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49)
〈 49화 〉 49 손이 심심하네요
* * *
1.
4강전 시합이 시작되기 전.
투기장의 관중들은
다가올 미래를 선명히 그렸다.
여자 몸으로 믿기지 않을만큼
대단한 살육을 벌이며 투기장에 도착했다는
살벌한 소문과 달리
정작 그들의 앞에 보이는 것은
밀짚모자를 깊이 눌러 쓴
피부에서 윤이 나는 앳된 얼굴의
음심이 동할 정도의 절세미녀.
“박음직스럽게 생겼군.”
“으오오, 당장 저 옷을 찢고 싶어.”
“투사노예가 아니라 성노예를 데려온 건가?”
“왕자의 취향이 대단하군.”
“노예를 기르는 안목은 인정해야겠어.”
그 미모야 대단하다만
그들이 기대한 것은
키는 8척(2.66m)이요,
체중은 600근(360kg)에 달하는
칼 하나 쥐어주면
인간백정처럼 거뜬히 고기를 해체할 수 있는
흉악무도한 생김새의 요괴 뺨치는 여성이지
절세미인이 아니었다.
“생김새만 보면 저 커다란 짐승 놈 짓이겠군.”
“저런 요괴도 있었나?”
“우리 문화권은 아닌가보네.”
생김새 하나만큼은 무지하게 강해보이는
키가 3m에 달하는 웬디고.
관중들은 사생아 왕자가
제 성노예를 아끼는 마음에
웬디고의 공적을 빼앗아서
묵언검객의 소문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검을 잡는 태는 나오니까
허접하게 죽어버리지는 않겠지.
그런 흥이 식은 기대감과
역으로 피에 젖은 무사복 아래에
꽁꽁 감추어졌을 탐스러운 살결이
흉물을 벌떡거리는 원숭이 요괴에 의해
백주대낮에 모두의 앞에서
훤히 드러났으면 하는
다른 방향의 기대감이 공존하는 투기장.
시합이 시작되고
저돌적으로 달려든 요괴가
완전히 변한 검식으로
삽시간에 세 번의 찌르기로 구성된
일 초식을 펼친 직후.
몸이 시퍼렇게 멍이 들면서
잔뜩 부풀어 오르다가
풍선처럼 터지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결과에
모든 관중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헛소문이 아니었다고?”
“방금 건 대체 뭐였지?!”
“신물이다. 엄청난 전승을 지닌 명검을 쓴 거야.”
“소름이 끼치는데.”
“요괴왕의 유산이라면 저런 엄청난 검 하나쯤은 있을 법도 하지.”
“요괴왕의 사생아라더니 왕자에게 믿는 구석 하나쯤은 있었군. 저런 신병이기를 인간여자 따위에게 들려줄 정도로 여력이 있다니.”
요괴들의 상식선에서
인간은 저렇게까지 강해질 수 없다.
그러나 그녀가
실제로 상대를 폭사시킨 것은 사실.
그 모순을
그들은 사용한 검이 특별해서라고 납득했다.
이는 4강전 두 번째 경기의
승자팀 또한 다르지 않았다.
“왕자의 노예가 지닌 검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주인님.”
“내게 생각이 있다. 힘만 믿는 요괴장군의 아들과 달리 요괴왕비의 추종자라면 머리를 쓸 줄 알아야지.”
2.
투기장 대회 결승전.
[Story mode]결승상대 명단을 보며
마가놈의 얼굴에 짙은 주름이 파였다.
“위험한 상대입니다. 무투파가 대부분인 요괴장군의 세력과 달리, 요괴왕비의 추종자들은 전승을 숨기고 속이는 요괴의 싸움에 능합니다.”
“어머님께 퇴치당한 역겨운 원숭이자식도 단단히 의표를 찌르는 권능을 구사하지 않았나.”
“그건 요괴장군이 적절한 인선을 배치했을 뿐, 그 요괴가 직접 심계를 발휘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왕비의 추종자들은 직접 머리를 쓰죠.”
머리를 쓰는 요괴.
그 말에 묵언검객이 마가놈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그런 소문을 따라 요괴왕비에게 의탁하려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만, 머리 쓰는 놈들이 비열하기는 더하지 않습니까. 모략에 당하기 전에 제 발로 나왔습니다.”
