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157)
〈 157화 〉 157 그래서 언니가 더 걱정돼요
* * *
1.
오늘도 수만 명의 우주미아들을 우주공간에 내던지고 가상현실캡슐에서 나오는 해응응.
이마에 달라붙는 머리카락을 떼어내는 동작이 습관처럼 익숙해졌다.
좁은 캡슐에서 게임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땀을 흘리고 머리카락이 엉겨 붙고는 했다.
‘땀을 흘린다고 악취가 나는 건 아니지만요.’
밤새 게임을 하며 몇 시간이고 컴퓨터 게임을 하던 빙의 이전과는 다르다.
게임이 끝나고 방을 나서도 누구 한 명 만날 일이 없던 나날과도 다르다.
컴퓨터의 가동음과 거실의 생활소음이 아니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집안과도 다르다.
‘저도 참 우습네요.’
외로움이라도 느끼는 걸까?
이런 심경변화를 느낀다는 사실에는 스스로도 조금 놀랐다.
‘무림에서의 나날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데.’
그렇게나 힘들었는데.
그렇게나 벗어나고 싶었는데.
그런데도 이따금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이 드는 무림시절과 달리.
남자였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알고 있는 것이다.
사고로 잃어버린 가족이야 있지만.
그 모두를 되찾더라도.
무림에서 쌓은 인연만큼 값지다고.
그렇게 단언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세월을 보내버렸음을.
‘같지만 다른 세월이죠.’
남자로서의 20년.
무림에서의 20년.
흐른 시간은 같을지라도 시간의 밀도는 전혀 달랐다.
‘많은 인연에 상처 입으면서도 변함없이 인연을 갈망하는 나약함. 지고의 무를 손에 넣더라도 인연에 초연해질 수는 없다는 건가요.’
이럴 때면 한 남자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자신의 손으로 속세의 모든 인연을 매듭짓고
천계의 등선문을 열어젖혔던 최강의 무인.
‘부럽네요. 그 남자의 강함이.’
무림에서의 힘겨웠던 모든 시간들이
전부 지나간 지금에서야 비로소 실감된다.
그 남자의 대단함은
최강의 무력 하나에만 있지 않았다고.
그는 지상의 절대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바란다면 그 남자의 아래에서 천하통일의 꿈마저도 이룰 수 있었다.
천마조차 이루지 못한 원대한 꿈을 이룰 가능성이 있었던 유일한 남자.
그는 그 모든 권력을
그를 추종하는 수많은 인연을
지상의 모든 금은보화와 주지육림을
단칼에 끊고 선계로 등선했다.
‘이제는 알겠어요. 그의 인연에 구애받지 않는 정신적인 강함. 저는 그게 부러웠어요.’
그 남자라면 자신처럼 때때로 찾아오는 우울함에 가슴 속에 멍울이 맺히는 고통을 느끼지는 않을 테니까.
혼자가 되더라도 외로워하지 않고, 고독을 곱씹으며 즐길 수 있을 테니까.
‘저 역시 인연의 굴레는 매듭짓고 무림을 떠난 몸이지만, 최강이 되기 위해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그와는 달랐죠.’
그건 현대지구로 도망치고 싶었을 뿐.
안식을 바라며 떠난 몸이지만 마음만큼은 속일 수 없었다.
우울함도.
고독함도.
모두 이를 알기에 비롯되는 감정들.
하지만 그녀는 약해질 수 없다.
재건 해남파에 이어서
길드 해남파를 세운 시조.
그녀가 한 남자의 등을 기억하듯이
지금은 그녀의 등을 바라보며 절치부심하는 수련생들이 잔뜩 있다.
‘가장과 스승은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어요.’
아무리 슬프더라도 제자 앞에서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자식 앞에서 앓는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된다.
가장이 무너지면, 스승이 무너지면.
가정이 흔들리고, 제자가 흔들린다.
스으으.
깊은 호흡 한 번과 함께
마음속에 가라앉히는 무거운 감정들.
눈의 깊이가 충분히 가라앉을 즈음.
방의 문고리를 열었다.
됐다.
지금이라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다시 평상시로 돌아왔다.
이제 아영이에게 의식을 치러주러 가자.
강인한 책임감으로 우울한 기분을 찍어눌렀던 그녀는, 방문 밖에 펼쳐진 광경에 황망한 눈으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길드장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우지우.
[우지우씨. 이분들은 누구시죠…?]그가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급히 수배해온 의사들입니다! 피를 토할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으셨으니 어떤 후유증이 남을지 모릅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을.
2.
해응응의 게임플레이 영상을 모니터링한 우지우가 의사선생님을 초빙해왔다.
