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120)
〈 120화 〉 120 끝까지 갔으면 다 죽었겠네
* * *
1.
해응응의 진심은 괴물이 된 아라크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였다.
“성공했어?”
[제법 고생은 했지만요. 성공했어요.]혈강시의 각인을 포기하고도
그녀는 오랜 숙원을 달성했다.
황제시해.
무수한 무림인들이 꿈꿔왔던
황실의 폭정에 시달린 신민들의 꿈이었던
모두가 불가능하리라 여긴 일을
끝내 성공했다.
‘무림맹주가 제가 손을 쓰기도 전에 끝난 건 아쉬웠지만요.’
굳이 따지자면 절반의 성공.
그러나 황실과 무림맹의 몰락만큼은
모두 이루어졌다.
“부럽네. 나도 그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몰라요.]해응응은 그녀의 커다란 다리갑각을 쓰다듬고는 조용히 붓펜을 움직였다.
[당신이 신의 저주에서 벗어날 방법을 함께 찾아볼게요.]“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어.”
[전 이미 모두가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일을 한 차례 해낸 몸이에요.]아라크네도 그건 인정했다.
한 세계의 지배자나 다름없는, 신이나 다름없는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던 황제를 죽이는 일은 불가능을 극복한 위업이나 다름없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이고요. 신을 이긴 인간이 신의 저주라고 이기지 못할 이유가 있나요?]“네가 아니었으면 그 건방진 소리를 하는 머리를 똑 따버렸을 거야.”
찰싹
아라크네가 눈을 껌뻑였다.
해응응이 기둥처럼 커다란 그녀의 다리를 손바닥으로 때린 것이다.
[못된 말은 하지 말아요. 말은 몸을 타락시키고, 몸은 정신을 오염시켜요. 정신이 오염되면 영혼이 병들죠.]“바보 아니야? 난 괴물이라고. 뭘 기대하는 건데. 남자 앞에서 아양이라도 떨기를 바래?”
[사람이었던 시절의 자신을 잊지 말아요. 그때의 기억과 감정을 떠올린다면 당신이 해야 할 말들도 자연스레 떠오를 거예요.]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해응응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를 받으면서
이미 많은 기억과 감정이 되살아났으니까.
“아양은 절대로 떨지 않아.”
[저도 그래요.]“나보다 잘난 것들도 인정할 수 없어.”
[저도 마찬가지에요.]“내가 최고가 아니라면 다 부숴버릴 거야.”
[저도 그럴까요…?]“바보. 농담이잖아.”
그 덩치에 그런 농담을 하는 건 반칙이잖아.
살짝 심통 맞은 표정을 짓는 해응응.
뜻밖의 귀여운 꼴에 아라크네가 피식 웃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처럼 굴었던 주제에 볼에 바람이나 넣다니. 머리가 몇 개는 부족한 나이 차이나는 여동생 같잖아.’
저런 귀여움은 반칙이라고.
한껏 누그러진 얼굴로 조심스레 다리를 움직여
해응응의 볼에 차있는 바람을
장난스럽게 툭툭 건드려보는 아라크네.
두 사람의 사이에 어렸던 긴장감은
어느새 말끔히 사라져있었다.
“만약 너희를 죽이지 않고 살려서 보내준다면. 그때는 어떻게 날 도울 셈이야?”
[아라크네. 당신의 사례로 미루어보면 게이트는 인류의 역사와 전설, 신화로부터 몬스터를 만들어내기도 해요.]이는 중대한 사실을 암시했다.
[언젠가는 올림포스의 신들도 나타나겠죠.]아라크네의 기세가 일변했다.
온화하게 가라앉았던 기세가 급변하며
피부가 찌릿할 정도의 살기가 일었다.
아라크네의 살기가 잔뜩 겁먹은 지상의 인간들.
그런 인간들을 걱정스레 내려다보는 해응응.
아라크네는 자연스레 살기를 거두었다.
