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2)
〈 2화 〉 2 귀환했습니다
* * *
1.
엉덩이 골까지 내려오는 흑단처럼 고운 머리카락.
갸름한 얼굴과 우유빛깔 피부.
아담한 어깨와 볼륨감 있는 가슴.
쭉 빠진 허리에 굴곡을 더하는 골반과 탄탄한 허벅지까지.
동양적인 미와 서구적인 미를 겸비한 이국적인 미인.
거울에 비친 모습이 참 익숙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20년을 보아온 모습이니까.
‘귀환에 성공했군요.’
귀환자 해응응.
그녀는 사람이 쓰레기처럼 죽어나가는 무림으로부터 현대문명사회로 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기쁨이 벅차올라야 할 얼굴에는 깊은 공허와 상실이 가득했다.
무림에서의 모든 은원이 사라진 지금, 그녀는 혼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엔 아무도 없었죠.’
가족은 없었다.
친구도 없었다.
설령 있다고 해도 무림계에서 보낸 20년만큼 현실도 20년의 시간이 흘러버렸으니.
20년을 얼굴도 안 봤으면 가족도 남이라고 불러도 될 시간이다.
알던 사람도 20년이 지났으면 남이나 다름없다.
‘차라리 다행이죠. 이 모든 일이 시작하기 전에 가족을 잃었던 건.’
25년 전 어느 날.
사고가 있었다.
해외여행에 떠난 부모님과 누나.
비행기 기내에서 찍은 인증샷.
그것이 가족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서랍장을 열자 싸구려 프린팅이 붙은 티셔츠가 보였다.
가족들의 유품과 함께 받게 된 선물이다.
가족을 잃고 쓸데없이 넓은 집을 팔아 원룸으로 이사한 뒤에도 5년이나 버리지 못했던 선물.
잃어버린 가족을 향한 미련.
가족이 남긴 마지막 흔적.
한참을 티셔츠를 바라보며.
돌아갈 수 없는 옛적을 떠올리며.
이제는 추억이 아닌 기억이 된 감정들을 티셔츠와 함께 서랍장에 차곡차곡 개어 넣었다.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어요.’
그녀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에 충분히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가족을 잃고 폐인처럼 살던 시절.
낯선 게임 하나를 발견했고.
자신이 만든 캐릭터에 빙의해 20년을 무림에서 보냈다.
해남파가 거두지 못할 바다는 없단다. 해씨 성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 해남파가 너를 지켜주마.
언니, 저랑 같이 북해빙궁에서 살면 안돼요?
응응 소저. 화산의 매화를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소.
소중했던 추억.
되돌릴 수 없는 인연.
불귀의 객이 된 사람들.
잃어버린 관계는 현실계보다 무림계에서 더욱 많았다.
제 2의 가족이 되었던 사람들이.
부모님처럼 여겼던 어르신들이.
그녀를 좋아하며 따르던 사람들이.
그녀를 노리는 적들에게 죽었다.
경국지색.
천하제일미.
고금제일미녀.
매력100의 캐릭터가 된 해응응.
그녀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권력자들의 욕망을 자극했고. 그녀는 그들의 장식품이 되기를 거절했다.
그날부로 피와 바람이 그치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녀를 받아들인 문파, 조직, 고수는 여지없이 불의와 불공정, 부정부패에 직면하게 되었고.
많은 희생과 설움, 복수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다른 빙의자들과 비교해도 유독 가혹한 처지였죠.’
매력 때문에 역경에 처했지만 그 매력 덕분에 도움도 받았다.
소녀가 천하제일미로, 천하제일미가 자화요녀로 이름을 떨치기까지 걸린 세월은 자그마치 20년.
3갑자에 달하는 심후한 공력과 단련된 신체, 드높은 명성.
그가 그녀로서 이룬 수많은 것들은 클리어 특전과 뒤바꾸어 사라졌다.
[신체초기화]게임에 진입하는 시점.
자신의 손으로 제작한 캐릭터에 빙의된 첫 순간.
그때 그 시절로 돌아왔다.
