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254)
〈 254화 〉 254 어느 분이 더 친하십니까
* * *
1.
사람은 살기 위해서 공손해진다.
공손하지 않은 사람은 삶에 대한 욕구가 아직 희박하기 때문이다.
민우성의 그런 주관에 따르면 김재훈 실장은 생존욕구가 정말 투철한 사람이었다.
“S급과 A급 작곡가들은 이미 향후 3개월 간 계약이 끝났습니다. 이건 저희 실장급 선이 아니라 더 위에서 내려온 지시라 저희가 번복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길드장님께서 당신의 묘비에 적힐 유언은 그걸로 끝이냐고 하십니다.”
“계약파기! 계약파기가 있습니다! 위약금을 대납하면 계약을 파기할 수 있습니다!!”
민우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십대엔터와 척을 지는 길이기에 실제로 계약을 파기할 작곡가는 한 명도 없지 않습니까?”
“제, 제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억울합니다. 일은 제가 아닌 윗사람들이 저질렀는데 제게 책임을 묻는 건 너무 가혹합니다….”
민우성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능력을 발동했다.
해응응이야 격상의 존재라서 통하지 않지, 눈앞의 어수룩한 B급 각성자의 생각 정도는 손쉽게 읽어졌다.
김재훈 실장의 속마음도 방금까지의 진술과 차이가 있거나 거짓을 말하는 기미는 없었다.
“거짓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단순히 상대의 생각을 읽는 것만이 아닌, 자신의 추측을 교차검증하기 위해 사용하는 민우성.
‘우성씨의 말이라면 믿을 수 있죠.’
억지로 계약파기를 유도하거나 거액의 위약금을 지불해봤자 십대엔터에게 놀아날 뿐이니.
해응응은 소득 없는 일에 매달리는 대신, 감흥없는 눈으로 실내를 돌아보았다.
“?”
해응응의 시선이 모니터에 꽂혔다.
연습실에서 가슴이 위아래로 흔들리도록 폴짝 폴짝 뛰며 토끼춤을 연습하는 참가자.
경연의 유리한 진행을 위해 미니게임 종목 중 하나인 림보 막대를 놓고 허리를 뒤로 젖히며 유연성을 시험하는 참가자.
생각대로 노래가 잘 나와서 카메라에 대고 애교를 부리며 기뻐하는 참가자.
십대엔터 소속 이십대 여성 참가자들의 각양각색의 모습을 카메라들이 비추고 있다.
너희 이런 거 보고 있었니? 하고 말하듯이 모니터를 한 번, 실장들을 한 번 말없이 번갈아보며 바라보는 해응응.
그녀의 시선에 실장들은 수치심이 들었다.
삑.
“야, 모니터는 왜 꺼?”
“몰라. 그냥 그래야 될 것 같았어.”
마지막까지 자리에 앉아있어서 체면을 구기지 않은 실장들이 서로 속닥였다.
엄마에게 금단의 컬렉션을 즐기는 모습을 들킨 아들처럼 답답함과 수치심이 섞인 얼굴로 애써 짜증을 감추며 초조하게 눈치를 보는 실장들.
그 꼬락서니가 마치 마교 원로원에서 춘화를 보다가 들킨 원로고수들 같았다.
험험! 자화요녀 이 친구, 기척도 없이 원로원에 들어오면 쓰나!
손에 든 족자를 펼쳐보라고? 떽! 이놈이 간자도 아니고 원로원의 비밀문서는 어찌 열람하려 드느냐! 정 이것을 봐야겠다면 천마의 인가를 얻어라!
어휴, 미쳐버리는 줄 알았네. 저년 분명 알고 저런 거겠지?
평상시에는 뭐만 했다 하면 천마와 자신에게 ‘어딜 아녀자가’, ‘여자 주제에’, ‘자고로 여자는’으로 시작되는 말을 내뱉던 원로고수들.
그들은 해응응이 정말로 천마의 인가를 얻어서 자칭 비밀문서의 열람허가증을 들이민 뒤로 입도 뻥끗 하지 못했다.
활짝 펼친 춘화를 내려다보며 이딴 게 비밀문서? 하고 쳐다보는 해응응의 시선압박은 원로고수들의 마음을 잔인하게 후벼 파냈다.
‘그 뒤로는 사람들이 부쩍 기력을 잃고 눈치도 잘 보고 착해졌죠.’
겁도 없이 개길 적이면 천마부터 그래서 업무시간에 춘화를 봤나? 하고 운을 떼어버리니 어디 당해낼 재간이 있겠는가.
다른 이들 앞에서 개망신을 당하기 싫거든 천마와 해응응의 말이라면 뭐든지 시키는 대로 따르는 거수기 신세로 전락하였다.
‘왠지 그때 기억들이 생생하게 나네요.’
춘화만 안볼 뿐이지, 당장 눈치를 보는 태도는 원로원의 변태늙은이들과 다를 바 없다.
참가자들의 영상이야 경연을 통과하고자 순수하게 노력하는 모습이기에 건전했지만 이를 지켜보는 태도들이 영 아니었다.
안주상을 거하게 차리고 술까지 마셔가며 영상을 보는데 말이 좋아 모니터링 실이지, 회식자리가 따로 없다.
“뭐야! 우리가 우리 애들 모니터링 좀 하겠는데 불만 있어?!”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모니터 앞에 앉아있던 실장이 큰소리를 쳤다.
각성자 출신 실장들은 저 인간이 미쳤나 기겁을 했지만 해응응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 부분은 특별히 불만은 없다고 하십니다.”