“어째서. 괴물인 나를 이렇게까지 돕는 거야?”
[제게도 도움이 간절할 때,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주길 원했으니까요.]이제는 안다.
자신에게 내밀어지는 도움의 손길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얼마나 진심으로 그것을 갈망했는지.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몸으로 요청하지 않아도
도움을 받은 뒤에야 깨달을 때도 있다.
그건 지금의 아라크네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도 아라크네는 그녀의 작디작은 손이 거대한 앞발을 쓰다듬는 걸 뿌리치지 않았다.
‘본인이 몰라도 마음은 먼저 알 거예요.’
그것은 아라크네가 오래도록 바래왔던
진실 된 손길이었다.
그녀의 재주가 가장 빛나는 순간에
그 찬란함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녀가 가장 깊은 어둠에 추락한 뒤에는
눈길조차도 주지 않았던
비겁한 인간들과는 달리
언제든
어느 때든
그녀를 인정해주는
최고가 아니더라도 곁을 지켜줄
진정한 벗에 대한 갈망.
그것이 기적처럼 이루어진 지금
아라크네는 정신적으로 성장했다.
‘그랬구나. 난 오래도록 이런 걸 원해왔어.’
과거의 자신은
해응응 같은 인간을 만나지 못했다.
그렇기에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이 마음의 결핍은
인간들 사이에서는 채울 수 없음을.
오직 같은 최고의 기술을 지닌
기술의 여신 아테나만이
자신의 노력을
자신의 고독을
그녀를 알아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그렇기에 그녀는 신에게 도전했다.
신분을 떠난 승부와
그 끝에 찾아올 우정을
유대를
감정의 교류를 갈망했다.
‘아테나가 이런 신이기를 원했던 거야.’
그 소망은 최악의 방식으로 배신당했다.
아테나는 자신을 이긴 인간을
신을 모욕한 인간을 용서할 수 없었다.
신을 넘본 인간의 노력을
신을 이긴 인간의 고독을
철저하게 비웃고, 조롱하며, 저주하였다.
그녀는 괴물이 되어 슬픈 것이 아니었다.
최고가 됨으로써 얻고자 했던
최고가 되어야만 이룰 수 있다고 믿은
리디아 최고의 직공기술자가 아닌
벗과 함께 하는 인간적인 삶이
어리석은 꿈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아테나에게 직접 부정당했다는 사실을
이런 비참한 방식으로 자각한 현실이 밉고, 증오스럽고,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쓰담쓰담
그런 아라크네의 다리를 쓰다듬으며 곁을 지켜주는 아테나를 닮은 인간.
‘이미 내 소원은 이루어졌구나.’
아라크네는 깨달았다.
해응응이 혈교 교주의 꼬드김에 넘어가
함부로 힘을 행사하며
자신의 소중한 인연을
제 손으로 죽이는 우를 범했던 것처럼.
까딱 잘못했으면
아라크네 또한 자신의 오랜 바람이었던
진실한 벗을 지니고 싶다는 소망을
자신의 손으로 망칠 수 있었다는 사실을.
‘힘에 휘둘려서는 안 돼.’
아라크네가 적의를 가라앉히며
인간을 적대하기를 완전히 중지하는 순간.
[계층보스의 공격성이 현저히 저하됩니다.]게이트가 극렬한 반발을 일으켰다.
“뭐지?”
“갑자기 온도가 낮아졌어.”
“길드장님, 괜찮으십니까? 혹시 도움이라도…”
아래의 각성자들마저 감지할 정도로 심상치 않은 이변이 느껴지는 상황.
[긴급보수가 필요합니다.] [계층보스 회수마법진이 생성됩니다.]아라크네의 발치에서
돌연 거대한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시, 싫어! 더는 어둠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인간, 도와줘!”
마법진에서 뻗어 나오는 검은 손들.
아라크네의 다리를 붙잡고 마법진 아래로 드리운 어둠 속으로 그녀를 잡아당기는 손들로부터 해응응은 왠지 모를 기시감을 느꼈다.