잃은 것은 많지만 후회는 없었다.
되찾은 것 또한 많았기 때문이다.
황궁에서 당한 세뇌.
혈교에서 당한 각인.
정신과 영혼을 구속하는 제약들.
그것들이 깨끗이 사라졌다.
잃었던 오른팔도 돌아왔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무결했던 소녀 시절의 모습을 되찾았다.
더는 황궁의 꼭두각시가 아니다.
혈교의 노예도 아니다.
무림맹의 공적도 아니며.
외팔이도 아니다.
무림의 은원 또한 모두 사라졌다.
그녀는 혼자가 되었다.
‘귀환자가 된다는 건 으레 이런 법이겠죠.’
혼자였던 소년이.
혼자가 된 소녀로 돌아오는.
아무도 모를 이야기.
그녀만이 기억하는 이야기.
그 전부를 서랍장에 차곡차곡 개어 넣듯이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니까.
지구는 피로 피를 씻는 무림이 아니니까.
유난 떨 건 없다.
이미 한 번 경험하지 않았나.
달라진 세계에 적응하는 것쯤은.
이번에는 무림이 아닌 지구에 적응할 차례일 뿐.
그래도 곤혹스러운 점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그녀가 기억하던 20년 전의 지구, 2030년에는 가상현실게임도, 게이트도, 각성자도 없었으니까.
2.
도시에 자리한 투룸아파트.
에어컨과 냉장고, TV와 컴퓨터, 침대와 옷장 따위의 생활가전기구가 구비되어 있는 방.
혼자 쓰기에는 조금 넓은 이 아지트는 현실복귀지원패키지의 상품 중 하나다.
‘집이 업그레이드됐네요.’
원룸에서 투룸아파트로.
놀라운 건 그 뿐만이 아니다.
【주민등록증】
【등기필정보 및 등기완료통지서】
[권리자 : 해응응] [등록번호 : 300930 4******]【총 계좌 잔액】
[창원은행 계좌] [2,000,000,000원]신분증. 집문서. 계좌.
대한민국에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세 가지다.
이중 눈에 띄는 20억 원.
20년 간 무림에서 살았던 대가라고 생각하면 결코 크다고 하기 어려운 보상이다.
[금일 서울 강북구 명호2동 1평 당 평균시세 약 1.2억 원]10평짜리 집의 가격이 12억 원.
강남도 아닌 강북의 집값이다.
20년 전의 강북에는 없었던 낯선 이름의 동네에 무슨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20억조차도 평생 먹고 살기에는 부족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이 몸으로는 천수를 누릴 수도 없겠지만요.’
신체초기화로 되돌아온 건 오른팔만이 아니다.
캐릭터 생성 초기에 해응응 본인이 직접 집어넣었던 금제들도 다시금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금제】
[구음절맥] 전신의 혈맥이 막대한 음기에 의해 서서히 닫히는 절맥증. 대부분의 구음절맥 환자는 이립??(30살)을 넘기기 전에 죽는다. [함묵증] 당신은 중증의 심리적 언어장애로 인해 말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심리적인 안정을 찾지 못하면 벙어리로 지내는 기간은 그만큼 길어진다.가장 지독한 제약들이다.
심지어 밑으로도 다른 제약이 수두룩하다.
[가인박명] [최고급인형] [영구문신:하복부] [자위금지] [중독:연초피우기] [느린 심장박동] [저조한 폐활량] [여성스러운 걸음] [거짓말금지] [사고검열:존댓말]무림인으로 성공하기보다 꼴리는 야캐를 만들고자 했던 흔적이 가득 묻어나는 목록이다.
심지어 이것도 추리고 추린 내역임을 감안하면 용케도 귀환에 성공했다 싶을 수준이었다.
‘매력 다음으로 모든 능력치를 오성에 몰아둔 덕분이죠.’
근골과 공력은 돈과 권력으로 대신할 수 있지만 직관력에 밀접한 영향을 끼치는 오성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능력치다.
‘상태창 열람.’
