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177)
〈 177화 〉 177 그녀가 게임을 해야 하는 이유
* * *
1.
성녀는 새로운 친구들이 마음에 들었다.
“비파는 매력 넘치는 악기 같아요. 애달픈 선율에 청명한 음색이 정말 좋지 않나요?”
“저희 불협화음을 주로 배우고 있는데요. 같은 음공수업 해왔던 거 맞죠?”
“듣는 이를 몰입시키는 연주 실력도 음공수련의 일환이잖아요.”
보이스걸은 성녀의 친근한 태도가 부담스러웠다.
본인이 빌런조직의 일원인 것도 있지만, 상대가 거물인 탓도 있었다.
“전 요즘 정말 행복해요. 어떻게 하면 보다 적은 손실로 많은 부상을 회복시킬지, 눈앞의 죽음이 확실시 된 사람을 가성비를 따져가며 죽게 두어야할지 고민하던 나날에 비하면 비파의 음색을 고민하는 건 정말 행복한 고민이잖아요?”
대화가 무거워.
전쟁영웅이면서 빌런조직의 간부한테 그런 거 상담해오지 말라고.
보이스걸은 차마 대놓고 저리 가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
“시스터 해응응도 참 친절하시죠. 귀국을 미루고 제가 머무르는 것도 받아주시고, 빌런 분들에게도 갱생의 기회를 주고. 그렇지 않나요?”
아니라고 하면 이 여자가 비파로 내 고막을 터뜨릴까, 아니면 머리통을 비파로 후려칠까.
동화 속 천사나 엘프가 따로 없는 생김새로 CQC:Close Quarters Combat를 익힌 성녀는 황당할 정도로 높은 전투숙련도를 지녔다.
“저야 그저 감사할 따름이죠.”
“겸손은 수명을 늘리는 훌륭한 미덕이죠. 보이스걸. 앞으로도 오래오래 당신이 겸손했으면 좋겠어요. 새로 사귄 친구를 잃기는 싫거든요.”
무슨 의미야.
친구로 남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건가?
살해협박 맞지?
보이스걸은 웃는 얼굴을 지으며 속으로 울었다.
이 여자 무서워.
도망치고 싶어.
“성녀님. 그런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시면 보이스걸님이 겁을 먹을 겁니다. 오해받지 않게 좀 더 부드러운 표현을 사용하심이 어떠십니까.”
“대쉬맨. 제 교우관계를 걱정하는 마음은 감사하지만 무공수련은 끝나고 오셨겠죠? 절 핑계로 도망치러 오셨다면 실망이 클 거랍니다.”
“한 번밖에 없었던 일을 몇 주째 우려먹으시는 겁니까……. 그땐 처음이라 그랬던 겁니다.”
대쉬맨은 애써 덤덤한 척 행세하며 성녀의 말벗이 되어주었고, 보이스걸은 자연스레 성녀의 이목을 피해 수련동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위스퍼님을 찾아가야해.’
보스는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석 달 사이에 이동기 훈련이라면서 온갖 똥겜런으로 켠왕을 할 정도로 현지적응을 완벽하게 끝마쳤다.
이제 믿을 사람은 조직의 고위간부이자 보스도 가볍게 대하기 힘든 거물인 위스퍼밖에 없다.
[위스퍼님. 보이스걸입니다. 작전지 변경에 대한 논의를 부탁드립니다.]보이스걸은 보스를 대할 때보다도 더욱 조심스럽게 위스퍼에게 말을 걸었다.
조직에 들어오기 전에는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마였네, 인육을 뜯어먹는 식인마였네, 감옥에서 죄수 백 명을 죽이고 탈출한 사형수라는 둥.
조직 내에서도 위스퍼에 대해서는 온갖 흉흉한 소문이 감돌고 있다.
‘갑자기 말을 걸었다고 화내지만 않았으면 좋겠네…….’
잔뜩 긴장하면서 캡슐방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자니, 안에서 푸쉬익 하는 캡슐뚜껑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 길드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방송을 좋아하는 걸까. 정작 길드장은 석 달 째 하루도 게임을 안할 정도로 흥미가 떨어진 것 같은데.’
백수 보듯이 탐탁찮은 시선으로 캡슐방을 흘겨보기도 잠시.
“작전지 변경을 요청하다니. 너답지 않군, 보이스걸. 인내심이 뛰어난 네가 조급해하다니.”
