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250)
〈 250화 〉 250 이상한 타이밍
* * *
1.
해응응에게는 여력이 있었다.
특별한 기믹이 없는 기둥이라면 능히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이.
하지만 그녀에게는 정보가 없었다.
기둥 속에서 절망의 집합체 따위가 튀어나오리라는 사전정보가.
그 결과, 그녀는 많은 내공을 소모했다.
그리고 체감했다.
일류의 경지에서는 아무리 파괴력이 높은 결전오의를 쓰더라도 30km에 달하는 종언의 손을 막기에는 부족함을.
한 단계, 두 단계 위의 무공을 한시적으로 발휘하더라도. 그것을 온전히 펼쳐낼 내공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경솔했어요.’
지나치게 자신감이 앞섰다.
이 게임의 최고난이도 벨런스가 엉망진창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나락의 왕의 결전에서 부족함을 체감하고도.
현실에서 도피하듯이 게임을 찾고.
마음의 심란함을 덜어내고자 게임을 찾았다.
수련을 등한시하고 반요곡을 빈번하게 방문한 결과가 바로 이 꼴이다.
[분하지만 대요괴의 준비는 철저했다. 저 팔을 일격에 멈춰 세우는 것은 아무리 너라도 불가능하지 않은가. 방법은 이것뿐이다.]돌아올 수 없는 길임을 직감하면서도 스스로 몸소 희생하겠다는 부기맨.
거기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종언의 손을 막을 수 없는 처지가 된 자신.
‘여유는 있었어요. 스토리 모드의 전개상 충분히 대비를 하고 찾아왔더라도 그 사이에 만찬이 끝나지는 않았을 거예요.’
만찬이 끝나기까지 남은 턴수를 알 수 없었던 알림, 그 자체가 함정이었다.
충분히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는다면 만찬은 플레이어가 승천의 기둥에 도달하는 그 순간에서야 비로소 끝난다.
그것을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자신의 무력이라면 능히 감당할 수 있다고 자신했으니.
경솔했다.
오만했다.
뒤늦은 후회였다.
【상호작용 선택지】
[부기맨은 당신이 도망치기를 바란다. 그 소망에 당신은….]1. 널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
2. 다른 방법이 있을 거다.
3. 이번 토벌전은 중지다. 도망치자.
[▶3. 이번 토벌전은 중지다. 도망치자.]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도망치자.
그런 선택마저도 부기맨은 고개를 저었다.
[도시를 떠나기까지 저 손이 우리를 덮치지 못할 리가 없다.] [설령 운 좋게 떠난다고 한들, 저 말 안 듣는 것들이 무사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군.]“!!”
모두가 도망치려고 안간힘을 쓰는 도시에서, 요괴무리들을 베어 넘기며 올곧게 달려오는 한 무리의 병귀기마대가 보였다.
도시 밖에서 소란을 끄는 임무를 부여했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도시 안까지 들어온 원군이었다.
이대로 그녀와 부기맨이 달아난다면 저들의 속도로는 둘을 따라올 수 없다.
[모두가 이 자리에서 당할 필요는 없다.] [뒤는 맡기마.]“!!”
지면을 타고 올라온 손들이 점혈을 할 때 자주 사용하던 혈도를 짚었다.
순간적으로 내공을 동원하여 방어했지만 부기맨의 요력은 그 절대량으로만 따지면 해응응의 내공보다도 훨씬 많았으니.
몸의 움직임이 둔해지며 저항할 수 없게 됐다.
[내 동료를, 반요곡에 최후를 고할 주군을 지켜라. 적기사.]그만둬요. 이런 작별은 인정할 수 없어요.
부기맨, 당신에게는 아직 묻고 싶은 말이…
[▷4. 적기사의 손에 끌려간다.]내뱉지 못한 말과 함께, 그녀의 몸이 창대에 걸려 멀어진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주군.”
‘놓으세요. 절 내려놓으라고요! 아직 부기맨에게 듣고 싶은 말이 남아있다고요!’
“몸부림치신다고 한들 저곳으로는 절대로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옷장요괴의 희생을 헛되이 해서는 아니 됩니다!”