“이번 상대에 대해서도 알고 있나?”
“독안의 요괴. 벌의 날개에 지휘봉을 든 요괴악단의 지휘자라고만 알려져 있지만, 어깨 너머로 들은 일화가 있기는 합니다.”
마가놈의 눈에 처음으로 공포가 어렸다.
부기맨을 상대로도
겁도 없이 비꼬아 꼽을 주던 그가
이런 약한 모습을 보이니
왕자와 묵언검객도 한층 긴장하며
그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요괴악단의 연주회에 초대받은 자들은 악단의 연주를 따라 감정이 고양되지만, 모든 감정이 끄집어내져 빨아 먹힌다고 합니다.”
“심하군. 인간을 먹잇감으로 삼는 요괴는 많지만 그렇게까지 악랄한 수를 쓰다니.”
“감정을 못 느끼는 폐인이 된 인간과 반요들은 명령에 순응하는 노예가 되어 악단에서 부려지거나 다른 요괴들에게 팔린다고 알고 있습니다.”
요괴악단.
한쪽 눈에 해적선장처럼 안대를 차고
정장차림에 지휘봉을 든
꿀벌의 날개와 더듬이를 지닌
꿀벌지휘관.
그 정중한 복장이나
단아한 모습의 이면에는
겉모습만 봐서는 짐작할 수도 없는
사악한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럼 결승전 시합을~~!”
“사회자. 잠시만 진행을 멈춰주실 수 있나요?”
“예? 혹시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투기장의 대결은 승자를 가리는 것. 하지만 모든 시합이 싸움으로 승패가 가려질 필요는 없죠. 괜찮다면 기권을 권하고 싶어서요.”
“오오, 싸워보기도 전에 상대의 기권을 받아내겠다는 대담한 도발!”
요괴들의 환호성과 함께
시청자들의 환호도 이어졌다.
헤으응 나 애기꿀벌 맘마죠
마망이 둘이야??
나 너무 행복해
인생 최대의 시련 꿀벌녀 vs 마망검객
와 어케 양쪽 다 예쁘냐?
이쁜 건 마망검객이 더 이쁨
근데 맘마통은 저쪽이 더 크잖아
맘마통ㅅㅂㅋㅋㅋ 진짜 성욕의 노예들
니들은 엄길동의 성욕 욕하지 마라ㅋㅋㅋ
이기는 편 내 마망
기권
반속 빠른거 보소ㅋㅋ
아ㅋㅋ 빨리 기권하기 대회였냐고
환호성 속에서도 왕자는
오직 묵언검객만을 바라보았다.
‘어찌하시겠습니까?’
마치 그렇게 묻는 것처럼.
【상호작용 선택지】
1. 하게 두어라.(설전 개시)
2. 들을 가치도 없다.(시합 개시)
싸워서 이길 자신은 있다.
마가놈은 상대의 교활함을 문제시 삼았지만
그렇다면 오히려
연설에 나설 기회를 주는 건
적의 사고방식과 수법을 파악할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1. 하게 두어라(설전 개시)]소란스러운 투기장을 진정시킨 건
한 손을 들어올리며
좌중의 관심을 사로잡은 사생아 왕자였다.
자신이 할 수 없는 말은
왕자가 대신할 수 있다.
그러니 기꺼이 기회를 허락했다.
“어떤 하찮은 소리를 지껄일지 들어는 주지. 짖어봐라, 천박한 계집아.”
그 허락을
저리 강한 발언으로 던질 줄은 몰랐지만.
와 ㅋㅋㅋㅋㅋ
딜교 보소?
마망마망 거려서 성격 순한 줄 알았더니 묵언검객한테만 그런 거였네
내 마망에게만 따스한 남자
이 정도는 되야 마망보이라 불리는 건가
자극적인 현대문명을 즐기는
시청자들조차 감탄할 도발에
요괴들이라고 달아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한 꿀벌녀였지만
우아하게 지휘봉을 치켜든 그녀가
한 손으로 휘리릭 지휘봉을 돌리고
손등과 손날을 따라
묘기를 부리듯 지휘봉을 가지고 놀며
가볍게 주의를 환기했다.
