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234)
〈 234화 〉 234 평범함에 대한 동경
* * *
1.
해응응이 가상세계로 도피방송을 켰다가 돌아온 사이, 해남파 간부들은 자체적으로 몰려든 일감들을 처리하였다.
“길드장님이 도망치신 건은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얘들이랑 같이 로얄클럽 방송국 가서 촬영하는 건 도와주셔야 합니다.”
[꼭 가야 하나요?]“40시간.”
[?]“저희가 잠 안자고 근무한 시간입니다.”
절로 가슴이 숙연해졌다.
로얄클럽에서 파견한 단체버스에는 예비 아이돌연습생들이 줄지어 섰다.
각성자로서 성공하고 싶은 이유가 출세를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인 수련제자들은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지원했다.
“방송국으로 오가면서 아이돌을 인솔하는 역할은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혹시 지시할 사항이 있으시거든 저를 찾아주시면 됩니다.”
다른 연예기획사에서 기획사 실장을 보냈다면 해남파에서는 접견당주 민우성이 책임자 겸 인솔담당자로 파견됐다.
[아이돌에 대해 잘 아시나요?]“일반인들만큼 아는 편입니다.”
[그런데 왜 이번 일의 책임자가 되었나요?]“다른 간부들보다는 제가 그나마 상식적인 사람이라 그렇습니다.”
[?]해응응은 간부들의 면면을 떠올려보았다.
소경석. 너무 바쁘다.
신성곽. 너무 바쁘다.
백소천. 너무 바쁘다.
우지우. 한가하지만 못 믿음직스럽다.
이소혜. 최근 우주대기공간에 재미를 붙였다.
확실히 납득이 가는 인선이었다.
[그래서 그쪽은 왜 온 건가요?]“이번 해남파 지원자 중 절반은 우리 흑의종군의 조직원이기도 하다. 연예계에 조직원을 심어둘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뭘 믿고 그리 당당한 건지 모르겠네요.]징역 백년짜리 형기를 마구 때려넣고 온 해응응에게 빌런, 그것도 빌런조직의 보스가 당당하게 안면을 트고 조직활동을 하겠다고 말하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건가 싶을 정도로 대담한 행보지만 막상 싸울 마음은 들지 않았다.
‘요 몇 달간의 행보를 보아서 크게 문제 될 일은 없겠죠.’
빌런조직 .
충격적인 데뷔와 성명발표와 달리, 그들의 주력간부진은 해남파에서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방송을 통해 테러를 사주하고 사회에 혼란을 야기한다는 세간의 지적도 있지만.
길드의 범죄를 만천하에 폭로하고 정부도 쉬쉬하며 눈감는 죄악을 만천하에 들춰내는 행보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끌어냈다.
거기에 해남파의 존재가 그들을 향한 무력진압을 저지하고 있으니, 십대길드는 흑의종군을 찢어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어해도 방송출현이 허가될 정도로 대중의 인식은 무척 좋았다.
“보스으… 저도 꼭 데려오셔야 했나요?”
“네가 뭐 어때서? 우리 조직에 아이돌이 있으면 그건 보이스걸 너여야만 한다!”
보스는 당당했다.
“외모 되지, 목소리 좋지, 성격도 참하지. 너 그냥 나랑 결혼할래?”
“아 죄송한데 그건 좀.”
“거봐. 이런 철벽스러운 면모까지 아이돌감으로 딱이라니깐?”
그건 그냥 아이돌감이 아니라 당신이 싫은 거 아닌가요.
팩트를 박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리는 해응응이었지만 보이스걸이 뒤에서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접는 모습에 그냥 참고 넘어갔다.
입으로는 싫다고 하면서 은근히 보스 눈치를 보는 것이 그리 싫지만도 않은 눈치였다.
‘위스퍼를 잘 따르는 것 같았는데. 보스도 신경이 쓰이는 걸까요?’
그럼 둘 중 누가 더 좋은 걸까.
고민에 빠진 그녀의 귓가에 좌석에 앉은 다른 수련제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형한 우지우 간부님 대 시크한 민우성 간부님. 닥전? 닥후?”
