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31)
〈 31화 〉 31 뜻하지 않은 피해자
* * *
4.
묵언검객 따라잡기 Ver 1.2
대수림 스피드런.
“뭐 이런 걸 만들었대? 혈압 오르게.”
사람 좋은 이다혜조차도 참다못해 불평했다.
솔직히 그럴 만도 했다.
묵언검객이 대수림을 거침없이 주파하는 모습에
저게 일반인도 가능한가? 하는 마음으로 만든
묵언검객의 기록을 쫓아보는 스피드런 코스.
길안내를 하는 인면지주는
당연히 묵언검객 기준으로 움직이고
저만치 앞서나가다가 목소리만 들리더니
기어코 그 목소리마저 끊길 정도로 거리가 벌어지는 사태도 예사였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사람 살려!”
ㅋㅋㅋㅋㅋㅋㅋ
언냐 우리 무서워 ㅠㅠㅠ
ㄹㅇ 캄캄해서 아무것도 안보여
그것은 당신의 미래입니다. 캄캄해서 아무것도 안보이는
저게 그 유명한 수귀자폭병이야? 갑자기 3000명한테 자폭뎀 넣네;
아닌데? 우린 캄캄하지 않은데? 내 집처럼 밝고 환하게 보이는데?
캄캄한 화면이 내 집처럼 밝고 환하게 보인다면 그것은 당신의 집이 아닙니다. 당장 그곳에서 탈출하십시오.
어둠 속에 홀로 버려진 공포.
발을 내딛는 행위에도 필요한 용기.
“이거 공포체험이었냐고!”
ㅋㅋㅋㅋㅋㅋ
몰?루
다들 같은 체험하고 계십니다ㅋㅋ
진짜 이번 모드는 레전드다
엄길동이 스트리머계에 핵폭탄을 던졌네 ㅋㅋㅋ
완주기록은 개뿔 당장 갈 길도 모르겠는데ㅋㅋ
검술이 아닌 스피드런 시합.
당연히 이다혜는 죽을 쑬 수밖에 없었고
명예의전당 시즌1 라이벌인 이해찬도
제작자인 엄길동도
모두 대수림의 미아가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 발이 안 떨어져.”
또 늪ㅋㅋㅋ
이번 트라이도 망했네ㅠ
망한 건 혐면지주한테 버려질 때부터 망했고
【개인랭킹】
[RANK 01. 길잃은2다혜] [Time record 490초 / 진행도 13% / 늪지화 49%] [사인 : 늪에 빠져 기권]골인지점인 요괴선인의 오두막.
스트리머들이 그 결승선을 구경하기란 요원해보였다.
5.
브이튜브에서 대수림 스피드런이 새로운 유행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사이.
해응응은 방에 칩거해서 허공을 바라보았다.
먹지도 자지도 않아도 되는 몸으로
일주일을
그저 멍하니 흘려보냈다.
주아영 : 언니 저번에 제 부탁 한 번 들어주기로 하셨죠?
부탁.
그녀를 깨운 말은 얄궂게도 부탁이었다.
‘부탁 하나로 이 지경이 되었건만 이번에도 또 부탁인가요.’
차라리 명령이라면 좋았을 것을.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망설임도 없이
그저 시키는 대로 움직일 뿐인 혈강시의 삶.
각인에 따라 움직이는
정신과 영혼이 구속된 꼭두각시 인형의 삶.
지금만큼은 그때 그 시절이 나았던 건 아닌지
진심으로 의구심을 느끼고 말았다.
주아영 : 언니이~ 빨리 답장해주세요. 저 지금 부탁할 거 생겼단 말이에요!
몹쓸 생각이다.
자신과 관계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모든 것을 내려놓는 삶을 살아가기엔
아직 남아있는 인연이 있지 않은가.
모든 관계성을 상실하고 절망했던
혈교에서의 그 시절과
지금은 엄연히 다르다.
부탁.
약속.
언제나 그녀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독을
또 다시 삼키며
그녀는 낮의 거리로 외출했다.
‘한적하군요. 오늘이…. 목요일? 금요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요.’
요일의 구분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자신을 놓았던 그녀가
가로수 길을 따라 불어오는
나무들이 내뿜는 청량한 기운에
무심코 나무 위로 고개를 들었다.
실을 뿜으며
당장이라도 저만치 위에서 나무 사이를 넘나들며
말을 걸 것만 같은 인면지주.
‘당신이 옳았어요. 역시 전 바보에요.’
환한 웃음은 그렇게나 짓기 어렵거늘.
쓴웃음만큼은 어찌 이리도 자연스러운지.
쏴아아아
낙엽들이 쓸려나가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나부끼는 단풍잎들.
“대박. 화보촬영인가?”
