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102)
〈 102화 〉 102 레벨과 경지
* * *
2.
두 사람은 서로를 한 눈에 알아봤다.
한쪽은 사극에서 갓 튀어나온 무사복 차림에 붕대로 손목을 감싼 여자.
다른 한쪽은 대낮에도 후드를 뒤집어쓰고 붕대로 붕괴하는 피부를 감싼 갈라진 피부의 남자.
‘저 손목붕대. 밤중에 언뜻 보았지만 그때 본 것과 같은 방식으로 묶었군. 그 여자가 틀림없어.’
‘붕대를 감아야 할 정도로 얼굴 사정이 말이 아니었던 남자. 그때 그 남자가 틀림없군요.’
민우성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밖에도 붕대보다 눈에 띄는 특징이 넘쳐나지 않느냐고 황당함을 금치 못했을 식별방법.
방법이야 어찌되었건 둘은 서로를 발견하자마자 동요를 금치 못했다.
‘좀 전의 진동이 저 사람의 것이라면, 역시 화가 난 거겠죠?’
해응응은 신성곽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편의점에 몬스터를 부르는 마력폐기물을 숨겨서
자칫 아영이가 죽을 수도 있게 하였던
더러운 수작질의 주범을
명호길드라고 여기고 쳐들어갔었지만
막상 밝혀진 진상은 보험금을 노린 편의점사장의 보험사기.
저 불쌍한 전대고수는
아무런 죄도 없이 그녀와 칼부림을 벌이고
집은 반파되었으며 급매물로 내놓기까지 했는데
그것을 원수나 다름없는 그녀가 돈 한 푼 안들이고 무료로 영구임대까지 받았다.
부처가 아닌 이상에야
이건 화가 나는 게 당연한 노릇이었다.
‘설마 이 신성곽이가 함정에 빠진 건가?’
신성곽은 자신이 이 자리에 온 경위를 떠올렸다.
각성자학원에서 대거 이탈한 연습생들.
그들을 빼돌린 의문의 신생길드.
예전 집을 길드본부로 삼은 괘씸한 놈들은
놀랍게도 자신을 습격했던 암살자를 길드장으로 두기까지 했다.
이 정도로 수상쩍은 정황을 맞이하고도
함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쪽이
도리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자네, 아주 무서운 사람이군.”
[일전의 일은 미안하게 생각해요.]“언제부터 이런 계획을 꾸몄지?”
“역시 그렇게 나오나. 하기야 제 입으로 말할 것이었으면 이런 일을 저지르지도 않았겠지.”
신성곽은 해응응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화가 많이 났다.
“그날, 결자해지를 논하였던 건 젊은 것들이 친 사고를 수습하라는 순수한 의도가 아니었군.”
그가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분노를 넘어 배신감에 가까웠다.
“원한관계로 위장한 저택습격 이후, 내 유일한 자랑거리이자 아끼던 저택은 엉망진창이 되었네. 수리할 엄두조차도 나지 않았지.”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몸으로 현역복귀까지 각오한 마당에 거금을 들여 고치기도 애매했으니, 결국 매각을 결심했지.”
“하지만 저택을 매입한 자는 처음부터 자네의 조직이 보낸 이였고, 모종의 루트를 걸쳐 결국 저택의 소유권은 자네의 손에 들어왔지.”
그럴싸한 경고도, 야간의 습격도.
결국은 저택을 얻기 위한 포석이었을 뿐.
“처음부터 이 저택부지의 진가를 눈치 채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치밀한 짓을 벌일 이유는 없었겠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시치미 떼어도 소용없다. 길드장 이명호가 전우였던 날 위해 이 저택부지의 용지변경과 건축허가를 자유롭게 풀어준 것은 이미 알지 않나.”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해응응이 저만치 뒤에서 눈치를 보는 소경석을 돌아보았다.
첩보에 능한 소경석도 이런 내밀한 정보까지는 입수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저었다.
명호길드의 2세대 각성자 신성곽.
길드설립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원년멤버이자
창립공헌자이기도 한 그에게
명호길드의 길드장 이명호는 많은 혜택을 제공했으며, 이 주택부지 또한 그런 혜택 중 하나였다.
악착같이 현역시절에 구르며 번 돈으로
직접 구매한 저택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혜택이 존재했다.
