사람들이 의아하게 쳐다볼 때 장영진은 진호를 향해 손을 저었다.
“체력 좋은 거 아니면 벌써부터 힘 빼지 마. 힘들어.”
“아, 그렇죠?”
굽었던 허리가 펴지고 얼굴에 빛이 나자 사람들은 입을 떡 벌렸다. 개그맨 김동민이 소리를 질렀다.
“아, 이씨! 연기를 그렇게 빡세게 하면 어쩌라는 거야!”
“역할에 몰입하는 거죠. 그 편이 더 재밌잖아요.”
“재미없어! 그리고 경비원은 똑똑 하지 않을 텐데!”
“한국대 나온 경비원이 있을 수도 있죠. 형, 어제 술 많이 마셨죠? 눈도 벌겋고, 입가에 토한 자국 남아 있어요. 냄새도 나고요. 누구랑 마셨어요? 친구? 여자 친구? 후배? 아, 친구들이시구나?”
“헉!”
김동민은 진심으로 경악했다.
구토를 했지만, 분장을 하면서 흔적을 지웠기 때문이었다.
김동민이 맞장구 치는 거라 생각 했던 사람들도 놀랐다.
“진짜야?”
진호는 아나운서 출신의 박지연을 보았다.
“어제 남편분이랑 외식하셨죠?”
“……그 레스토랑에 있었니?”
“손등에 펄이 미세하게 남아 있어요. 누나 볼을 만진 사람이 다시 누나 손을 잡은 것처럼.”
그녀는 그대로 굳어 버렸고, 진호는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주춤 물러섰다.
이미 시작했던지라 이쪽을 카메라로 찍고 있던 연출진도 당황했다.
진호는 씩 웃었다.
“저 관찰력 좋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아요.”
연출진마저도 마른침을 삼켰다.
철컹!
‘크리미널 크라임’의 명물인 좁은 철창 안에 갇힌 박지연이 허탈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논리와 증거가 너무도 명확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던 질문들.
시즌 1, 2, 3에서 활약을 펼쳤던 그녀로서는 아무것도 못한 채 잡혀 버린 이 상황이 너무도 억울하고 서러웠다.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서 실수를 했는지를 기억해 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탐정 장영진 200만 원, 나머지 전원 100만 원씩 획득하셨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그렇지!”
“아자!”
“으하핫! 이제 진호가 찍는 사람만 쫓으면 되겠구나!”
김동민의 외침에 연출진의 초조한 시선이 틀어박혔다.
진호는 김동민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러면 너무 재미없잖아요.”
사람들이 큰 동요를 보였다.
“재미있어! 엄청!”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안 해! 하지 마-!”
그렇게 녹화는 끝났다.
“아흐으! 얄미워! 너 다음에도 이러기만 해!”
“흐흐흐. 안녕히 계세요!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가볍고 경쾌한 걸음으로 스튜디오를 나선 진호는 바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정 대리가 바삐 뒤따랐다. 최 실장은 택시를 타고 회사로 복귀했다.
“정 대리님 얼른 출발해 주세요.”
녹화가 예정보다 빨리 끝나기는 했지만, ‘천 년의 노래’ 촬영장에 가서 분장까지 받으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거기다 오늘은 무이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신이 있는 날이었다.
“오케이!”
정 대리는 차를 바로 출발시켰다.
부우웅!
“키야! 진호야, 너 추리를 원래 그렇게 잘했어? 네 질문과 논리에 다들 아무 말도 못하는데…… 앞으론 내가 어젯밤에 뭘 했는지 알아차려도 그냥 넘어가 주라. 부탁 한다.”
잘해지게 된 거다.
“흐흐흐. 마지막 화까지 고정이라고 했던가요?”
“그렇지. 짧으면 8화, 시청률 좋으면 12화로 프로그램이 끝날 거야.”
일단 적어도 2개월 고정이었다.
미소 지으며 눈을 감은 진호는 몸을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오늘은 아주 격한 액션 신을 찍어야 했다.
천 년의 노래에서 고려 은막의 배후, 이인겸은 결국 이성계, 아니 정확히는 구미호와 정도전의 손에 몰락한다.
이인겸을 주인으로 삼은 무이는 결국 주인을 지키지 못하고, 치열한 항쟁 끝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인겸의 명령에 의해 ‘전대 삼한 제일검’을 벤 그라고 해도 천 년을 살아온 구미호와 수많은 군사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 무이는 죽지 않는다.
정확히는 구미호가 여주를 위해 살려 둔다.
이후 여주인 누이의 설득에 감화 된 무이는 썩어 빠진 고려를 무너 트리고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새 나라를 만들려는 이성계의 편이 되어 고려를 끝내기 위해 움직인다.
구미호에게 이름도 받는다.
“굳셀 무에 그 옛날 동방을 수호 하던 일족의 이름 휼을 따 무휼. 이제부터 네 이름은 무휼이다.”
“무휼…….”
무이, 아니 무휼은 구미호를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좋군.”
“커엇─!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진호도 앞의 레오부터 다른 선배 연기자들에게 인사를 했다.
“수고했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인사를 먼저 건네 올지 몰라서 잠시 버벅거렸던 진호는 레오가 멀어지자 미간을 좁혔다.
“왜 저렇게 부끄러워해?”
한 가지만 해줬으면 하는 소망이었다.
물론 예전보다는 지금이 훨씬 낫지만 말이다.
“어, 잠깐 오지 마. 너 뭐 알았어도 말하지 마!”
“어허, 그러는 거 아냐. 입 다물어야 해.”
배우나 스태프들이 몸을 피한다. 다들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아주 작은 진심이 숨어 있다.
‘크리미널 크라임’의 파급력이 너무 센 듯했다.
진호는 입맛을 다셨다.
그 순간 하나의 외침이 촬영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시청률 40퍼센트 돌파! 30화 시청률 40퍼센트 돌파했습니다!”
“우아아아아!”
“그렇지 ─!”
드디어 고점을 돌파했다.
히죽 웃은 진호는 어두운 밤하늘을 보았다.
달은 높고 컸고, 찬 바람이 불어왔다.
어느덧 여름이 물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