“와”
“근데 어디서 많이 본 사람 같은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도 멈추며
넋 놓고 바라보는
기억 속에 오래도록 새겨질 뜻 깊은 광경.
오늘도 자각 없이
수많은 사람들을 홀리던 해응응은
멀리서 팔을 붕붕 휘두르며 그녀를 반기는
주아영을 발견하고 나서야 기분을 진정시켰다.
“언니, 진짜 오랜만이에요!”
[일주일밖에 안 걸렸는걸요.]“일주일이면 오랜만이죠!”
인싸성향이 강한 아웃도어 파 주아영에게
일주일은 무간지옥과도 같은 기나긴 시간.
몇 년은 헤어졌다가 마주친 이산가족처럼
반기는 태도가 몹시 적극적이었다.
“요즘도 악기연주 하세요?”
[전혀요.]“에에. 아깝겠다. 모처럼 열심히 연습하셨는데.”
[제게 부탁하려던 건 무엇인가요?]“히히. 전에 약속했죠? 뭐든지 하나 들어주기로.”
대체 얼마나 대단한 부탁을 하려고 이러는 걸까.
“각성자학원 일일강사가 되어주세요!”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
심란한 부탁이 훅 치고 들어왔다.
“전부터 꾸준히 말씀드렸잖아요. 꼭 강사 한 번만 해주시면 안 되냐고.”
[왜 하필 저인가요?]“그야 제가 아는 각성자 중에서는 언니가 제일 강한걸요! 저희 학원의 강사보다도 더요.”
[각성자 라이센스가 없으면 강사활동은 불가능한 거 아니었나요?]“시간강사는 괜찮대요! 비각성자여도 무술고수나 이론전문가를 초청하는 경우도 있는걸요.”
단단히 마음을 먹고 왔는지
평소에 둘러대던 변명도 통하질 않았다.
“아니면 혹시… 제 부탁이 부담스러우셨나요?”
머뭇거리며 눈치를 보는 주아영.
그저 친구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인간과 반요는 서로 죽일 수밖에 없어?
생긴 건 전혀 다르더라도.
그녀에게 의지하려는 모습과 절박한 태도만큼은
다르지 않았다.
[해보죠. 하루만이라면.]“앗싸! 무르기 없기에요?”
손아래 동생에게 떠밀리듯 잡아끌리는 손.
여자 치고는 열심히 수련한
까끌한 손의 감각이 도리어 편안함을 선사했다.
굳은살이 잔뜩 베긴 손과
붕대를 두른 손의 촉감은
그다지 좋다 말할 순 없겠지만
두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으니.
평일 오전.
손을 잡고 걷는 두 사람의 입가에는
자연스레 은은한 미소가 어렸다.
6.
각성자학원 원무청.
접수원이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반문했다.
“시간강사로 지원하러 오셨다고요?”
[무술이라면 제가 가르칠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여자에, 말도 못하고, 각성자 라이센스도 없고, 대회입상이력 한 줄도 없이 검 한 자루 들고 찾아와서 시간강사에 지원을 하신다고요?”
주아영이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되물었다.
“아, 안되나요?”
무안을 드리려고 부탁한 게 아니었는데.
언니에게 죄송한 마음에 몸둘바를 모르는 그녀.
도리어 면박을 당하는 장본인인 해응응이
주아영의 손등을 살살 쓸어내리며
자기는 괜찮다고 달래주고 있자니
접수원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되죠! 시간강사는 땜빵으로 급하게 구하는 자리라서요. 하겠다는 사람은 종종 찾아오지만 다들 금방 그만 두거든요.”
[다행이네요.]“큭큭. 오히려 원망하시지는 않을라나 모르겠네요. 실력이 없는 강사는 오히려 연습생들에게 무시당하니까요. 그만두려면 지금 그만두시는 편이 좋을 거예요.”
대놓고 넌 우리 애들 수준에 맞지 않는 강사다, 라는 생각이 보이는 모습이지만.
해응응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시간강사 명찰을 받아들었다.
“언니, 저 때문에 곤란하다 싶으면 그만두셔도 되요. 원무청에서 저럴 줄은 저도 생각지도 못했어요. 사람 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진짜,”
[저는 괜찮아요. 그만큼 좋은 연습생들이 모여 있다는 자부심이겠죠.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호기심이 생겼어요.]저토록 자부심이 대단하다면
분명 실력도 뛰어나겠지.
너무나도 쉽게 끝난 인면지주와의 인연과 달리
강사와 연습생의 관계는
그보다는 오래 갈 수 있겠지.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해응응은 기대감을 품고 말았다.
‘괜한 걱정이었나? 하긴 우리 언니가 어떤 언니인데.’
