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473)
〈 473화 〉 473 좀비해저드, 엔딩 이후
* * *
1.
아홉 개의 꼬리를 방패처럼 사용하여 포격을 받아내며 두 개의 뿔에서는 빛을 쏘아 날린다.
인간과 좀비의 대결보다는 괴수대전에 더욱 가까운 전투는 기괴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괴물이 제 몸체를 유지할 피와 살, 뼈까지 소모하며 갈수록 크기가 줄어드는 반면에 묵언검객은 끝까지 건재함을 유지했다.
다른 존재의 힘을 제 것으로 소화해낸 자.
그저 사용하기만 할 뿐, 제 것으로 다루지 못한 자.
자이언트 언노운은 묵언검객의 전투력을 모방했을지언정 그 진정한 원리마저 모방하지 못했다.
깊이가 없는 물리력에 한계는 명백하니, 우열과 승패는 이미 정해졌다.
“허망할 정도로 일방적인 전투였군.”
“우리들을 박살을 낸 여자다. 애초에 그리 간단히 패배할 리가 없지.”
“하. 비겁하게 무공에 이어서 요상한 힘까지 쓰는 년이다. 그리 고평가하고 싶지 않아.”
마지막 전투를 담은 브이튜브 편집본.
영상을 보던 강태백의 투정에 조일성은 곤란하다는 듯이 볼을 긁적였다.
“그런다고 입장이 달라지지는 않아. 우린 저 여자에게 진 패배자니까.”
바닥을 구르는 벌꿀사탕 포장지를 줍고자 쪼그려 앉은 묵언검객.
포장지에 남은 희미한 꿀 냄새를 찾듯이 코에 가져다 대보지만 기대했던 냄새는 이미 진즉에 사라진지 오래였는지, 그녀는 포장지를 버렸다.
해응응씨, 이쪽입니다! 수도가 살아있어요!
하하, 이걸로 물 걱정은 덜었어!
여깁니다. 페트병을 날라주실 수 있겠습니까?
게임 속 NPC들의 요청에 포장지를 구깃 접어 주머니에 넣고 수도꼭지로 향하는 해응응.
어느덧 묵언검객이라는 별명 대신 본명으로 불릴 정도로 친숙해진 NPC들과 함께 전국에 방치된 도시 사이로 살아있는 인프라를 찾아 헤맨다.
인류의 하루를 다음날로 연명시키기 위한 여정을 되풀이한지 어언 100일이 지났다.
좀비사태 50일째.
좀비커맨더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모든 좀비가 지구상에서 사라진 뒤로 다시금 50일이 지난 어느 날에도 사람들은 폐허 속을 살아가고 있다.
얼어붙은 강을 가로질러 도시에 들어와 살아있는 수도를 찾아내고, 어느 옷가게를 털어 꽁꽁 싸맨 옷차림으로 생수를 가득 실은 수레를 밀며 눈이 내려 하얗게 물든 설원을 가로지른다.
“평화롭군.”
“그녀에게는 평화를 누릴만한 자격이 있으니까.”
좀비해저드의 이야기는 좀비커맨더를 쓰러뜨린 뒤로도 끝나지 않았다.
365일.
이야기가 끝나는 날은 좀비사태 종식으로부터 1년을 살아남는 것이니까.
낮은 난이도에서는 손쉽게 가능했다.
좀비들을 모두 소탕하거나 사람들이 살아갈 터전이 남아있으니까.
높은 난이도에서는 어려웠다.
좀비를 모두 소탕하기도 어렵고 그 뒤에 살아갈 터전 따위는 보통 아무것도 남지 않으니까.
최고 난이도는 말할 것도 없다.
생존전문가도 좀비들이 자연사하기까지 악착같이 버티기만 시도해도 좀비들은 기를 쓰고 진화해서 어떻게든 사람의 흔적을 찾아냈다.
공략불가.
전인미답.
출시 이후 누구도 클리어한 적 없는 최고난이도의 아성을 깨부순 사람은 묵언검객이 최초였다.
