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193)
〈 193화 〉 193 보기만 하고 마시면 안 되는
* * *
1.
한껏 놀림당하기는 했지만 걱정거리였던 계약 문제가 끝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엄길동.
그는 욕심이 들었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또 실물 묵언검객을 현실에서 보겠느냐는 생각이 그에게 용기를 선사했다.
“혹시 다음 합방은 누구랑 할지 정하셨나요?”
해응응이 수첩에 큼지막하게 물음표를 그렸다.
휘어지는 곡선도, 뚝 떨어지는 직선도, 동떨어진 점도 흔한 물음표일 뿐인데, 묵언검객이 그리니 하나같이 얄미워 보였다.
“혹시 괜찮다면 저랑도 합방스케쥴을 잡으실 수 있나 해서요. 그, 묵언검객 따라잡기를 해응응님이 직접 하신다거나. 아니면 같이 게임을 한다거나 하면서요.”
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라고 소심하게 덧붙이는 조건 아닌 조건.
미녀 앞에 기죽는 엄길동의 마음을 알기나 하는지, 수첩에 갖다 댄 붓펜이 종잡을 수 없이 제 맘대로 낙서를 그려나갔다.
받아줄까 말까.
재밌을까 재미없을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움직임만 봐도 빤히 들여다보이는 속마음에 엄길동이 투덜거렸다.
“제 방송도 나름 시청자분들한테 인기 있어요. 합방출연하시면 묵언검객님한테도 분명 도움이 되실 거예요.”
[제가 그런 걸 필요로 하는 사람처럼 보이나요?]“전혀 아니실 것 같기는 한데……. 아, 아무튼! 나오셔서 손해는 안 보신다고요. 묵언검객님 시청자들도 악질이잖아요!”
[그런데요?]“제 시청자들도 엄길단이라고 나쁜 짓만 하고 다니는 아주 순 악질들이에요! 악질들 대하는 팁이나 대처방안도 많이 알려드릴 수 있어요.”
그런 건 딱히 필요 없는데.
채찍이라는 좋은 대화수단을 지닌 그녀에게는 불필요한 제안이지만 정성이 갸륵하다고 못내 넘어가는 척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좋아요.]“어? 저, 정말요?”
제안을 한 당사자도 받아들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지 몹시 놀라워했다.
[반요곡 복귀방송은 나중에 하면 되죠]“…………네?”
[반요곡은 혼자 할 거예요.]누가 그걸 몰라서 묻냐고 무친련아.
엄길동의 당혹감 지수가 최대치를 넘겼다.
벌써 반 년째 손도 안 대고 있는 반요곡.
그게 엄길동 합방 때문에 미뤄진다니.
“누구 때려죽일 일 있으세요?”
분노한 묵언검객의 팬들에 의해 엄길동의 방송이 가루가 되도록 까이며 박살나고도 남는다.
“……그. 싫은 건 아닌데요…. 순서를 조금만 어떻게 해주시면 안 되실지……. 헤헤.”
채찍 시뮬레이터 마지막 화 편집영상이 브이튜브에 업로드 된 이후.
해응응은 부쩍 주변인들의 두려움에 질린 시선을 느끼고 있다.
엄길동의 극진한 저자세도 예외는 아니다.
그 이상으로 합방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느껴질 뿐.
‘용기 하나는 대단하네요.’
백소천조차도 요즘은 대련 한 번 하자는 말도 못 꺼내고 은근히 그녀를 피해서 다니는데.
남자 주제에 키도 조그마하고 근육도 찾아볼 수 없는 말라빠진 소년 같은 엄길동.
그런 그가 두려움을 참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퍽 가상하게 여겨졌다.
[그럼 나중에 연락할게요.]“감사합니다, 마왕님!”
그 호칭은 그만둬줬으면 좋겠지만.
씩씩한 태도나 금방 좋아죽는 뒷모습이 참 시답잖으면서도 피식 웃음을 짓게 만든다.
‘알 것 같아요. 이 사람이 인기 있는 이유.’
[잠깐만 기다려요. 가기 전에 선물 하나 보여줄게요.]해응응이 찻주전자를 쥐고는 머리 높이까지 번쩍 들어올렸다.
“??”
