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3)
〈 3화 〉 3 각성자와 게이트
* * *
1.
30m 높이의 이중격벽.
주위를 둘러싼 CCTV와 경비병.
강철문과 검문소, 바리게이트.
삼엄함으로는 군 초소를 능가한다.
도저히 들어갈 구석이 없다.
게이트의 보안은 너무나 철저했다.
‘5년의 공력으로는 아무리 기감을 펼치더라도 게이트 안까지는 확인할 수 없어요.’
갑갑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힘으로 못 들어갈 건 아니다.
그 뒤에 범죄자가 되니 곤란하지.
그래도 느낌은 있다.
투룸아파트나 다른 장소보다는 확실히 자연지기농도가 높다.
비율로 치자면 0.001%에서 0.01% 정도의 차이. 이 정도면 게이트 근처에서 운기조식을 하면 축기난이도가 10배는 더 낮아진다.
‘게이트 안은 훨씬 더 농도가 높겠죠. 아니, 그래야만 해요.’
그녀가 판단하기로 무림계의 평균 자연지기농도는 대략 1%.
훼손되지 않은 자연에서는 10%.
인위적으로 기를 집적한 집적진에서는 50%.
자연지기 샘솟듯이 생겨나는 용혈에서는 100%도 가능하다.
0.01%로는 턱도 없다.
적어도 1%, 가능하다면 10%는 되어야 공력증진이 빨라진다.
‘축기속도를 앞당기는 심법은 지니고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몸에 처음부터 시도할 수는 없죠.’
체력이 쌓이지 않은 몸으로 무작정 마라톤에 참가한다고 기록을 세우는 것이 불가능하듯, 상승심법은 심신이 충분히 단련될 필요가 있다.
그때까지는 부족한대로 대체수단을 모색해야 한다.
“아. 아. 여기는 313게이트 정문초소. 거수자가 외벽 근처를 서성거리고 있다. 신원확인을 위해 자리를 비울 테니 출동대기 바란다.”
“….”
경비병의 눈에 게이트 외벽 근처를 서성이는 모습이 퍽 수상하게 비쳤는지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싸워서 쓰러뜨릴까.
의사소통을 시도할까.
계산을 해봐도 결론은 하나뿐.
타닷
“어어? 거수자가 도망간다. 대기조, 추격지원 바람.”
근처를 서성거렸을 뿐인데도 벌집을 건드린 것처럼 경비들의 반응이 매섭다.
재빨리 골목길에 접어들어 몸을 숨기자 경비병의 기척이 멀어졌다.
급히 도망치며 피로를 느낄 법도 하지만 호흡 몇 번에 그녀의 몸은 빠르게 평정을 되찾았다.
근골 15에 내제된 체력보정, 지구력보정은 운동을 생업으로 삼는 운동선수 수준.
고작 이 정도로 지칠 리도 없고, 지치더라도 문제되지도 않는다.
【축복】
[완전무결] 당신은 씻지 않아도 피부가 자동적으로 청결해지고 몸에서 여성스러운 향기를 발산합니다. [완전동력] 당신은 섭식, 수면, 배변활동을 가지지 않아도 생명활동에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변태물리학] 당신의 신체가 비정상적인 신축성과 유연성, 고통경감, 치유능력을 지닙니다. [영구제모] [자매결연]금제와는 정반대로 혜택을 부여하는 기능들.
편의성과 야한 방향으로 치중된 축복은 본의 아니게 육체활동 전반에 도움을 주는 구석도 있다.
완전동력은 상시 에너지와 호르몬 공급, 기억능력개선 등을 이루며 활동시간을 대폭 늘려준다.
완전무결은 주변공기를 정화하고 깨끗한 산소를 생성하며 숨을 쉬지 않아도 일정량의 산소를 체내에 공급하기도 한다.
변태물리학은 정말 뜻밖에도 해응응이 고른 축복 중에서는 가장 잘 고른 편에 속한다.
고통 없이 남자를 받아들이려고?
온갖 체위를 섭렵하려고?
그런 얼토당토않은 이유가 아니다.
변태물리학이 제공하는 유연성 효과로 근육의 유연성이 늘어나며 보다 어렵고 정밀한 동작이 가능하다.
이는 신경계와 근맥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오른팔을 잃고도 3갑자의 내공을 모아 환골탈태한 건 사실상 이 특성의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봤자 이 정도 몸으로는 총에 맞으면 끝이죠.’
조금 전에는 지나치게 경솔하게 접근했다.
경비들의 반응이 날이 선 걸 봐서 접근은 신중을 기해야했다.
충분한 간격을 두고.
염탐하기 좋아야 하며.
의심을 사지 않을 장소.
조건에 부합하는 장소를 둘러보던 눈에 네온간판 하나가 보였다.
[연중무휴] [24시간 오픈]편의점이다.
2.
툭 치면 와르르 무너질 것처럼 허술하게 생긴 유리문.
조심스레 문을 열자 딸랑딸랑 요란하게 차임벨이 울렸다.