그가 자신만의 집을 만들고 꾸미는데
흥미가 붙었음을 눈치 챈 길드장 덕분에
모든 종류의 건축허가가 내려진
건축법이나 토지법 등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땅이 된 것이다.
“그런 법 중에는 물론 길드난립방지법도 포함되어 있지.”
무분별한 길드난립을 방지하고자
까다로운 기준이 갖추어진 길드설립요건.
세간에 알려진 조건들 외에도
정부의 길드설립승인허가와 관련된
중대한 비공개 요건이 하나 더 존재한다.
“건물부지에 따른 길드설립허가속도. 너희가 노린 건 이 부분이 아닌가?”
상업빌딩에 입주하는 길드사무소는
입주한 사무소의 면적이 아닌
건물의 전체 연면적,
즉 각층 바닥면적의 합계에 따라서
심사시간이 길어진다.
해당 건물의 다른 입주자들의 동의를 받고
길드사무소가 들어섬에 따라
직간접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충분히 고지하고
인지시키기 위한
법적인 시간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였다.
“라고 핑계는 만들었지만 실상은 협회의 승인을 앞당기고 싶다면 뇌물을 바치거나 기여도를 채우라는 뜻이지.”
물론 그 돈을 곧이곧대로 협회에 바치는 이들은 드물었다.
뒷배가 없는 길드들은 보통 기여도로 떼우고
뒷배가 있는 길드들은 협회에 압박을 넣어 강제로 심사시간을 앞당긴다.
“이런 흉계를 꾸밀 정도로 치밀한 자네에게 뒷배가 없을 리는 없지. 그런데도 이 저택부지를 노린 건 길드설립허가의 제약에 해당되지 않는, 언제라도 즉시 길드를 세울 수 있는 이 땅을 이용해서 뒷배를 감추려던 목적이 아닌가!”
소경석의 눈에 깨달음의 폭풍이 몰아쳤다.
‘그렇군! 역시 해응응님은 빌런조직의 일원이 확실해. 떳떳하게 밝히기 힘든 뒷배가 있어서 이 저택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습격하신 거였어!’
빌딩이 아닌 다른 곳을 길드사무소로 삼으면 되지 않느냐고 의문을 품어도 무의미했다.
어떤 종류의 시설에 사무소를 들이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든 뇌물을 받아내기 위한
협회의 꼼꼼한 덫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까다로운 기준들로부터
예외가 될 수 있는 장소는
이 명호동에서는 오직 한 곳.
바로 이 신성곽의 저택부지였다.
“그날 날 죽이지 않은 이유도 이제야 알겠어. 날 직접 죽이면 저택부지의 소유권이 다른 누군가에게 넘어가니, 그런 곤경을 겪지 않도록 적당한 명분을 만들어야 했던 게야.”
“겸사겸사 현역생활로 복귀하면 자주 들르지도 못할 저택의 수리를 위해 큰돈을 들이지 못할 것도 눈치 챘겠지.”
“결자해지. 그 알량한 명분으로 날 우롱해서 즐거웠던가?”
기가 막힐 정도로 그럴싸한 구상.
누명을 써서 억울해진 해응응이
수첩에 글씨를 쓰는 속도를 높였지만
아니에요! 하는 대답을 보여주기도 전에
신성곽은 더 빠르게 제 할 말만 계속 했다.
“이렇게까지 기를 쓰고 정체를 숨겨가며 명호동에 침투한 이상, 그 목적도 분명하군. 이 명호길드를 통째로 집어삼킬 속셈임이 틀림없구나!”
2세대 각성자로서
온갖 더러운 흉계를 겪어왔던 신성곽은
자연스레 적이 꾸밀법한 흉계 또한
역으로 계산해낼 수 있는 재주가 생겼다.
그리고 지금.
필요 이상으로 영민한 그 두뇌는
충격적인 가설을 떠올려내었다.
“너희의 계획이 발각되었다간 명호길드의 집요한 견제에 손발이 묶일 테니, 이런 교묘한 모략을 세웠던 것이겠지.”
[오해에요. 저는 그럴 생각은]“처음부터 정체를 감추려고 조직과 관계없는 인간들과 관계를 맺고 외부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길드를 만들었을 테고.”