저런 이색적인 손.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빠르게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부기맨. 정말 그 요괴인가요?’
해응응은 저 손들로부터 아라크네를 끌고 가겠다는 의지 외에는 어떠한 의지도 느낄 수 없었다.
부기맨을 닮은 손들이기는 하지만 저 불길한 어둠의 손들은 반요곡의 동료가 아니다.
카강! 카가강!
해응응이 검으로 손들을 받아치자
각성자들도 급히 달려와
필사적으로 힘을 쏟아내며 팔을 저지했다.
각성자와 리빙아머들이
아라크네를 사수하기를 얼마간.
[과도한 마력사용으로 인해 동력이 부족합니다.] [비상관리시스템을 절전모드로 전환합니다.]본래라면 단번에 아라크네를 끌고 들어가야 했을 회수마법진이 장시간 운용된 결과.
마력고갈로 인해 검은 손들이 마법진 너머로 돌아가고 마법진 또한 자취를 감추었다.
[방금 그건 뭐였죠?]만일 해응응과 아라크네가 서로 전력으로 싸우고 양쪽 모두 크게 지친 상태였다면 결코 저항할 수 없었을 불길한 회수진.
당장의 사태가 일단락되었다고 안심하기에는 꺼림칙한 기분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모르겠어. 하지만 알 것 같기도 해. 한 번 저기에 끌려 들어가면 두 번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들어.”
해응응은 깨달았다.
아라크네가 언제까지고 이 게이트 속에 머무를 수는 없다는 사실을.
[빠른 시일 내로 안전대책을 마련해볼게요.]“나도 같이 나가면 안 돼?”
외출하는 주인을 바라보는 애완동물처럼
애처로운 기색이 뚝뚝 묻어나는 아라크네.
“실례합니다. 한참 대화중에 죄송합니다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민우성이 보스룸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보스룸 밖에 아산길드 놈들이 와있습니다.”
[그런데요?]“이놈들이 저희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는지 밖에서 문을 막았습니다. 카메라 들고 우리가 죽어간다고 인터뷰까지 찍는 소리도 들립니다.”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악마 같은 행동.
정말로 안의 사람들을 전부 죽으라고 작정한 짓으로 들렸다.
“김창식과 명호엔터 연예인들의 목소리도 들리더군. 아산길드가 이참에 제대로 언론플레이를 벌이려는 모양이네.”
“역시 어르신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일을 어디 한두 번 겪나.”
신성곽이 보스룸 입구를 노려보며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보스룸 상황이 어렵게 돌아간다 싶으면 퇴로를 막고 먼저 나와서 안의 놈들은 전부 죽었다고 하고, 공적을 독차지하는 게지.”
“그런 일이 아직도 있어요?!”
“한채린 대표가 연예인들을 곱게 키웠나보군. 이건 요즘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명호길드길드장 이명호도 같은 짓에 당했으니까.”
나나세가 망연자실하며 털썩 주저앉았다.
“저희는 다 죽는 것이에요…”
“하찮네. 인간들의 싸움이라는 건.”
“아라크네. 우릴 도와줄 생각이시오? 당신도 꽤나 지쳐 보이네만.”
아라크네가 도도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리디아 최고의 직공 기술자이자 이 게이트의 지배자라고.”
그녀가 발톱을 하나 들더니 메두사를 가둔 고치를 죽 아래로 그었다.
“벽 부수고 날뛰는 건 얘 특기잖아.”
아라크네의 손으로 해방된 메두사.
부릅 뜬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던 메두사는
아라크네도
인간도
어느 누구도 공격하지 않았다.
메두사의 몸통 전체를 속박하는
거대한 리빙아머가 행동을 억제했기 때문이다.
“오, 이런.”
“여기서 저런 히든 페이즈가 또 있었어?”
아라크네랑 끝까지 갔으면 다 죽었겠네.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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