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235)
〈 235화 〉 235 친구사이
* * *
1.
한채린의 유혹은 솔깃했다.
특별한 친구라.
한 명쯤은 그런 친구도 있으면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눈속에 담기라도 할 것처럼 보조개를 지으며 바라보는 한채린.
그녀의 시선을 마주하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해응응의 귓가에 급히 대표실로 달려오는 직원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똑똑
“대표님. 잠시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
“대표님. 급한 일입니다. 엔터 관계자들이 수작질을 벌이고 있습니다.”
세상이 멈추고 두 사람만이 남은 것처럼 분위기를 잡던 한채린이 에휴, 한숨을 쉬었다.
“타이밍도 참.”
멈춘 것처럼 끊어졌던 시곗바늘의 소리가 들리고, 대표실 밖의 소란스러움과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뒤따랐다.
해응응은 자신도 모르게 한채린의 분위기에 끌려가고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놀랐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외로울 때에는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우린 친구잖아요?”
어른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대표실을 나가는 한채린.
그녀의 뒤를 해응응이 따라 나왔다.
“어머. 벌써? 지금은 곤란한데…….”
[저희 길드원도 소동에 휘말렸어요.]가는 길이 같다고.
해응응의 대답에 한채린은 멋쩍은 기분을 느끼며 괜스레 제 머리카락만 만지작거렸다.
2.
한채린을 따라 나온 대기실.
성질 험악하게 생긴 엔터 관계자들이 버럭버럭 소리치며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것들한테 들어갈 자리를 줄이라고. 안 그러면 우리 다 빠진다니깐?”
“첫 날부터 엔터에서 보내는 연습생들 싹 빠지는 꼴 보고 싶으면 어디 계속 버텨보시던지.”
“각성자 해보려다가 성과가 시원찮으니까 연예계로 도망쳐온 그런 풋내기들 따위랑 같은 선상에서 비교당하는 일을 용납할 것 같아?”
이번 경연프로그램을 맡은 성체육 PD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몸 둘 바를 몰라 쩔쩔맸다.
툭툭
그런 성체육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긴 한채린의 등장에 성체육이 외쳤다.
“한대표님! 십대길드 기획사들이 해남파 TO를 줄이고 자신들에게 배정하지 않으면 연습생들을 모조리 빼겠다고 합니다.”
한채린이 코웃음을 쳤다.
“로얄클럽이랑 해남파가 손잡고 차린 잔칫상에 자기네 애들도 한 술 뜨게 해달라고 사정사정을 해서 받아줬더니, 이런 발칙한 짓을 벌여?”
기획사 대표에게 정면으로 찍히기에는 부담스러웠는지 실장급 인사들이 한발 물러났다.
대신 이번 사태를 일으킨 주모자로 추정되는, 색이 들어간 선글라스를 걸친 구릿빛 피부의 남자가 빈정거리는 얼굴로 다가왔다.
“사정을 했다니. 거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습니다, 한대표님.”
“곽도정 본부장. 이건 당신의 월권이 아닌 태백엔터의 뜻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셔도 될 겁니다. 그런데. 우리 다 나가면 오늘 촬영에 쓸 애들은 있으신가? 저런 볼품없는 것들밖에 없으면서?”
곽도정 본부장. 그가 멸시어린 말을 내뱉으며 가리킨 곳에는 해남파 수련제자들이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며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이야, 그 길드장에 그 길드원들 아니랄까봐 주먹 쥔 것 봐라. 왜, 한 대 치겠다? 비각성자 주제에? 하하하. 주먹이 먼저 찢어지는 거 아냐?”
“배짱 한 번 좋네. 그렇게 건방지게 굴면서 협박질 해대면. 우리가 좋다고 양보할 줄 알았어?”
한채린이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경호팀. 지금 즉시 십대길드쪽 연습생들 대기실 방 비우세요.”
십대길드.
그들의 위세가 대단하기는 했다.
작년 상반기까지는 말이다.
묵언검객이 나타나 게이트입찰경쟁에서 아산길드와 태백길드를 상대로 이겼다.