“벨런스 미치셨어요? 닥후지.”
“난 닥전. 성격은 찌질해도 얼굴이 잘생기면 얼굴만 봐도 기분 좋아.”
“민우성 간부님도 못생긴 건 아니잖아. 성격이랑 스타일은 훨씬 더 좋고.”
“얘도 참. 못생기지 않은 거랑 잘생긴 게 같아?”
“다 들린다.”
“엄마야.”
“얘만 이러지 저는 간부님이 더 좋아요!”
“야!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돼!”
시끌시끌.
셋만 모여도 수다가 끊이질 않는 여고생처럼 입을 다물 줄 모르는 수련제자들.
사실 나잇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공을 배우는 나이는 대부분 고교학창시절 전후 5년 이내, 12세부터 24세 사이.
아주 엄한 분위기의 길드나 각성자학원에 들어온 것이 아닌 이상에야 입이 풀리면 수다가 즐거운 건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부럽기도 하네요.’
여고생으로 여학교를 나온 학생들.
해응응은 경험해보지 못한 여자들만의 인생.
지금의 그녀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학창시절에 대한 추억.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고교시절의 친구들.
‘이제 와서 지난 삶에 미련이라도 생긴 건가요. 가지지 못한 추억이 커 보이기라도 하나요.’
시속 80km의 속도로 밀려나는 차창 밖의 풍경.
경공보다도 느린, 자신의 속도보다도 느린 세상이 밀려나는 흐름이 조금은 괴로웠다.
변할 거면 확실하게 변해버릴 것이지.
어설프게 20년 전 시대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2051년의 현대지구가 조금은 미워졌다.
2.
로얄클럽 오디션장.
일주일 사이에 건축각성자들을 동원하기라도 했는지, 번듯한 규모의 오디션장이 완공됐다.
“어서와요, 우리 귀염둥이.”
[그렇게 부르지 말아요.]“돈을 억수로 벌게 해주는데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복덩어리?”
한채린은 얼굴을 보자마자 대뜸 안으려고 들고 메챠쿠챠 칭찬을 퍼붓고 난리도 아니었다.
“요즘은 기획사들마다 경연대회 프로그램 하나씩은 꼭 쥐고 있어서 프로그램 내봤자 유망주들은 안 오거든요? 근데 이번엔 달라요.”
[프로그램이 시작도 전부터 대박을 친 건가요?]“우리 기특한 해응응양 덕분이지요. 무술대회 방송으로 인지도가 떡상할 대로 떡상한 해남파를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잖아요.”
아, 체리향이다.
칵테일이라도 마셨는지 달달한 칵테일 냄새가 은은히 풍기는 한채린.
경연대회라고 나비넥타이에 검은정장, 하얀 와이셔츠라는 나름 단정한 차림새를 취하고도 그녀의 색기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그런 것보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남들은 꿈에도 그리는 방송대박, 그것도 자기네 문파가 개입한 프로그램의 대박을 ‘그런 것’이라고 취급하다니.
한채린은 참 별난 여자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래야 해응응답다는 생각을 했다.
“쓰리사이즈? 오늘 입은 팬티 색깔?”
[대표님도 학교는 나왔죠?]뭐지.
성희롱을 카운터 치는 새로운 공격법인가?
한채린이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나왔죠? 학교라니. 어머어머. 풋풋. 언니 교복 입은 모습이 보고 싶어서?”
[그냥 궁금해서요. 여학교에 다니는 기분이.]수첩을 내미는 표정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무뚝뚝하건만, 왠지 모르게 한채린은 그녀가 조금 우울해한다고 느꼈다.
한채린이 장난기 어린 얼굴 대신 조금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우리 응응양이 올해로 몇 살이었죠?”
[스무살이요.]민증에 적힌 대로는.
“그렇구나. 이제 막 스무 살이…… 어? 스무 살?”
한채린은 당황했다.