“어서오세…요?”
점원의 인사.
당황한 표정.
어느 쪽도 익숙하지는 않았다.
무림맹주의 명이다. 자화요녀 해응응. 널 무림공적으로 선포한다.
황궁을 등지고 달아났으면 멀리 좀 달아날 것이지. 고작 신강에서 발이 묶여서야 쓰나, 흐흐.
혈강시의 각인이 새겨진 자가 정신주박을 뚫고 자아를 되찾다니. 이건 불가능해!
중원무림을 떠나 세외에서 힘을 기르던 시절.
그녀를 향한 감정은 늘 비슷했다.
적대.
탐욕.
공포.
그에 비하면 알바생의 반응은 몹시 건전하고도 신선했다.
고수들의 싸움에서 일순간의 동요는 생사를 가르기에 그들은 동요를 하지 않았으니까.
흔들린다면 그때는 동요가 아닌 공포를 느꼈다.
동요하는 즉시 깨닫기 때문이다.
그녀를 이길 수 없다고.
그들이 패배했다고.
세외무림으로 달아난 무림공적이 깨달음의 벽을 넘어서서 복수를 위해 돌아왔다고.
“저, 저어…. 혹시 각성자신가요?”
“?”
“앗, 죄송합니다. 혹시 빌런인가 싶어서 그만… 헙!”
하얀 종이가 노랗게 삭아가듯.
신선함은 이내 익숙함으로 변했다.
겁에 질린 눈동자.
필사적으로 회피하는 시선.
떨리는 손.
그 모습에 번개처럼 뻗어나가려던 오른팔을 왼손으로 붙잡았다.
달리는 사람의 등을 보면 개가 뒤쫓아 달리듯, 공포에 질린 자들은 본능적으로 베어왔기에.
검 손잡이를 밀어 올렸던 자세에서 엄지를 도로 내려 검을 검집에 채워넣었다.
철컥
자칫 죽을 뻔했다는 사실에 새끼사슴처럼 덜덜 떠는 알바.
괜한 예민함 때문에 엄한 알바생만 겁을 준 꼴이다.
해응응은 미안한 마음에 뭐라도 사기로 결정했다.
‘먹지도 마시지도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 몸이지만 딱 하나,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죠.’
【금제】
[중독:연초피우기]무협식 담배인 연초는 연초잎에 혼합하는 재료에 따라 진통제나 각성제 등의 다양한 효과를 지닌다.
해응응이 애용하던 효과는 둘.
진통제와 강심제.
【금제】
[느린 심장박동]느린 심장박동은 혈류속도의 저하를 야기하고, 이는 신체의 운동능력 저하와 직결된다.
심장박동을 인위적으로 올리는 강심제를 찾는 건 생존을 위해서는 필수적이었다.
‘편의점 담배에 그렇게까지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요.’
피워서 득이 될 것은 없지만 피우지 않으면 중독증세로 인해 수련조차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몸.
생각보다 불편함이 많다.
주문을 하려니 목소리가 나오지를 않았다.
【금제】
[함묵증]금제로 지정한 정신적 언어장애.
한때 매력능력치를 올리는데 필요한 점수도 벌고 컨셉도 잡을 겸 손수 골랐던 금제.
그것이 그녀의 입을 봉쇄했다.
“어… 저기, 뭘 원하시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초보적인 실수다.
그녀는 편의점 손님으로서는 낙제에 가까웠다.
‘조금 예의 없게 보이기는 하겠지만…. 어쩔 수 없네요.’
벽에 걸린 담배 진열대.
그 안을 가득 채운 담배들.
한 상표명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Marlboro blood]해응응은 검집 채로 제 눈을 사로잡은 담배를 가리켰다.
알바생은 역시 빌런이 맞았던 건 아닌지, 지금이라도 신고를 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했다.
“저, 손님? 이런 말씀 드리기 정말 죄송한데 저희 편의점 구매하한가가 5만원이어서요….”
“….”
“다른 물건들도 구매하셔야 계산을 도와드릴 수 있는데….”
“….”
“으으….”
벌벌 떨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알바생.
얼토당토않은 강매질인가 싶었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검 든 사람에게 시비를 걸만한 사람은 흔치 않다.
정말로 20년 사이에 편의점 정책이 변경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강단 하나는 마음에 드네요.’
음료수, 과자, 1회용 립스틱.
잡히는 대로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자 곧 5만원이 넘었다.
차곡차곡 편의점봉투에 상품을 집어넣는 알바생.
무심코 바라본 손이 신기했다.
현대인이라면 당연히 있을 자국.
펜을 오래 쥐는 중지 안 굳은살.
마우스를 오래 쥐는 손목 부근 굳은살.
알바생은 그중 어느 쪽도 없다.
대신 보다 특징적인 굳은살이 눈에 띄었다.
‘단단한 물건을 쥐고 오래도록 휘두른 흔적. 이건 검이네요.’
흔적을 보아 최소 5년.