의사가운에 왕진가방을 든 의사선생님들이 무려 일곱 명.
근엄한 얼굴로, 혹은 인자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아있는 의사들의 모습에 해응응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이런, 빈혈 증세까지 보이다니. 당장 진단을 받으셔야겠습니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다가와서 진단을 하더니, 문진표에 빠르게 기록을 적고 동료 의사들과 심각한 얼굴로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었다.
분위기만 봐서는 말기암 환자의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이 환자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논의하는 것처럼 심각해 보인다.
“선생님들, 저희 길드장님의 상태가 많이 심각하십니까…?”
울 것 같은 표정의 우지우가 그리 물어왔지만 의사들은 손을 들어 잠시 저리 가있으라며 우지우를 치우고는 상의를 이어나갔다.
잠시 후, 마치 환자의 상태를 두고 상대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처럼 화난 얼굴을 한 의사 두 명이 씩씩거리며 떠나려 했다.
“아니, 갑자기 어디 가십니까! 선생님들 진료는 하고 가셔야죠!”
그러자 의사들이 우지우에게 점잖게 타일렀다.
“게임에서 각혈을 했으면 신경외과를 부를 것이지, 치과의사는 왜 부르셨습니까? 치열도 멀쩡하고 구강염도 없고 아주 멀쩡하십니다.”
“피부에 트러블이 생기면 피부질환이 생기지 각혈을 하겠습니까? 내 생전 이렇게 깨끗한 피부는 난생 첨 보는데. 에잉 쯧쯧.”
해응응의 각혈에 어지간히도 놀랐는지 구급차를 부르는 것보다 한발 앞서서 필요하다 싶은 의사는 전부 불러버린 우지우.
그의 과한 걱정이 초래한 비효율적인 인적자원 낭비였다.
“그럼 지금 막 같이 나오시는 환자의 수명이 3개월 남았다고 선고할 것처럼 심각한 표정을 하고 계시는 의사분은……”
“자기도 할 일이 없다고 이 근처에 점심 먹으러 갈 맛집을 아냐고 물어보던데. 낸들 이 동네는 처음인데 뭘 알아야 말이지.”
“그럼 그 뒤에서 이 환자도 구해내지 못했어, 하고 좌절하는 분위기의 젊은 의사분은……”
“자기네 전문분야도 진료할 건수가 없어서 추가수당을 받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하던데. 치유계 각성자들 때문에 몸값이 오죽 떨어져야지.”
의사들은 자기들이 치료할 일은 없다며 환자분이 아주 건강하다는 말과 함께 돌아갔다.
심지어는 의사들과 함께 초빙된 치유계 각성자들도 해응응의 상태를 진단하고는 황당해하였다.
“후유증이 없는데요?”
“저희야 왕진비 받고 왔으니 괜찮다만 매번 이렇게 의사들을 초빙하면 번거롭지 않겠습니까?”
“아아, 네에…”
“정 걱정이 되거든 그냥 주치의를 고용하고 치유계 각성자도 영입하세요. 그 편이 서로 헛걸음도 안하고 괜한 지출도 아낄 수 있을 겁니다.”
의사부대의 집단진료는 다행스럽게도 해프닝으로 끝났다.
“길드장님! 의사선생님들은 뭐라고 하십니까?”
“강사님 많이 다치셨대요?”
“어떡해. 방금 나가는 의사선생님들 마주쳤는데 표정 진짜 안 좋았어.”
“우리 길드장님 죽을 병 걸리신 거 아니야?”
“세상에.”
“흑흑. 길드장님 불쌍해서 어떡해.”
인상파 의사들의 본의 아닌 얼굴연기 때문에 수련생이나 직원들이 많이 놀라는 소동도 있었다.
오해는 금방 풀렸지만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해응응의 일거수일투족에 놀란 사람들의 걱정이 끊이질 않았다.
“주치의 알아보신다면서요? A급 힐러로 유명한 약선이 태양호텔에 종종 묵고 가시는데. 소개해드릴까요?”
한채린의 지인이자 태양호텔 오너 장화련.
지금은 VIP수련제자로 특별수련동에 머무르는 그녀는 아예 주치의로 삼을 유능한 프리랜서 각성자까지 소개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황당한 소동에 휘말린 해응응이지만 그녀는 어느새 마음속의 울렁거리는 기분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그렇군요. 이미 그때랑은 달라졌어요.’
방문을 열어도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던 남자였던 시절과 달리.
지금의 그녀에게는 그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잔뜩 있다.