그렇기에 좀비 아포칼립스 이후의 세계를 만끽하는 것도 그녀에게만 주어진 기회이자 권리.
예지수와 김한나, 차지연, 주아영을 비롯한 수많은 희생자들의 묘지에 들러 죽은 이들을 기리는 애도의 시간도 그녀에게만 허락되었다.
“되었다. 더는 참고도 되지 않아.”
“그런가? 난 마음에 드는데.”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저 광경을 누릴 자격은 묵언검객에게만 있다고.”
강태백은 사납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할 일을 마치기 전까지 우리에게 저런 평화를 누릴 자격은 없다. 그 뒤에도 분명 마찬가지겠지.”
“태백길드의 폭군도 제법 유해졌군.”
“같잖은 소리는 집어치워라. 지금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레벨을 올리고 더욱 강해지는 것과 그렇게 얻은 힘으로…”
“원흉을 찾아내는 것.”
“알고 있다면 그 따분한 브이튜브는 끄고 얼른 일어나. 다음 던전에 들어갈 시간이다.”
현역시절 가장 든든했던 동료의 모습을 되찾은 강태백의 뒷모습에 조일성은 스크린워치를 닫고 그 뒤를 따라 일어섰다.
‘이제야 좀 봐줄만한 뒷모습이 되었군.’
십대길드의 두 생존자.
조일성과 강태백은 던전을 향해 발을 들였다.
2.
[좀비 아포칼립스 이후 365일이 경과했습니다.] [좀비해저드 최고난이도를 클리어했습니다.] [엔딩을 열람했습니다.] [이후, 새로운 게임을 시작할 때까지 엔딩 이후의 세계를 계속 플레이하실 수 있습니다.] [단,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면 해당 엔딩 이후의 세계는 자동으로 삭제됩니다.]해응응은 생각했다.
이 게임의 최고난이도가 지금껏 공략되지 않았던 이유는 이 ‘엔딩 이후’를 없던 일로 만들고 싶지 않은 소망 때문은 아닐까, 하고.
난이도도 다르고 헤쳐온 위험의 강도도 다르지만 그것이 플레이어가 지켜낸 세계라면.
그것은 어엿한 하나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힘으로 개척해낸 세계를 없던 일로 되돌리는 일 따위, 그리 쉽게는 선택할 수 없는 길이다.
[▶좀비해저드(엔딩 이후)를 종료합니다.] [▶방송을 종료합니다.]방송을 마치고 캡슐에서 나온 해응응을 반긴 것은 우지우와 이소혜, 그리고 함께 좀비해저드 합방을 진행하던 합방동료들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한나 완전 감동! 묘비 만들어질 때는 기분 좀 이상했지만 매주 한 번씩 찾아와줘서 고마웠어요!”
“다행이네요. 발전소랑 위성을 잃어도 남은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어서.”
해남아이돌즈는 하나의 세계를 무사히 지켜냈다는 생각에 순수하게 기뻐했다.
“죄송해요, 언니. 꼬리를 잡지 않았으면 하나라도 더 많은 거대좀비를 제 손으로 물리치고 엔딩 이후를 좀 더 편리하게 맞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말 말아요. 모두가 강해질 수 있었던 건 아영이가 해남아이돌즈를 지켜준 덕분이니까.]주아영이 오페라 극장에서 정신 못 차리고 넋 놓고 오페라 관람이나 하던 차지연을 구하러 가지 않았더라면, 예지수와 김한나를 빌딩에서 챙기지 않았다면.
그 뒤의 여정에서 세 사람이 제 몫을 하는 일은 없었고, 플레이도 훨씬 빨리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플레이어의 전멸.
데드엔드로 말이다.
허망한 탈락이었지만 그때까지 주아영이 해온 일로도 그녀는 능히 제 몫을 다했다.
[그런 것보다 기의 증가가 느껴지나요?]“앗, 단전에 기운이 커졌어요!”