등을 돌린 채 승천의 기둥을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오르는 부기맨.
[빚은 갚았다.]그 말을 마지막으로 부기맨의 형상의 경계가 무너졌다.
어둠에 휩싸인 채 자신의 체구보다 거대한 형상을 전력으로 뿜어내는 그 모습은, 마치 암흑요기에 휩싸인 나락의 왕과도 같았다.
적과 아군의 강점을 모조리 습득한 그녀의 성장은 참으로 눈부셨다.
‘그만둬요. 그런 빛을 보이지 말아요. 그런 건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요.’
무림인이 자신의 모든 내기를 소모하고도 스스로의 생명와 직결되는 근원지기를 불태워 발휘하는 최후의 저력, 회광반조回光返?.
해가 저물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하늘을 찬란하게 밝히는 것처럼 아껴왔던 힘을 모조리 쏟아내는 최후의 저항.
죽음을 담보로 하여 원기를 불사르는 그 모습이 수많은 최후들과 겹쳐보였다.
“ !!”
소리가 되지 못한 외침이, 벌어진 입을 따라 공허하게 흩어졌다.
폭음과 함께 기둥의 일각이 무너지며 부기맨의 거대화한 형상이 기둥 속으로 침투했다.
잠시 후, 걷잡을 수 없는 어둠이 승천의 기둥과 종언의 손 전체를 휘어 감았다.
기긱, 기기기기긱
구구궁…
서서히, 조금씩 속도를 올려 도시의 최후를 고하던 종언의 손이 덜컥, 멈추었다.
부기맨의 도박이 성공했다.
위로는 붉은 기둥이 솟구치고, 아래로는 붉은 피가 쏟아지는 지옥도.
암흑에 휩싸인 거대한 기둥과 손을 뒤로한 채, 박차를 가하며 달린 기마병들이 성벽 밖으로 급히 탈출하였다.
“이것이 대체 어찌 된 일이더냐! 도시가 무너지고 있지 않은가!!”
“여러분이 모시는 대요괴의 만행입니다. 운이 좋았군요. 뒤늦게 도착한 덕분에 목숨은 건졌으니. 아니면 모시는 주군에게 버림받았으니 운이 나빴다고 해야 할까요?”
“대요괴님이, 우리를…?”
“상승지대의 주민들은 모두 제물이 되었습니다. 하강지대의 주민들 또한 그리 될 예정이었죠. 과연 당신들이라고 예외였을까요?”
야천명랑의 통렬한 지적에 필드에 난입했던 수도방위사령군은 전의를 상실했다.
모두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시로부터 탈출한 지금, 재난현장으로부터 벗어난 그들이 적과 아군을 따지는 행위에는 어떤 의미도 없었다.
‘부기맨…….’
해응응은 생각했다.
부기맨과 대요괴.
연인관계의 두 요괴.
결국 둘 중 어느 쪽이 여자였던 걸까.
해소되지 못한 의문과 함께 그녀의 슬픔은 더욱 깊어졌다.
2.
부기맨은 최선을 다했다.
그렇지만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20년.
그 긴 세월동안 대요괴의 피에 사역되고, 온갖 잡스러운 요괴들의 피와 살, 본능과 충동, 전승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신체.
그것은 다루고 싶다고 다룰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이라는 틀에 맞추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온 세상을 때려 부수고 싶은 증오와 분노, 절망과 좌절 앞에 무너진 절망의 집합체일 뿐.
하지만 순순히 무너질 수는 없었다.
지배하지 못하더라도 시간만은 벌고 싶었다.
‘문명의 최후, 쓰레기산. 그곳에서 묵언검객은 그저 짐밖에 되지 않는 이 몸을 지키고자 목숨을 걸고 싸웠지. 미련한 짓임을 알면서도.’
부기맨은 그녀의 헌신을 기억했다.
대요괴의 배신 앞에 우정이나 애정 따위는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두 번 다시 누군가를 믿는 일은 없으리라 다짐했으면서도.
그 순수한 헌신에는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내릴 수밖에 없었으니.
그날, 부기맨은 다짐했다.
언젠가 오늘의 빚을 갚겠노라고.
