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165)
〈 165화 〉 165 흔한 일이죠
* * *
1.
위스퍼의 붉은 눈동자가 백소천의 인자한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를 얼마간.
“미안하게 되었군. 조금이라도 더 실력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그만.”
“알면 되었네.”
위스퍼가 손을 거두며 물러나자 백소천이 사회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노,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루키 위스퍼의 예상치 못한 실력! 지난 대회 상위 10위 기록을 달성한 도하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집니다!!”
놀라운 성과이기는 했다.
그러나 회장의 분위기는 어딘지 모르게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마지막의 그거 분명 살초였었지?”
“총감독관이 중재하지 않았으면 팔을 잃었겠지.”
“저 녀석, 느낌이 안 좋아.”
심사위원석에서 성녀의 곁을 지키던 대쉬맨 또한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한국의 각성자들은 보통 저런 쓰레기가 아닙니다. 대회의 암묵적인 룰을 깨고 고의로 치명상을 입히려고 하다니.”
“걱정 말아요. 어느 나라에든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기질이 다른 사람이 있기 마련이죠.”
이브는 이런 일로 한국인을 오해하지는 않을 거라며 대쉬맨을 달래주었다.
“시스터 해응응이야말로 괜찮나요? 자신의 이름을 단 무술대회에 위험인물이 출전해도. 주최자의 재량으로 쫓아내지 않아도 괜찮나요?”
[흔한 일이에요. 대회에서 불순한 목적을 품은 사람이 나타나는 일은.]해응응은 현대세계의 대회가 어떤지는 몰라도 무림세계의 대회가 어떤지는 기억하고 있다.
‘무가의 처자가 결혼상대를 고르고자 대회를 개최하면 각지에서 이순??(60살)이 넘은 노고수들이 나잇값도 못하고 복면을 쓰고는 했죠.’
그녀의 소중한 인연이었던 빙소소와의 첫 만남도 중원무림 너머, 세상의 바깥이나 다름없는 세외世外무림에서 열린 무술대회에서 시작됐다.
북해빙궁의 영약이라면 음기를 가라앉힐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참석하였던 대회.
따님 대신 영약을 달라는 말을 하려고 대회에 참석하여 우승했던 그녀에게 당대 북해빙궁의 지배자였던 궁주는 더욱 대담한 말을 건넸다.
영약은 이미 딸아이의 병을 고치는데 사용해서 없으나, 영물의 내단이 있는 곳이라면 정보를 모으는 대로 모두 알려주겠네.
대신 내 딸아이만 부탁하네. 자네가 아니라면 어차피 저 늙은이들이 가만두지 않을 걸세.
약관을 넘긴 처녀를 탐하는 노고수들이나 영약을 노리고 대회에서 우승한 자신이나.
대회참가자란 하나같이 글러먹은 족속들이었다. 그에 비하면 순수하게 해남파의 무공교두가 되고자 모인 이들이 더욱 어색할 지경이었다.
‘주최자의 의도와 다른 꿍꿍이를 품은 실력자의 출전이란, 언제가 되었건 일어날 일이죠.’
그런 이변에도 흔들리지 않고 대회를 개최한 뜻을 달성하는 것.
그것이 주최자의 역량이다.
[충분히 자신 있어요. 어떤 수작을 부리더라도 대회를 개최한 뜻이 더럽혀지지 않을 자신이.]2.
위스퍼는 백소천의 손에 붙잡혔던 순간을 다시금 떠올려보았다.
전투의 중심지에 가볍게 착지하며 그가 물러설 틈조차 주지 않는 신속한 개입.
근맥과 신체의 가동범위를 강제로 좁히며 스스로 손에서 힘을 풀도록 만드는 교묘한 수작.
“힘과 기술, 속도. 모두 뛰어났다.”
“네가 좋아하는 수치로 치자면 어느 정도지?”
“2200.”
“고작 그 정도의 힘에 당했다고?”
“적은 힘으로 강한 힘을 다룬다. 더욱 대단한 일이지. 그와는 한 번 겨뤄보고 싶더군.”
위스퍼의 손이 백소천과의 대결을 고대하며 다시금 진동하였다.
“참아라.”
“언제까지 참아야하지?”
