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169)
〈 169화 〉 169 5년과 50cm
* * *
1.
누군가가 말했다.
우정에는 유통기한이 있다고.
한쪽이 다른 한쪽의 감정을 받아내지 못할 정도로 감정의 휴지통이 꽉 차오르는 순간.
흘러넘친 감정은 악의가 되어 돌아온다.
광아검 이정운과 대쉬맨의 우정.
그 관계에서 먼저 감정이 흘러넘친 쪽은 어느 쪽이었을까.
이정운은 아직도 그 답을 알 수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겁 많은 녀석이군.’
이정운이 쌍방의 출혈을 유도하는 혈전을 강요하면, 대쉬맨은 번번이 물러선다.
그가 2인 파티를 깨고 나갈 때에도.
길드의 명령으로 프리랜서인 대쉬맨의 던전출입을 가로막을 때에도.
상납금을 수금한다는 명목으로 단골가게의 집기를 깨부수고 주인장을 때려눕힐 때에도.
대쉬맨은 번번이 물러섰다.
먼저 가서 네 자리 터놓고 있으마. 나 없다고 나자빠져서 놀지 말고.
8시 15분. 게이트 출입구 3번 격벽 감시카메라 OFF.
이 봉투, 아저씨가 냈던 상납금이다. 내가 줬다는 말은 하지 말고 전해줘.
길드의 징수꾼과 주민들의 자경대원.
입장상의 차이 때문에 대립할지언정.
뒤에서는 예전과 변치 않은 이정운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그가 어떤 악행을 일삼더라도.
대쉬맨은 그를 믿었고.
이정운 또한 그가 자신을 믿어줄 것을 믿었다.
“소대리가 우리 쪽 라인 기밀문서를 유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소대리를 제거해라.”
“소대리의 여자친구를 이용해서 잠적을 타지 못하게 공공장소로 불러내는 건 어떻겠습니까.”
입사동기의 불온한 움직임.
백화점으로 유인하는 계획.
일반인들과는 무관계한 길드의 일이기에.
딱 한 번.
그날만큼은 대쉬맨에게 언질을 넣지 않았다.
백화점에서 입사동기를 잡을 거라고.
약간의 사건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연락을 넣기엔 쪽팔렸다.
명호길드에 입사한 자신이 부끄러웠으니까.
이 자리가 비어야 네가 올라올 수 있다고.
사실을 말하면 거절당할까봐.
대쉬맨의 올곧은 성정이 방해가 될까봐.
그래서 더러운 일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널 위해 손을 더럽혔었지.’
운명의 그 날.
백화점에서 배신자 소대리를 검거하기 위해 그의 여자친구를 감시, 미행하여 소대리를 검거하기만 하면 끝났을 간단한 작전.
그 계획에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소대리가 접선한 빌런조직이 개입했을 때.
백화점은 전장이 되었다.
명호길드의 각성자들과
빌런조직의 언네임드 각성자들.
쌍방의 능력이 교차하며 백화점을 초토화시켰다.
“이정운! 여기서 뭐하는 짓이야!!”
“너야말로 거기서 뭐하고 있어! 이건 길드의 일이다. 방해하지 말고 비켜!”
“안 돼! 이 이상 능력을 전개했다간 층이 무너진다고! 각성자는 몰라도 일반인들은…!”
두 사람의 언성이 거칠어지는 사이.
소대리가 창밖으로 뛰어내려 탈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작전은 변경되었다.
납치는 불가능.
이 자리에서 사살이라도 해야 한다.
차라리 잘됐구나 싶었다.
혹시라도 쓸 만한 정보를 토해낸다면.
길드 상층부와 이면계약이라도 한다면.
소대리의 자리가 비워지지 않는다면.
그의 친구는 출세할 수 없을 테니까.
돈도 안 되는 자경대원 노릇을 할 테니까.
그럴 바에야 여기서 확실히 소대리를 죽이고 친구의 자리를 만든다.
“이대리. 뭘 망설이고 있나!”
“미안하다. 간부의 눈에 띈 이상, 이제 손대중은 할 수 없어.”
“그만둬어어!!”
대쉬맨은 능력을 전개하며 덤벼들었다.
광아검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검합이 이어질수록 승리를 향한 확신이 늘었다.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였기에.
한때 등을 맡긴 동료였기에.
오직 그만이 알고 있는 대쉬맨의 약점.
위급할 때에는 언제나 뒤로 물러서는 버릇이 있었으니까.
그는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졌다.
물러서라.