합방멤버 모두가 깜짝 놀랐다.
“하잇! 한나는 5년 공력이 늘었습니닷!”
“저는 10년 치요.”
“앗. 저는 1년밖에 안 늘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오래 살아볼 걸 그랬네요.”
예지수가 아쉬움을 드러냈다.
모두 탈락한 시점에 따라 얻은 공력에 차이가 있었지만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
“저도 10년 공력이 늘었어요.”
도중까지의 활약에 따른 차이 덕분인지 주아영도 10년의 공력이 플레이 한 번으로 늘었다.
엔딩 직전까지 활약했던 차지연과 같은 크기의 공력이 는 것으로 활약에 따라 얻는 공력이 달라진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길드장님은 얼마나 느셨습니까?”
우지우의 물음에 해응응이 기운을 관조했다.
지닌 내공이 크기에 제법 시간이 걸렸지만 모두가 흥미롭게 여기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공력이 20 상승합니다.] [공력 : 150]도깨비왕의 기운을 빼앗아 꼬리를 얻은 시점에서 60년 공력이 늘어나 122년 공력에 도달하고, 대요괴를 토벌하며 토벌보상으로 8년의 공력이 늘어나 130년 공력에 도달했던 해응응.
그것이 이번 클리어를 계기로 20년 공력의 증진으로 이어지며 단숨에 150년 공력, 2갑자 반의 심후한 내공으로 이어졌다.
[20년 공력이 늘어났어요.] [지금은 150년 공력이네요.]“배, 백오십년이요?”
“한나 조금 기죽을지도….”
“……정말 엄청난 공력이네요….”
아이돌 3인방은 완전히 기가 죽었다.
수련제자 출신이었던 그들은 늘어난 내공이 소지한 내공의 거의 전부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하아. 언니를 따라잡으려면 좀비해저드 같은 게임을 최고난이도로 일곱 개 이상 클리어해야 한다는 말이네요. 이 정도로 먼 격차였을 줄이야…….”
주아영은 새삼 자신과 해응응의 격차를 실감했다.
해응응이 가만히 기다려줄 리도 없으니 평생 이 격차를 좁히기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용기가 생겼다.
길조차도 보이지 않았던 지금까지와 달리, 게임을 통해 내공을 늘릴 수 있는 길이 생긴 지금은 희망을 품을 수가 있었다.
“세계 유일의 언터쳐블급 각성자답네요.”
“그러게. 각성자로 따지자면 얼마나 강한 수준인지 짐작조차도 가지 않아.”
각성자 생활로 탁기를 먼저 대량으로 늘렸던 우지우와 이소혜는 해응응의 뒤를 쫓는 것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지닌 탁기를 정순한 내공으로 바꾸는 데에 온 시간을 쏟고 있는데, 기의 총량에서도 압도적으로 밀려서는 평생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양식의 결론은 어떻게 내리셨습니까?”
[포기했어요. 저 마기는 인간이 다루어도 좋은 힘이 아니에요. 현실에서 운용한다면 현실판 좀비바이러스 사태를 보게 될지도 모르죠.]편리하게 힘을 늘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각성자들에게는 아쉬운 결말이었다.
“어쩔 수 없지. 저런 힘이라도 사용할 수 있는 존재는 우리가 아니라 따로 있으니까.”
“아. 그렇군요.”
우지우가 말했다.
“아라크네씨가 클리어할 수 있으면 되는 거였죠?”
결국은 아라크네만 이 게임을 클리어해서 마력을 얻을 수 있으면 그만이다.
“싫어.”
하지만 아라크네는 좀비해저드의 플레이를 거절했다.
[어째서죠?]“좀비는 뭔가 좀 취향이 아닌걸. 징그럽고.”
“…….”
“게다가 저거, 먹으면 좀비 될 것 같고. 잡아먹기엔 너무 기분 나빠.”
그렇게 가시인간을 위한 리빙아머 제작일정은 무기한 연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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