왠일로 해응응이 순순히 꼬리를 내리자 당황하던 실장들도 이내 눈에 힘이 돌아왔다.
이 건방진 여자도 드디어 십대길드의 이름값에 기가 꺾인 걸까.
해응응이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신 모니터링을 하는 실장들의 모습을 모니터링해서 방송에 내보낼 거라 하셨습니다.”
“…….”
숨만 쉬어도 상황에 필요한 말을 내뱉을 수 있는 민우성의 통역능력!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실장들의 시선이 곱질 않았지만, 민우성의 눈에는 반항기어린 시선도 하찮게만 보였다.
“길드장님께서 눈 깔라고 하십니다.”
“그건 그냥 니 하고 싶은 말 아니야?”
“길드장님께서 한 대 맞고 싶냐고 하십니다.”
“…….”
더럽게 수상하네.
통역 개같이 하는 거 아닌가?
실장들의 의혹은 점점 더 커졌지만, 그렇다고 목숨 걸고 개겨보기엔 해응응이 너무 무서웠다.
일본 일초가 숨 막히는 시간도 잠시.
흥미가 식은 해응응이 겨우 발걸음을 돌렸다.
벽과 바닥, 소파에 힘없이 등을 기대며 널브러진 실장들에게 민우성이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길드장님께서 한 번만 더 귀에 거슬리는 소식이 들리거든 유서는 미리 써두라고 하십니다.”
“…….”
“그리고 앞으로는 제 얼굴을 보면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고, 고개는 90도로 꺾어서 인사하러 오고, 우리 애들한테 찝쩍대다 걸리면 캡슐에 가둬넣고 사회봉사 12시간 및 점핑레빗 24시간 이수를 각오하라고 하셨습니다.”
뒤로 갈수록 점점 정말로 하고 싶은 말만 해버리는 민우성이었지만, 해응응은 애써 못들은 척 무시했다.
그녀가 도피방송을 하는 사이에도 매일 열심히 참가자들을 돌보고 다니며 저 쓰레기들과 기싸움을 벌였을 민우성의 노고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자신의 이름과 권력을 빌려줄 수 있었다.
2.
[경연프로그램 스튜디오] [전용 주차장 2층]민우성이 운전대를 잡기 전에 물었다.
“온 김에 참가자들도 보고 가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 됐군요.”
[모니터로 봤어요.]“길드장님이 직접 얼굴을 내비치시면 다들 좋아할 겁니다. 수련제자들에게는 길드장님이 정신적 지주 아니겠습니까.”
보는 사람 속이 조용히 끓어오르며 이유 없이 밉상으로 보이는 우지우의 맹한 얼굴보다는 낫지만, 민우성의 무표정한 얼굴은 이것대로 얄밉다.
예전에는 분명 그렇게 생각했었던 것 같은데, 사람이 원체 유능해서 그럴까.
지금은 저 무표정한 얼굴 속으로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을 헤아리는 사려 깊은 마음씨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사람이 부쩍 착하게 보였다.
[힘없는 빈말보다는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생각이에요. 이 주소로 가주세요.]해응응이 비단주머니에서 꺼낸 명함 두 장.
그것을 본 민우성이 크게 놀랐다.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장건영] [전화 *** **** ****] [주소 명호1동 명호로117 건영스튜디오]해응응이 사적인 친분을 가진 작곡가.
그것도 명함을 받은 사이라니!
‘길 가다가 전단지 줍듯이 주운 건 아니겠지?’
해남동으로 바뀐 지가 언젠데 아직도 명호동으로 적힌 주소를 보면 합리적인 의심이 간다.
“친한 작곡가분들이십니까?”
해응응은 악기연습실 시절을 떠올렸다.
끼익 끼익..
주야장천 불협화음을 연습하던 나날.
먹을 걸 자꾸 사주던 장건영.
흡연실에서 수줍게 눈치를 보던 박지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스쳐지나가듯 만난 인연이 되었지만, 그 인연이 한때의 인연으로 끝날지, 다시 이어나갈 인연이 될지를 시험할 때가 됐다.
“어디부터 먼저 갈까요?”
민우성이 그리 물었다면 [가까운 곳으로 가주세요.]하고 수첩을 내밀 예정이었다.
기껏 준비한 예측답안이 무색해지게 민우성은 예상과 다른 질문을 던졌다.
“둘 중 어느 분이 더 친하십니까?”
해응응은 고민에 빠졌다.
‘작곡가 두 분 다 많이 친했나보네.’
우열을 못 가릴 정도로 사이가 좋은지 고민이 제법 길어진다.
민우성이 눈치껏 갓길에 차를 대고 기다리는 사이, 해응응은 턱에 손까지 얹고 곰곰이 고민에 빠져들었다.
누가 더 친했는지를 고민하는 건 아니었다.
‘건영씨는 찾아가면 먹을 걸 사주겠죠. 지오씨는 같이 맞담배를 틀 테고요.’
음식과 담배.
편이식품과 기호식품.
【축복】
[완전동력] 당신은 섭식, 수면, 배변활동을 가지지 않아도 생명활동에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금제】
[중독:연초피우기] 당신은 주기적으로 연초를 피우지 않으면 심각한 중독 증세에 시달립니다.축복과 금제.
먹지 않아도 되는 음식과 피우지 않으면 곤란한 담배.
마음이 기울었다.
[지오씨한테 먼저 들르죠.]민우성은 적잖이 놀랐다.
조건이 같거나 비등하다면 대체로 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길드장이 남자를 골랐다.
정말 흔치 않은 일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