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171)
〈 171화 〉 171 경고와 위화감, 그리고 악질
* * *
1.
대쉬맨은 성장했다.
물리적인 강함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강함까지도.
“완패다. 패배를 인정하지.”
이정운이 항복선언을 했지만 사회자는 분위기를 읽고 승리선언을 하지 않았다.
사연 많은 두 선수가 오랜 앙금을 털고 사이좋게 화해하는 모습을 바라는 선수들이, 시청자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사회자 사회생활 만렙
눈치 빠른 놈들은 이래서 좋아
빨리 화해해!
대쉬맨이 팔을 흔들며 재촉했다.
“팔 아프다.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거야?”
손만 잡아라.
이 손만 잡으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네가 날 명호길드에 올려주고 싶었던 것처럼.
이번엔 내가 널 끌어올려주마.
당장 해남파에 들어간 건 아니지만.
방송이나 현실에서 직접 본 묵언검객의 성격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정운을 길드에 받아달라는 부탁쯤은 얼마든지 받아줄 가능성이 높았다.
청탁도 실력이 부족한 사람을 억지로 꽂거나 다른 후보를 쫓아낼 때에나 문제된다.
이정운의 실력은 빈말로도 나쁘지 않았다.
대진운이 나빠서 패배했을 뿐.
충분히 본선진출을 노릴만한 실력자였다.
해남파의 자리가 부족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넘치는 것이 자리다.
“신세가 역전이 됐군.”
격세지감이라도 느끼는 걸까.
심사 복잡한 눈으로 손을 바라보던 이정운.
그 분위기가 왠지 모르게 이상했다.
“너 설마……. 아니지?”
“미안하게 됐다.”
이정운은 딱 잘라서 단언했다.
“5년 전과는 다르다.”
“이정운!”
“수영이와 네가 용서해준 건 기뻤다. 솔직히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럼 더 받아들여야지. 왜 기회를 걷어차!”
“백화점 붕괴사건. 그때의 사건으로 몇 명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가 고의로 무너뜨린 현장은 아니지만, 격한 교전으로 마모되어가던 내구도에 결정타를 입힌 것만은 틀림없었다.
실제로 대쉬맨의 채팅창 여론 또한 그의 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근데 쟤 때문에 피해 본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미 죽은 사람까지 있잖아
사연은 사연이고 체포부터 해!
용서는 다른 유가족한테도 받아야지
대쉬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표정만 봐도 채팅창의 상황이 짐작 간다.
‘멍청한 녀석. 무슨 억지를 부리려는 거냐.’
아무리 그가 무리하더라도 자신이 양지로 돌아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5년 전의 일이 아니라도 그렇다.
그간 그가 어떤 일을 해왔는지, 얼마나 이 손을 더럽혀왔는지 대쉬맨은 아무것도 모른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요령이 없는 우직한 멍청이. 너는 그거면 된다.’
이청운이 대회장에서 내려오자 사회자도 더는 눈치를 볼 수 없었다.
“이청운 선수의 기권으로 승자는 대쉬맨이 되었습니다. 두 선수의 훌륭한 접전과 우정을 응원하며 박수 한 번 부탁드립니다!”
대쉬맨은 납득할 수 없었다.
아니, 납득하고 싶지 않았다.
이정운을 끌어올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야 그가 어떤 마음으로 명호길드에서 버텼었는지를 알 것 같았다.
“이정운! 잠깐 기다려. 아직 할 말이…….”
“그만. 거기까지 해라.”
이정운이 눈짓으로 심사위원석을 가리켰다.
“해남파는 좋은 길드라며. 그럼 더욱 나와 얽히지 말아야 할 거다. 난…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이미 손을 더럽혔으니까.”
“그런 과거쯤이야 협회와 거래를 해서 어떻게든 세탁할 수 있잖아!”
“5년이 긴 세월이기는 하군.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다 나올 줄이야.”
“어떻게도 안 되겠냐…?”
“재회기념으로 충고 하나만 해두지. 본선은 가급적 기권해라. 조직이 움직인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정운은 정문으로 향했다.
“아앗, 이정운 참가자! 가시기 전에 부상부터 회복하셔야…”
“필요 없다.”
이정운의 손이 볼과 목에 생긴 상처를 훑더니, 상처부위의 출혈이 그쳤다.
깜짝 놀란 의료스태프가 미처 입을 뗄 새도 없이 이정운은 떠나버렸다.
“근사한 경기였어요.”
“성녀님이 만족하셨다니 다행일 따름입니다.”
돌아온 심사위원석.
해응응의 물음에 그는 잠시 주저했다.
친구가 빌런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도 되는 걸까.