“대회가 무르익고 관심이 커질 때. 그때 행동에 나선다.”
“그땐 죽여도 되나?”
“적극 권장하지.”
“잘됐군.”
위스퍼의 붉은 눈이 탁한 살의를 품으며 거칠게 요동쳤다.
“총감독관 백소천. 그는 손속에 사정을 둘 상대가 아니니.”
“자신감이 꺾이지 않았다니 다행이군.”
“그러는 너야말로 자신은 있나. 묵언검객의 행사를 방해한 이상, 결국은 그녀가 직접 나서게 될 텐데. 이길 수 있겠나? 그 여자를.”
묵언검객은 위스퍼의 강함을 모를 지라도 위스퍼는 묵언검객의 강함을 알고 있다.
방송을 통해 그녀의 무공을 지켜봤으니까.
“묵언검객의 실력이 진짜라면 최대투력은 10만을 가볍게 상회한다.”
“대신 평균투력은 내가 우위를 점한다고 했었지. 아니면 그때 했던 말은 빈말이었나?”
“그렇지는 않다.”
그럼 아무 문제없겠군.
대장은 인파 속으로 사라졌고, 위스퍼는 옷깃을 끌어올렸다.
스으으.
하얗게 일어난 입김이 사라졌을 때.
위스퍼의 모습또한 사라졌다.
3.
예선전 막바지.
해응응은 또 한 명의 각성자를 주목하였다.
[인기가 많은 각성자네요.]“설마 못 알아보시는 겁니까?”
[알아야하나요?]안동검가의 김제철.
제1회 묵언검걱배 무술대회 이전까지는 한복남이라고 불리고, 이후로는 절개남 내지 선비남, 시조남 등으로도 불리는 인물.
고백을 거절하는 최악의 방법, 절벽에서 뛰어내리기를 해버린 남자가 그 주목의 대상이었다.
“이상형이 묵언검객이라고 다른 여자 고백까지 거절하면서 탈락했었는데. 정말 모릅니까?”
등반에 한참 재미를 붙일 때.
그녀가 주목한 각성자는 김제철이 아니었다.
‘무슨 호였더라…….’
호 자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동정호 같은 이름이었나?
“와! 한복남!”
“승리선언 해주세요!”
“시 한 번 읊자!”
김제철에게 패배한 선수가 사인지를 내밀고 4구로 이루어진 근체시를 받았다.
“김제철 한시 사인지면 패배해도 가성비 쌉이득이지. 인정?”
“존나 부럽다.”
“쳇.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사내자식이 인기가 많다니. 우락부락한 근육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불쌍한 녀석들.”
선수들의 투덜거림이 이어지는 사이.
김제철이 돌연 심사위원석 앞까지 보무당당하게 걸어와 해응응이 가끔 취하던 포권지례를 취하며 인사를 건넸다.
“반갑소이다, 묵언소저! 소인은 김제철이라고 하는 자로 안동검가의 검호 김우백의 5대손이오. 당대의 가장 유명한 검객을 만나 영광이오!”
검호 김우백.
그 이름을 들으니 비로소 기억이 떠올랐다.
참가번호 222번. 범호 양귀호. 이번 대결에서는 호목신공을 사용하겠다. 이 도전, 받아주겠나?
지난 무술대회의 절벽지대.
그곳에서 당돌하게 신법대결을 신청했던 남자.
범호 양귀호.
그것이 그녀가 떠올리려던 이름이었다.
[덕분에 찾던 이름이 생각났어요. 감사드려요.]“오오. 설마 김우백 사조님과 특별한 인연이 있으셨소? 묵가의 선대와 얽힌 인연이라거나…….”
[저는 묵씨가 아니에요.]묵언검객이 묵씨면 천마는 천씨인가.
해응응의 표정이 조금 쀼루퉁해지자 김제철이 몹시 당황하였다.
“이럴 수가!!! 묵언검객이 묵씨가 아니었다니!! 여성으로서 연모하며 검객으로서 존경하던 이에게 치욕을 선사하다니!!!”
[그렇게까지 크게 상심하지는 않았어요. 앞으로는 착각하지 말아주시기만 하면 괜찮아요.]“스스로가 수치스러워 견딜 수가 없소!!! 이 불충은 제 목숨으로 갚겠나이다!!!”