협회 삼대장 중 한 명인 백소천이 S급 게이트에서 협회 소속 각성자들만을 무사히 귀환시킨 것에 비해 십대길드 각성자들은 피를 보았다.
연이은 사건들로 십대길드의 아성도 더는 예전처럼 공고하지 않았다.
더욱이 이제는 대항마도 존재한다.
해남파 길드장 해응응.
그녀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십대길드의 무력에 대한 강력한 억제력으로 작용한다.
그녀를 따르는 협회 삼대장 출신 백소천의 강함은 해남파 본부를 향한 기습을 방지하는 또 다른 억제력이다.
길드 안으로도, 밖으로도 건드릴 수 없는 해남파.
심지어 빌런조직 흑의종군도 가세했다.
‘무력으로 어찌할 자신이 없으니 이런 치졸한 수작을 벌이는 거겠지.’
달리 보자면 십대길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이 정도의 프로그램 방해에 불과했다.
로얄클럽은 그저 화풀이 상대일 뿐.
하지만 그런 화풀이마저도 경연프로그램에는 적잖은 타격을 준다.
십대길드 연습생들의 대회불참.
이에 이어질 경연대회 불공정 논란.
언론플레이로 어떤 지긋지긋한 시달림을 겪고 싸워나가게 될지가 벌써부터 보인다.
[왜 순순히 보내주는 거죠?]해응응은 이해하지 못했다.
여기서 힘을 쓰면 저들의 언론이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것임을.
오히려 힘을 쓰기를 바라고 도발을 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참아주세요. 저기 뒤에 카메라를 든 사람 보이시죠? 녹음도 하고 있을 거예요.”
[카메라랑 녹음기만 해결하면 된다 이거죠?]한채린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 인간이 지금 무슨 소리를 했지?
[식객. 얹혀사는 처지에 밥값은 해야죠.]“대신 손이라도 더럽히라고?”
[당신네 능력이 영상에 간섭할 수 있던 거, 기억하고 있어요.]해응응의 뒤.
모두가 의식하지 않았던 한 남자.
중절모에 코트 차림이라는, 어째서 이런 사람을 눈치 채지 못했나 싶을 정도로 이색적인 차림새의 젊은 남성.
깊이 눌러쓴 모자 아래로 그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웃었다.
“안 그래도 십대길드와는 공적인 자리에서도 제대로 한 판 붙고 싶었지.”
파지직!
“앗 따가!”
“뭐, 뭐야! 카메라가 꺼졌어!”
“이런, 녹음기가 망가졌어.”
해남파 무술대회장 주변을 두른 방송국들의 대형스크린들도 일제히 조작한 마당에, 고작 카메라와 녹음기 따위를 조작하라니. 그런 건 문제도 아니다.
“너, 너 이 자식들. 지금 문명사회에서 폭력을 쓰겠다 이거냐?!”
“우리한테 손끝 하나라도 건드려봐. 언론이 가만두지 않을 거다!”
“가, 가까이 오지 마!”
겁에 질려 언성을 높이는 십대길드 엔터들의 실장급 관계자들.
그 애처로운 뒷걸음질이 무색하게도 한채린이 무전에 대고 말했다.
“복도 문 잠가요.”
철컹! 쿵쿵쿵!
“문 열어!”
“너희 진짜 막나가자는 거야 뭐야!”
“니들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해응응과 보스가 서로를 돌아봤다.
“꿀밤 마렵네. 좀 때려도 되냐?”
[티 안 나게 팰 수 있으면 절반은 줄게요.]“그쯤이야 어려울 거 없지.”
보스의 손짓에 실장 한 명이 “어어” 소리를 내며 자성에 끌리는 자석마냥 저절로 보스의 손아귀에 끌려들어갔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신체의 움직임이 강제당하는 공포에 남자는 겁에 질렸다.
“왜, 왜 이러십니까, 선생님. 이 손 놓고 얘기 합시다. 예?”