그리고 지금, 마침내 빚을 갚을 때가 되었다.
‘너의 우정과 헌신은 헛되지 않았다. 그것을 이 몸이 몸소 증명해주겠다.’
한계는 진즉에 넘어선 정신.
그녀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본능이었다.
천살성.
타고나기를 살귀가 될 운명을 지닌 요괴.
그런 운명에 반하여 본능을 제어해온 정신을, 이번만큼은 본능이 함께 지탱하였다.
‘죽인다.’
‘나를 배신하고 지옥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대요괴를 죽인다.’
‘이 몸의 의지를 구속하는 지리멸절한 절망의 찌꺼기들을 죽인다!’
정신과 본능이 합일을 이루니.
자신을 억누르느라 소모되었던 역량이 해방되며, 일순간 그녀의 자아를 짓뭉개려는 무수한 자아의 파편들을 압도했다.
종언의 손의 움직임을 멈춘다.
그 어떤 자아의 꼬드김에도 넘어가지 않는다.
이 손은, 도시의 파괴는.
묵언검객이 도시를 떠나는 그 순간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
일개 정신이 이루었다고는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이루어졌다.
‘해냈구나.’
묵언검객이 도시 밖으로 탈출했다.
축하해. 기어이 해냈구나.
힘들었지? 고생했어.
더는 참지 않아도 괜찮아.
그런 부기맨의 머릿속으로 무수한 자아의 편린들이 몰아닥쳤다.
그럼 이제는, 다 죽여도 되는 거지?
더는 통제할 수 없는 살의가 정신을 집어삼켰다.
3.
도시 밖에 도달하고 나서야 적기사의 방해로부터 벗어난 해응응.
그녀는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하는 종언의 손을 보며 깨달았다.
‘실패했군요. 아니,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거였어요.’
부기맨은 그들이 벗어날 시간을 벌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무리했다.
저 거대한 육신에 갇힌 부기맨과 조우하는 것은 이제는 영원히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조우하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설령 다시 만난다고 한들.
그때는 그녀가 기억하는 부기맨의 모습도, 자아도 더는 찾아볼 수 없게 될 테니까.
‘이런 기분, 두 번 다시 느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분해요. 너무 분해요.’
피가 맺히도록 주먹을 움켜쥔 묵언검객.
그녀의 눈앞에 알림이 떴다.
[고위험군 돌발이벤트 발생] [대요괴가 파견한 진혈추적자가 부기맨의 접근을 감지하고 대도시 모처에 매복 한 상태에서 행동을 개시하기 시작합니다.] [진혈추적자가 부기맨과 접촉할 시, 목숨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지옥에는 바닥이 없다고 하던가.
이미 끝나버린 부기맨을 어디까지 추락시킬 작정인지, 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씩씩거리던 해응응이 무언가를 깨달았다.
이번 이벤트.
잘 생각해보니 무언가 이상했다.
“?”
해응응의 눈에 감출 수 없는 의아함이 어렸다.
부기맨은 승천의 기둥 속 절망의 집합체에 침투하였다.
진혈의 추적자는 부기맨을 쫓아간다.
부기맨의 진혈을 회수하려면 승천의 기둥 속으로 들어와서 절망의 집합체를 헤집어야 한다.
들어가는 건 그렇다고 쳐도.
나오는 건 어떻게 나올 작정일까?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이벤트였다.
4.
묵언검객의 본방에 이어 가장 많은 시청자들이 함께 보는 스피드마스터의 중계방송.
두 방송이 부기맨 지못미 따위의 채팅과 눈물바다로 잠식되는 사이.
묵언검객 방송을 중계하던 방송 중 라는 제목이 달린 중계방송만이 유일하게 분위기가 달랐다.
“와. 그렇게 진격에 진격을 계속하더니, 여기서 이벤트 트리거를 충돌시켰네. 플레이어가 너무 잘하면 스크립트가 이렇게도 꼬이는 구나?”
뇌지컬 스트리머 엄길동.
그가 진혈추적자의 이상한 등장타이밍의 원인을 누구보다 빠르게 눈치 챘다.
“부기맨, 잘하면 살지도 모르겠는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