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20)
〈 20화 〉 20 연습실
* * *
1.
연습실은 디자인도 제법 근사했다.
좁고 어두운 복도를 간접조명으로 비추는
분위기 있는 인테리어.
20호실까지 연습실 20개가 있는
공용시설 7개 더해진
70평 부지의 악기연습실을 운영하는
사장 임성태.
연습실을 방문한 손님들은
보통 이 분위기와 규모에 홀딱 반해 계약한다.
그러나 오늘만큼 임성태가 손님의 분위기에 먼저 압도되었다.
“저…. 손님? 손님 맞으시죠?”
“아하하, 저희 언니 빌런 아니에요. 혹시나 해서 같이 왔더니 역시 오해받았네요.”
[개인연습실 월대여 예약한 해응응이에요.]학창시절 간혹 보고는 하는 단짝인지 추종자인지 모를 친구들을 몰고 다니는 특출한 외모를 지닌 미소녀.
흰색 면 티에 청바지를 입고도 배우처럼 모델핏이 사는 여자가
사극촬영장에서 뛰쳐나온 차림새의 여자의 곁에서 추종자 행세를 하며 따른다.
‘와, 미쳤다.’
이 일 하면서 예쁜 여자는 질리도록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번만큼은 격이 다르다.
죽립에 가려 반만 드러난 하관으로도 빛이 나는 것처럼 심상치 않은 미모.
아무리 예쁜 여자도 계속 보면 적응된다지만
이건 도저히 그럴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우연히 연습실을 찾아온 현역 A급 여자연예인보다도 더욱 대단한 외모.
얼굴이 붉어지는 걸 참기가 어려웠다.
“이건 13호실 열쇠고 화장실이나 샤워실, 정수기, 흡연실 같은 공용시설도 따로 있으니 이용에 참고하시면 됩니다.”
“언니, 얼른 방 보러 가요!”
가볍게 손을 당기며 제가 더 신이 나서 앞장서는 흰 티의 여자, 주아영.
“어때요? 괜찮죠?”
의자와 탁자, 악보대, 작업용 컴퓨터, 에어컨, 충전기와 와이파이 등.
많지는 않아도 연주에는 충분한 연습실.
옵션을 추가하면 이런저런 악기나 장비가 추가되고 녹음실도 사용할 수 있지만.
필요한 악기는 이미 지참했고
딱히 녹음으로 앨범을 내려는 것도 아니다.
[좋은 곳이네요. 고마워요.]언니가 기뻐해주셨어.
작게 웃으며 건네는 필담에 주아영은 몸이 오싹해지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런 기분.
이런 떨림.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끼는 강한 감정이다.
“어, 언니.”
“?”
“이번엔 제가 도와드렸으니 다음엔 언니도… 으읏, 저, 한 번만 도와주시면 안돼요? 네?”
평상시의 그녀라면 도저히 꺼낼 수 없었을 과감한 제안.
다리를 안으로 구부리고
안절부절 못하는 얼굴로 마치 매달리고 애걸하듯이 해오는 부탁.
‘뭘까요, 이 기분.’
자신까지 절로 열기가 오르는
가슴이 싱숭생숭해지는 얼굴을 바라보며
해응응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와! 약속이에요? 무르기 절대로 없기!”
악기보다는 주아영의 마음을 먼저 연주해버린 건 아닐까.
떠나는 뒷모습을 눈에 담으며 애써 차분함을 가져보려는 해응응.
그녀가 비파를 쥐기까지는 무려 10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2.
연습실에 엄청난 미녀가 나타났다!
해응응이 연습실 밖으로 얼굴을 내비친 적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한 번이라도 그녀를 본 사람들은 그 소문에 적극 동의했다.
“13호실 사극녀 봤어?”
“완전 쩔더라. 어디 연예인 기획사에서 시설공사라도 하느라 나온 스타 아닐까?”
“모델 쪽 아닐까? 몸매가 장난 아니잖아.”
“에이, 분위기로 따지면 배우 쪽이지. 배우가 직접 악기연주까지 하는 영화도 있잖아.”
“그런데 말을 못 하신다던데. 진짜일까?”
휴게실에 모여 수다를 떠는 임대인들.
7호실 장기임대인 장건영은
인스턴트 커피를 뽑아 마시며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 들어온 애들은 글렀네. 아이돌지망생들이라더니 하루에 몇 시간씩 저러는 거야?’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보지만
반대로 싹수부터 노란 경우도 곧잘 눈에 띈다.
