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101)
〈 101화 〉 101 레벨과 경지
* * *
1.
2세대 각성자.
몬스터와 정부를 동시에 적으로 두고 가장 처절한 전장을 넘어온 역전의 용사들.
신성곽은 그런 이들 중의 한 명이었다.
‘요즘 것들은 절대로 모르겠지. 레벨이 높다는 것이 얼마나 잔혹한 이야기인지.’
돈벌이를 위해서 게이트에 드나들고
사고 싶은 명품이 있다고 몬스터를 토벌하는
그런 자유롭고도 나약한 3세대 각성자들은 결코 모른다.
각성자를 소모품처럼 갈아 넣던 정부와
정부에 맞서 일어선 각성자협회의 사투를.
고등급 각성자를 죽이는 것이
게이트를 이루는 던전의 보스들을 잡는 것보다
훨씬 편리하게 대량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음을.
지금은 스타각성자라 추앙받으며
대중의 인기와 사랑, 부와 명예를 누리는
철없는 각성자들도
불과 10년 전에만 활동했으면
손쉽게 잡을 수 있는 보스몬스터 취급이었음을.
‘젊은 것들은 절대로 모르겠지. 우리들의 손으로 그런 지옥 같은 시대의 끝을 고했으니까.’
협회소속 각성자들과 정부소속 각성자들.
국가내란에 준하는 처절한 전쟁 속에서
각성자들은 상대진영의 각성자를 죽이고
대량의 경험치를 얻었다.
오래 싸우고 오래 살아남은 이들일수록
얻는 경험치는 더 많았다.
‘2세대 각성자들의 문제는 그렇게 시작되었지.’
던전보스를 잡는 것과 같은 경험치를 얻지만
던전보상은 얻을 수 없는 내전의 결과.
각성자들은 레벨은 올랐지만
그에 걸맞은 전리품을 얻지는 못했다.
상대가 사용하던 아이템을 얻더라도
태반은 전투 중에 반파되어있기 일쑤였고
자신의 직업에 맞지 않거나
사용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장비도 태반이니.
레벨이 오르더라도
그 레벨에 합당한 전투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가혹한 딜레마가 찾아온 게지.’
정상적인 사냥을 한 각성자들이라면
보다 상위의 사냥터에 진입하더라도
착실히 성장하며
각성자로서의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다.
그러나 정부와의 전쟁 이후
레벨만 높아져버린 2세대 각성자들은
레벨을 빠르게 올리려면
한층 높은 사냥터에 진출해야 했지만
그곳에서 견딜 수 있는 스펙이 부족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종말점’이라는 개념이 알려졌다.
‘각성자가 갈고닦은 능력이 너무 높아진 레벨로 인해 스스로를 파멸시키기 시작하는 현상.’
레벨 업을 하면 일어나는 자동수복현상으로
일시적인 건강과 무위를 되찾을 수는 있어도
한 번 종말점에 진입한 신체가
종말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은 없다.
레벨을 올리면 당장은 건강이 좋아져도
종말점의 마력병이 악화되는 속도는 더 빨라지는
마치 마약과도 같은 끔찍한 악화의 굴레.
“안녕하세요. 어르신 혼자 오셨나요?”
“길드장을 봤으면 하는데. 안내해줄 수 있겠나?”
“약속은 따로 안 잡으셨죠? 그럼 여기 방문록에 간단한 신상정보부터 기재해주세요.”
신성곽은 그 굴레로부터 벗어나고자
9년을 악착같이 달렸고
1년을 포기하고 주저앉았다.
“다 썼네.”
“어디보자… 어르신 성함은 신성곽에 명호길드에서 나오셨고, 각성유무는 각성했음, 레벨은 249이시고…… 어? 249?”
249레벨.
그 결과물이 바로 이것이었다.
“어, 어르신. 레벨은 장난으로 적으시면 큰일 나세요. 제대로 적으신 거 맞나요? 나중에 막 25레벨 같은 24.9레벨 이러시면 큰일 나요!”