[저기요?]“이야아아압!!! 으아아아압!!!”
아니 자해공갈 뭔데.
갑자기 칼을 들고 자살시도를 벌이는 김제철을 따라 카메라맨들이 역동적으로 카메라포커스를 맞추었다.
방송사고나 다름없는 광경이지만 실시간 시청자 채팅의 반응은 아주 뜨거웠다.
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선비야. 이름을 틀렸으면 자결해야지
아니 왤케 자꾸 죽고 싶어하냐고ㅋㅋㅋ
이십세가 넘기까지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다…
요즘시대에 씹선비들이 왜 다 사라졌나 했더니 약관이 되기 전에 전부 절개를 지켜서 그런 거였어… ㅋㅋㅋㅋ
절개남 별호값 쥰내 웃기네 ㅋㅋㅋ
“거참. 젊은이의 뜨거운 마음은 알겠네만 그쯤 해두시게. 문주께서 걱정하지 않나.”
백소천이 김제철의 팔을 붙잡고 말리자 그제야 김제철이 가팔라진 호흡으로 씩씩거리며 검을 내렸다.
어찌나 몸에 힘을 주었는지 각성자의 호흡이 거칠어질 정도였으니, 그의 진심을 알 수 있었다.
‘미친놈. 이놈이 반해도 아주 단단히 반했구나.’
백소천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김제철의 마음이 그녀를 향한들 어떠랴.
그녀의 시선은 그에게 닿지도 않고 있거늘.
[범호 양귀호. 그가 이 대회에 참가했나요?]묵언검객.
그녀가 처음으로 관심을 보인 선수의 이름.
때마침 그 이름이 대회장에서 호명됐다.
“홍코너, 지난 대회 본선에 진출하였으나 소리 소문 없이 탈락한 양귀호! 이 선수에게는 다소 힘든 시합이 되겠는데요. 청코너의 선수가 현역 각성자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실력자라는 점에서 운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양귀호? 방금 묵언검객이 찾던 이름 아니야?”
“가서 보자.”
“얼마나 대단한 녀석이길래 묵언검객이 이름을 다 기억하고 있지?”
“앗, 같이 가!”
김제철을 향해 몰려들었던 인파가 단숨에 사라질 정도로 몰리는 관심.
그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내 독특한 의복과 말투 때문에 배척받은 적은 있으나, 일신의 무위와 존재감에서 뒤처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거늘.’
남자로서도, 관종으로서도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새겨졌다.
‘범호 양귀호. 네놈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는 몰라도, 그 실력을 똑똑히 지켜보겠다.’
눈에 불을 키며 관중석으로 향하는 김제철.
수많은 관중들에 더해 미친 듯이 노려보는 김제철까지 등장하자 양귀호는 미치고 펄쩍 뛸 것만 같았다.
‘아니 왜 하필이면 내 경기에서 갑자기 죄다 몰려들고 난리야. 한복 입은 저놈은 일면식도 없는데 왜 저리 노려보지?’
본의 아니게 어그로가 끌린 양귀호이지만 그에게 닥친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회자 방지철에게 다가온 스태프 한 명이 정보를 전달하자, 깜짝 놀란 방지철이 마이크를 붙잡고 열을 올렸다.
“방금 들어온 따끈따끈 속보입니다! 묵언검객이 범호 양귀호를 유력우승후보로 주목한다는 소식이 입수되었습니다.”
“나를? 묵언검객이??”
“안동검가의 김제철보다도 주목을 받는 그의 존재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표하고 있는데요. 베일에 가려진 실력자, 범호 양귀호의 숨겨진 실력은 과연 얼마나 대단할까요?”
상대선수가 식은땀을 흘리며 검을 고쳐 잡았다.
“너……. 뭘 하는 녀석인지는 몰라도 장난 아니게 강한가보군. 절대로 방심하지 말아야겠어.”
조금 전까지는 훤히 보이던 상대선수의 약점이 거짓말처럼 죄다 사라졌다.
쉽게 넘어갈 경기 난이도가 껑충 뛰어버리자 양귀호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주최자의 주목을 받는 선수의 앞길에 고생길이 펼쳐지는 것도 대회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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