시선을 느끼며 주전자를 기울이자니, 쪼르륵 소리와 함께 흐르는 차가 정확히 찻잔 속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와! 그거 어떻게 하신 거예요? 진짜 멋지다. 색깔도 완전 예뻐요. 향도 완전 좋은데요?”
감탄하며 찻잔을 들어올려 색을 살펴보거나 향을 맡으며 부산스레 반응하는 엄길동.
풍부한 리액션 앞에서 오늘만 몇 번째인지 모를 역시 스트리머, 라는 감탄을 하길 잠시.
호로록
“!!”
엄길동이 냅다 차를 비웠다.
챱챱.
입맛까지 다시면서 한 잔 더 없나 아쉬움이 담긴 눈으로 주전자를 흘끗 쳐다보는 엄길동.
그런 그에게 해응응은 배신감을 느꼈다며 충격을 감추지 않았다.
“왜, 왜요? 마시라고 줘놓고 왜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세요?”
[마시면 다시 따를 수가 없잖아요]“네?? 잔을 비워야 다시 채우죠.”
[차를 줬다고 마신 당신이 잘못한 거예요.]뭐야 그게. 무슨 벌칙게임이냐고.
투덜거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건만.
시무룩해하는 미녀의 얼굴을 보면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이유를 듣기 전까지만.
“이 인간 방송컨셉 잡는 가짜악질이 아니라 진짜악질이었구만?!”
2.
해남파 방문기념으로 기념품까지 사들고 돌아간 엄길동.
바닥에 떨어진 종이비행기를 줍고 어지럽혀진 알현실의 청소를 하던 우지우의 눈에 의자에 앉아 앞뒤로 까닥거리는 발이 보였다.
‘별일이시네. 저렇게나 기분이 좋아보이다니.’
평소라면 메트로놈의 10 BPM도 안 되는 느린 박자의 움직임도 보일까 말까한 묵언검객이 100 BPM에 가까운 속도로 다리를 까닥거린다.
주아영의 수련에 큰 진전이 있었다며 신이 났던 날을 제외하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닌 척 해도 역시 스트리머 동료를 만나서 기분이 좋으셨던 건가?’
앞으로는 종종 말벗 삼아서 엄길동을 해남파에 초대해야겠다고 결심하는 우지우였다.
‘뭔가 까먹은 기분이 드는데요.’
우지우는 모를 해응응의 속마음.
그녀는 미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엄길동 하니까 뭔가 떠오를 것도 같은데.
머릿속을 간질거리며 떠오를 것 같으면서도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기억.
답답함은 있지만 꼭 알아내야겠다는 집착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거라면 알아서 기억날 거라며 해응응은 위화감의 끈을 놓아버렸다.
신이 나서 돌아간 엄길동도, 무심히 위화감을 잊어버린 해응응도 모두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이 한 가지 있었으니.
합방을 하려면 가상세계에서 초대를 걸고 받아야 하지만, 엄길동과 해응응 사이에서는 합방초대가 성립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엄길동의 계정은 아직도 해응응의 계정에서 차단된 상태 그대로였으니까.
합방이 이루어질 날은 아직도 요원해보였다.
3.
[각성자협회 이사회 소집 및 긴급회의]□일시 및 장소
2051년 6월 15일 04:40분(이사회)
협회본부 아발론게이트 B211
Ⅰ. 이사회 개회
1. 성원확인 및 개회선언
참석이사 : 장동윤, 서목금, 혼일영 외 7인.
위임이사 : 이유구, 김명수, 시두목 외 3인.
2. 협회장 개회발언
Ⅱ. 보고안건
1. 십대길드 세력판도 변화예측
⑴ 게이트 원정의 여파
⑵ 명호길드 파멸의 여파
⑶ 이명호 실종에 대한 추측
⑷ 해남파의 종잡을 수 없는 행보
2. 최대의 위협 해남파
⑴ 수상할 정도로 튼튼한 재정부분
알 수 없는 선에서 이루어지는 지원
정부와의 관계 의혹
⑵ 기획조정실장 백소천의 합류
귀환자들의 고유세력 존재 가능성
무림계 에 대한 조사 요망
Ⅲ. 심의안건
1. 십대길드 대응전략
⑴ 백소천의 십년대계
기존 A안대로 계획추진
백소천을 대체할 신임 기획조정실장 남오윤 발령
⑵ 남오윤의 이이제이
해남파와의 충돌로 세력이 약해진 아산길드와 명호길드장 이명호의 죽음에 관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태백길드를 해남파와 충돌시킬 것.