“왕자의 넓은 아량에 감사드리며, 잠시 우리 모두가 외면해온 진실을 논할까 합니다.”
수많은 관중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성희롱을 당했다는 사실조차 괘념치 않는
오히려 사뭇 엄숙한 표정을 짓는 꿀벌녀.
작게 진동하는 날개를 따라
부쩍 차분해진 분위기 속에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요계는 멸망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길어봤자 1년. 짧으면 당장 다음 달에라도 무너질 수 있겠지요.”
불편한 진실.
끝을 향해 달려가는 요계.
“살육, 파괴, 번식. 우리가 좋아하는 감정을 누리기 위해 저질러왔던 행위를, 더는 어디에도 해소할 수 없는 종말이 찾아옵니다.”
엄숙하고
숙연해지는 요괴들.
“이 모든 종말이 우리가 무언가를 잘못했기에 벌어졌을까요? 세간에 도는 소문처럼 왕비가 요괴왕을 독살해 천벌이 내려진 탓일까요?”
자신이 모시는 왕비를 향한 음모론을
제 입으로 언급하는 과감함.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요계의 귀중한 보물들을 들고, 우리들의 고향이 부활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간 자가 있습니다.”
밑에서부터 서서히 끓어오르는 감정과 함께
그 범인을 지목했다.
“대요괴. 요괴왕 사후에 다시금 본색을 드러낸 옛 지배자가! 저희들의 고향을 착취하고, 파괴한 끝에, 인계로 달아났습니다.”
대요괴.
시체언덕의 처형자나
녹아내리는 대수림의 요괴선인을 통해
두 차례 언급되었던
반요곡의 참상.
그 주범으로 추측되는 존재.
“분하지만 그는 강한 요괴입니다. 그를 따르는 요괴들도 요계에 남은 저희보다 강하죠. 그가 가져간 귀물들 또한 범상치 않습니다.”
패배를 인정하되.
좌절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이대로 투기장에 주저앉아서, 이루지 못할 복수 대신, 제 손으로 직접 채우지도 못할 욕망을 자위하는 나날을 보낼 겁니까? 정말 이런 식으로 종말을 받아들여도 괜찮겠습니까?”
다시금 고조되는 분노.
앞선 분노와는 그 크기부터가 다른,
그녀의 논조에 동조하는 인원의
자릿수부터가 다른,
투기장의 모든 반요와 요괴들의 호응과 함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합니다. 이런 소모적인 시합은 이제 끝입니다.
하나라도 더 많은 요괴가 모여,
하나라도 더 많은 귀물을 모아,
요괴왕비께서 지닌.요괴왕비만이 여러분께 제공할 수 있는 인계와 이어지는 통로를 통해!
배신자들을 징벌하러 떠나야만 합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분노하는 요괴들의
무기력했던 절망 대신 피어오른 감정이
투기장이 아닌
인계의 요괴들에게로 향했다.
“하니 대의를 위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왕자님. 요계에 잔류한 모든 버려진 자들의 설움과 복수를 위해 힘을 합쳐주십시오.”
“……!”
“이 대회를 기권하고 우리들의 군세에 합류하여 그 귀물을 왕비님에게 진상해주십시오.”
긴 연설의 끝에.
요괴들의 외침이 더해졌다.
기 권 해!
기 권 해!
마치 그것이 옳은 길이라고 주장하듯이.
이 제안을 거절한다면
요계의 모든 요계들을 등진
배신자들을 향한 복수에 동참하지 않는
또 다른 배신자가 되는 거라고 압박하듯이.
꿀벌녀의 세치 혀가
투기장 전체를
요계 전체의 요괴들을
그녀와 요괴왕비의 편으로 돌렸다.
지렸다
마르크스의 시대는 끝났다. 이젠 꿀벌의 시대야
맘 마 조! 맘 마 조!
혼란을 틈탄 맘마조ㅋㅋㅋ
근데 묵언검객 검 그냥 기본아이템 아님?
ㅇㅇ 공격력 쥰내 낮고 특수효과 하나도 없는 그 쓰레기 검 맞음
설마 이게 숨겨진 힘이 깃든 히든아이템이었음?
ㄹㅇ?
진짜로?
별 실험을 다 해봐도 그냥 쓰레기검 맞던데요
와 엄길동도 보고 있었구나!
