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5)
〈 5화 〉 5 전신스캔과 가슴붕대
* * *
1.
무림인으로서의 자신만을 생각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여자로서의 자신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초기화된 신체.
지고한 경지.
그 사이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 단련을 하면 느끼는 불편함.
바로 흔들리는 가슴이다.
‘이 가슴을 만든 건 두고두고 후회가 되네요.’
여자 가슴은 적당히 커야 좋다는 지극히 단순한 발상으로 손수 커스터마이징한 가슴.
제 몸에 달린 가슴만 아니라면 참 좋았을 텐데.
자신의 것이 된 여성형 유방은 그저 어깨를 무겁게 만들고 쉽게 지치게 하는 지방덩어리일 뿐.
정자세로 발등을 볼 수 없게 하는.
균형 감각을 무너뜨리는.
수련을 방해하는 요소에 불과하다.
‘붕대를 더 사야겠네요.’
야만적인 무림에서 보낸 20년.
그녀는 가슴을 천으로 칭칭 감는 방법으로 역경을 극복했다.
물론 현대지구라면 아무렇게나 찢은 천 옷 쪼가리보다 좋은 대체수단이 존재한다.
‘약국. 분명 거기서 압박붕대를 팔고 있었죠.’
두 번째 외출행선지가 결정됐다.
2.
주아영과 번호를 교환한 뒤.
해응응은 많은 의문을 물어보았다.
폐관수련 때문에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그녀 나름의 핑계.
그것이 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아영은 나름 성실하게 대답했다.
거리의 시민들이 적은 이유.
그건 꼭 게이트나 몬스터 때문만은 아니었다.
‘2050년의 지구는 게임중독이 만연하다고 했었죠.’
현실에 지친 몸을 쉬기 위해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닌.
게임에 지친 몸을 쉬기 위해 현실로 나오는 사람들.
현실과 게임의 입지가 역전됐다.
사람들은 가능한 한 모든 시간을 가상세계에서 소비하려 한다.
삶의 가치.
문화적 경향.
사회전반의 인식 자체가 게임에 인생 건 사람들을 너드나 게임폐인이 아닌 정상인으로 보고 있다.
그런 사회적 추세에 뜻밖의 호황을 겪는 업종이 존재했으니.
하필이면 그게 또 약국이었다.
“진통제 좀 주세요.”
“사장님 몇 분 더 기다려야 해요?”
“아오, 젠장. 익사는 몇 번을 당해도 적응이 안 되네.”
“화형만큼 후유증이 심하겠냐? 동화율 10%인데도 피부가 벌겋게 부어오른다고. 화상연고크림은 또 얼마나 더럽게 비싼지.”
“뭐래. 물속에서 숨 막혀서 죽는 경험 때문에 자다가도 숨 막혀서 일어나본 적 있어? 기관지 확장제 안 먹으면 밤에 잠도 못자거든?”
뇌파를 이용해 오감을 속이는 가상현실게임.
사망의 고통도 예외는 아니다.
실제 몸이 다치는 건 아니지만 뇌가 인식한 고통은 존재하고, 그 영향이 육체로 이어진다.
덕분에 약국의 단골손님은 이제 감기환자나 면역력이 약한 환자, 잔병치례가 잦은 노인들이 아니다.
사망후유증을 겪는 게이머.
툭 하면 죽어나가는 허접.
소위 말하는 가상세계양민들이다.
“야야, 저기 봐.”
“와씨 깜짝이야. 설마 각성자야?”
“몬스터 잡다가 부상당했나?”
옷차림부터 눈에 띄는 해응응.
모여드는 시선이 사뭇 동정적이다.
“역시 험한 일을 하니까 자주 다치겠지?”
“불쌍하네.”
“가상세계에서 백날 죽어봤자 진짜 목숨 거는 저 사람들이랑은 받는 고통이 비교도 안 되지.”
“동화율 100% 현실게임 수준.”
“진짜 가상세계 나오기 전에는 이런 좆망게임 어떻게 했나 몰라.”
사망후유증을 겪는 사람들이 가슴을 조일 붕대나 사러 온 사람을 동정하고 있으니.
표정만 봐도 진심이 담긴 게 느껴져서 더욱 기괴한 상황이다.
까칠한 성격이라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해응응은 무덤덤하게 대기표를 뽑고 순번을 기다렸다.
이런 시선.
이런 동정.
그녀에게는 낯선 것이 아니다.
무림인을 동경하면서도 딱하게 여기는 양민들은 무림계에도 얼마든지 존재했으니까.
“117번 손님.”
해응응이 대기표를 들고 접수대에 섰다.