“어라? 방금 캡슐방 안에서 나오신 거 맞죠?”
“너라면 알려줘도 괜찮겠지. 조직의 새로운 대계가 세워졌다.”
“말 돌리시는 거 맞죠?”
해응응과 성녀와 함께 하다 보니 본인도 모르게 성장한 담력!
위스퍼를 추궁한다는 평상시라면 감히 엄두도 못낼 미친 짓을 저지르는 보이스걸이었지만 정작 위스퍼는 그녀의 태도에 만족했다.
빌런조직의 간부라면 모름지기 이런 대범한 면모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빌런조직의 협력자들은 음지에서 파괴공작 및 요인암살에 협력할 정보원 내지 배신자들뿐이었다.”
“앞으로는 다를 거라는 말씀이신가요?”
“브이튜브는 우리들의 새로운 선전병기가 되었다. 이미 수많은 시청자들이 우리의 뜻에 동조하며 각 길드의 범죄행위를 조사, 위법성을 입증하기 위한 추가증거수집 및 비밀시설들의 무장습격을 돕고 있다.”
“예?!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나요?”
“각 부분별로 가장 큰 활약을 한 상위 100팀에게는 친필사인이 그려진 티셔츠를 증정하기로 한 작전이 유효했지.”
“…네?”
“상위 10팀에게는 파괴공작 및 시설침투, 요인암살 시 알아야 할 행동강령을 증정하고 있다.”
“농담이죠?”
“가장 큰 활약을 펼친 이들에게는 내가 직접 작성한 작전지령서와 실전영상의 피드백을 해주기로 했다. 모두 의욕이 넘치더군.”
이 사람 뭐야. 왜 이렇게 본격적이야.
보이스걸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태연스럽게 방송으로 테러를 사주하고 있었다니. 혼자만 명백히 다른 방향으로 방송을 이용하고 있지 않아?!’
똥겜런 켠왕이나 하고 있는 보스와는 너무나도 비교되는 행적.
흑의종군의 진정한 보스는 사실 위스퍼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대단한 수완이다.
그래서 더 좋았다.
‘이래야 우리 고위간부 위스퍼님답지!’
보이스걸은 위스퍼의 음산하고 위험한 분위기에 매료된 여자.
애초에 그녀 또한 빌런조직의 간부이니만큼, 위스퍼의 대담한 행적을 좋아하면 좋아했지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조직의 새로운 활동루트는 이와 같이 그 유용성이 입증되었지. 다만 방송을 이용하는 선전활동에 한 가지 커다란 문제가 존재한다.”
“말씀만 해주세요. 조직의 대의를 이루기 위해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릴게요!”
“해응응. 그 여자에게 게임을 시켜야 한다.”
“……네?”
“묵언검객이 방송을 안 켜서 미쳐버린 시청자들이 우리 쪽 방송으로도 유입되고 있다.”
보이스걸은 혼란에 빠졌다.
“그럼 더 좋은 거 아닌가요?”
“이걸 봐라.”
위스퍼는 긴 말 하지 않고 자신의 방송영상에서 딴 클립을 보여주었다.
묵언검객 님이 방송을 키지 않으면 하루에 1번씩 협회신문고에 방송주소를 뿌리겠습니다
해남파 스트리머 클럽 리더가 방송 안 키는데 왜 가서 키라고 안 함? 해남파 스트리머 클럽 리더가 방송 안 키는데 왜 가서 키라고 안 함? 해남파 스트리머 클럽 리더가..
묵언검객님 올 때까지 범행현장 따라가서 범인은 위스퍼라고 적어놓고 다닌다ㅅㄱ
“위스퍼님…… 지금껏 혼자 무슨 싸움을 하고 계셨던 겁니까…….”
이런 악질들과 싸워가며 혼자 착실하게 조직 활동을 하고 계셨다니.
그 고통스러웠을 싸움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졌다.
“보다시피 이벤트에 눈이 먼 노예들을 방해하는 악질 시청자들이 있다.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묵언검객이 방송을 키게 만들어야 한다.”
“쉽지 않을 텐데……. 그분은 하고 싶은 일은 무조건 해야 직성이 풀리고, 하기 싫은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시잖아요.”
“그래서 해응응을 찾아가 직접 협상을 했다.”
“정말요?! 어떻게 협상했는데요?”
“그 여자와 싸워서 한 번이라도 이기면 방송을 키기로 했다.”