편의점알바생이 무슨 연유로 오랜 시간 검을 휘둘러왔을까.
흥미를 느끼고 바라보니 편의점 점원은 젊은 여자였다.
슥
조심스레 내밀어진 봉투.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신, 해응응의 새하얀 손이 봉투 제일 위에 담긴 담배만 꺼냈다.
어리둥절해하는 점원에게 그녀가 봉투를 툭 밀었다.
“저 가지라고요?”
“….”
어차피 담배 때문에 마지못해 샀던 물건들이라 필요도 없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알바생이 지금까지보다 더욱 당황했다.
“아, 안 돼요. 이런 건 죄송해서 받을 수 없어요.”
“?”
“이렇게 좋은 분을 빌런이라고 오해했잖아요. 그런 줄도 모르고 저는 실례되는 생각이나 하고….”
착한 아이다.
해응응은 어쩐지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수틀리면 칼부림부터 오가는 무림에서는 흔치 않은 인간군상.
그렇기에 더욱 기억에 남은 인연.
언니, 저길 봐요. 강물이 정말 맑아요! 잠깐만 놀다가요. 네?
또 무구부터 사시려고요? 가끔은 장신구도 사요. 모처럼의 얼굴이 아깝잖아요.
언니, 제가 언니 많이 좋아하는 거 알죠?
늘 웃는 얼굴로 그녀를 따르던.
마음씨가 착한 아이.
계집애를 구하고 싶다면 자시까지 선착장으로 혼자 나와라.
안돼요, 언니… 함정인 걸 알면서도 어째서 여기에.
죄송해요, 언니. 제가 살아있어서 언니가 위험해진다면. 그런 거, 그런 거, 저는……. 죄송해요.
떨어지지 않는 입.
소리 없는 아우성.
적의 검에 스스로 목을 긋는 아이.
눈앞에서 튀는 핏자국.
바닥을 구르는 장신구.
부족했던 한 걸음.
격노. 도륙. 학살.
“…요. 저기요?”
“…!”
“몸이 안 좋으시면 잠시 쉬었다가 가실래요?”
이미 무덤덤해졌다고 여겼던 기억들이 한층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이것도 경지가 낮아진 부작용일까요. 오늘따라 저답지 않은 실수가 잦네요.’
싫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여자.
언제 겁을 먹었냐는 듯이 알바생은 그녀를 몹시 걱정한다.
순수한 선의.
명멸하는 기억.
정신건강에 그다지 좋다고 하기 어려운 자리이지만.
지금은 이 얼빠진 점원의 호의를 무시하는 편이 더 불편하다.
‘게이트에 침투할 기회를 관찰하려는 목적도 있었죠.’
해응응은 잠시 쉬기로 결정했다.
편의점에 잠시 쉬어가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결코 안절부절 못하는 그녀를 진정시키위해서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거듭 다짐을 하며.
턱을 조이는 턱 끈을 풀고.
죽립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검집을 옆 좌석에 얹었다.
그렇게 무장을 풀고 착석하니.
점원의 눈이 두 배는 커졌다.
“와. 언니… 연예인 출신이세요? 배우? 모델? 완전 동안이시다. 진짜 너무너무 예쁘세요.”
선망어린 시선.
주인을 앞둔 애완견 같은 반응.
사인해달라며 내미는 수첩.
그 순수한 호의가.
기억을 헤집는 천진난만함이.
일거수일투족이.
자꾸만 그 아이를 떠올리게 한다.
그 사실이.
이제는 심히 거슬렸다.
‘위층 카페를 갈 걸 그랬네요.’
방금 산 담배 생각이 간절해졌다.
3.
“팀장님. 거수자를 놓쳤습니다.”
“주변지역 수색해.”
“편의점 같은 곳도 뒤져볼까요?”
팀장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부하를 노려보았다.
“생각을 해라. 이상한 모자에 망토 두르고 검까지 찬 거수자가 그런 티 나는 곳에 있겠어?”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그건 그렇고 그 인간, 진짜 빠르네요.”
“각성자 아니면 말이 안 되는 속도지. 조심해. 사회에 불만이 많은 빌런이면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니.”
앞서가는 팀장의 뒤통수에 뻐큐를 날린 경비병이 미련 가득한 눈으로 편의점을 돌아보았다.
편의점 창문을 빤히 쳐다보던 눈이 가늘어졌다.
‘역시 내가 맞았어.’
경비병은 생각했다.
‘저기 편의점 점원 존나 예쁘잖아. 다음에 기회만 되면 적당히 핑계대고 혼자 갔다 와야지.’
그가 근무를 마치면 다른 점원과 교대하고 사라지는 여자알바생.
그녀에게 접근하려면 근무 중에 어떻게든 짬을 내어야한다고.
‘같이 있는 건 친구인가? 예쁜 애들도 끼리끼리 논다더니 친구도 뒷모습만 봐도 장난 아니네.’
경비병의 눈에서 욕망이 불타올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