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118)
〈 118화 〉 118 도도한 아라크네
* * *
4.
아나톨리아 서부지방의 고대왕국 리디아.
올림포스의 강대한 신들이 창궐하던 시절.
리디아 지방에는 아라크네라는 한 직공 기술자가 살고 있었다.
신보다 뛰어난 기술을 지닌
최고의 기술자로서의 자부심을 지닌 그녀.
신에게 공경심을 보여라. 그것만이 네 죄를 용서받을 유일한 길이다.
난 여신도 두렵지 않아. 얼마든지 오라고 해. 여신과 직접 겨루더라도 이길 자신이 있으니까.
아라크네는 오만함을 보이지 말고 신을 공경하라는 신의 전령의 뜻을 무시했다.
오셨다.
여신은 그녀의 오만을 징벌하고자 몸소 행차했고, 아라크네와의 길쌈대결을 벌였다.
신에게 도전한 자들의 최후를 수놓은 아테네와 신들의 수치스러운 행적을 직물로 짰다.
하나의 흠조차도 찾아낼 수 없구나.
인간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실력이로다.
아쉽도다. 실로 아쉬워. 이만한 실력을 지니고도 제 앞날을 스스로 닫다니.
심사위원을 자처하여 동행한 신들마저 탄식을 금치 못할 실력.
아라크네는 실력을 인정받았다.
신의 전문분야에서 대결에 승리한, 올림포스 신들의 집권 이래 최초로 자신의 실력만으로 신을 이긴 인간이 되었다.
너의 지혜가 그 실력의 절반에만 닿았더라도 피할 수 있는 비극이었을 것을. 너의 어리석음의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신을 이긴 인간.
질서를 거부하는 이단아.
신들은 그런 아라크네를 용서하지 않았다.
대결에서 패배한 기술과 전쟁의 여신, 아테나.
그녀가 아라크네를 저주하며 거미로 만들어도.
어느 한 명도 그녀를 비난하지 않았다.
아테나와 함께 아라크네를 비웃고.
조롱하고.
더러는 안쓰러이 여기면서도.
그녀의 실력을 칭송하던 사람들도
오만함을 부추기던 사람들도
그 오만을 신들의 귀에 전한 사람들도
누구 한 명 그녀를 위로하지 않았다.
그제야 아라크네는 깨달았다.
그녀의 도도함이 스스로를 몰락시켰음을.
이것은 신에게 도전한 한 인간의 이야기.
도전에 승리하고
저주받아 괴물이 되어
신과 인간 모두에게 버림받은
가엾은 여인의 이야기.
그 불행한 역사의 기록을
신화의 이야기를
게이트의 힘으로 빚어낸 후일담.
“너희가 나를 저주하였듯이, 이번에는 내가 너희를 저주하겠다.”
아라크네는 베틀 앞에 앉았다.
그녀를 저주하고 버렸던 모두를 저주하고자.
신들의 법칙 속에 살아가며
그녀를 재단하려 들었던 인간들에게
자신이 자아낸 법칙 속에 살아가며
그녀의 지배를 강요하기 위해.
그렇게 리빙아머Living armor가 탄생하였고
여기, 신을 닮은 한 명의 여검객이 나타났다.
5.
‘아름답군요.’
아라크네를 보고 떠올린
해응응의 첫 감상이었다.
제 몸의 독성조차 견디지 못해
쭈글쭈글한 피부를 지녔던
가엾은 인면지주와 달리
아라크네는 인간시절의 미모를 잃지 않았다.
그녀는 거미의 독성이 아닌
실을 뿜어내고 재단하는 능력을 전승받은 자.
미모가 상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노하고 있어요.’
아라크네의 전승은 모르지만 그녀가 품은 분노의 진실함만큼은 느낄 수 있었던 해응응.
“아테나를 닮은 여자. 저주하도록 해. 신에 비견되는 외모와 기술을 지닌, 인간 주제에 분에 넘치게 뛰어났던 자신을.”
그것은 신에게 저주받은 여자의 분노.
아라크네의 원한은
신을 향한 앙갚음이자
어리석었던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자신을 향한 분노이기도 했다.
‘거대한 기둥이 내려오는 것만 같네요.’
아라크네의 여덟 개의 커다란 다리들은
한 번이라도 잘못 받아낸다면
검이 부러지고도 남을 강도와 무게를 지녔다.
‘인면지주 때와 같지만 달라요. 저건 내가기공으로도 쉬운 상대가 아니에요.’
굳이 따지자면
인면지주의 단단함과 요괴선인의 거대함.
그 둘을 동시에 겸비한 존재.
인간의 범주에 머물러서는
감히 한 칼조차 유효타를 입힐 수 없는
명백히 신화의 저편에 자리한 괴물.
바닥을 내려다볼 수 없는 두 눈의 어둠은
천하의 해응응조차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저 아래의 인간들보다는 나은 재주를 지니고 있지만, 결국은 너 또한 인간에 불과하구나. 그랬지. 인간이란 이토록 약한 존재였어.”
“…!”
“죽도록 해라, 인간.”
어마무시한 기세로 난타하는 여덟 개의 다리.
팔방에서 쏟아지는 총난타.
그 여파가 아래까지 전해지며
교전 중이던 모든 리빙아머와 인간들이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휩쓸려 쓰러졌다.
“묵언검객님…….”
“저런 건, 이길 수 없는 것이에요…….”
“정신 차리십시오, 모두들! 도망쳐야 합니다. 더 늦으면 우리도 끝이에요!”
“아니. 아직이네.”
“뭐가 아직이라는 겁니까! 묵언검객도 죽은 마당에! 공략은 이미..”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신성곽과 민우성.