[대답 좀 하게 천천히 말하]“그 결과가 저 민간인들과 풋내기 각성자들, 그리고 이 해남파라는 길드가 아닌가!”
계속되는 윽박질에
단단히 열 받은 해응응도
어느덧 미안한 마음보다 빡침이 커졌다.
스르릉
말로 해서는 안 들어먹겠다는 생각에
기어이 검을 뽑아든 해응응.
일단 때려눕힌 다음에
천천히 필담을 나눌 작정이었지만
직원들은 이 흥미진진한 전개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한 마디씩 떠들었다.
“우리 길드장님 엄청 똑똑하시다.”
“대애박.”
“그럼 우리도 뒷배가 있는 거야?”
상상의 꿈나래를 펼치는 철없는 직원들과 달리
나름 협회의 프리랜서로 뛰며
더러운 임무도 몇 번 받아본 소경석은
당장 도망쳐야 하는 건 아닐지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칼을 뽑아든 해응응의 모습이
어째 비밀이 들키자 살인멸구를 결심하는
비정한 모습처럼 비쳤기 때문이다.
“여기서 싸우시면 안 됩니다! 안 그래도 테러소동으로 분위기도 안 좋은데 또 싸움이 벌어졌다간 뒷수습이 불가능할 겁니다.”
소경석은 나름 영리하게 머리를 썼다.
하지만 열심히 대답을 적다가
지 할 말만 혼자 계속 하는 신성곽 때문에
다섯 번도 넘게 수첩을 찢은 해응응은
그의 말을 듣고 싶지가 않았다.
“어르신도 고정 좀 하시죠. 여기서 일이 커지면 곤란해지는 건 피차 마찬가지 아닙니까.”
“날 이렇게까지 욕보여놓고도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가!”
“여기서 싸움 나면 어르신이 죽을지도 모릅니다.”
대충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소경석의 한 마디가
신성곽의 머릿속에 깨달음을 불러왔다.
‘잠깐. 여기서 정말로 싸움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암습이라고는 해도
한 차례 정면으로 붙어서 패배했던 그에게
싸워서 이긴다는 승산은 희박하다.
패배할 확률이 클뿐만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더라도
과도한 능력사용으로 인해 마력병이 크게 악화될 건 틀림없다.
그 뒤는 거동조차 불가능해져서
길드의 업무조차 돌볼 수 없는 신세가 된다.
명호길드의 이전 실세였던 파벌은 좌천시키고
현 실세인 그마저도 죽거나 쓰러지면…….
‘아뿔싸!’
길드를 이끄는 이 하나 없이
적성길드의 습격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그 어느 때보다도 취약해진 상태로
이런 무시무시한 흉계를 구사하는 적들을 상대로
명호길드가 위기를 넘길 가능성을
신성곽은 도저히 떠올릴 수가 없었다.
‘이 자리를 모면하지 못한다면 명호길드가 망하는 것도 각오해야한다!’
칼침 한 번만 놓으면 안 되냐며
불만스레 소경석을 흘겨보는 해응응의 시선마저
신성곽의 눈에는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거사를 그르친 수하를 힐난하는 것으로 보였다.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길드의 명운까지 걸린 풍전등화 같은 위기!
도무지 역량의 한계를 가늠할 수 없는
저 무시무시한 처자를 배후로 둔 세력과
그에 맞서야 한다는 과도한 중압감!
“끄으으……!”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린 신성곽의 심장이
돌연 말썽을 일으켰다.
가슴을 움켜쥐며 괴로운 신음을 토해내다가
쿵 하고 무릎을 꿇고 헐떡이는 그.
“???”
“저분 갑자기 왜 저래?”
“설마 우리 길드장님이 암습을 한 건가?!”
“에에엑! 검을 뽑는 모습도 안 보였는데!”
“그 정도로 고수시라는 거지.”
물론 해응응도 영문 모를 헛소리다.
신성곽을 쓰러뜨린 건 암습이 아니라 과도한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이었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구급차를 불러야..”
[부르지 않아도 괜찮아요.]“길드장님?”
해응응이 못마땅한 얼굴로 신성곽을 내려다보다가 손을 풀었다.
[멋대로 자꾸 말을 끊은 건 괘씸하지만 이것도 나름 기회라면 기회겠죠. 제가 직접 치료하겠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