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4)
〈 4화 〉 4 연락처 주세요
* * *
1.
얼마간의 대화 후, 해응응은 편의점을 떠났다.
‘멋진 언니였지.’
편의점 알바생 주아영은 방금 전 손님을 떠올렸다.
말 한 마디 없는 과묵함.
어딘지 모르게 위험한 분위기.
죽립 아래에 감추어진 톱스타급 반전외모.
아무리 봐도 이 동네에서 볼 수 있는 얼굴이 아니었다.
‘저렇게 강한 분이라면 더 좋은 동네에서 사실 수도 있을 텐데.’
외모뿐만 아니라 사람 자체도 깜짝 놀랄 구석이 많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폐관수련을 하느라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모른다니, 참 독특하기도 하시지.’
기가 풍부한 게이트는 어딘지.
몬스터를 잡으면 내단이 나온다는 게 사실인지.
마석은 직접 복용도 가능한지.
10년이나 폐관수련을 했다는 말마따나 세상 돌아가는 일을 전혀 모르는 기색이었다.
귀찮을 정도로 질문이 많았지만.
자신이 이런 예쁜 언니의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기쁜 마음이 앞섰다.
음울한 표정으로도 미처 다 가리지 못하는 미모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행복하게 했다.
얼굴을 붉히던 그녀가 정신을 차린 건 챠임벨이 울린 뒤였다.
딸랑딸랑
“어서오세요.”
“뭐야, 친구는 갔나봐?”
“네?”
“아냐, 신경 꺼.”
“저, 실례지만 누구신지…”
“뭐야. 나 몰라?”
“모르겠는데요. 혹시 사장님 지인이세요?”
갑자기 반말을 찍찍 내뱉으며 아는 체를 하는 남자.
워낙에 태도가 당당해서 주아영도 당황했다.
“참나. 명호길드 길드원 아니야, 길드원. 제복 보면 몰라?”
“아, 그러시구나….”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조금씩 떨떠름해지는 주아영.
그녀의 속도 모르고 경비병은 계산대에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야, 우리 명호길드가 있으니까 명호동 집값이 잡히고 너희 같은 소시민들도 장사할 수 있는 거야.”
“아, 네.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어때. 오늘 근무 끝나고 오빠 시간 나는데.”
“네?”
“좋잖아. 명호길드 길드원이 남친 되면 몬스터 걱정도 없어지는데. 이 최호필이 이름만 대도 동네생활이 쭉 펴는 거야. 구김살 하나 없이.”
갑자기 덥썩 손을 붙잡는 최호필.
주아영이 기겁하며 손을 빼냈다.
“어쭈. 너 힘 좋다?”
“왜 이러세요. 여기 편의점이에요. 여자 만나러 오는 곳 아니에요.”
“나도 아무 여자나 만나러 온 거 아니야. 너 만나러 왔지.”
주아영의 두 눈에 짜증이 일었다.
“저기요. 저도 누구한테 보호받고 살 정도로 나약한 사람 아니거든요? 올해로 5년차 각성자연습생이에요.”
“허참. 이거 앙칼진 거 봐라. 생긴 것만큼 상큼하네.”
수수한 편의점 유니폼을 입어도 부각되는 S라인 몸매.
각성자연습생답게 관리된 몸을 최호필이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 징그러운 시선에 주아영이 강하게 엄포를 놓았다.
“그만하세요. 자꾸 이러시면 경찰 부를 거예요.”
최호필의 눈썹이 사납게 꿈틀거렸다.
“경찰? 하, 이 씨발년이 보자보자 하니까. 불러 이 개새끼야. 한 번 대달라는 것도 아니고 만나기나 하자는데 존나 비싸게 구네. 니가 이러고도 이 동네에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그래 지금 너 협박한다, 이 새끼야. 여기사장이 너 안 자르면 이 편의점은 앞으로 상납금 두 배야. 네까짓 게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주아영의 눈에 눈물이 핑 고였다.
“저한테 왜 이러세요. 저 각성자 학원 다니느라 이 알바 그만두면 안 된단 말이에요.”
“그럼 씨발 사과를 해! 니 때문에 기분 잡친 거 안 보여?”
“죄송해요.”
고개 숙여 사과하는 주아영.
최호필은 아랑곳 않고 그녀의 머리채를 붙잡아 계산대 위에 거칠게 짓눌렀다.
“악!”
“야. 이딴 사과가 의미가 있냐? 진정성이 안 보이잖아, 진정성이.”
