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123)
〈 123화 〉 123 언니가 사라져버리면 어떡해요
* * *
4.
밤낮으로 보호받는다는 느낌이 들면 빠르게 안정을 되찾을지도 모릅니다.
소경석이 남긴 말은 제법 오랜 시간 해응응의 심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동침. 동침이라……. 정말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요.’
누군가와 잠자리를 함께 한다.
거기에 음흉한 의도가 없더라도 꺼림칙한 마음이 드는 건 감출 수 없었다.
‘애초에 저는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걸요.’
그녀에게 있어서 잠자리란 휴식이 아닌 정체를 의미하는 단어일 뿐.
시간낭비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영이가 그걸 원한다면 하루쯤은 같은 방에서 자는 것도 괜찮겠죠.’
아영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가벼운 충동.
해응응은 그 충동에 몸을 맡겼다.
[오늘밤 제 집으로 오세요.]“네에에?! 언니 집에요?”
[싫으면 사양해도 괜찮아요.]“싫을 리가 없잖아요! 베개도 가져갈 테니까 잠깐 제집도 들렀다가 가요!”
검지를 턱에 얹고 생각에 잠긴 해응응.
가볍게 손을 내린 그녀가 필담을 적었다.
[그럼 거기서 하죠.]“하, 하다니요? 뭐를요?”
[같이 자요. 그 집에서.]주아영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올랐다.
‘언니는 대체 무슨 생각이야?’
토끼처럼 심장이 쿵쿵 뛰는 주아영.
일과가 어떻게 끝났는지, 몸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시간이 지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정말로 자신을 따라오는 해응응의 발걸음 소리에 주아영의 눈이 핑핑 돌았다.
‘각인가? 진짜 각인가??’
주아영은 언니가 좋았다.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준 언니에게 반한 것도 있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녀의 엉뚱한 매력에도 흠뻑 빠졌다.
가끔은 자신보다 더 동생처럼 느껴지는 맹한 모습도, 때때로 비치는 어른의 매력도 좋았다.
진지하게 검을 가르칠 때도.
눈을 가늘게 뜨며 훈수를 둘 때도.
수첩으로 머리를 쿵쿵 내리칠 때도 전부 좋다.
[한대만 피고 올라갈게요.]“그럼 기다렸다가 같이 가죠 머.”
[담배연기는 몸에 좋지 않아요.]“치. 그러는 언니는 담배 잘만 피시면서.”
[피고 싶어서 피는 게 아니에요.]하지만 언니는 너무 어른스러웠다.
[피지 않으면 버틸 자신이 없어서 그래요.]“가끔 언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산에서 수련만 하다 나오신 거 맞아요?”
옛날이야기를 꺼내면 언제나 아련한 표정을 짓고는 처연한 미소를 짓는다.
얼버무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비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저 표정 앞에서는 더 이상 언니의 과거를 캐물을 수가 없어졌다.
먼저 집으로 올라가는 주아영.
그 뒷모습을 해응응은 묵묵히 바라보았다.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들은 이래서 좋지 않아요.’
달이 기울고
가로등의 불빛이 늘어지는
겨울이라 부쩍 더 차가운 밤바람 속에.
낙엽대신 구르는 쓰레기봉투와
낡은 신문지 쪼가리가
부평초처럼 구르는 오래된 놀이터에서.
파이프담배를 물고
하염없이
하염없이
연기를 입안에 머금고
밖으로 피워 올린다.
‘마음을 보여주는 건 쉽지만 그 마음을 닫는 건 더욱 어려우니까요.’
뱉어낸 연기를 도로 삼킬 수 없듯이
열어 보인 마음은 도로 꺼내 담을 수 없다.
고백하기는 어렵지만
거절하기는 더욱 어렵다.
사람들은 그녀를 좋아해서 힘들지만
그녀는 사람들이 좋아해서 힘들었다.
‘감당할 자신은 있는 건가요?’
담뱃재는 야외재떨이에 털면 그만이다.
파이프담배는 야외세척대에 닦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 무거운 마음은
어디에 털고
어디에 닦아야하는가.
주아영의 집으로 향하는 계단.
오르는 걸음마다 울리는 발소리처럼
자박자박 짓밟히는 기억들과 함께
초인종을 누르고
열린 문에 들어선다.
“매, 맥주라도 한 캔 하실래요?”
잔뜩 긴장한 얼굴로
거절당하면 어쩌나 두려워하면서도
떨리는 손을 등 뒤로 감춘 채
용기를 내는 그녀.
