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168)
〈 168화 〉 168 과거의 악연
* * *
1.
체이서는 강했다.
그가 다루는 총도, 총탄의 속도를 따라잡는 그도 강했다.
다만 상대인 양귀호는 더욱 강했다.
“마지막에는 조금 빡셌네.”
도탄 되는 총탄을 따라 예상치 못한 경로로 이동하는 체이서.
직선적인 이동경로가 급격히 변화하며 일순간 시야에서 놓치며 위기에 처했던 양귀호였지만, 그에게도 여력은 있었다.
아껴뒀던 각성능력의 사용!
무술대회에서 각성능력을 사용하는 건 비겁하지 않나 싶어서 자제했던 양귀호였지만, 상대는 마음껏 사용하는 각성능력을 혼자만 참는 것도 미련한 짓이었다.
설마 그런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각성능력을 숨겨왔을 줄은 꿈에도 모를 체이서는 단단히 허를 찔리고 말았다.
“과연 묵언검객이 인정할만한 실력자였군. 내 30연발 전탄 발사 난사도탄술을 카운터 치다니. 마지막까지 아낀 각성능력 때문에 수싸움에서 제대로 졌어.”
체이서는 순순히 기권했다.
명경기를 펼친 두 사람에게 박수가 이어졌다.
‘이딴 게 무슨 무술대회냐.’
인자한 얼굴로 박수를 치는 백소천이 속으로 떠올리는 생각은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반대로 무공에 대한 편견이 없는 다른 사람들은 무술대회의 수준이 높다며 감탄했다.
양귀호를 노려보던 김제철마저도 그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양귀호!”
“아. 밖에서 째려보던 놈.”
“본선에서 기필코 당신을 꺾고 묵언검객에게 어울리는 남자의 옷은 수련복이 아닌 두루마기임을 증명해내고야 말겠소.”
이 인간, 뭐가 하고 싶은 거야.
2.
“정말 훌륭한 경기들이군요.”
대쉬맨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각성자들이 마음 먹고 작정해서 싸우면 이런 전투들을 펼칠 수 있다는 사실은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깨달았다.
서로 충돌을 피하는 각성자들인지라 본인들도 자신들의 역량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죠? 한국 각성자들도 알아주기를 바랬어요.”
몬스터와의 전쟁이 끊이질 않는 동유럽 전선.
그곳의 각성자들은 각성능력으로 쌓은 부를 누리기보다, 조국의 미래와 안녕을 위해 목숨을 건 전쟁에 종군하고 있다.
한국의 각성자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가는 상황.
“전쟁이 끝난 평화로운 국가일지라도 진심으로 격돌하며 능력을 개발하는 즐거움마저 잊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니까요.”
“역시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도 단련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는 깊은 뜻이 담긴 말씀이시군요.”
“그런 것보다는, 아깝잖아요. 모처럼 초인적인 능력을 지니고도 그 힘을 제대로 쓰지 않는 게.”
샐쭉하니 혀를 내밀며 웃는 소녀 같은 모습.
예상치 못한 성녀의 장난기에 대쉬맨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연을 많이 먹어야겠어.’
성녀님이 한 번씩 그의 심장에 훅 치고 들어올 때마다 그의 콧속 점막이 건강을 위협받았다.
“그런데 대쉬맨님의 차례는 언제 오나요?”
“아, 저는…… 그, 기권을 할까 생각중입니다.”
“예에?”
“자신이 없는 건 아니지만 성녀님을 혼자 두기도 그렇고, 아까도 보셨다시피 수상한 놈들도 대회에 여럿 있지 않습니까. 누군가 성녀님을 곁에서 지켜야 한다면 제가…”
“그런 걱정이 있으셨군요. 음……. 그래요. 잠시 손을 내밀어주시겠어요?”
얼굴을 바라보며 손을 내미는 이브.
대쉬맨은 홀린 듯이 손을 내밀었다.
왜 하필 손일까.
손을 잡으면, 뭘 하려고?
설레는 마음을 꾹 삼키며 내민 손이 잡혔다.
생각만큼 곱지도
생각만큼 부드럽지도 않지만
상처와 굳은살이 가득한 손에서도 전해지는 따스한 체온.
이런 고귀하신 분의 손을 잡는다는 사실이 부쩍 실감이 들며, 몸이 마시멜로처럼 녹아내리는 황홀한 기분에 사로잡히던 도중.
휘리릭
“─어?”
시야가 홱 뒤집히며
쿵 하고 그의 몸이 바닥에 나자빠졌다.