그러지 않으면 몸통이 베일 것이다.
물러선다면 너는 다치지 않는다.
네 뒤에서 도망치는 소대리만 도망치지 못하게 기둥을 무너뜨릴 뿐이다.
신뢰가 있기에 펼쳤던 살수.
물러설 것을 믿었기에 발동한 능력.
그 믿음이 그들의 관계를 뒤바꾸고 말았다.
그날의 대쉬맨은 달랐다.
특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거리를 무시했다.
급속도로 파고들며 내지르는 검.
화끈한 통증이 얼굴에서 일어났다.
베였다.
그 사실을 자각하기도 전에, 그의 검이 대쉬맨의 몸통을 사선으로 베어 넘겼다.
‘이런 멍청한 녀석!’
알고 있었으면서. 내가 널 물러서게 하기 위해서 검을 휘두를 거라고 알았으면서.
몇 번이고 거리에서 칼을 부딪칠 때마다 길드의 눈을 속이고자 합을 맞췄으면서.
대쉬맨은 무언의 약속을 깼다.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었다.
이정운은 얼굴에, 대쉬맨은 몸통에.
지울 수 없는 깊은 검흔이 생겼지만.
그조차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소대리만 넘어뜨리면 어떻게든 될 거야.
그 믿음으로 쓰러지는 대쉬맨을 지나쳤다.
전력을 다해 능력을 펼친 결과.
기둥이 무너지고.
창문으로 도망치던 소대리를 덮치고.
백화점의 층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
쿠과과과과!
붕괴현장을 자욱하게 메우는 먼지구름.
쏟아지는 파편 너머.
‘해냈다, 인마. 이제 너도 출세할 수 있다고!’
무일푼으로 각성자가 되겠다며 검 한 자루씩 들고 서울로 상경했던 그 날처럼.
다시 둘이 함께 시작하는 거야.
그런 기쁜 마음으로 연기를 헤쳐 나가며 잔해더미를 치운 그의 앞에.
“수영아아아!!”
부서진 층의 잔해에 깔린 여고생이.
오빠 좀 챙겨달라던 마음씨 착한 여동생이.
우리 사이는 오빠한테 언제 알려줄 거냐며 장난스럽게 재촉하던 그녀가.
피를 흘린 채 쓰러져있었다.
그제야 이정운은 알 수 있었다.
그날의 대쉬맨이 후방대쉬가 아닌 전방대쉬를 선택했던 이유를.
대쉬맨의 여동생이 와있었다.
그의 연인이 와있었다.
작전이 있을 거라고.
백화점에서 큰 소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 번만 귀뜸을 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을 비극이었다.
후회했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미친. 일을 이렇게 키우면 어쩌자는 거야!”
“간부님! 징계는 나중에 얼마든지 받겠습니다. 구급차를 먼저 불러주십시오!”
“생존자가 있었나.”
“스크린폰은 작전에 방해된다며 전부 걷어 가시지 않았습니까!”
“무슨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거냐.”
간부가 손을 들었다. 그 손의 끝이 가리키는 대상은 몰라볼 수가 없는 남매.
“전부 죽여라. 지금이라면 늦지 않았다.”
“뭐가… 늦지 않았다는 겁니까?”
“백화점 붕괴는 서대리와 손을 잡은 빌런조직이 저지른 테러다. 저 두 명만 제거한다면 그렇게 만들 수 있다.”
“…….”
“뭘 망설이는 거냐. 손을 더럽히는 일쯤은 지금까지도 얼마든지 해내지 않았나.”
간부는 조용히 그를 타일렀다.
“저 녀석이지? 네 친구라는 녀석이.”
“알고… 계셨습니까?”
“넌 쓸 만한 칼잡이다. 위에서도 널 끌어올려줄 작정이지. 그만큼 우정을 소중히 여긴다면 길드에 바칠 충성심도 남다르지 않겠나.”
“무리입니다.”
“무리가 아니다.”
“못합니다!”
“아니. 넌 할 수 있다.”
간부는 웃었다.
“네가 그토록 바라던 성공가도가 열렸다. 딱 두 명만 해치우면 네가 저지른 터무니없는 실책도 빌런들의 소행이 된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아.”
“그냥 구급차만 불러달라고!”
“넌 똘똘한 녀석이야. 이미 알고 있지 않나. 명호길드의 이름은 어떤 경우에도 더럽힐 수 없다는 것쯤은. 여기서 망설이면 전부 뒤집어쓴다.”
붕괴사고로 죽은 피해자들.