[걱정 말아요. 사파라고 딱히 차별 같은 건 하지 않으니까.]“사파…? 마음은 감사하지만 정운이는 이미 떠났습니다. 길드에 들어오지는 않을 겁니다.”
해응응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파무공을 가르칠 교두를 찾았나 싶었는데 아쉽게 됐네요.]이왕이면 과목별로 한 명씩 뽑고 싶었는데.
자신을 위로하는 말이라고 여긴 대쉬맨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인사를 했다.
농담도 뭣도 아닌 진심 100%였지만.
‘역시 아쉽단 말이죠.’
문파 건물 너머, 저 멀리서 느껴지는 흐릿한 기운을 느끼며 해응응은 생각했다.
저렇게 힘이 넘쳐난다면 이왕이면 대회에서 좀 더 보여주어도 좋았을 텐데.
2.
멀리 해남파 정문에서 들리는 환호성과 사회자의 열띤 해설소리를 뒤로한 채, 묵묵히 걸음을 재촉하던 이정운.
대로로 향하는 내리막길 너머.
지하철 대신 몬스터가 떠도는 선로로 들어가려던 그의 걸음이 우뚝 멈추어 섰다.
츠즈즛
가로등의 불이 깜빡거리며.
뼈처럼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흔들렸다.
“위스퍼.”
탁 트인 도로에 늘어선 가로등의 뒤.
사람이 나오기에는 지나치게 얇은 틈새에 구겨넣은 몸을 펼치기라도 하듯이, 기괴한 움직임과 함께 위스퍼가 걸어 나왔다.
“예선 2차전이 시작했을 텐데. 이렇게 자리를 비워도 되나?”
“광오검. 네게 작전지역의 이탈을 허락한 기억은 없다만.”
서로를 노려보며 멈춰선 두 사람.
“대쉬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런 [조건]이었을 텐데.”
“이번 이탈을 벌충하기란 쉽지 않을 거다. 우리는 [그]의 사명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 자비가 언제까지고 계속될 거라 착각하지 마라.”
도구.
그 말에 분노하듯이 검을 뽑아든 이정운.
그의 검이 위스퍼의 신형을 갈랐다.
스스스
베어낸 보람도 없이 허깨비마냥 허공으로 흩어지는 위스퍼.
작정하고 능력을 끌어올리려던 그때.
이정운은 거대한 무언가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기분에 흠칫 물러섰다.
‘정말로 괴물 같은 인간이군.’
저 여자는 심사위원석에서 여기까지 몇 백 미터나 걸어온 줄 알기나 할까.
상식적으로 생각해선 말이 안 되는 거리.
그래도 틀림없다.
착각일 리가 없다.
대회 도중 몇 번이고 느꼈던 위압감.
그것과 같은 느낌의 압박감이다.
‘차라리 명호길드가 남아있던 때가 나았을지도 모르겠군.’
해남파의 길드장.
반요곡의 묵언검객.
명호길드를 무너뜨린 실력자, 해응응.
그녀가 이곳을 감지하고 있는 한, 함부로 본 실력을 꺼내 보일 수는 없다.
이정운은 짜증스레 검을 거두었다.
조직의 고위간부 위스퍼와 보스.
그들은 정말 저 괴물의 존재감을 느끼고도 선전포고를 할 작정일까.
아니면 그녀의 존재감을 느낀 건 오직 자신뿐이었던 걸까.
‘더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지.’
이정운의 모습이 지하철승강장 입구로 사라지고, 그의 걸음소리마저도 그친 뒤.
허공에 멈춰있던 나뭇잎이 뒤늦게 나풀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어? 방금 사람이 있지 않았나?”
대로 맞은편에 자리한 편의점.
예선 탈락의 쓰라림을 잊고자 컵라면을 사먹던 선수 중 하나가 눈을 껌뻑거렸다.
“무슨 사람?”
“어…… 아니야. 기분 탓인가봐.”
“그렇게 얼이 빠져있으니 탈락하지.”
“나만 탈락했냐? 지도 탈락했으면서.”
“밥팅아, 라면 다 불었다.”
“악! 망했다!”
순간의 꺼림칙함도 잠시. 한 선수가 느꼈던 위화감은 가볍게 오고가는 잡담 속에 잊혀졌다.
붙잡지 못한 위화감이란 겨울에 지는 낙엽과도 같은 것.
다가올 겨울에 대비해 나무가 에너지를 비축하고자 떨어뜨리는 잎사귀가 낙엽이라면.
겨울에 저무는 낙엽은 겨울보다 한층 혹독한 계절을 예고하는 불길한 징조일지도 모른다.