묵언검객 따라잡기 만들려면 본방 봐야지 ㅋㅋ
지금도 시청자들이랑 같이 보는 중임
기본검도 사실 숨겨진 뭔가가 있는 검 아니냐고 검 한 자루로 야랄하는 꼴을 10시간 본 시청자들만 알거임. 저건 진짜 그냥 똥검임
기본검 강정기 다시 떠오르니까 개 킹받네
왜 자꾸 절 화나게 해서 수축시키는 거죠? 빨리 묵언검객이랑 합방해서 이완시켜주세요
아니 이름이 죄다 ㅋㅋㅋ
와 악질 엄길단 말로만 들었는데 이 정도야?
수귀자폭병은 저거에 비하면 암것도 아니네
응애 나 수귀자폭병 쟤들 뭐야 무서워
이러다 9시뉴스에박제된엄길동의패션센스도 나오겠네 ㅋㅋㅋ
부르셨나요?
엌ㅋㅋㅋㅋㅋㅋㅋㅋ
누구냐 지금 닉변한 새끼?ㅋㅋㅋㅋㅋㅋ
타이밍 지렸다 ㅋㅋㅋ
아니 미친놈들아 왜 남의 방에서 후원하고 난리야 내방 와서 쏴
형도 형 방송 안 하고 여기 와있잖아요
꼬우면 묵언검객 찾아가서 돈 달라고 하던가ㅋㅋ 무지성 도네 맡겨놓기
연설의 충격이 어찌나 강했는지
숨어있던 엄길단이 우르르 튀어나와 도네를 쏘며
엄길동의 복장을 터지게 만들 정도의 상황.
폭소가 멈추지 않는 채팅방과 달리
게임 속 현장분위기는 몹시 심각했다.
2.
[Player mode]“죄송합니다, 어머니. 제가 어떻게든 말려야 했는데. 위험한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해응응은 고개를 저었다.
설마 이 정도로 대단한 언변을 지녔으리라곤
그녀도 예상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그저 가볍게
적의 성향이나 파악할 작정으로
기회를 허락한 것이었지만
꿀벌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를 완벽 그 이상으로 활용했다.
‘난이도 보정의 영향일까요?’
어쩌면 그녀가 아닌 다른 플레이어라면
연설의 파급효과가
지금처럼 강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정도는 기분이 풀렸다.
어차피 이미 벌어진 위기.
자신이 잘난 탓이라면
어쩔 수 없지 않겠나.
그런 마음가짐이 심적 여유를 선사하자
검을 쥐지 않은 손이 의식되었다.
묵언검객도 망연자실한 듯
멍하니 서있네ㄹㅇ
근데 자기 손은 왜 내려다보고 있음?
다 죽여버릴지 고민 중인 듯
오
영감 미안해요… 다시는 뽑지 않기로 했는데…
지옥참마도ㅋㅋ
묵언검객이 드는 검이면 지옥참마도 맞지ㅋㅋ 죄다 지옥으로 보내버리는데
화끈하게 검을 뽑아
가까이에 있는 요괴부터 다 죽이는 건 아니냐는
엽기적인 추측까지 나올 무렵.
?
?
?
저 저 미친년 보소
팀이 지고 있는데 혼자 즐기고 있어요!
시청자들은 결코 그 의미를 알 수 없을
영문 모를 브이.
‘손이 심심하네요.’
모두가 긴장을 금치 못하는 와중에도
오직 그녀만이 태연했다.
적응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의를 입에 담으며 상대를 강제하는
자신이 악역처럼 조성되는 분위기 정도는.
‘애쓰기는 했네요. 무림의 가증스러운 제갈세가만큼은 아니지만.’
이 정도쯤이야 별 것도 아니라는
후발주자들을 향한 어필.
정말로 대수로울 것도 없다.
요괴들이 전승을 쌓아왔듯이
그녀도 검후의 역사를 쌓아왔으니까.
무림공적.
혈겁참사.
정사대전.
황제시해.
천마준동.
천하쟁투.
그녀가 거쳤던 수많은 굵직한 사건들 중에
지금보다 덜 위험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지닐 수 있던 여유였고
그렇기에 지을 수 있던 브이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