해응응은 현관문을 닫고
신발을 벗고는
식탁이 아닌 그녀를 향해 걸었다.
“어어…?”
놀라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주아영.
그런 그녀의 보폭보다 한층 더 빠르게
성큼 다가선 해응응이
도망치듯 물러서려던 주아영의 어깨를 붙잡았다.
“언…니?”
물씬 풍기는 담배냄새.
그 사이로 은은히 피어오르는 향기.
코끝의 숨결이
얼굴에 닿을 정도로 다가선 거리감 앞에서
주아영이 발가락을 오므렸다.
있는 힘껏.
발가락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달아오른 얼굴을 바라보는 해응응의 표정은
조금의 설렘도, 흥분도 들어있지 않았다.
이따금 혼자가 되면 그녀가 짓고는 했던
속을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
그런 무심한 얼굴로 마주선 그녀가
주아영의 얼굴로 손을 뻗고는
“아.”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자신의 어깨에 주아영의 머리를 묻었다.
‘앞으로 조금이었는데.’
들뜬 호흡을 감추지 못하던 주아영도
안은 자세로 한참을 서있자
애타는 마음이 가라앉았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으려는 걸까.
해응응의 품속에서 꼼지락거리기를 얼마간.
언니가 쉽게 풀어줄 것 같지 않자
몸에 힘이 풀리고 축 늘어졌다.
편안함.
누군가의 품에 이렇게 안긴 건 얼마만일까.
보육원의 원장님이 떠오르는
돌아가신 부모님이 떠오르는
그런 편안한 품속에서
부드럽게 눈을 감고 이 순간을 만끽하던 그녀.
그러나 이번에도
그녀의 마음이 바뀔 적이면
인생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처럼
해응응은 그녀를 안았던 손을 놓고
두 손으로 양팔을 붙잡아 떼어놓았다.
“언니…?”
[이대로가 좋아요.]주아영의 떨리는 눈을 바라보며
해응응은 찬찬히 수첩을 넘겼다.
[아끼는 동생과 함께 식사하고] [아끼는 제자의 수련을 봐주고] [악몽을 꿀 것 같은 날에는 밤을 함께 보내는]오늘까지 반복했던 나날처럼.
[그런 지금이 좋아요.]그건 고백이 아니었다.
고백을 빙자한 잔인한 선언이었다.
“됐어요.”
다음 장으로 넘어가려던 수첩을
주아영이 붙잡았다.
“그 뒤는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주아영이 고개를 돌렸다.
왠지 모르게 이럴 것 같기는 했다.
“비겁하잖아요. 그런 건.”
“…….”
“차라리 잘해주지나 말지. 처음부터 설레게 하지나 말지.”
흐느끼는 목소리.
가슴이 쓰라리는 괴로움.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알지 못할 그녀가 아니었다.
알지 못할 그녀들이 아니었다.
“알고 있었어요. 언니는 그럴 맘이 없다는 거.”
하지만 오늘만은 특별하지 않을까.
주아영은 그런 기대를 품어버렸다.
언니가 먼저 적극적으로 나섰으니까.
그래서 더 서러웠다.
그녀의 포옹이
그녀의 상냥함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이쯤에서 그만 단념하라는 뜻임을 알았으니까.
“정말로 무서웠어요. 언니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이런 제 마음도 영원히 고백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
“그런데 차라리 그때가 더 나았나봐요. 이렇게 괴로울 줄 알았으면. 이상하죠? 그렇게나 보고 싶었는데, 함께 있는 지금이 더 괴롭다니.”
꽃은 향기를 감추지 못한다.
때로는 그 향기에 취한 다른 꽃이
꽃잎을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미련.
떨어진 꽃잎은 서서히 말라붙고
끝내 썩어문드러진다.
“역시 언니는 남자가 좋은 거죠?”
[그렇지만도 않아요.]“피. 거짓말.”
“그런데 저는 왜 안돼요? 언니 눈에는 여자처럼 보이지 않아서? 한채린, 그 사람처럼 성숙하지 않아서? 니나랑 나나세처럼 강하지 않아서?”
그래서 그런 거예요?
조금은 심술궂은, 한편으로는 원망도 담은
주아영 나름의 소심한 투정.
━콜록
그에 돌아온 대답은
여느 때처럼 멋들어진 필체로 휘젓는
해응응 특유의 세련된 필담이 아닌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듣는 이의 간담이 절로 서늘해지지는
날카로운 마른기침이었다.