“진단서는 따로 끊으셨나요?”
“….”
“그럼 뭘 사러 오셨나요?”
해응응이 미리 글씨를 적어둔 수첩을 내밀었다.
“아~ 압박붕대 사시는구나. 실례지만 사용할 부위를 말씀해주시겠어요? 요즘 법이 바뀌어서 약국에서 산 물품이 본래 목적과 다르게 쓰이는 경우를 방지하고자 전산기록을 남기고 있거든요.”
약국점원은 말총머리를 묶은 여자접수원.
순백의 의사가운.
알이 굵은 안경.
선한 표정.
요모조모 살펴봐도 흑심을 품고 묻는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법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지.
해응응은 순순히 압박붕대의 사용목적을 밝혔다.
[가슴을 조이려고요]약사가 웃는 얼굴로 되물었다.
“아하. 봉합수술을 받은 부위의 상처가 터져서 다시 감을 붕대를 구한다는 말씀이시죠?”
[아니요. 가슴이 방해되지 않게 조이려고 산다고요.]약사의 웃음이 부쩍 경직되었다.
“왜요?”
[젖가리개는 가슴을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제어율이 낮아서요.]여성이 쓰기에는 너무나도 적나라하고 원색적인 표현.
눈을 의심토록 하는 대답.
약사가 다른 손님들의 눈치를 보더니 얼굴을 가져다대며 낮은 목소리로 귓속말을 건넸다.
“저… 손님? 그런 목적이라면 스포츠브라를 사시는 편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압축붕대 주세요.]“정말요? 전산에 그대로 입력해도 되는 거 맞죠?”
해응응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수첩을 손으로 툭툭 쳤다.
잔말 말고 압축붕대를 내놓으라는 시위에 약사는 이게 맞나 고개를 갸우뚱하며 붕대를 건넸다.
3.
갑자기 해응응이 붕대를 산 이유.
여기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려졌다.
‘우선 제 멋대로 흔들리는 가슴은 무공을 펼치는데 방해가 되죠.’
첫 번째 이유가 현실적이듯.
다음 이유도 상당히 현실적이다.
무림의 열악한 의류소재로는 브라의 성능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브라가 제공하는 흔들림 제어가 50%를 넘기지 못한다면.
무림인의 격한 움직임을 견디지 못한 가슴인대가 끊어지고, 가슴이 영구적으로 축 처지게 된다.
처진 가슴은 더 많은 불편함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몸의 모양이 무너져 보기에도 좋지 않았다.
여성보다는 무림인으로서의 자아가 앞섰던 해응응이지만.
그렇다고 굳이 자신의 몸을 자발적으로 망칠 이유도 없었다.
‘해남파에 적을 들여서 다행이다 싶은 조언이었죠.’
문파의 여제자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전수되는 팁은 20년간 요긴하게 써먹었다.
덕분에 해응응은 무림인으로 생활하면서 언제나 가슴붕대를 감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축복도 나름 도움이 되었다.
헨타이물리학이 제공하는 탄력강화효과는 혈맥에만 도움이 된 것이 아니었으니.
가슴인대의 내구성을 올려주어 처진 가슴을 달고 다니는 불상사를 방지할 수 있었다.
‘일반 천을 붕대로 쓰던 것보다는 제어력이 높네요.’
폴짝. 폴짝.
제 자리에서 높이 뛰며 보잉거리는 가슴의 흔들림을 느껴본 해응응.
무림인의 정밀한 신체진단능력으로 판단컨대, 손수 묶은 가슴붕대의 흔들림 제어는 80%에 육박했다.
‘그래도 황실의 천잠사로 만든 특제붕대만큼은 아니지만요.’
천잠사로 만든 천은 갑옷에 쓰이면 보갑이 된다.
포승줄로 만들면 절정고수도 포박할 수 있다.
천으로 만들기 전의 실에 특수한 가공을 더하면 암기가 되기도 한다.
사용하기에 따라 용도는 달라져도.
유용성은 언제나 수준급인 소재.
가슴붕대로도 그 가치는 대단했다.
‘그래도 캡슐에 들어가기 전에 쓸 붕대는 이 정도면 충분하겠죠.’
그녀가 붕대를 감은 마지막 이유.
이 또한 현실적이기는 하지만.
가장 볼품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가상세계에서라도 가슴이 작으면 매번 붕대를 감는 수고를 조금은 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얄팍한 꾀로 인해 신체스캔 전에 붕대를 구매했다.
[전신스캔을 시작합니다.] [스캔이 작동하는 동안 눈을 감고 움직이지 말아주십시오.]제발 한 컵이라도 작게 측정되길.
해응응은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두 눈을 감았다.
