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178)
〈 178화 〉 178 그녀가 게임을 해야 하는 이유
* * *
3.
보이스걸은 두려움에 빠졌다.
목에 팻말을 건 굴욕적인 차림새.
이 꼴을 하필이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복남 김제철에게 들켰다.
‘악질 유교걸 이소혜도 이 남자에게 반해서 사상이 옮았다고 했었지, 아마?’
어느 종교나 사상인들 안 그렇겠냐만 유교는 도둑질을 극도로 경시했다.
유교와 다른 종교의 차이점이 있다면, 유교는 상업에 의한 상거래마저도 가치의 도둑질로 여겨 천시할 정도로 혐오의 깊이가 달랐다.
이런 더러운 도둑년의 종자 같으니! 길드장은 너무 자비로우셨다. 내 친히 네 손목에 포승줄을 묶고 해남동을 한 바퀴 돌아야겠다!
보이스걸의 상상 속 한복남 김제철은 정의의 화신마냥 불타오르는 정의감을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공개모욕을 할 사람이었다.
“보소저.”
“아, 안돼요! 포승줄만은 제발!”
“팻말이 너무 커 보이는데 무겁지는 않소?”
“아아……. 그런 거였어요?”
“포승줄은 어찌하여 찾은 것이오?”
“모, 몰라도 되요!”
보이스걸에게는 다행히도 김제철은 왜곡된 유교관을 지닌 가짜 유교사대부가 아니었다.
‘실력으로는 따라올 자를 찾기 힘든 그 묵언검객에게 모닝콜 테러를 100분이나 하다니. 제정신으로 할 짓이 아니지.’
이건 조직에서 그녀보다 위에 있는 인간이 시킨 일이 분명했다.
김제철은 보이스걸을 측은하게 여겼다.
“그런 차림으로는 일이 있어도 해결하기 어려울 터인데, 혹여나 곤란한 일이 있다면 내게 말해주시오. 배가 고프지는 않소?”
“고마워요……. 역시 소문은 믿을게 못된다더니 이렇게 착한 분인지 몰랐어요.”
보이스걸은 김제철의 상냥함에 기대어 용기를 내었다.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하나 있기는 한데……. 다른 분들은 절대로 모르셔야 해요.”
“범죄에 저촉되는 일이오?”
“그런 건 아니지만…… 제 명예와 조직의 위신이 걸린 일이에요.”
목에 반성문이 쓰인 팻말을 찬 시점에서 명예고 위신이고 이미 없어 보인다만.
김제철은 의외로 배려심이 좋은 편이었기에 애써 모르는 체 넘어가주었다.
“들어주겠소.”
“저희 흑의종군의 고위간부이신 위스퍼님이 묵언검객님과 대결을 벌이러 가셨는데 돌아오지를 않으세요. 가서 무사한지 확인해주실 수 있나요?”
“뭣이! 묵언검객과 데이트를!!”
“아니, 데이트가 아니라 대결을…”
“남몰래 남녀가 만나서 비밀스러운 시간을 보낸다면 그것이 데이트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남자의 급발진 앞에는 배려심 넘치는 성격도 뒷전이었다.
“말하시오. 그가 어디로 갔는지. 당장 말하시오!”
정말 이 인간에게 부탁을 해도 괜찮을까.
뒤늦게 걱정이 들었지만 걱정되기는 위스퍼의 안위도 마찬가지였다.
보이스걸은 결국 위스퍼의 위치를 알려줬다.
4.
보이스걸이 알려준 접선장소.
묵언검객과 위스퍼가 남들 몰래 대결을 벌이는데 사용했다고 알려진, 몬스터로 인해 사람이 출입하지 않는 산 중턱의 공터.
“재난현장이 따로 없군…….”
쓸려나간 나무와 토사, 바위더미 등이 겹겹이 쌓여있는 비탈길.
대체 무슨 싸움을 했는지는 몰라도 이거 하나는 장담할 수 있었다.
어지간한 각성자도 휘말리면 죽었다.
바닥에 파인 손바닥 모양의 자국도.
바위 깊이 박힌 나뭇가지도.
거대한 소용돌이 모양으로 갈려나간 버려진 별장도.
모두 간밤의 싸움을 알리고 있다.
질투에 눈이 멀었던 김제철마저도 이제는 위스퍼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분명 이쯤이라고 했는데.”
보이스걸의 모닝콜테러로 묵언검객의 정신력을 소모시킨 뒤에 1 대 1 대결에 도전했던 위스퍼.
보이스걸에게 받은 그의 스크린폰 번호로 통화를 거니, 땅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
큼직한 잔해들을 집어던지며 땅을 파헤치자, 땅에 파묻힌 손이 나타났다.
“살아계십니까? 제 목소리가 들리면 손을 움직여보십시오.”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손.
다행히도 아직 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쑤욱
산삼 캐듯이 쑥 뽑아 올린 위스퍼.
그가 쿨럭거리며 흙을 토해냈다.
“보이스걸의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만, 꼴이 말이 아니시구려.”
“그 괴물은. 아직 이 근처에 있나?”
“제가 왔을 땐 이미 아무도 없었습니다. 야생동물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랬겠지…….”
산이 무너질 정도의 자연재해급 무력 앞에 몬스터들마저 도망갔거늘.
도망치지 않은 동물이 있다면 도리어 그게 더 무서웠을 거다.
그 동물은 자연재해조차도 위협으로 느끼지 않을 정도로 강한 존재.