백화점 측의 막대한 재산손실.
소대리를 돕고자 가세한 빌런조직.
“길드에서는 쫓겨나고, 백화점은 수백억 대의 소송을 걸겠지. 협회는 각성자자격증을 회수하고 머지않아 네 이름은 빌런조직과 엮일 거다.”
이정운은 깨달았다.
성공만을 바라보던 자신이 저지른 짓을.
그가 의도하진 않았더라도.
끝내 일어나버린.
지금까지처럼 무마할 수 없게 된 참사를.
‘전부 내 책임이다.’
낡고 조악한 양심이 목소리를 내었다.
무엇을 위한 출세가도였냐고.
무엇을 위해 더럽힌 손이었냐고.
정말로 저들을 여기서 저버릴 작정이냐고.
승진에 눈이 멀었던 나날에서 벗어나
실로 오랜만에 두 눈이 뜨였다.
“처음부터 이렇게 해야 했어.”
“너, 이런 멍청한……!”
간부를 베었다.
암반에 깔린 여동생 때문에 달아날 생각도 못하는 멍청이.
녀석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자리를 지켰다.
덤벼드는 길드원들을 모조리 베어 넘겼다.
“미친 새끼. 네 인생은 이제 끝이야!”
덤벼들지 않는 길드원도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실수는 지금까지 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자리를 벗어나면 저 멍청이가 죽겠지.’
그렇게 생존자가 빠져나갔고.
그의 배신행위가 알려졌다.
명호길드의 차기 유망주는 하루아침에 각성자자격증을 박탈당했고, 백화점의 붕괴현장을 자신의 죽을 자리로 삼았다.
“10200.”
그의 앞에 의문의 그림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쿨럭. 이 앞은, 못 지나간다.”
“광오검 이정운. 듣던 것보다 준수한 실력이군. 순간최대투력이 1만을 넘긴 각성자는 정말 오랜만이야. 이제껏 실력을 감추고 있었나.”
“덤비지 않을 거면, 꺼져라.”
“그 몸으로 저 뒤의 남매를 지킬 수 있겠나?”
“덤빈다면 벤다. 그것뿐이다.”
“그리고 전부 죽겠지. 너도. 네 뒤의 놈들도. 네 몸은 한계다. 하지만 우리 조직이 손을 내민다면 가엾은 남매는 살아남을 수 있겠지.”
“소대리가 넘어간 조직. 너희들이냐?”
그림자의 주인.
위스퍼가 팔을 휘둘렀다.
투두둑
흐릿한 조명 아래로 바닥을 구르는 몇 개인가의 수급. 소동이 일어나면서 언뜻 보았던 빌런들의 얼굴이었다.
무슨 험한 꼴을 당했는지, 하나같이 겁에 질려 일그러진 몰골이 봐줄만했다.
“아무런 목적도 사명도 없이 그저 힘을 과시하고 싶을 뿐인 버러지들. 저 하찮은 것들과는 다르다고 말해두지.”
“다행이군. 폼 안 나는 짓은 이제 그만두려고 했던 참인데.”
조직은 이정운을 거두었고, 남매는 백화점 붕괴사건의 유이한 생존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달 후.
그토록 애를 쓴 보람도 없이 대쉬맨의 여동생은, 그의 연인은 죽고 말았다.
그날부로 그들의 믿음은 완전히 깨졌다.
어쩌면 훨씬 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흘러넘친 믿음은 독이 되었고.
불안과 의심, 초조를 넘어 불신으로 거듭났다.
불신은 참사를 초래했고
두 남자가 지키고자 했던 유일한 여자의 죽음을 초래했다.
‘전부 지나버린 일이지만.’
양지가 아닌 음지.
허가된 각성자가 아닌 비허가 된 언네임드.
빌런조직의 일원이 된지 어언 5년.
‘50cm.’
자로 잰 듯이 정확한 대쉬능력의 간격.
이정운은 그 간격의 의미를 알고 있다.
참변의 그날.
분노에 눈이 먼 대쉬맨이 정면대쉬를 택하고.
능력의 강한 발동에 의해 제약이 걸렸던.
여동생을 구하기에 부족했던 간격.
공격을 피해 물러서는 대쉬맨의 간격을
정확하게 따라잡으며 내지르는 검격.
‘그 간격을 바랬던 건 너만이 아니었다.’
일순간에 벌어진 공방의 끝.
5년 전의 그날처럼.
이정운의 검이 대쉬맨의 몸통을 베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