“컥!”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가 머리에 오르던 열을 식히는 가운데, 어깨관절이 아슬아슬하게 꺾인 자세에서 늑골 위로 한기가 닿았다.
마냥 아름답기만 했던 성녀가 그의 한 팔을 꺾고 가슴 위로 가볍게 한 발을 얹었다.
“여기서 힘을 주면 어깨가 탈골되고, 동시에 늑골이 부서질 거예요. 반응속도가 느리면 심장까지도 단숨에 파고들 수 있어요.”
“아, 아픕니다 성녀님!”
“후후. 신사다운 대접에 응하지 못해 죄송스럽지만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이걸로 대쉬맨님도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죠?”
자세를 풀고 손을 내밀어 대쉬맨을 일으키고는 손수 먼지를 털어주는 성녀.
그녀의 강함을 직접 몸으로 체험한 대쉬맨이나 헤드캠으로 간접체험한 시청자들이 얼이 빠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성녀님 왤케 강함?
이것이 동유럽 힐러……?
성녀눈나 존나 카리스마 넘쳐
기술 진짜 예술적으로 들어가네ㄷㄷ
아ㅋㅋ 힐러도 딜 넣을 줄 안다고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그럼, 염치불구하고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온다라.
지금 떠나면 돌아올 자리가 있기는 할까.
대쉬맨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성녀는 강했다.
능력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사용하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수많은 전투를 섭렵하며 다져진 본능적인 예감은 높은 확률로 적중하기 마련.
저 가냘픈 체구의 어디에서 저만한 힘이 나오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실제로 붙으면 결과는 십중팔구 성녀가 이길 것이 틀림없다.
지켜야 할 대상보다도 약한 존재.
그런 나약한 이가 시종을 자처하며 얼쩡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하찮게 보였을까.
부끄럽기도 부끄럽지만.
그 이상으로 자존심이 남아나지를 않는다.
툭툭
축 처진 등으로 대회장에 향하는 그의 등을 누군가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들겼다.
“묵언검객님?”
[이브가 걱정하고 있어요.]“!!”
[지키고 싶은 사람보다 강하지 못하다고, 지금껏 쌓은 신뢰를 내팽개칠 건가요?]“아닙니다. 절대로 그러려던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최선을 다하세요. 당신이라면 제법 높이 갈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으니.]생각지도 못한 묵언검객의 격려.
대쉬맨은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억누르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무대로 가세요. 실력을 보일 차례에요.]예선 마지막 경기.
대쉬맨이 무대 위에 올라섰다.
3.
대쉬맨의 상대, 그는 얼굴에 칼자국이 나있는 위험한 인상의 남자였다.
“광아검 이정운. 명호길드에서 퇴출된 이후로는 업계에서 은퇴한 줄 알았는데.”
“대쉬맨. 그러는 너야말로 ‘그 사건’을 겪고도 용케 현역에 남아있군.”
가뜩이나 좁은 각성자 업계에서 이름도 못 들어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 두 사람은 서로를 잘 알아도 너무 잘 알았다.
한때는 같은 파티에서 서로 등을 맞대며 활약하던 2인조 각성자였으니까.
‘기구하군. 하필이면 이 녀석이 상대라니.’
대쉬맨은 애써 태연한 척 농담을 건넸다.
“은퇴 후에는 인방이라도 챙겨보고 다녔나?”
“연습으로는 나쁘지 않았지. 그러는 너야말로 성녀의 보모 노릇은 즐거웠나?”
“큭큭. 보모는 무슨. 점잔 빼려다가 엎어치기 한 번 거하게 당하고 오는 길이다.”
은근히 베어나는 웃음.
시합시작을 알리는 호각이 울려도 두 사람은 가만히 멈추어 선 채로 같은 시선, 같은 감정을 공유했다.
별 것 아닌 하위권 각성자 시절.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았던.
아무것도 아닌 대화에 서로 웃음 짓던.
영원히 계속될 줄만 알았던 밑바닥 시절.
‘영원한 우정 같은 건 없었지만.’
친구의 출세를 축하했지만.
냉기가 감도는 반지하방에 홀로 남겨졌던.
홀로 덩그러니 남겨졌던 나날.
유명길드에 입사했던 친구가 길드의 사주로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던 믿기지 않는 현장.
등을 맞댄 동료에서
칼을 맞댄 적이 되어버린 관계.
서로 다른 길을 걷고.
달라진 세월을 체감하며.
두 사람의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변하지 않았군.”
“너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더 불쾌해.”
“피차 동감이라고.”
광아검 이정운.