동물의 탈을 쓴 정체불명의 괴생물체일 테니까.
“걸을 수는 있겠습니까?”
“미안하지만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신체장기의 45%가 궤멸한 상태라 복구에 모든 능력을 사용하는 중이지…….”
당신도 만만찮게 괴물이잖아.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는 김제철.
그의 시선을 알기나 하는지.
위스퍼는 거친 숨소리로 색색 거리며 호흡하더니, 이내 목이 갈라지는 거친 기침과 함께 검은 피를 왈칵 토해냈다.
“진짜 복구 중이신 거 맞습니까? 어째 죽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문제없다……. 그냥 부축만 해다오. 사례는 섭섭지 않게 챙겨주지.”
해남파로 돌아가는 길.
회복 중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위스퍼가 기침을 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이러다 해남파에 돌아가기 전에 먼저 죽겠습니다. 구급차를 불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각성자 환자는… 협회의 감시망을 피할 수 없다…….”
“그러다 죽으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일단 살고 봐야죠. 정확히 어떻게 복구를 하는 겁니까?”
위스퍼는 축 늘어진 몸으로 힘겹게 김제철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자신을 해할 작정이었다면 번거롭게 꼬치꼬치 캐묻지 않아도 해치울 기회는 이미 여러 번 있었다.
그는 마지못해 사실대로 말했다.
“복구를 시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현상유지에 급급하다…….”
마력이 회복되는 매 순간.
몇 초 전으로 몸을 되돌리고 있을 뿐.
되돌린 시간이 3초라면 되돌림을 일으킬 마력을 회복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3.3초.
미세하게 벌어지는 시간차이만큼 그의 신체는 조금씩 악화되고 있었다.
김제철이 오지 않았다면 장기전으로 버텨도 언젠가는 부상이 악화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며 죽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전에는 누구든 오기야 왔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정말 무시무시하군.’
이런 대단한 능력을 지닌 위스퍼도.
그런 위스퍼를 초죽음으로 몰아넣은 묵언검객도.
모두 그와는 별세계의 실력자들이었다.
“보이스걸. 상황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회복능력을 걸어줄 각성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알겠어요. 뒤는 제게 맡기세요. 어떻게든 성녀님을 설득해볼 생각이니.
하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전화 소리를 듣자마자 나무 위에서 뛰어내린 묵언검객이 김제철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놀라서 비명도 못 지르고 얼어붙은 김제철에게 해응응이 수첩을 내밀었다.
[성녀의 도움은 얻지 말아요. 제가 치료한다고 하세요.]“아, 알겠습니다.”
잠시 후, 통화를 마친 김제철. 묵언검객은 못마땅한 눈으로 그를 흘겨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저 지경으로 만드는 건 너무하셨습니다.”
[수련 도중에 모닝콜소리가 머리에 다이렉트로 꽂히는 경험은 한 번만으로도 충분해요.]해응응도 부득이하게 내린 결정이었다.
보이스걸은 위스퍼를 따르는 조직의 인간.
위스퍼의 마음을 꺾지 않는 한, 모닝콜테러는 피할 수 없다.
“묵언검객님도 너무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제가 한 번 설득해보겠습니다.”
김제철은 애써 중재를 시도했다.
“앞으로는 이런 짓은 하지 마십시오.”
“기회만 되면 다시 저지를 것이다.”
“살고 싶으면 이럴 땐 거짓으로라도 둘러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사람들이 바라고 있다. 내가 묵언검객을 꺾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는 한, 나는 멈출 수 없다.”
“조직원들이면 고위간부인 당신이 직접 설득을 하면 되지 않습니까. 역부족이라고.”
“조직원이 아니다. 시청자다.”
“예?”
“선금을 받은 임무는 반드시 수행한다. 그것이 빌런의 사명. 귀찮고 성가시고 위험한 임무지만, 피할 수 없다면 대금이라도 받아야겠지.”
즉, 돈 받고 덤볐다는 말이다.
“이건 그냥 개인적인 호기심입니다만, 얼마를 받았습니까?”
“총 33억을 선수금으로 지급받았다…”
“예?! 33억이나 되는 거금을 선수금으로요? 살인청부면 브이튜버에서도 막히지 않습니까?”
“살인청부가 아니다…. 정확히는, 묵언검객을 방송을 키게 하라는 임무였다…….”
“당신들 방송은 왜 이렇게 잘 나가는 겁니까?!”
“명호엔터사장인지 뭔지 하는 놈을 시작으로 사장이라는 놈들이 1억씩 미션비… 아니, 선금을 높여주었다.”
“회장님들까지 구했다고?!”
“회장이 아니라 사장이었다… 확실하게 죽여달라거나, 최대한 고통스럽게 처리해달라는 후원문구가 있었지만… 방송의 재미를 위해서 했던 멘트들이었겠지.”
“그 자식들은 그냥 살인청부를 한 거 같습니다만.”
“미션성공 시에는 다섯 배를 받기로 약속했는데 아쉽게 되었군…….”
33억이면 도네로 벌어서 갚기로 한 3억은 진즉에 다 벌고 30억을 더 번거잖아.
김제철은 진지하게 현타를 느끼려다가 뚱한 얼굴의 해응응과 눈을 마주치고는 생각을 고쳤다.
30억 받고 묵언검객과 진검승부하기.
‘미쳤나? 열 배를 줘도 못하지.’
위스퍼가 초짜 스트리머라 가성비가 안 좋았던 거지,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시도조차도 하지 않았을 미친 짓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