주아영은 빙긋 웃었다.
번듯한 실내 인테리어에 고급스러운 복장
아티펙트도 간간히 눈에 띄는
심약한 사람은 그저 걷기만 해도 기가 죽는
각성자학원에서도
해응응은 기가 죽기는커녕
오히려 마주치는 다른 사람들의 기가 꺾이는
특유의 사극코스프레 차림으로 당당하게 활보했다.
“오우야. 굉장한 차림이시네요. 저는 정식강사로 3년째 근무 중인 스티븐 킴입니다. 학생들에게는 중병기 수업을 가르치고 있죠.”
[일일 시간강사를 맡은 해응응이라고 해요. 검술을 조금 가르쳐볼까 생각하고 있어요.]각성자학원 교무실.
정식강사들만 무려 20명에 달하는 이곳에는
널따란 개인용 사무공간에
업무용 컴퓨터나 캡슐, 교본과 수업자료 따위가
잔뜩 널려있었다.
‘현대교육이 확실히 다르긴 하네요.’
연무장에 철심을 박은 허수아비를 세우고
검이나 몸을 이용해 무술수련을 하는
무림에서의 수련방식과 달리
체계적인 과학지식과 현대문물의 도움을 받는
21세기 중엽의 수련은
최적화된 이론수업에 위험한 수련은 가상수업으로 대체하는
비싼 학원비 값을 하는 훈련코스가 짜여있었다.
“애들 가르치기 힘들다 싶으면 저녁에 연락 주세요. 저희 집에 오시면 같이 교본이라도 하나 만들어보죠.”
‘이 색목인이 지금 절 어떻게 해보려는 건가요.’
말을 못해서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강하게 떠오르는 반발감.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의식하고 싶지 않은
남성과의 연애를 기피하는 성격에
자칫 결례를 저지를 뻔했다.
가볍게 듣고 흘려 넘기는 해응응의 모습에
옆자리의 마도학 강사가 피식 웃었다.
“스티븐이 까여? 크크. 이거 망신스러워서 어쩌나. 그러게 적당히 했어야지. 저런 미인은 자존심도 보통이 아니야.”
“지난달에 학생이랑 사귀다가 들킬 뻔한 최선생님이 신경 쓸 일은 아니잖아요.”
“어허. 지금 폭로전 가자 이거야? 당신도 전임 시간강사 손댔잖아. 모를 줄 알았어? 좋게 좋게 가자고. 쪽 좀 준다고 예민하면 오래 못가.”
마도학 강사가 강의장으로 향하자 스티븐은 그의 뒤통수에 대고 혀를 찼다.
‘같은 정식강사라고 수준까지 똑같은 줄 아나?’
마도스킬에 박식한 사람이 없어서
변변찮은 실력으로도
강사직을 보전하는 최강사와 달리
스티븐의 전공은 무술.
각성자학원의 무술총괄강사 자리까지 넘보는
무술부문 강사 중에서는 사실상 2인자다.
‘진심으로 하면 강의시간도 시간강사 따위에게 넘길 이유가 없지.’
그런데도 그가 매번 자신의 강의 중 한 타임을
시간강사들에게 돌리는 이유.
몸매는 좋지만 정식강사에 비해 힘이 딸리는
권력으로 넘보기 좋은 미녀강사들이
종종 들어오기 때문이다.
‘미녀는 영리한 놈이 차지하는 법이지.’
물론 밑작업도 이미 끝났다.
그의 조수로 활동하는 연습생 중 일부가
강사들의 강의평가를 이용해서
남자강사는 모두 쫓아내고
여자강사는 아슬아슬한 선까지 평가점수를 깎아
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게 만드니까.
굴러 들어온 미녀가
제 손으로 그의 품에 안기기를 기다리면 될뿐.
절대로 들키지 않고
안전하게 미녀를 취할 수 있는
그만의 덫은 이미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깟 시간강사의 강의 따위,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든 아무 상관도 없지만. 너무 못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네.’
일반 연습생들까지 박한 점수를 줘버리면
오래 데리고 놀면서 즐기지도 못하고
바로 학원에서 잘리지 않겠는가.
‘적당히만 하라고, 적당히만.’
음습한 욕망을 숨기며
스티븐은 느긋하게 다음 강의를 준비했다.
“아앗, 스티븐강사님의 무술이 기억나지 않아.”
“이게 진짜 무술강의? 그럼 지금까지 우리가 배웠던 건 대체 뭐였지?”
“아, 안 돼. 이런 무술을 배워버리면 더는 예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렷…!”
같은 시각.
그의 조수들이 엄청난 실력을 지닌 미녀강사에게
마음 속 깊이 홀려서
점수를 깎아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줄은
꿈에도 모르는 채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