“혹시나 싶어서 협회 인맥을 동원해 의사들의 초빙을 수월하게 손써봤습니다만, 충분한 도움이 되었습니까?”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아도 됐어요. 가벼운 내상이었는걸요.]해응응이 자리를 비운 사이, 사범대리 노릇을 해주던 백소천.
그가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인에게 내상은 일상다반사.
내공이라는 위험한 기를 상시 다루는 무림인은 운기행공에서 실수를 하거나 비무를 격하게 하면 종종 내상을 입고는 했다.
각혈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현대인들의 기준으로 각혈은 가벼운 내상이 아니라 중병의 전조입니다. 그들은 무림인의 회복력도 이해하지 못하죠.”
[생각 이상으로 걱정을 했겠군요.]“중환자 스트리머 컨셉을 잡고 싶지 않다면 앞으로는 이 점을 의식하셔야 할 겁니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충고였다.
“우지우 간부가 많이 놀랐던데 따로 감사인사라도 해두십시오.”
뒷짐을 지며 부채를 쥔 백소천.
그가 슬쩍 부채 끝으로 화원 너머를 가리켰다.
아직도 걱정이 가시지 않았는지.
저 멀리서 엿보는 우지우의 모습이 보였다.
해응응은 우지우를 곧바로 찾아갔다.
[고마워요. 지우씨.]잠시 당황하던 우지우가 이내 풀이 죽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결국 도움은 되지 못했는걸요. 괜히 제 호들갑 때문에 길드장님만 번거롭게 만들고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우지우는 길드간부 치고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실정이지만, 충성심 하나로만 따지면 무조건 한손에 꼽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
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소경석과 마주칠 일도, 소경석을 통해 신성곽을 알게 될 일도 없었다.
‘지우씨와의 인연도 아영이를 알지 않았다면 시작되지 않았겠지만, 지우 씨에게는 평상시에도 신세를 잔뜩 졌으니까요.’
지금처럼 길드의 세가 커지기 이전, 협회기여도를 벌기 위해 날마다 외근을 돌던 우지우의 헌신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지우씨만 괜찮다면 답례를 하고 싶은데, 희망사항이 있나요?]해응응의 답례.
첫사랑의 그녀에게 제시할 희망사항.
우지우의 콧구명 평수가 두 배는 넓어졌다.
[당장 생각나지 않으면 무리해서 떠올리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나중에 떠오르면 그때 알려주세요.]우지우의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답례? 희망사항? 부탁?’
그의 이성이 폭주하며 상상의 나래를 사방팔방으로 마구 펼쳤다.
상식적인 길드장과 간부 사이에서 허용되는 관계가 어디까지일지, 스킨십을 한다면 어디까지가 가능할지.
해응응의 가벼운 몇 마디에 마음까지 내어주고 휘둘리는 우지우. 그의 근심은 근시일 내에 그치지는 않을 성 싶었다.
3.
“언니가 나빴어요.”
아영이의 문신을 만들고자 그녀의 원룸에 찾아온 해응응.
그녀는 자신을 붙잡고 무슨 소란이 있었냐고 캐묻는 주아영에게 달달 볶이다가 대답하기 전에는 풀려나지 못하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그간 있었던 일을 전해들은 주아영.
그녀가 해응응을 타박했다.
“지우아저씨가 언니 좋아하는 거 아시면서. 그런 말을 하면 아저씨 밤에 잠도 못 잔다고요.”
뒤늦게 자신의 말이 오해를 부르거나, 우지우에게 마음의 여지를 보여주었다고 생각될 수 있음을 깨달은 해응응.
애먼 눈만 깜빡거리던 그녀가 조금 민망한 기분을 느끼며 수첩을 들었다.
[그러려던 의도는 아니었어요.]곤란해 하는 해응응.
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주아영이 피식 웃었다.
“농담이에요. 언니가 게임 하다가 다쳤다는 말에 조금 화가 나서 심술을 부려봤어요.”
[못됐어요.]“언니도 걱정만 잔뜩 시켜놓고 완전 말짱하다는 진단결과만 들었잖아요.”
주아영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차라리 아팠다는 말을 들었으면 이렇게까지 신경 쓰이지도 않았을 텐데.”
[제가 아팠으면 싶었나요?]“언니는 종말점에 이미 진입했잖아요. 멀쩡할 리가 없는 몸이 멀쩡하다는 소리를 들었으면 언니가 분명 사람들을 속인 거겠죠.”
다른 사람들, 심지어 의사들과 치유계 각성자들까지도 해응응의 알 수 없는 수단에 깜빡 속아 넘어갔지만.
이미 그녀의 병세를 알고 있는 주아영만큼은 속지 않았다.
“그래서 언니가 더 걱정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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