“힘이 있을 땐 남의 눈에서 피눈물 내는 걸 즐기면서 힘에서 밀리면 제 눈에서 눈물 흘리는 것도 두려워하는가. 참으로 시답잖구나.”
“뉘인지는 모르지만 저희는 그저 해남파와 로얄클럽에 볼 일이 있을 뿐입니다.”
“볼 일. 그거 좋지. 마침 나도 볼 일이 하나 있거든.”
“그, 그럼 서로 볼 일을 보러 가는 게 어떻겠스으브브브브!!”
“내 볼 일은 해남파 수련제자들과 덩달아 놀림감이 된 우리 애들 자존심을 높여주는 거다. 네깟 것들이 뭐라고 우리 애들 고개를 숙이게 해?”
손아귀에 머리가 붙들린 채로 파들파들 경련을 일으키며 펄쩍 펄쩍 뛰는 남자의 몸.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마구 흔들리던 몸은 머리를 붙잡은 손을 놓자마자 스위치 내린 기계처럼 픽하고 쓰러졌다.
“히이익!”
“오지 마! 오지 말라고오오!”
“가기는 왜 가? 니들이 알아서 올 텐데.”
허공섭물.
대회장에서 마이크를 손아귀로 쏙 들어오게 만들던 내력투사의 공능을 이용해 건방진 십대길드의 주구들을 끌어당긴다.
손에 들어오면 감전으로 지져버리고, 쓰러진 몸을 능력으로 회복시킨다.
“헉! 허어억! 주, 죽었던 게 아니었나?”
“죽다니, 섭섭한 말을 하는군. 단체로 자빠져서 속편하게 잠이나 자던데. 한 2시간 정도.”
“뭐? 시간은 아직 15분밖에…”
“1시간 45분 남았군.”
로테이션을 일곱 번은 더 돌릴 수 있겠어.
보스의 말에 그들은 뒤늦게 깨달았다.
“비, 빌런조직 흑의종군의 보스!”
“묵언검객과 박빙으로 싸우던 그 남자!”
“으아아, 제, 제발 그만둬! 용서할 테니까, 언론에는 아무 짓도 하지 않을 테니까 그만 봐줘!”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보스는 끔찍한 고통을 주고도 인체에 후유증을 남기지 않는 멀쩡한 상태로 다시 회복시킬 수 있다.
이는 보스가 원하는 만큼 자신의 수중에 들어온 사람을 고문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카메라도, 녹음기도 전부 고장 난.
외부와 고립된 환경 속에서.
[걱정들 말아요. 저는 빌런조직과는 다르니까.]해응응의 말에 아직 고문을 당하지 않았던 나머지 절반이 크게 안도했다.
[여러 번 번거롭지 않게 한 번에 끝까지 가죠.]수첩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전까지만.
“크아악!”
“뼈가, 뼈가아아!”
“으허헉 너무 아파아아!”
저 고운 손을 잡아본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하던 이들도, 해응응의 손이 스친 뒤에는 온몸을 비틀며 발광을 했다.
점혈에 이은 분근착골.
폭력의 위험을 모르는 문명인들에게 주어지는 야만인의 참교육.
마교식 정의구현에 관계자들이 줄줄이 거품 물고 쓰러진다.
자신만 빼놓고 모든 이들이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하자 십대길드 집단보이콧 사태의 주동자 곽도정 본부장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해응응은 그를 비웃었다.
정 그렇게 책임을 피하고 싶다면 홀로 무사히 돌아가게 해줄 것이다.
다른 십대길드 인사들이 어째서 저쪽만 멀쩡했냐고, 자신들이 모르는 무언가가 이면에서 있었던 건 아니냐는 말이 나오도록.
그러니 지금 그녀가 신경 써야 할 건 점혈이 끝난 엔터관계자들도, 겁에 질린 곽도정 본부장도 아닌 한채린이었다.
[다시는 남 눈치 보지 말아요. 전 친구의 어려움을 두고 보지 않아요.]한채린이 멍하니 수첩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로얄클럽 대표인 자신이 누군가의 보호를 받는다니.
이런 경험,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