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240)
〈 240화 〉 240 마음을 받아주려는 예행연습이 아니에요
* * *
1.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자각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축복】
[완전무결] 당신은 씻지 않아도 피부가 자동적으로 청결해지고 몸에서 여성스러운 향기를 발산합니다. [완전동력] 당신은 섭식, 수면, 배변활동을 가지지 않아도 생명활동에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축복 덕분에 스스로를 돌보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몸을 돌아보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따금 깨달아버린다.
자신을 ‘여성’으로 대하는 사람들 덕분에.
자신이 여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옷깃을 여민 그의 앞에서 고개를 돌리는 민우성.
그의 언제나 신중하고 진지한 얼굴이 평상시보다 붉어졌다고 느끼면 착각일까.
“날이 찹니다. 수련으로 열이 오른다고 너무 가볍게 다니시면 체통이 떨어지십니다. 외투는 꼭 챙기십시오.”
그 상냥함이.
그 친절함이.
구역질날 정도로 강한 불안감으로 엄습했다.
어깨를 덮으라며 건네준 외투.
그것이 해응응의 손아귀에서부터 나선으로 말려들어가며 팔을 쥐어짜듯 꺾는다.
“!!”
민우성은 어깨너머로 배운 무공의 원리를 이용해 역방향으로 코트를 말아쥐어 회전에 맞섰다.
‘아, 이런.’
훅, 하고 몸이 딸려갔다고 느꼈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회전에 한눈이 팔린 나머지, 코트를 잡아당기는 힘을 뒤늦게 깨달았다.
무방비 상태로 흐트러진 목을 사신이 거두어가듯이 움켜쥔다.
“……!”
목덜미를 움켜쥔 차갑고도 하얀 손바닥.
부드러움과 단단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기묘한 손의 감촉을 느끼며 눈을 깜빡이고 있자니, 당한 그보다 더 놀란 해응응의 표정이 보였다.
목을 놓아주고는 한 손에 들린 코트였던 넝마쪼가리를 멍하니 내려다보는 그녀.
“혹시 제가 무슨 실수라도 했습니까?”
[미안해요.]해응응이 솔직하게 사과했다.
[저는 저보다 약한 남자가 친절하게 대하면 공격을 하는 버릇이 있어요.]그게 무슨 버릇이야 무친련아.
민우성의 표정이 떨떠름해지자 괜한 소리를 했다며 후회하는 기색이 역력해졌다.
남들은 표정변화도 알아보기 힘들다고 하지만, 옆에서 읽히지 않는 속마음을 읽어보려 애쓰다보면 자연스레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이 있다.
마인드리딩.
사람의 속마음을 읽는 건 각성능력만이 아닌 민우성 개인의 재주이기도 했다.
“확인하시는 겁니까?”
이 정도로 당할 사람인지 아닌지.
좀 더 나아가면, 죽을 사람인지 아닌지.
그런 물음에 해응응은 답하지 않았다.
그것이 답이 되었다.
민우성은 넝마가 된 코트를 뺏어들었다.
“걱정 마십시오. 저도 목숨 아까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길드장님의 곁을 넘볼 정도로 분수를 모르는 몸은 아닙니다.”
그 말에 안심이 되면서도 섭섭함을 느끼자 해응응의 기분은 더욱 심란해졌다.
대체 어쩌고 싶은 걸까.
스스로도 모를 갈대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무심?心으로 바로잡았다.
[영수증 보내주세요. 코트는 원래 것보다 좋은 걸로 업그레이드 해줄게요.]“길드장님 지갑에서 돈이 나갈 날이 오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도 명품코트를 입고 다닐 걸 그랬습니다.”
[그러다 죽으면 장례식에서 입게 될 거예요.]되로 주고 말로 받았군.
민우성은 어깨를 웅크리며 나 겁먹었다는 시늉을 하며 물러났다.
사람 좋은 미소를 걸며 돌아선 그.
해응응에게서 충분히 멀어지고 주변에 사람이 없어질 무렵, 얼굴에 걸린 미소가 사라진다.
표정이 사라진 냉막한 얼굴.
전혀 다른 인상이 된 그의 손이 국가안보국의 호출기로 향하다가 멈췄다.
특급감시대상, 귀환자 해응응.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국가안보국에 올릴 보고사항이다.
줄곧 그래왔었고, 오늘도 그래야 하건만.
도저히 손이 가질 않았다.
“그런 표정은 반칙 아닙니까, 길드장님.”
넘볼 수 없는 꽃이라고 동정조차도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약자의 배려에 두려움부터 느끼는, 그렇게나 강한 힘을 지니고도 자신에게 호의를 보인 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부터 앞서는 사람.
사람이 벌레처럼 죽어나가는 가혹한 전쟁을 경험한 참전군인들이나 지닐법한 트라우마의 징후를 보였던 길드장.
범접할 수 없는 힘을 지니고도 작은 인연 하나가 끊어질지 모를 가능성에 겁에 질리는 그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모를 지니고도, 조금도 여성스럽지 않은 상남자스러운 성격과 행동 뒤에 감추어진 아무도 모를 유약한 기질.
세상에서 오직 민우성 그만이 알고 있는 길드장의 뜻밖의 면모.
“정시보고 알림.”
수신 중. 특이사항은 있었는가?
“이상 무. 감시를 계속하겠다.”
민우성은 길드장의 유일한 약점일지도 모를 면모를 국가안보국에 전달하는 대신, 자신의 마음속에 묻어두었다.
사람들은 그의 친절한 행동과 사람 좋은 미소에 속아 눈치 채지 못했지만, 그도 마냥 착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해할 수가 없었지. 여자가 생기면 친구들을 잔뜩 불러다가 다 함께 범하는 야한 만화의 스토리를.’