4.
현실복귀지원패키지.
무림계에서 현실로 돌아올 때 구매한 특전에는 보급형 가상현실캡슐도 포함되어 있었다.
보급형 캡슐의 가격조차도 천만 원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꽤 놀랐지만.
‘그렇다고 캡슐가격이 낮아도 불안하겠죠.’
뇌파기반게임이 싸구려라니.
캡슐고장으로 뇌에 이상이라도 생기면 어떡한단 말인가.
컴퓨터게임 하나 잘못 켜서 20년을 무림계에서 지냈는데.
가상현실게임을 하던 도중에 캡슐이 고장나기라도 한다면.
다음은 몇 년을 다른 차원에서 지낼지는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봤자 도피에 불과하지만요.’
게이트.
몬스터.
각성자.
마석.
내공증진에 도움이 되겠다 싶은 것들을 찾아 외출까지 했던 그녀지만 지금은 전부 포기했다.
게이트를 장악한 길드.
그 중 하나인 명호길드의 구성원이 얼마나 한심한지를 겪었기에.
그들과 협력한다는 발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도 금방 깨달았다.
‘게이트 내부에 진입하는 것도, 몬스터를 잡고 각성자가 되는 것도 전부 전제조건이 달려있죠.’
길드.
협회.
정부.
셋 중 하나에 소속되어 조직을 위해 활동해야 한다.
무림 식으로 치자면 각 조직에 대응되는 집단은 다음과 같다.
문파.
무림맹.
황실 금의위.
소속되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있지만.
그것이 개인의 안전과 자유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특히나 경국지색의 미모를 지닌 신입이라면 오히려 위험을 자처하는 계기가 된다.
‘미남미녀는 권력형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죠.’
해남파처럼 좋은 의미로 가족같은 조직을 만나지 못한다면.
성추행과 폭언은 기본이요.
동성이나 동기들의 질투.
이성이나 상사들의 협박.
온갖 추잡한 음모나 음해, 중상모략에 휘말리기 십상이다.
‘조직에 소속되어 그 고생을 하느니 요령을 부리는 편이 낫겠죠.’
다음 달인 10월 중순 무렵.
협회에서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주최하는 행사가 있다.
게이트 관광.
주아영이 전한 정보에 따르면, 돈만 있으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
게이트 내부의 자연지기농도가 어느 정도인지.
무림계를 기준으로 축기속도가 어느 정도까지 따라잡을 수 있을지를 측정할 절호의 기회다.
구음절맥.
절맥증의 최고계열인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내공은 3갑자(180년).
5년 공력이 있는 현재로서는 175년치 공력을 더 모아야 한다.
자연지기농도가 평균 1%에 달하는 무림계 기준으로는 통상 175년.
초상승심법의 10배 효율 축기를 이용하면 17.5년이 소요된다.
‘게이트 내부의 자연지기농도가 1%까지만 따라온다면 그때는 희망이 있겠죠.’
구음절맥 환자의 평균수명인 30살.
그때까지 주어진 시간과.
소양화리의 내단이라는 보험.
무림에서 쌓은 구음절맥에 대한 지식까지 더하면 1%로도 어떻게든 시간을 맞출 수 있다.
하지만 게이트 내부의 자연지기농도가 1%에도 미치지 못한다면.
축기 따위 아무런 의미도 없다.
아무리 열심히 내공을 모아도.
끝내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럴 바에야 하루라도 더 즐기는 게 이득이다.
‘결국 지금 하는 짓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나 다름없군요. 이게 캡슐인지 관인지 모르겠네요.’
다소 씁쓸한 이유로 사용을 시작한 가상현실캡슐.
그 예비 관짝에서 스캔이 완료되었다는 알람이 울렸다.
[전신스캔이 완료되었습니다.] [신체정보가 등록됩니다.]광활한 우주공간.
그 한복판에 차렷 자세로 선 자신을 발견한 해응응.
그녀의 앞에는 캐릭터 상태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신거울이 놓여있었다.
“….”
역시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함묵증은 정신적 언어장애.
가상세계라고 예외는 아니다.
목소리.
그 다음으로 신경 쓰이는 건.
역시 가슴이었다.
해응응은 기본티셔츠를 들어 올려 맨가슴을 살펴보았다.
손으로 가슴의 컵을 재고.
위아래로 흔들어 무게감을 재고.
가볍게 점프를 하며 흔들림의 수준도 파악했다.
‘무게는 그대로지만 크기는 작아졌네요.’
검을 휘두르는 궤적에서 가슴이 거치적거리지 않는다.
이른바 실전압축가슴.
가슴붕대는 헛되진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