연예계 활동에서 세 길드의 접전을 만들어 본격적인 대립을 유도할 것
경제부문에서 길드사업 간 입찰경쟁을 유도하여 자본경쟁을 유도할 것
2. 해남파 대응전략
⑴안건상정의 배경
십대길드와 달리 급진적으로 성장하는 해남파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음
주변 건물부지의 의도적인 지가조작 및 건물매입에 따른 문파본부 주변일대의 요새화
논란의 ‘마왕검객’ 이슈가 현실에서도 실현 가능하다는 보고결과가 사실로 드러나, 빌런조직 과의 연계테러에 대비해야함
⑵전문조사팀 창설
국가안보국의 정보은폐를 뚫을 최고수준의 정보팀 파견 필요
동아시아 세계각국에서 첩보활동을 진행 중이던 첩보요원들의 본국송환 및 전문조사팀 창설 예정
인성관련 이슈로 기피되었던 위험인물들의 공격적인 기용 필요
3. 정관개정안 심의
⑴ 심의대상 규정
○ 제13조 (이사회)
이사회 활동범위 제한 규정 삭제
○ 제24조 (오푸스 기관)
오푸스 기관의 인재등용제한 규정 삭제
위험인물 등재기준 변경
고위험인물 등재기준 삭제
⑵ 신구대조표
⑶ 심의결과
○ 제13조 (이사회)
‘이사회 80%동의 시 안건가결’을 ‘이사회 50%동의 시 안건가결’로 변경, 안건추진속도를 높임.
‘이사회 활동범위 제한 규정 삭제’에 의거하여 특급정보접근제한 사안 외에도 이사회가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음.
○ 제24조 (오푸스 기관)
오푸스 기관 인재들의 공격적인 기용을 허가하되, 기존 고등급 각성자들을 중심으로 전용 감독관을 배정하는 제한 규정 추가
4. 요주인물 해응응의 위험도 산정
⑴전략기획실 2실 개정
해응응과 해남파에 대응하기 위한 전용 2실 설립에 대한 만장일치 찬성으로 안건 도입
해응응의 정확한 위험도 산출을 위해 전용 모니터링 팀을 창설
모든 방송에서 감각링크 동기화를 통해 전력을 분석하는 전력분석팀을 창설
⑵오푸스 기관과의 연구결과 공조
해응응의 전력을 인공적으로 재현하는 레플리카 연구제안, 지나친 위험으로 인해 비가결.
오푸스 기관에서 전력분석결과를 검토하기 위해 닥터 요한2세를 전력분석팀에 파견
⑶묵언검객 마크 관련 이슈
닥터 요한2세가 묵언검객 마크3를 만들지 못하도록 위원회에서 A급 감독관을 배정할 것.
닥터 요한2세가 묵언검객 마크2를 만들어 어디론가 숨겨둔 것으로 추정 중. 전담수색팀을 창설하여 마크2를 수색, 확보하여 격리할 것.
Ⅳ. 폐회
【특급정보접근제한문서】
[각성자협회 이사회 소집 및 긴급회의] [전략기획실 2실 구성원] [전담수색팀의 묵언검객 마크2 수색결과] [특급정보접근제한이 걸린 문서입니다.] [해당문서의 정보를 유출할 시, 최대 20년간 게이트원정군에 동원될 수 있음을 엄중히 경고합니다.]국가안보국에서 전달한 정보를 열람하던 민우성의 표정에 감출 수 없는 찝찝함이 도사렸다.
‘마크2 어쩌고 하던 인간이 진짜로 마크2를 만들었다고?’
저 괴물딱지 같은 해응응의 클론이라니.
그게 가능하기는 한 건가.
엄청나게 신경 쓰이는 일이지만 국가안보국에서 정보를 전달해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묵언검객의 정보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 방송송출을 더 막아보란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지금까지도 알아서 잘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가급적 방송을 막아주길 바라네.
“회의록을 통째로 훔쳐서 알려주신 건 감사하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군요.”
민우성이 해응응의 개인실을 돌아보며 스크린폰에 대고 작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방금 막 반요곡 방송을 키셨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