이번 공략이 시작하기 전부터 묵언검객의 진가를 알고 있던 두 사람만이 해응응의 저력을 이해하고 있다.
어떤 궁지에 몰리더라도 적시에 나오는 다양한 무술.
그 바닥을 들여다볼 수 없는
무류의 바다의 깊이를.
해남파의 시조이자 장문인.
해응응이라는 여자의 진가는 역경 앞에서야 비로소 그 편린을 드러낸다.
이류의 벽을 넘기까지 단 10레벨.
하나의 무공의 대성만을 앞둔 그녀이지만, 그것이 일류무공을 사용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한 번이라면 사용할 수 있어요.’
어떤 무공이든 5성의 벽만 넘지 않는다면.
강제승급은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몸의 균형도, 신체의 능력치도.
무림에서와는 괴리가 큰 지금이라면.
어떤 일류무공이든.
한 번에 한해서라면.
5성을 넘지 않는 선에서 펼쳐낼 수 있다.
‘제가 지닌 모든 일류무공. 그 한 수의 연계를 여기서 펼쳐내겠어요.’
일류고수의 손에서 펼쳐지는 일류무공은
일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절정지경을 넘보는 깨달음이 더해진다면.
그 위력은 능히 초일류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를 다시금 넘어선
초절정의 끝마저 극복한
화경의 고수의 깨달음이 접목된다면.
이류의 몸으로 펼쳐내는
일류무공의 한 수의 연계들은
“이, 이건?! 거짓말. 넌 분명 인간이었을 텐데. 인간 따위에게 이런 힘이 허락될 리가 없어! 그렇지 않으면 나는, 나는 어째서…!”
아라크네의 팔각압정이
일류무공 12종의 한 수의 연격 앞에
완벽히 꺾였다.
“어째서… 마무리를 하지 않는 것이냐, 인간.”
훤히 드러난 아라크네의 복부.
그 몸체를 향해 유령처럼 스며든 해응응은
주먹을 펼치며 손을 내지르는
장저??.
손바닥 치기의 한 수를
하복부의 바로 위까지 내밀었다가
타격을 가하지 않고 공격을 도로 물렸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부들부들 떠는
눈가에는 눈물마저 고인
그런 아라크네의 모습에서
무언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간을 향한 끝없는 증오. 그 공격성은 같지만, 이 아라크네에게는 보다 많은 감정이 느껴져요. 마치……. 인간처럼.’
인간이 아니되 인간인 존재.
분노에 사로잡혔으면서도 인간인 존재.
해응응은 그런 존재들을 알고 있다.
하나는 인면지주.
반요곡의 슬픈 최후를 맞이한 반요이며.
다른 하나는 해응응.
무림계에서 혈강시의 각인에 당했던
원한과 증오만을 쫓던
한 마리의 맹수 같던 시절의 그녀였다.
‘어쩌면 저와 같은 길을 걷는 걸지도 모르는 괴물. 그런 당신을 정녕 이 손으로 죽여야만 하는 걸까요?’
인간과 반요는 서로 죽일 수밖에 없어?
인면지주의 그리운 목소리.
“으아악, 제발 멈춰어어어! 이 이상 능력을 강제로 사용당하면 죽는다고오오!!”
리빙아머에 능력을 강제로 사용당하는 태백길드 길드원들의 비명.
혼자만이 감당하면 되었던
반요곡의 인면지주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프타임 촬영진의 카메라들은
그녀의 뒷모습을 비추고 있다.
그녀의 선택
그녀의 결단
그녀의 모든 행동이
자신과 다른 모든 이들의 관계를 뒤바꾼다.
‘당신도 달라질 수 있을까요?’
오직 피를 탐하는 혈강시에서
어엿한 인간으로 돌아왔던 그녀처럼.
‘이 손을 거둔다고 당신 또한 그 원한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황제와 무림맹주의 죽음을 간절히 바랬지만
잠시 멈추어 쉬어가기도 했던 그녀처럼.
‘제가 당신을 이해할 수 없다면, 당신을 죽여야 하는데. 그런데도 끝내 그런 표정으로 증오를 거두지 않을 셈인가요?’
이해하고 싶은 인간과
이해할 수 없는 괴물.
그 사이에서 끝내 아라크네를 이해하기를
그녀를 살리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려던 찰나.
“길드장님.”
깔끔한 정장이 피와 흙먼지로 더럽혀진
무너진 계단을 뛰어올라온 민우성.
그가 한 사람의 등을 툭 떠밀었다.
“이 여자가 아라크네에 대한 전승을 알고 있다고 합니다.”
쥐 죽은 듯이 공략대에 섞여서
있는 듯 없는 듯 묻혀 지내던 심리치료사.
‘밥값해라, 이 망할 짐짝아.’
누구는 날마다 가슴 졸이며 눈치를 보는데
조용히 묻어가는 꼴은 못 보겠다는
민우성의 악의어린 오지랖.
“저, 저, 그…. 아라크네는 신의 저주를 받아서 괴물이 된 인간이에요. 그 원한의 기저에는 니체의 르상티망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한 줄 요약 부탁해요.]“어… 노예들의 도덕심이에요.”
“……?”
“조, 조금 심했나? 그럼 패배자의 질투심…? 앞뒤가 뒤바뀐 자기합리화라고 할까…? 그, 그런 종교적 도덕심에 지배당했다고 할까…”
애물단지나 다름없던 심리치료사에게
뜻밖의 쓸모가 생겼다.
‘뭐죠? 신종 자살방법인가요?’
묵언검객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쓸모와
“노예? 패배자?”
묵언검객의 극딜에 끌린 어그로를 넘어서
세치 혀로 아라크네의 어그로를 뺏는
훌륭한 탱커에 견줄만한 쓸모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