어째서 ‘내 여자’를 나누어가진단 말인가.
내 것을 모두의 것으로 나누어야 하는가.
나만이 알고 있는 비밀.
나만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
민우성은 그것을 나눌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누구와도 나누어갖지 않겠어.’
설령 자신조차도 가질 수 없다고 해도.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남도 가질 수 없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그늘진 나무 아래를 벗어나며 삭막했던 얼굴에 도로 친절한 미소가 떠오른다.
“우성씨, 여기서 뭐하고 계세요?”
“잠깐 바람 좀 쐬고 왔습니다. 방송국 건물은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쉽지 않아서요.”
“안되셨네. 갈 때는 차타지 말고 신법으로 뛰어가실래요? 바람은 원 없이 쐬실 텐데.”
“…소혜씨도 은근히 짓궂은 면이 있으십니다.”
“킥킥. 이제 알았어요? 알았으면 얼른 주차장 가요. 운전기사님 픽업시간 늦으면 진짜로 뛰어가야 할지도 몰라.”
이크, 엄살을 부리며 뛰는 민우성.
못 봐주겠다며 고개를 젓는 이소혜.
그런 평화로운 일상에 취하듯, 문파 지부 내에 심어진 나무 한 그루가 부드럽게 흔들렸다.
“응?”
나무를 올려다본 이소혜가 의아해하였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에 나무가 다 흔들리네.
민우성의 뻔한 거짓말처럼 나무도 바람이 분다고 거짓말을 하는 걸까.
시적인 감상은 불현 듯 찾아온 현실에 칼같이 끊어졌다.
[브이튜브 파트너 BJ] [묵언검객 님이 방송을 시작합니다.] [게임 반요곡(시미럴 사)] [플레이타임 79:11:12] [방송시간 00:00:00]“아오, 진짜.”
이 인간은 공지 좀 쓰고 방송하면 뭐가 덧나나. 방송주기가 지 맘대로야 아주.
급히 전용캡슐로 달려가는 이소혜.
그녀가 떠나간 자리.
시치미 떼듯이 가만히 눈치를 보던 나무 사이로 한 사람이 소리 없이 내려왔다.
“…….”
주아영.
그녀가 전부 보고 있었다.
2.
마음이 심란할 땐 검을 휘두른다.
깊은 산중에 은거하듯이 꽁꽁 감추어진 심산유곡에서 검을 휘두르거든, 불안이 사라진다.
역행하는 폭포수.
쏟아지는 물줄기.
피어나는 무지개.
시원한 청량감과 대량의 물이 자아내는 중량이.
끊어졌던 물소리와 함께 지상을 강타하는 소리는 천상의 노래가 따로 없다.
무림비망록에서 찾아낸 그녀 나름의 기분전환은 애석하게도 현실에서 재현할 수는 없었다.
무슨놈의 산마다 등산객과 플레이어가 그리도 가득하던지.
몬스터의 간이 정력에 좋다는 소문은 어디서 났는지 몰라도, 엽총 들고 각성자로 전직한 거너들이 산이란 산마다 깔려있다.
폭포를 뒤집었다가 사람 가죽도 뒤집어지고, 해남파 길드장의 살인논란에 언론도 뒤집어지기 딱 좋게 생겼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오늘만큼은 이 지옥한복판이 그녀의 낙원이다.
반요곡.
인간과 달리, 얼마든지 휩쓸리고 날려버려도 상관없는 존재들의 계곡.
【상호작용 선택지】
[신설부대 객귀병단의 병단장 후보 셋. 이들의 포부를 듣고 당신은….]1. 자시키와라시를 선택한다.(보급 대성공확률 상승, 상인대 연계특화)
2. 황풍대귀를 선택한다.(병단발각확률 감소, 은밀기동 특화)
3. 야천명랑을 선택한다.(야간활동 성공확률 상승, 야간작전 특화)
시원하게 날뛰고 싶어 찾아왔지만 불편한 현실의 꼬리는 멈출 줄 모른다.
선택을 유보하고 도망쳤던 과거를 힐난하듯, 내팽개치고 외면했던 선택지가 떠오른다.
방학이 끝나니 그제야 눈에 보이는 숙제처럼 거슬리기 짝이 없다.
‘뭘 골라도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라면, 조금이라도 귀여운 쪽이 낫죠.’
단아한 소녀요괴, 간지폭풍 황사요괴, 잘생긴 청년요괴.
평소라면 망설임 없이 선택했을 자시키와라시의 선택지이지만, 안아줘요 하고 팔을 벌리는 소녀요괴에게서 곧 눈길이 멀어졌다.
고고고고, 하는 위협적인 효과음을 동반한 모래폭풍 너머로 간지 나는 얼굴 형상을 띄우는 부담스러운 황풍대귀도 안중 밖이었다.
척!
짐짓 장난스럽게 경례를 하며 눈웃음을 짓는 야천명랑.
그 수수한 매력에 겹쳐 보이는 얼굴들이 참으로 많았다.
자신에게 호의를 보였던.
자신만은 다르다고 자부하던.
하나같이 고비를 넘지 못하고 죽었던.
수많은 남자들.
그녀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남자들.
어쩌면, 그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를 민우성까지.
‘마음을 받아주려는 예행연습이 아니에요.’
[▶3. 야천명랑을 선택한다.(야간활동 성공확률 상승, 야간작전 특화)]‘받아주지 않을 마음이라도, 남자를 곁에 두어도 더는 죽지 않을 것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죠.’
자신이 그런 불길한 의미를 담아 선택받았으리라고는 조금도 모를 야천명랑은 불쌍할 정도로 티 없이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