휴게실죽순이 3인방이 딱 그랬다.
“건영언니도 보셨어요? 13호실 사극녀.”
“아직.”
“으으, 언닌 너무 연습벌레에요. 오늘도 15시간 연습하시죠? 좀 쉬엄쉬엄 하고 그러시지.”
“그랬으면 좋겠네.”
“그냥 쉬면되지 그랬으면 좋겠네는 또 뭐에요?”
니들처럼 속 편하면 좋겠다고.
톡톡 튀어 오르는 독설을 꾹 눌러 삼킨 장건영은 먼저 간다며 7호실 연습실로 돌아왔다.
게으르긴 해도 성격이 나쁜 건 아닌
휴게실죽순이 3인방에게는 미안한 생각이지만
지치거나 나태해지는 자신을 채찍질하는 데에는 저들의 모습을 보는 게 동기부여가 된다.
‘오늘이야말로 정복하겠어. 하이스피드 속주연주구간.’
장건영은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스스로 멜로디를 짜고 직접 연주하기도 하는 멀티 플레이어다.
짜임새 있는 연주능력은 강점으로 손꼽히지만
높은 정확도를 유지하면서 속주를 펼치는
속주능력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거래처에서는 그녀의 작곡실력만 보고
우리 애한테 어울리는 노래를 짜달라며 의뢰를 넣었는데
하필이면 그 애의 전문이 얼터너티브 피킹alternative peaking이라 불리는 속주기법이다.
덕분에 장건영은 팔자에도 없는 속주연습에 밤잠까지 줄여가며 연습했다.
장건영 본인은 모르긴 몰라도 곡을 받을 아이보다 그녀 자신의 연습시간이 더 많으리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1시간.
2시간.
3시간.
어느덧 새벽 2시에 접어든 야심한 시각.
저릿한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복도로 나오자 휴게실죽순이들은 모두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힐끔 돌아본 15, 16, 17호실.
문 위의 패널정보는 사용자 없음.
야식까지 먹고 힘내자, 같은 소리를 들었던 기분이 드는데.
먹을 건 먹고 졸리니 집에 가서 잠든 모양이다.
‘내 몸도 아닌데 아무래도 상관없지.’
간절함 없는 노력으로 뭐가 될 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성격이나 외모는 나쁘지 않으니
꼭 이 업계가 아니라도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홀가분한 걸음으로 향한 곳은
휴게실의 인스턴트 커피머신이 아닌
복도 안쪽에 자리한 흡연실이었다.
‘절박하지 못한 태도도 차라리 이럴 땐 좋네.’
소문을 듣고 주변인 3명 이상에게 퍼뜨리지 않으면 주의력결핍에 걸리는 기질이 있는 휴게실죽순이 3인조.
자신이 담배를 핀다는 소리를 듣거든 그 애들의 입이 모터처럼 돌아갈 건 안 봐도 뻔하다.
딱히 목을 쓰는 가수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이 담배 좀 핀다고
소문이 나서 문제가 될 일은 없지만.
‘싫은 사람이 있단 말이지. 여기 연습실에는.’
12호실 장기임대자 박지오.
그는 자신과 같은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이지만
그녀에게 일감을 뺏긴 뒤로 치졸한 감정을 품은
도저히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심지어 가벼운 마음으로
이 여자 저 여자 건드리는 경박한 성향의
호색한 기질을 지닌 남자.
기타리스트로서도
한 사람의 여자로서도
결코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이런.’
하필이면 그 박지오가 흡연실에 있다.
위까지 올라가는 건 귀찮은데.
이러다가 반강제로 금연하는 건 아닌가 하는
떨떠름한 생각이 들 무렵.
박지오의 동태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박지오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다니….’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꼿꼿한 자세로 좌석에 앉아
파이프담배를 피우는 여자가 한 명.
‘아. 저래서 사극녀였구나.’
소문만 무성한 13호실 사극녀.
그녀가 있었다.
덜컹
반쯤 충동적으로 흡연실에 들어온 장건영과
눈을 마주친 박지오.
그의 눈에 실린 감정에 장건영은 혀를 내둘렀다.
저 한심한 바람둥이 자식이
여자를 앞두고 쑥스러움을 타고 있었다고?
“표정이 굉장한데?”
“시끄러.”
닥쳐도 아니고 시끄러, 라니.