“허허. 내 집에서 이 신성곽의 이름과 얼굴도 모르는 이들과 마주하는 날이 오다니. 역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노릇이야.”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너털웃음을 짓는 신성곽.
그의 발치가 은은히 진동하며
접수대 위에 놓인 볼펜이 굴러떨어졌다.
“어어? 지진인가?”
당황한 접수원이 볼펜을 줍기 무섭게
연필꽂이가 옆으로 쏟아지고
필기구가 와르르 책상 밑으로 굴렀다.
“어어? 어어어?”
당황한 접수원이 허겁지겁 손을 뻗으며
쏟아진 필기구들을 주웠지만
와장창
우당탕탕
“꺄아악!”
모니터가 엎어지고 책장의 책들이 쏟아지며
더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지진이 거세지자
끝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엎드렸다.
드드드드득━
세상의 종말이 찾아오는 것처럼
그칠 줄 모르고 점점 거세지는 진동.
신성곽은 이대로 무력시위를 이어나갈 작정이었다.
‘길드가 무너질 기세로 흔들리는데 모르는 체 하지는 못하겠지.’
네 발로 걸어나와라.
어디 그 뻔뻔한 낯짝을 드러내봐라.
길드원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당하게 해주마.
“어르시이인, 빨리 책상 밑으로 오세요오오!”
길드장을 보기 전에는 멈추지 않을 작정으로
능력을 전개하던 신성곽.
그의 얼굴 위로 생경한 감정이 일었다.
‘어찌 이리도 눈치가 없을 수 있는가. 저를 욕보인 당사자를 돕겠다고 멍청한 소리나 하고 자빠졌다니.’
다시 보니 몸은 단련된 흔적이 있지만
각성자 특유의 마력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방문객을 맞이하는 중요한 자리에
마력도 각성하지 못한 일반인을 세워두다니.
신생길드다운 허술한 운영에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흥이 식는군.’
돈 몇 푼 받고 방명록이나 작성하는 힘없는 일반인에게 무슨 죄가 있으랴.
신성곽의 마음이 누그러지자 지진도 멎었다.
“무슨 일입니까! 게이트라도 나타난.. 허억!”
마력반응을 감지하고 급히 달려온 민우성.
그가 신성곽을 알아보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 드디어 날 알아보는 놈이 나타났군.”
뒤따라 나온 소경석도 표정이 잔뜩 굳었다.
명호동에서 활동하는 협회 소속 각성자가 신성곽의 인상착의도 모를 리가 없었다.
“길드장은 오고 있느냐?”
“곧 나오실 겁니다.”
소경석은 정신줄 놓고 날뛰려는 심장을 가라앉히느라 미칠 것만 같았다.
‘저 인간이 갑자기 미쳐서 날뛰기라도 하면 얼마나 버틸 수 있지?’
소경석의 레벨은 182.
C급 각성자중에서는 나름 상위권에 속하지만
급이 다른 신성곽 앞에서는
일초지적이라도 될지 의문이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를 생각할 게 아니라
버티는 게 가능한가를 논해야 하는 수준이다.
‘제발 묻어가게 해줘 제발 묻어가게 해줘 제발 묻어가게 해줘!’
민우성의 레벨은 156.
그의 각성자 등급이 올라서
보다 강한 능력자들의 비밀이 읽히는 걸 경계한
협회 간부의 협박 때문에
민우성은 C급을 겨우 넘긴 레벨에 정체되었다.
하물며 전투능력도 아닌
마인드리딩 능력을 각성한 그가 신성곽의 표적이 된다면 한 순간에 목이 날아갈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으잉? 저 할아버지는 누구세요?”
주아영의 레벨은 1.
나름 각성자가 되기 위해 성실히 노력하며
각성자학원에서 이런저런 지식을 쌓았지만
명호길드의 신세대 실세라고 불리던
부길드장 김창식의 레벨이라면 모를까,
2세대 고수인 신성곽의 레벨까지 알아차리기엔
그녀의 식견이 부족했다.
“하, 함부로 말을 거시면 안 됩니다!”