“언니…?”
앞섶으로 입가를 덮고
빠르게 손을 내려 감춘 해응응이었지만
주아영의 손이 그런 그녀의 팔을
소매의 끝자락을
놓치지 않고 붙잡아 들어올렸다.
“이게…… 뭐에요? 언니 왜 이래요?”
[아무것도 아니에요.]“아무것도 아니긴요! 이거, 이거… 피잖아요!”
해응응의 소매에는
붉은 선혈자국이 역력했다.
“목도 안 좋은 분이 그렇게 담배를 피니까 그런 거 아니에요? 몸 관리도 못하시면 어떡해요!”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그럼 말을 해주세요! 아니라고만 하지 말고 왜 그런지 설명해달라고요!”
어쩔 수 없나.
담배를 피워도 가라앉지 않는 쓰라림에
해응응은 마지못해 수첩을 쥐었다.
알린다면 더욱 걱정할 것도 알고 있지만
비밀로 하기에도 너무 늦었다.
[제 수명은 그리 길지 않아요.]주아영의 간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심상치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머리가 따라갈 수 없는
귀로는 들었지만 뇌로는 이해하길 거절하는
그런 잔혹한 진실을
해응응은 무덤덤하게 수첩에 적었다.
[제 몸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더욱 빠르게 수명의 끝이 다가와요.]구음절맥.
전신기혈이 뒤틀리고 혈관이 닫히는 절맥증.
내공을 쌓으면 쌓을수록
선천적인 음기는 더욱 짙어지고
수명이 줄어드는 속도는
혈관이 상하는 속도는
점점 더 가파르게 상승한다.
‘5년 공력은 괜찮았지만 역시 14년 공력의 음기는 손상 없이 억누를 수 없었던 거지요.’
무엇보다도 다수의 다른 무공을
각기 다른 혈도와 기혈운용법을 지니는 무공을
단기간에 열두 종이나 펼쳐낸 부작용이
혈맥에 과부화를 일으켰다.
경지를 넘어서는 무공실력이
도리어 그녀의 남은 시간을 앞당겼다.
[앞으로도 제게 남은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줄어들 거예요.]고통을 억누르기 위한 담배도
더는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싸구려담배가 아닌
더욱 강한 약물을 사용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건… 그건…….”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하는 주아영.
구음절맥을 알지 못하는 그녀라도 그런 병을 무어라 일컫는지는 알고 있다.
“각성자들의 종말점이잖아요…….”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주아영은 행복회로를 굴렸다.
“고칠 수 있는 거죠? 신성곽 어르신의 병세도 가라앉히셨잖아요. 네?”
해응응은 고개를 저었다.
종말점과 구음절맥은 다르니까.
주아영은 절망했다.
의미는 다르지만 그 뜻만큼은 전해졌다.
그녀의 병이 나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유능한 의사도 자기 병은 고칠 수 없는 것처럼 언니도 자신의 병만큼은 고칠 수 없는 거야.’
그녀가 언니와의 행복한 시간을 꿈꾸었을 때.
그러는 와중에도
해응응의 수명은
모든 고등급 각성자들에게 예정된 최후이자
인지와 상식을 넘어선 힘을
이능을 사용하는 대가라고도 불리는
성장을 포기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멈출 수 없는 파멸의 수레바퀴에 올라섰다.
‘1분 1초도 아쉬운 그런 몸이었으면서.’
주아영은 떠올렸다.
요 몇 달간.
자신이 얼마나 오랜 시간 해응응과 함께 했는지.
‘그런 몸으로 내 곁에 머무르고 계셨던 거야.’
언니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언니의 시간을 독점하고 싶은 욕망이.
자신에게 있어서 언니가 세상의 전부이듯이
언니에게도 자신이 세상이 전부이기를 바랬던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어리석음이.
그녀의 가벼운 사랑이
언니의 시간을
종말점에서 멀어져야 할
성장해야 할 시간을 빼앗고 있었다.
‘언니가 내게 상처를 준 게 아니었어. 실제로는 그 반대였던 거야.’
형언할 수 없는 죄책감이 주아영의 마음을 뱀처럼 휘어 감았다.
철컹━.
주아영은 깨달았다.
그녀의 가슴속에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졌음을.
이 안에 갇힌 감정은
두 번 다시 풀려날 수도 없고
풀려나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