그의 검이 뽑혀 나온 직후, 세 번의 불똥이 상중하단에서 동시에 터졌다.
대쉬맨의 검이 손목을 뒤틀며 빠르게 3단 연격을 튕겨내며 발생한 현상이었다.
오오오
대쉬맨이 이렇게 강했어?
그냥 동네 바보형인줄 알았는데 왤케 강함?
이 사람은 예전부터 수수하게 강했음
광아검 저 이름 예전에 어디서 들었는데
“오만하군. 오년 전에도 당해내지 못했던 주제에, 능력사용 없이 진검승부만으로 겨뤄볼 생각인가?”
“그냥. 조금 확인하고 싶었다고. 지난 오년 간, 너와의 격차를 얼마나 좁혀냈을지.”
“그렇다면 알려주지. 격차는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다고.”
광아검의 검은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반격을 무릅쓰고 허리를 베일 테냐, 수세를 취하며 손을 위협받을 것이냐.
한 걸음을 앞서며 손목이 날아갈 것이냐, 한 걸음을 물러서며 자세가 흐트러질 것이냐.
리드미컬하게 울리는 검과 검의 충돌음.
그 사이 사이마다.
그 검합과 검합마다.
끊임없이 자신의 안전을 담보로 걸며
상대에게 소모전을 강요한다.
자신을 잊어버린 광기어린 검술.
그렇기에 광아검???.
그 아성은 5년이 지나도 여전했다.
아니, 5년 전보다도 더욱 살벌해졌다.
성큼.
“!!”
단번에 간격 안으로 파고들며
자신의 약점을 노리는 검을 받아쳐내며
위험을 극복해낸 이정운.
나아간다면 먼저 베이고
물러선다면 팔을 잃는다.
완벽하게 허를 찔린 그 순간.
뒤로 물러서는 회피동작을 따라
정확히 50cm의 간격을 추가로 물러선 대쉬맨.
카앙!
이단회피 직후에 취한 검세가 복부를 노리고 파고드는 가르기를 아슬아슬하게 쳐냈다.
“무뎌졌군. 동네 바보 노릇이나 하고 다니더니, 검술도 능력도 무엇 하나 발전하지 않았어.”
“발전하지 않았다고? 그건 인정할 수 없겠는데. 난 충분히 성장했어. 더는 지켜야 할 것도 지키지 못하고 홀로 날뛰던 얼간이가 아니야.”
“지금의 네게 지켜야 할 것이 무어가 남았지? 하나뿐인 친구도, 소중한 여동생도. 전부 잃어버리지 않았나?”
“입 다물어. 장례식이 끝나기까지 끝내 한 번도 오지 않았던 주제에. 넌 그 아이를 입에 담을 자격도 없어.”
비릿하게 짙어지는 이정운의 조소.
거칠어지는 대쉬맨의 눈.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 속.
뭔데 ㅅㅂ 뭐가 있었던 건데!
왜 니들끼리만 대화해!
아 생각났다. 광아검 쟤 5년 전에 명호동 백화점 붕괴사건에서 인명사고 내고 짤린 명호길드 길드원이었음ㅇㅇ
머야 범죄자야?
범죄자까진 애매하고 아무튼 쟤 때문에 사람 몇 명 죽고 한 명 반신불수 됐다고 들었음
채팅방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너무 위험하지 않음?
우리형 시합 계속해도 괜찮아?
저 녀석 거의 빌런이잖아
반사회적 각성자.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위험인물.
각성자로서의 면책특권과 살인면허가 박탈되며, 국가에 의해 수배되는 각성자 범죄조직의 일원, 통칭 빌런Villain.
광아검은 빌런일 가능성이 농후한 인물이었다.
“길드장님. 당장 시합을 중지시켜야 합니다. 광아검이 빌런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신빙성이 상당히 높다고 생각됩니다.”
대회를 주관하던 우지우마저도 급히 심사위원석으로 달려올 정도의 사안.
[이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해응응은 시합중지를 선언하는 대신.
이브를 돌아보았다.
[이 시합, 중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본래라면 그래야 마땅하겠죠.”
하지만 이 시합에 참여한 이가 대쉬맨이라면.
그들의 기대를 동시에 받는 인물이라면.
“욕심이라고 해도 상관없어요. 대쉬맨의 싸움을 좀 더 지켜보고 싶어요.”
과거의 악연과 재회하여
지나간 세월이 헛되지 않았음을
자신의 검과 무를 통해 증명해낸다.
그런 소중한 경험을
한 사람의 전사로서 성장할 기회를
대쉬맨에게서 빼앗고 싶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