“그럼… 어떻게 하면 진정성이 느껴지는데요.”
“오늘 밤 시간 내.”
“…!”
“알 만큼 알 나이잖아. 알지? 오빠가 무슨 말 하는지.”
권력을 앞세운 협박.
그 비열한 수작에 주아영은 서러움을 느꼈다.
각성자가 되려고 비싼 학원비를 벌기도 급급한 알바생이 명호길드의 길드원을 감당하는 건 불가능하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니 경찰이나 언론에 찌른다고 될 일 아니야. 요즘 세상 알지? 각성자 심기 거스르면 정부고 기업이고 다 좆 되는 거야.”
게이트와 몬스터.
인류 앞에 나타난 새로운 적들.
그들과 맞설 유일한 수단인 각성자는 사실상 법 위에 선 이들이다.
하물며 그런 각성자들 중에서도 특별한 힘을 지닌 실력자들이 세운 길드는 자신들만의 구역을 지닌다.
행정구역을 할당받고.
지역주민들의 생사를 책임지며.
지역 내 모든 이권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심지어 명호길드는 준 일류길드.
명호길드를 등에 업은 최호필의 횡포를 얼굴 좀 예쁘고 몸매 좋은 소시민이 감당할 수 있을 리 없다.
끝이다.
주아영의 눈에 체념의 빛이 어렸다.
최호필이 주먹을 쥐었다.
해냈다.
다 넘어온 물고기를 먹을 일만 남은 상황.
딸랑딸랑
편의점입구의 자동문이 열렸다.
“하, 눈치 없는 새끼. 거 나가있으쇼. 여기 장사 못하니까.”
“….”
“뭐해? 나가라는 말 안들리… 어?”
죽립에 피풍의, 장삼이라는 독특한 인상착의.
넉넉한 소매 품 사이로 언뜻 비치는 붕대를 감은 손.
허리춤에 비스듬히 찬 검집.
말없이 우두커니 서있는 자세만으로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죽립인.
해응응이 나타났다.
2.
담배를 사고 돌아오는 길.
사람 하나 없는 한적한 공원.
무심한 눈으로 포장지를 뜯고 꽁초를 입에 문 그녀가 담배 끝에 손가락을 대었다.
“….”
그리고 깨달았다.
5년 공력으로는 삼매진화를 일으킬 수 없다는 사실을.
‘경지를 잃는다는 건 이런 불편함도 뒤따르는군요.’
라이터를 사기 위해 다시 편의점으로 향한 해응응.
그녀의 눈에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무언가를 보고 흠칫 놀라 도망가는 시민의 모습이 보였다.
낌새가 이상하다.
편의점에 향하는 걸음이 빨라졌다.
아니나 다를까.
자동문이 열리며 드러난 광경에 해응응의 가슴이 싸늘하게 식었다.
험상궂은 남자의 손에 머리채를 붙잡힌 알바생이 계산대에 머리가 눌린 채 울고 있었다.
“너 뭐야. 게이트 외벽 근처에서 도주한 놈이잖아.”
예의 험상궂은 남자.
명호길드 경비병 최호필이 해응응을 향해 사납게 윽박질렀다.
“대답 안 해?!”
해응응은 묵묵히 검집을 들어 최호필의 팔을 겨누었다.
“시발 지금 뭐하자는 거야. 뭐. 한판 뜨자고?”
“….”
“이 새끼 살기 봐라…. 자신 있냐? 함 떠서 이겨보게?”
점차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짙어지는 기세.
최호필은 싸한 느낌이 들었다.
이유는 몰라도 잘못 걸렸다는 생각이 도저히 가시질 않았다.
“왜, 니도 이 년한테 관심 있냐? 그럼 줄 서 이 새끼야. 먼저 쓰고 돌려줄 테니깐.”
굽히기엔 자존심이 상하지만 더 나가면 큰일이 날 것 같아 내던진 그 나름대로의 타협안.
그 난폭한 언동이 끝나기 무섭게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최호필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주르륵.
볼을 따라 흐르는 피.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뒤를 본 최호필은 자신을 스친 암기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막대사탕…?”
벽면 깊이 꽂힌 사탕막대기.
사탕 알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최호필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놈이 언제 이걸 던졌지?’
뭔가를 던지는 낌새조차도 눈치 채지 못했다.
던진 건 둘째 치고 만일 사탕이 아닌 단검이라도 던졌다면 머리가 깨지는 건 순식간이다.
“언니…!”
놀란 얼굴로 입을 여는 주아영.