“……그거, 방송 절대로 안 키겠다는 선전포고 아닌가요?”
오히려 역효과 같은데.
불신감을 품기도 잠시.
그런 불가능한 일에 줄곧 도전해왔을 위스퍼를 떠올려서라도 애써 긍정적으로 마음먹었다.
위스퍼님은 혼자서도 불가능해 도전해오셨을 텐데, 자신까지 약한 소리를 해서는 위스퍼의 기분만 언짢게 만드는 짓이다.
“위스퍼님이 대결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할 수 있도록 제가 도와드릴게요. 제 각성능력으로 길드장의 전투력을 약화시키겠어요!”
“역시. 내 후계자로 점찍은 간부답군. 믿겠다, 보이스걸. 네게 준 믿음의 가치를 증명해라!”
보이스걸과 위스퍼.
두 빌런간부의 묵언검객 방송 키게 만들기 대작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
한복남 김제철.
8강전에 통과한 그는 해남파의 정식 무공교두가 되어 길드에 머무르고 있다.
해응응과 조금이라도 거리감을 좁히고 싶은 마음에 수락하여 최선을 다한 그였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일을 너무 열심히 했다.
“한 시간 만에 초식을 모두 익혔소! 그러니 남은 한 시간은 함께 오붓하게…”
[역순으로 초식을 펼치는 연습을 해보면 되겠군요. 당신의 재능이라면 다음 이 시간까지는 충분히 성과를 내리라고 생각해요.]“…역순?”
일을 빨리하면 퇴근시간이 빨라지는 워라벨을 준수하는 직장과 달리, 일을 빨리하면 더 많은 일감을 던져주는 무림인식 근무제도!
무럭무럭 늘어나는 무공실력과 달리, 기대했던 해응응과의 데이트는 쥐뿔도 없었다.
“그것도 오늘까지의 얘기! 마침내 무공을 대성하였소! 더는 눈가리개를 한 채로 모든 초식을 펼치지도, 10초 안에 전력을 다해 모든 초식을 펼치지도, 물을 뿌려 미끄러운 대리석 위에서 모든 초식을 펼치지도 않아도 되오!”
[잘했어요. 이제 수련제자들의 교육에 투입해도 되겠네요. 앞으로 교육은 잘 부탁해요.]“…….”
길드, 탈퇴할까.
인생무상을 느끼며 처진 발걸음으로 길드부지를 떠돌아다니던 김제철.
그의 눈에 기묘한 광경이 눈에 띄었다.
항상 커다란 헤드폰을 끼고 다니는 여자.
지난 무술대회에서 무공교두로 채용된 선수 중의 한 명이었다.
“그쪽은 빌런조직의 보소저가 아니신지?”
“아, 예에… 안녕하세요…….”
“과년한 처자가 어찌 망측하게 목에 팻말을 걸고 다니는 것이오?”
“그, 그게…….”
“혹여… 빌런시절의 손버릇을 고치지 못해 절도라도 벌인 것이오?!”
보이스걸이 욱하고 눈을 치떴다.
“잡범 취급하지 말아요! 저는 긍지 높은 흑의종군의 여간부 보이스걸. 대의를 위한 죄에 가담할지라도 사익을 위한 죄는 저지르지 않아요!”
평상시의 얌전한 성격과 달리, 삿대질까지 할 정도로 진심으로 화를 내는 보이스걸.
팻말을 가리던 손이 하나는 허리춤으로, 하나는 삿대질로 쓰이자 김제철의 시선이 팻말에 쓰인 큼지막한 붓글씨를 따라 움직였다.
[저는 해남파 시조 해응응님의 귀에 대고 음성전이능력으로 100분 동안 모닝콜을 듣게 만든 모닝콜테러범입니다.] [다시는 모닝콜을 재생하며 도망 다니는 못된 짓을 하지 않겠다는 반성의 의미로 이 팻말을 열흘 간 목에 끼고 다니겠습니다.]“아앗! 어딜 보시는 거예요!”
“…대의를 위해서 길드장의 귀에 모닝콜을 100분 동안 재생하였단 말이오?”
빌런조직에서는 그나마 정상인 포지션을 맡았던 보이스걸.
열심히 가꾼 이미지가 개같이 멸망했다.
이제 그녀는 정상인이 아니다.
인간모닝콜생성기.
알람테러범이다.
수치심에 귀까지 빨개진 보이스걸이 고개를 푹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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