“우성씨. 아영양 데리고 뒤로 물러나계세요.”
“어엇! 왜 그러세요. 뭔데 그래요? 저도 구경하고 싶단 말이에요.”
도망칠 명분이 주어지자마자 민우성은 냅다 주아영을 붙잡고 건물 안으로 피신했다.
“무슨 연유로 이러시는지는 몰라도 여기서 이러신 거 저희 길드장님이 아시면 엄청 화를 내실 겁니다.”
“그거 다행이군. 그 겁 없는 길드장의 버릇을 고쳐주려고 이렇게 나왔으니 말이야. 헌데, 자네들 길드장이 A급이라도 되나?”
“…C급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소경석도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는 건 이해하고 있었다.
각성자의 등급은 50레벨을 기준으로 승급이 이루어진다.
1 ~ 50레벨이 F급
51 ~ 100레벨이 E급
101 ~ 150레벨이 D급
151 ~ 200레벨이 C급
201 ~ 250레벨이 B급
251 ~ 300레벨이 A급
레벨에 따른 등급체계를 감안하면
신성곽은 명실상부 B급 최상위이자 준A급 강자.
50레벨 단위로 발생하는
마력의 대폭 향상과 능력강화는 없더라도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는
능히 A급의 전투력을 발휘하거나
그 이상의 역량도 보일 수 있는 진정한 강자다.
‘해응응 길드장도 예사로운 분은 아니지만, 과연 저 신성곽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편의점에서 마력폐기물을 이용해서
주아영에게 손을 쓴 것이 명호길드였다는
잘못된 판단에서 비롯된 명호길드 고위임원습격.
세간에서는 테러사건이라고 알려진
해응응의 신성곽 저택습격사건에 대해서는
그도 어느 정도는 전해들은 바가 있지만
신성곽은 그날 이후로 길드에 복귀하여
권력구도를 모조리 갈아엎으며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정말로 해응응님이 신성곽을 상대로 이겼다면 저렇게 활발한 활동이 가능할까?’
소경석은 믿지 못했다.
고작 한 팔만 다쳐서 돌아왔으니
지지는 않았겠지만
역으로 이기지도 못하는
무승부로 끝난 습격이 아니었을까 예상할 뿐.
‘오늘이야말로 결판을 내러 왔구나!’
이전과 같은 장소.
소유권만이 달라진 해남파 길드본부.
바로 이곳에서
일전에 당한 굴욕을 갚고자
이번에는 역으로 신성곽이 쳐들어왔다.
거슬리는 C급 잔챙이인 자신 따위는
조금만 심기를 거슬러도 피떡이 되고도 남았다.
‘하지만 해응응님도 평범한 C급은 아니지.’
초기각성 C급.
이런 엄청난 기록을 세운 각성자들은
훗날 높은 확률로 A급까지 올라간다.
시작부터 C급 각성자에 비견될 정도로
전반적인 능력치와 마력 수치가 높고
높은 마력에 동반되는 강한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말이 좋아 C급이지,’
제 동생의 등급이 C급으로 올라갔다고
그 자리에서 각성자 등급을 끌어올릴 수 있는
본래의 경지가 예상도 가지 않는 이 괴물을
어찌 곧이곧대로 C급이라고 믿겠는가.
각성자 라이센스에 박힌 C급 글자 따위는
해응응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빌런조직의 숨은 실력자. 양지에 올라온 정체불명의 고수. 오늘이야말로 해응응님의 진가를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르겠어.’
양반은 못 되는지
소경석이 그녀를 생각하기 무섭게
등 뒤에서부터 훅 불어오는 청량한 산들바람.
자박. 자박.
걸음소리 하나도 예사롭지 않은
걸음마다 코가 편안해지는 향기를 동반하는
이제는 고유한 시그니처와도 같은
저 차림이 아니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지는
죽립에 피풍의, 장삼 차림의 그녀.
“길드장님. 명호길드의 전대고수 신성곽이 찾아왔습니다.”
“너는……!”
신성곽과 해응응.
그들의 두 번째 조우가 이루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