아직은 어느 누구도 그 징조를 눈여겨보지 않더라도 말이다.
3.
예선 1차전의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방송사에서는 급히 추가인원을 급파했다.
“평일 대낮에 시청률 16%가 찍혔다! 이거 절대로 놓치지 마라. 알았냐?”
촬영지원팀이 해남파로 급히 차를 몰아 도착했지만 그들은 오르막길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워매. 걸어 올라가도 훨씬 빠르겠네.”
“X 됐다. 장비 다 꺼내. 짊어지고 올라간다.”
방송을 보고 현장으로 향한 발빠른 기자들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현실에서 펼쳐지는 박진감 넘치는 싸움을 구경하겠다고 몰려든 브이튜브 시청자들만 그 수가 무려 이천 명에 달했다.
보통 스트리머라면 코코낸내 하고 잠들 평일 오전부터 시작된 개꿀잼 이벤트에 근방의 한가한 주민들이 총집결을 한 것이다.
“만식이 너 채굴알바 한다더니, 여기서 뭐해?”
“무슨 그런 하나마나한 소리를 해? 니도 무술대회 보러 왔으면서.”
“하도 신기해서 그랬지. 학교 졸업한 뒤로는 거의 게임에서만 만났으니까.”
근방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게임으로 돈 버는 재미에 푹 빠졌던 두 청년.
연예인은 몰라도 에픽판타지 랭커는 1위부터 100위까지 줄을 세워서 부를 수 있는 게임폐인들에게도 묵언검객의 이름은 유명했다.
“입장은 가능하대?”
“위험해서 안에서는 못 본다더라. 대신 외부스크린 펴서 중계라도 해준다니 다행이지.”
“안에서 못 봐? 밖엔 추운데.”
그마저도 인파가 너무 밀집되어서 사고가 날까봐 급히 마련한 플라스틱 의자에 번호표까지 뽑아가며 앉고 있다.
투덜거려도 번호표 대기번호가 100번도 넘게 남은 걸 보고 나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길드 앞이 번잡해진다고 쫓아내어도 할 말이 없을 구경꾼들에게 이 정도라도 챙겨주는 것이 어디냐는 생각도 들었다.
“야, 저기 봐. 지상파 3사 기자들 다 왔다.”
“저긴 공중파 방송국 기자들이네?”
“스크린폰 펴고 다니는 인간들도 많네. 저거 죄다 스트리머들이야.”
무섭도록 늘어나는 인파.
오르막길은 이미 차량으로 가득 찼는데도 사람들의 행렬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934번 분! 여기로 앉으세요.”
“앗, 내 차례다.”
“935번 분!”
“휴. 자리 끊기는 줄 알고 개쫄렸네.”
신이 나서 자리에 앉는 청년들.
입김을 호호 불며 언 손을 녹이고 있자니,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서성거리는 사람들보다는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 예선 2차전 탈락자다.”
“지금 정문으로 나오는가본데?”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정문으로 나온 탈락자.
그는 앞을 쳐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연달아 터지는 플래시에 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뭐, 뭐야. 이게 다 뭐야!”
플라스틱 의자에 앉거나.
담벼락에 기대어 있거나.
차량 안에서 스크린폰을 펼치면서.
대회를 지켜보던 수많은 현장 직관 시청자들.
그들이 멀뚱멀뚱 베어맨을 지켜보다가 머리 위로 느낌표를 띄워올렸다.
“베어맨이다!”
누군가의 외침.
이에 표적이라도 찍힌 것처럼 사람들의 열띤 반응이 이어졌다.
“잘 싸웠다, 베어맨!”
“곰통박치기 보여주세요!”
“뭐라도 좀 안 보여주려나?”
“보여줘! 보여줘! 보여줘!”
패배한 대회참가자에 덮쳐드는 현장직관 시청자들의 장기자랑요청!
“SXS 기자입니다! 베어맨님 패배한 소감 한 마디 해주시죠!”
“MXC 기자입니다! 몸통박치기를 곰통박치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멋있다고 생각해서인가요?”
“YXN 기자입니다! 상대 참가자에게 두들겨 맞는 베어맨님의 모습에 ‘응애 나 애기 베어맨 살려줘’라는 실시간 방송채팅이 빗발치는데요. 해당 밈의 유래에 대해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이어지는 기자들의 악질인터뷰까지!
베어맨은 깨달았다.
‘이런 싯팔. 이거 다 묵언검객 시청자잖아.’
이제부터 패배자는 본방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현장 직관 시청자, 심지어 온갖 방송국에서 몰려든 기자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해야 한다.
패배한 것도 서럽건만 눈물이 절로 나오는 악질콤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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