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253)
〈 253화 〉 253 눈치 없는 남자들과 눈치 있는 남자
* * *
1.
사칭범.
흔히 타인의 인기와 권위를 빌려 이득을 취하려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변신계 각성능력을 지닌 변신능력자들은 모두 잠재적인 사칭범이었고, 각성자협회의 엄중한 감시를 받았다.
“그러니 협회 소속 각성자의 소행은 절대로 아닐 겁니다. 평범한 빌런도 아니고요.”
불시에 집 문짝을 부수고 들이닥친 협회 각성자들에게 잡혀가고 싶지 않다면 그런 짓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당연히 대부분의 사칭범은 협회에 들키지 않을 일반인이나 흉내 내도 탈이 없는 사람의 외형만을 모방한다.
“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비허가 된 각성자. 그 중에서도 언노운Unknown 변신능력자는 외형도 바꿔가며 도망칩니다.”
[변장에 능한 하오문도 같군요.]“뭔지는 모르겠지만 뜻은 전해진 것 같군요. 이들을 잡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제 흉내를 내는 사칭범을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어요.]“마음은 이해하지만 당장은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애초에 길드장님한테 맞아죽고 싶지 않고서야 함부로 외형을 따라하겠습니까? 분명 저 변신능력자는 특정조직의 지원을 받아 몸을 숨기고 다닐 자신이 있을 겁니다.”
이미 국가안보국에서 조사에 나섰지만 거둔 성과가 달랑 사진 한 장이니, 그만큼 상대도 철두철미하다는 증거였다.
“추후에 구체적인 목격정보가 입수되거든 즉시 길드장님에게 보고 올리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럼 방송국으로 차 돌려주세요.]“…저, 이건 정말 노파심에 드리는 말입니다만 혹시 카메라 앞에서 공개수배를 하거나 선전포고를 하시려는 건 아니시죠?”
[저를 생각 없는 사람으로 보지 말아요. 그냥 화풀이를 하러 가는 거예요.]“죄송합니다. 괜한 기우였군요.”
말하면서도 이게 맞나 싶었지만,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여자가 화풀이를 하겠다는데 어쩌겠나. 화풀이 당할 빌미를 만든 십대길드 잘못이지.
2.
[십대길드 관계자전용실] [모니터링룸]십대길드 십대엔터 관계자들이 모인 모니터링룸.
해남파와의 갈등을 피하고자 따로 마련된 이곳에서 각 엔터의 실장급 인사들은 참가자들의 합숙영상을 담은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십대길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언제나 무언가 추잡한 음모나 더러운 수작질을 부릴 것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실장들은 즐기고 있었다.
“키야, 우리 애들 춤선 봐라. 이번 기수 애들은 진짜 잘 뽑았다니깐.”
“우리 하연이는 물 마시는 모습도 이뻐.”
“딸자식을 낳아도 저렇게 낳아야 했는데. 우리 집에는 무슨 킹콩이 밥솥 껴안고 2인분을 한 끼에 퍼먹고 있으니 원, 에휴.”
“아, 거 임실장도 사람 참. 기분 잡치게 가정사는 왜 꿍얼거리고 있어? 그놈의 집구석 집밖에 나와서 겨우 잊고 있었는데.”
“용돈 안줄 때도 우리 딸이 저렇게 애교부리면 얼마나 좋을까. 4살까지는 애교도 잘 부렸는데.”
아이돌에게 받는 치유와 친자식과 비교되는 절망감이 상쇄되어 플러스마이너스 제로를 달리고 있는 위기의 가장들.
모니터 앞에서 치유와 절망을 동시에 받고 있던 그들의 시간을 노크소리가 방해했다.
“스탭이냐?”
“가드. 문지기 노릇이나 잘해봐.”
“…….”
태백엔터 김실장은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성질을 꾹 눌러 삼켰다.
묵언검객의 고문에서 태백길드 본부장만 무사했다는 이유로 둘이 손을 잡은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 이후, 태백엔터의 입지는 훅 꺾였다.
배신자일지도 모를 녀석에게 좋은 대접을 해줄 수는 없지만, 어디서 술수를 부릴지 모르니 곁에 두고 부려먹는 매니저마냥 부려지고 있다.
‘곽도정 본부장 그 새끼 때문에 이 나이에 이 짬 먹고 이게 무슨 굴욕이야?’
굴욕 한 번 당했다고 더 쌔게 나갔다가 목까지 날아간 아산길드 부길드장의 선례가 있는 만큼, 태백길드는 더 이상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십대엔터들이 물고 뜯을 중간관리자이자 먹잇감으로 내던져진 것이 태백엔터의 김재훈 실장이었다.
김재훈 실장 본인도 그런 자신의 처지를 알았기에 더욱 짜증이 났다.
“지금 좀 바쁘니까 급한 거 아니면 나중에 올래?”
“맞아. 우리 애들 노래하고 춤추는 거 구경하느라 바쁘다고.”
“으하하하, 꼴통새끼. 존나 웃기네.”
대놓고 놀림감이 되어 더욱 얼굴이 붉어진 김재훈 실장.
그래도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서 돌아가겠거니 생각했지만 좀전의 똑똑 노크 소리가 한층 더 커진 쿵쿵 소리로 바뀌었다.
실장들의 표정이 구겨졌다.
“아 씨발.”
“거 직원새끼 하나도 못 쫓아내?”
“김실장. 우리가 지금 많이 봐주고 있는 거 몰라? 아니면 우리가 만만해?”
김재훈 실장이 얼굴을 굳히고는 곧장 문밖으로 소리쳤다.