어울리지 않는 표현에 비웃음을 짓자
본인도 평소의 자신과 많이 다른 건 알았는지
고개를 푹 숙이며
흡연실을 급히 빠져나가는 박지오.
마치 사춘기 소년 같은 그 모습에 더욱 흥미가 일었다.
“우리 처음 보죠? 7호실 장기임대자 장건영이라고 해요. 기타랑 작곡 하고 있어요.”
가볍게 건넨 인사에 잠시 멈칫하는 사극녀.
인사를 받아주기 싫은 건가?
뜸 들이는 시간에 비례해 실망감이 커지다가
파이프담배를 내려놓고
수첩과 펜을 꺼내드는 모습에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13호실 장기임대자 해응응이에요. 비파와 퉁소를 연습하고 있어요.]“죄송해요. 목이 불편하신 줄 알았다면 번거롭게 말을 걸지는 않았을 텐데.”
[괜찮아요. 피우는 시간에 충분히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게 파이프담배의 장점이니까요.]별난 이름.
다른 상황, 다른 자리였다면
웃음이라도 나왔겠지만.
사람의 감수성이 가장 깊어지는 새벽2시.
휴대용 거치대에 파이프담배를 끼우고
사각사각 수첩에 필담을 적는
이 미모의 여자 앞에서는
작은 웃음조차도 함부로 짓기 어려웠다.
‘기획사 대표들과 미팅을 할 때에도 이 정도로 긴정하지는 않았었는데.’
담배를 피우는 모습조차도 그렇다.
삶의 활력을 급히 채우기 위한
필터담배를 피우는 것과는 결이 다른 자세.
흡연자가 아닌 애연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고상한 기풍.
마치 사는 세계가 다른 것 같은 모습에
장건영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혹시 연예인이세요?”
[아니요.]“그럼 그쪽 일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으세요?”
마치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한 자리 꽂아줄 수 있다는 것처럼 자신감 넘치는 권유.
장건영에게는 실제로 그만한 인맥이 있었다.
얼토당토않은 사람을 추천한다면 장건영 본인이 욕을 먹겠지만.
해응응 정도라면 어디서 이런 복덩어리를 데려왔냐며 찬사를 들을 정도의 수준이다.
‘외모와 분위기만 봐도 톱스타급. 이 정도 비주얼은 흔치 않아.’
그러나 정작 권유를 받은 당사자는
그 나이 또래 여자들이 아이돌연습생이 되겠냐는 권유에 좋아 죽거나
혹시 사기는 아닌가 싶어 경계심부터 부쩍 높이는 것과 달리
가타부타 감정변화조차도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녀의 제안이
내밀어진 기회가
조금의 흔들림도, 흥미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제안은 고맙지만 사양할게요.]“혹시 다른 일 하세요?”
다른 일이라.
말해도 되는지 잠시 고민하듯이 멈칫하는 모습.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일까.
기대 아닌 기대를 품으며
바라보는 그녀에게 해응응은 대답했다.
[게임을 하거든요.]“네?”
반쯤 얼이 나간 장건영.
그녀를 뒤로한 채 먼저 흡연실을 나간 해응응.
떠나간 자리에 남은
담배연기보다 진한 향긋한 냄새에
홀린 듯이 눈과 코를 풀어두던 그녀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게임이라니. 설마 저 얼굴로 진짜 게임만 하면서 논다는 건 아닐 테고. 혹시 요즘 유행한다는 스트리머인가? 이거 얕볼 수 없겠네.’
스트리머라고 해봤자 결국은 연예인 미만.
내심 그런 마음을 품었던 장건영으로서는
생각을 크게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톱스타급 외모에
무언가 어른스러운 분위기
고풍스러운 파이프담배 취향에 이어
새벽 2시까지 깨어있을 정도로 연습을 아끼지 않는 노력파.
그녀 안의 스트리머에 대한 허들이 운 좋게 게임만 하다가 뜬 한량들에서 연예인 못지않은 노력가들로 부쩍 올라갔다.
‘이번 곡 작업만 끝나면 스트리머들 게스트초대석이나 한 번 나가볼까?’
진지하게 미래를 고민해보는 장건영.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저 사람, 악기연습은 왜 하고 있었지? 그것도 비파에 퉁소라니.’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장건영과 해응응의 기묘한 첫 만남.
해응응은 장건영의 머릿속에 뚜렷이 자신의 존재감을 새겨 넣었다.
현역 A급 아이돌그룹의 작곡가와의 인연.
흔치 않은 인맥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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