【상태창】
[이름]해응응???(여성, 15세) [경지]삼류(Lv01) [직업]낭인검객 [칭호]없음 [근골]15 [근맥]15(1) [재주]10 [지성]35 [오성]89 [매력]100 [공력]5▷잔여포인트 : 0
*근맥약화* : 구음절맥에 의해 근맥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내공의 불모지* : 자연지기가 매우 낮은 지역에 거주중입니다. 공력증진이 극도로 어렵습니다.
본래 모든 능력치는 30으로 맞추어져 있다.
플레이어가 임의로 능력치를 옮겨 특정능력치에 특화를 할 수 있는데, 해응응은 그 분배가 극단적이었다.
‘무림에서는 제 환심을 얻으려던 이들이 준 영약으로 오랜 시간을 버텼지만 여기는 지구죠.’
영물도 영약도 없는 세계.
능력치를 날로 올리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심지어 공력도 난황에 빠졌다.
내공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메마른 세계.
공력을 0으로 만들었다면 자력으로 단전을 만드는 게 불가능한 수준의 열악한 환경이다.
내공이 늘지 않으면 공력수련이 어렵고, 공력수련이 더디면 근맥이 튼튼해지지도 못한다.
시간은 그녀의 편이 아니다.
‘근맥이 버티기까지는 앞으로 몇 년이 남았을까요.’
구음절맥 환자는 대게 30살 전에 죽는다.
체내의 음기가 강성해질수록 근맥을 경화시키고, 점점 좁아지고 응축되는 근맥이 끝내 닫히게 되면?
내공의 수발이 불가능해진다.
그 다음은 혈관이다.
혈관이 막히면 사람은 살 수 없다.
인공장기를 사용하더라도 뇌혈관까지 대체하는 건 불가능.
현대의학과 생명기술로도 그녀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변수가 있다.
【인벤토리】
[소양화리의 내단][1칸]*남은 용적* : 0칸/1칸
[소양화리의 내단] : 양의 기운을 지닌 잉어. 구음절맥의 증세완화로 쓰인다.신체초기화 특전에 클리어점수의 85%를 사용했다면 소양화리의 내단을 가져오는데 10%를 사용했다.
구음절맥의 치료제는 태양화리의 내단.
무림에서도 황궁의 힘으로 간신히 하나를 찾아낸 내단이 둘이나 존재할 리가 없다.
‘찾는 것도, 구매하는 것도 불가능한 치료제에 얽매일 수는 없죠.’
느긋하게 안주해서도 안 된다.
긴급치료제.
시간벌이용 연막.
소양화리의 내단의 가치는 그 정도에 불과하니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양의 기운을 받아들이거나.
고강한 내공을 토대로 스스로의 체질을 개선하는 환골탈태를 겪거나.
전자는 쉽다.
남자들의 정을 받아들이면 되니까.
하지만 싫다.
남자였던 자신이 남자에게 깔린다?
어불성설이다.
남자가 아닌 여자로서도 싫다.
‘남자로서의 삶은 여인의 몸으로 20년을 살며 저버렸을지언정, 무림인으로서의 삶은 잃을 수 없어요.’
한 번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했던 그녀이기에 무인의 자존심을 버리고 여자로서의 행복을 찾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다면 아직 후자의 가능성에서 희망이 있다.
3갑자.
180년의 공력만 쌓으면 환골탈태가 가능하다.
2050년의 지구에는 그 막대한 내공을 모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게이트와 몬스터.
그리고 각성자.
20년 전의 지구에는 없던 것들.
‘뉴스에서 게이트는 다른 차원과 이어지는 문이라고 했죠.’
내공의 불모지인 지구와 달리, 게이트 너머에는 내공을 쌓기 충분할 만큼 기가 풍부할지도 모른다.
한 번쯤 두 눈으로 직접 게이트를 볼 필요를 느꼈다.
‘가봐야겠어요. 지금 당장.’
의식하지 않아도 여성스러운 발걸음으로 현관을 열어 나서는 그녀.
귀환자 해응응의 첫 외출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