“작곡미션 때문이지? S급이랑 A급 작곡가들은 전부 우리들이랑 계약해서 당신들 못 도와. 이미 끝난 일 구질구질하게 매달리지 말고 꺼져.”
오전에 몇 번을 말했는데도 아직도 포기를 못하고 이리 매달리는지.
끈질긴 놈들이라며 흉을 보고 있자니 문밖에서 소리가 뚝 끊겼다.
겨우 포기하고 돌아갔나 싶을 때, 쇠가 구겨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드르륵 열렸다.
“김 실장 저거 안 되겠네.”
“저 띨빵한 새끼.”
실장들의 눈이 사나워졌다.
“거 급한 거 아니면 나중에 오래도!”
말귀 못 알아듣는 직원 녀석 뺨이라도 한 대 때리려고 열린 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던 김재훈 실장이 으헉 소리를 내며 털썩 주저앉았다.
“병신.”
“뭐하는 거야?”
“십대엔터 망신은 저 새끼가 다 시키네.”
경연프로그램 작곡미션에서 섭외 가능한 S급 A급 작곡가를 모조리 독식해버리는 것으로 PD와 해남파, 로얄클럽에 엿을 먹인 십대길드.
그런 십대길드와 제작진 간의 알력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며 주저앉은 김재훈 실장의 행동은 폐급이나 다름없다.
“시발 뭐가 들어왔다고 저리 꼴깝을허억”
“뭐해 병신아! 쌍으로 지랄을흐억”
문 근처에 있던 실장 둘이 다가왔다가 나란히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주저앉았다.
그제야 보통 상황이 아님을 느낀 실장들이 긴장한 눈으로 문 밖을 노려보았다.
“어? 잠깐. 문에 쇠파이프 꽂아두지 않았어?”
“저게 쇠파이프야?”
실장 한 명이 벽과 문 사이에 발로 밟은 콜라캔처럼 납작해진 쇳덩어리를 가리켰다.
각성자가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짓이다.
“이 미친 새끼들이 지금 힘으로 우릴 협박하려는 거야?”
“오냐, 잘 걸렸다. 어떤 새낀지 몰라도 내가 손봐주마.”
“야, 같이 가. 꼴 받아서 안 되겠다. 깝치는 놈들은 예전처럼 존나 패야 말을 듣지.”
연예인이면서 각성자이기도 한 스타각성자들이 일반인 매니저나 직원들을 우습게 여기지 못하도록 길드에서 붙여준 행동대장들.
뛰어난 전투력을 지닌 B급 각성자 실장들이 문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다가 우뚝 멈췄다.
“?”
문 앞에서 이건 또 뭐지? 하는 얼굴로 시선을 마주친 해응응.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자리에서 두려운 존재와 마주치면 다리에 저절로 힘이 풀린다.
김실장이나 앞서 군기를 잡으러 갔던 두 실장이 나자빠진 것도 당연했다.
‘좆 됐네.’
힘만 믿고 온 B급 각성자 실장 셋은 자리에서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대신 해응응이 한 손을 들어 손가락만 굽히는 광경을 보았다.
그녀의 뒤에 기립해있던 정장차림의 남자, 민우성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길드장님께서 살고 싶으면 머리 박아, 라고 말하셨습니다.”
현재등급은 C급이지만 실질등급은 S급이라는 소문이 파다한 해응응.
실장들이 나란히 바닥에 머리를 박고 엎드려 뻗쳐를 했다.
손만 까딱하면 물리적으로 목을 날릴 수 있는 사람 앞에서 미친 소리를 했는데, 살고 싶다면 말 잘 듣는 개가 되어야만 했다.
“길드장님께서 제일 처음에 큰 소리 친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하십니다.”
손가락만 까딱했을 뿐인데도 속마음을 읽는 것처럼 훌륭하게 통역을 하는 민우성.
그 말에 김재훈 실장이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운명을 예지한 예언가처럼 핼쑥해진 얼굴로 힘겹게 일어나 앞으로 나왔다.
저 무시무시한 묵언검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상상만으로도 몸이 덜덜 떨렸다.
팔을 자를까, 다리를 자를까.
사지 중에 몇 개를 받아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눈물마저 찔끔 새어나왔다.
‘다시 생각해도 부기맨에게 덤빈 짐꾼의 용기가 참 대단하네요.’
정작 해응응의 생각은 그렇게까지 험악하지는 않았다.
풋내기들이 평소행실이 험악해서 주제도 모르고 자신을 모욕했다지만 면전에서도 그럴 수 있는 짐꾼 같은 또라이는 없었다.
‘그건 그렇고, 우성씨는 통역사도 아닌데 왜 뒤에서 통역을 하고 있는 걸까요.’
수첩을 드는 대신 이것도 알 수 있겠냐며 슬쩍 팔짱을 끼자, 민우성이 알 없는 안경을 한 손으로 슥 밀어 올리며 차갑게 말했다.
“작곡미션에 부린 수작질에 대해 변명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하십니다.”
해응응은 인정했다.
이 남자, 제법 유능하다.
뛰어난 접객이란 모시는 이의 속마음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입 안의 혀처럼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는 재주가 있기 마련이니.
마교 내원 접객당주가 이 솜씨를 배웠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대단한 접객실력이다.
과연 해남파 내원 접객당주의 지위에 어울리는 남자였다.
‘이 사람은 진짜 너무 강해서 마인드리딩 능력으로도 속마음이 하나도 안 보이네. 제대로 해석하고 있는 거 맞나?’
각성능력이 아닌 눈치로 때려 맞추고 있다는 점이 더욱 대단한 민우성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