명색이 대형길드의 길드장이니 아무리 어려보여도 스물다섯에서 서른 사이는 되지 않을까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계약서도 여럿 작성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해남파 사업동 총괄관리자인 소경석과 작성했기에 해응응의 주민번호를 볼 일은 없었다.
그래서 처음 알았다.
해응응의 출생연도가 2030년이라는 것도, 그녀의 나이가 20살이라는 것도.
대형길드의 길드장이자 S급 각성자나 다름없는 전투력을 지니기에는 지나치게 어린 나이다.
‘그래서 기분이 심란해졌구나.’
한채린은 이해했다.
해응응이 우울해하는 이유를.
오디션 프로그램을 위해 모인 아이돌연습생들.
수련제자 사이에서 차출한 선남선녀들.
그들이 서로 웃고 떠들며 대화를 나눈다.
그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검만 휘두르며 강해지고자 노력하는 데에도 부족했을 시간 동안 학창시절의 추억을 쌓은 학생들을 보고 부럽다고 느끼지는 않았을까.
자신은 누려보지 못한 또래 여자들의 평범한 삶을 동경하는 심정도 이해가 갔다.
“음~ 글쎄. 어떨까? 잘 모르겠네요. 언니도 학교생활을 착실하게 한 편은 아니라서.”
남부러울 것 없는 능력과 재산을 지녔다.
누군가의 밑에서 자신이 이런 사람이라며 내세울 증명이 필요하다면 학력을 쌓고 커리어를 가꾸어나갔겠지만.
한채린은 인생을 살면서 어느 누구의 밑에도 속한 적이 없었다.
그녀의 인생에는 수많은 적과 많은 부하들, 몇몇 사업파트너와 어른스러운 밤놀이를 함께 할 극소수의 장난감만이 있을 뿐이다.
‘참 신기한 인연이란 말이지.’
처음에는 연예인으로 섭외하고 싶었다.
안 팔리면 투자금을 미끼삼아서 장난감으로라도 삼을 작정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여자, 쉽지가 않았다.
스스로의 힘으로 길드를 세우고, 1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명호길드를 먹어치웠다.
해남동과 해남파의 존재에 위화감을 느끼는 이들도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에 존재감을 널리 알렸다.
그 이면에는 잠정적인 S급 각성자로 추정되는 해응응을 자극했다가 괜히 피를 보고 싶지 않은 십대길드의 뒷사정도 있었지만.
그렇게 가까워진 그녀와의 관계는 어느덧 누구보다도 든든한 사업파트너가 됐다.
‘묘하게 동질감도 느껴지고.’
분명 그래서 그럴 것이다.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이런 소리를 해주는 이유도.
“여기 애들도 똑같아요. 평범한 학창생활과 병행해가면서 성공할 수 있을 만큼 각성자연습생 생활이나 연예인연습생 생활이 쉽지는 않거든요.”
생계유지용 아르바이트라면 모를까.
그런 경우는 오히려 더욱 평범한 고교생활과 거리가 멀어진다.
“자기 힘으로 학원비를 벌어가면서 각성자학원이나 댄스교습소, 노래학원을 다니며 기본기를 쌓는 애들은 학교에서 뭘 할 시간도 없을 걸요? 죽은 듯이 잠만 자도 버티기 힘들 텐데.”
[고독한 직업이군요. 각성자도, 연예인도. 마치 무림인처럼.]“음~ 그럼 저랑 친구 할래요? 이 언니는 고독함을 달랠 방법을 아는데.”
[술친구는 곤란해요.]“푸훗. 술친구도 좋지만 더 좋은 친구도 있어요.”
[불알친구요?]“그보다 훨씬 더 좋은 친구요.”
저 분위기 깨는 못된 헛소리만 계속하는 손부터 막아야지.
한채린이 한손으로 해응응의 손을 덥썩 붙잡고, 반대손으로는 해응응의 턱 밑을 손가락으로 슬며시 들어올렸다.
“외롭고 심심할 때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의 매력이 묻어나는 도발적인 눈매와 조금은 무겁게 가라앉은 눈이 서로 마주쳤다.
“비밀친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