이를 주워들은 최호필이 이제야 알겠다는 투로 어색하게 웃었다.
“아, 둘이 뭐 가족이야? 하하, 진즉에 말을 하지. 가족끼리 만나는 건 방해 안 해.”
“….”
“아 시발 적당히 하고 넘어가자고! 손 땠잖아. 니 동생 안 건드린다고. 아님 뭐 끝까지 가보게?”
고등급 몬스터라도 앞둔 것처럼 조여드는 긴장감.
조금도 아랑곳 않고 검집을 틀어쥐며 엄지로 검 손잡이를 밀어 올리는 해응응.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최호필을 구한 건 다름 아닌 주아영이었다.
“안돼요, 언니. 이 사람 명호길드 사람이에요. 괜히 저 때문에 언니가 곤란해질 필요 없잖아요.”
“그, 그래. 동생 말 들어야지? 어디 길드에서 나온 각성자인지는 몰라도 남의 영역에서 설치면 뒷감당이 안돼요. 응? 그럼 난 간다?”
최호필은 이 자리를 모면할 생각에 급급했다.
맹수를 옆에 둔 것처럼 잔뜩 긴장하며 편의점 입구로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발을 내딛었다.
편의점을 나가기 직전, 그가 돌연 욱하며 소리쳤다.
“두고 보자, 이 개새끼들아. 오늘 일은 반드시…?!”
마지막까지 체면은 살리려던 외침.
그 추한 저항마저도 해응응은 허락하지 않았다.
번개처럼 뽑아든 검이 삽시간에 최호필의 몸 주위를 스쳤다.
후두둑
귀에 낀 무선이어폰
상의 단추
바지 고무줄
검 벨트
신발끈
위아래로 전신을 아우르는 범위에 걸린 것들이 일제히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으허헉!”
간담이 서늘해지다 못해 너덜너덜해진 최호필.
살에는 생채기나 남기는 수준의 정교한 검술실력이라면 마음만 먹어도 사지요혈을 벨 수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실력자를 자극했는지 비로소 찾아드는 실감.
흘러내리는 바지춤을 부여잡는 손이, 허겁지겁 도망치는 다리가 멀리서 보아도 덜덜 떨렸다.
“와. 언니… 강하다는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끝을 봐야 했어요. 저 사람 분명 다음에도 올 거예요.]“그래도 언니가 살인자가 될 수는 없잖아요. 솔직히 지금도 과했어요. 명호길드 체면을 무너뜨렸으니 저쪽에서도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방금 전까지 험한 일을 겪어놓고도 자신보다 해응응을 먼저 걱정하는 주아영.
착하다 못해 순해빠진 모습에 해응응은 한숨을 내쉬었다.
‘깊게 관련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분명 그랬을 텐데….’
자신이 알던 2030년의 지구.
20년이 지난 2050년 지구.
두 지구 사이의 정보량의 간극을 좁히고자 대화를 나눴을 뿐.
아무것도 아닌 사이의 알바생이라고 애써 선을 그었건만.
죄송해요, 언니. 제가 살아있어서 언니가 위험해진다면. 그런 거, 그런 거, 저는……. 죄송해요.
안돼요, 언니. 이 사람 명호길드 사람이에요. 괜히 저 때문에 언니가 곤란해질 필요 없잖아요.
무림계와 현실계.
각기 다른 두 차원의 인연이.
저 착해빠진 얼굴이.
참담한 말로가.
그만 머릿속에서 겹쳐지고 말았다.
[연락처 주세요.]“정말요?”
은혜는 잊되 원한은 잊지 않는 무림의 사파잡배들처럼.
명호길드는 신사적인 집단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자신이 없는 사이에 찾아온 길드원들에게 주아영이 해코지를 당하거나 실종이라도 된다면.
그 뒷맛도 하루 이틀로 잊을 수는 없을 거다.
모르는 체 외면하기에는 이미 너무 깊이 연관되고 말았다.
[아직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있거든요. 게임이라든가.]“그런 걸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저야 얼마든지 환영이죠! 뭐든 물어보세요. 다 알려드릴게요.”
연락처를 교환했다는 사실에 마냥 해맑게 기뻐하는 주아영.
그 순수한 얼굴을 뒤로 한 채 편의점을 떠나는 해응응.
부쩍 차가워진 얼굴로 그녀는 다짐했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번거롭게 만든 이상, 필요한 정보는 마른오징어 쥐어짜듯 전부 뽑아내겠다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