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50)
〈 50화 〉 50 요괴의 순수함
* * *
1.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며
자신의 탓에 어머니가
투기장 우승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없게 되었다며 자책하는 왕자.
부들부들 떠는 그의 손에
부드럽고도 차가운 감각이 스며들며
왕자의 정신이 확 깨어났다.
“어머니?”
묵언검객의 자색 눈동자가
그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마치 꾸중이라도 하듯이
불만스런 기색을 보였다.
고작 이 정도 위기로 동요해서야 쓰겠냐고.
그 당당한 모습에
왕자는 어딘지 모르게 긴장이 풀리는
제 모습을 발견했다.
“자아, 어서 기권의 증표로 그 검을, 귀물을 건네주십시오!”
꿀벌녀의 재촉에
마가놈이 겁에 질려 소리쳤다.
“이미 늦었습니다. 여기서 기권하지 않으면 투기장의 모든 관중들과 요계 전역의 요괴들을 적으로 돌리게 됩니다.”
“동요하지 마라, 마가놈. 어머님께서는 달리 생각이 있으신 모양이다.”
“외통수에 몰렸는데 기권하지 않으면 그냥 다 죽자는 말밖에 안되지 않습니까!”
흔들리는 마가놈.
그 모습을 즐기듯이 바라보며
내분을 부추기듯이
뜸을 들이는 꿀벌녀.
마치 묵언검객이 꿀벌녀에게
단 한 번의 기회를 주어 이 사단이 일어났지만
꿀벌녀 본인이 기회를 준다 한들
묵언검객은 그 기회를 잡지 못할 거라는
이미 만들어낸 판이
뒤집히지 않으리라는 절대적 확신.
그런 오만함에 맞서
해응응은 관중을 설득하는 대신
바닥에 문자를 새겼다.
[???]왕자라면 분명 그 뜻을 알아주리라.
해응응의 믿음은
“감언이설!”
이루어졌다.
해응응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왕자가 품은 그 마음은 결코 적지 않았다.
아버지인 요괴왕이 추구하던
평화의 시대.
그 시대를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를 꿀벌녀의
요계대통합과 인계침공, 대요괴를 향한 복수.
그 주역이 자신이 아닐지라도
분명 요계는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
‘그 뜻이 대단하다 한들, 그들은 모두 한 때 제 존재를 부정했던 요괴들.’
왕자에게 있어서
꿀벌녀의 수십 마디의 연설보다는
묵언검객의 단 한 마디가
훨씬 큰 설득력을 지녔다.
그렇기에 왕자는 가장 먼저
해응응의 뜻을 알아차렸다.
“흔들리지 마라, 마가놈! 저런 거짓부렁이에 속아 넘어갈 셈이냐? 너라면 감언이설의 뜻 정도는 알아차렸지 않는가.”
“비위에 맞춰 꾸민 달콤한 거짓말이라 한들, 요계의 모든 요괴가 그것을 믿는다면 거짓말도 사실이 되는 것이 세상의 섭리입니다!”
“그리 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진실이 있지. 인계로 향하는 통로는 요계의 모든 요괴들이 건널 수 있을 만큼 튼튼하지 못하다.”
대수림의 자연지기를 제물 삼아
요계와 이어지는 자그마한 동굴통로 하나만을
겨우 남겨두었던 요괴선인.
그 1인분의 통로조차도
기의 유입이 끊겨 불안정해지니
해응응 한 사람이 건너는 것만으로 무너졌다.
요괴왕비가 지닌
인계와 이어지는 통로라고 한들
한계가 없을 리가 없다.
해응응은 그 사실을 간파했고
왕자가 이를 믿어주었으니
그제야 비로소 마가놈의 머릿속에도
번개가 내리치는 것처럼 전율이 일었다.
“대단하십니다. 이 미천한 소인은 진즉에 끝난 판이라고 여기며 포기하고 있었건만, 이런 치명적인 약점을 찾아내시다니.”
“그만 결정하십시오! 무얼 망설이는 겁니까. 요계의 배신자가 될 작정이십니까?”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자
꿀벌녀가 급히 재촉했지만
마가놈은 크하하, 하고 소리 높여 비웃었다.
“왕비의 앞잡이. 그 교활한 세 치 혀가 뛰어나다 한들 왕자와 귀부인의 눈을 가리지는 못했으니, 웃음을 참기가 어렵구나!”
꿀벌녀가 단 한 번의 기회로
투기장의 관중들과 요계 전체를
아군으로 삼았다면
해응응은 단 한 번의 기회로
왕자와 마가놈의 흔들리던 마음을
바로잡았다.
불특정다수와
확실한 우군.
그 규모에서는 꿀벌녀가 앞설 지라도
꿀벌녀와 관중들, 다른 요괴들의 관계는
대요괴를 향한 증오라는
맹목적인 목표 하나만으로 이루어진
얄팍한 관계.
“너는 요계의 모두를 하나로 모아 인계침공과 복수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정작 요계로 향하는 문이 수용 가능한 인원은 불과 일백!”
“이런…! 그건 사실이 아닙…!”
파아앙!
꿀벌녀의 긴 생머리의 중간에
구멍이 뚫렸다.
[지법] [탄지공]묵언검객이 탄지공으로 날린 돌멩이가
머리를 뚫고도 계속 나아가
경기장 벽에 박혔다.
검지를 세운 그녀의 손이 가리키는 곳은
꿀벌녀의 머리.
마가놈을 방해한다면 다음에 날아가는 건
머리라는 경고였다.
“무너져가는 요계의 마지막 자원을 끌어 모아 인계로 간다고 한들, 그 정원이 일백밖에 되지 않는다면 결국 떠날 사람은 요괴왕비의 파벌뿐이지 않은가!”
멸망해가는 요계 속에서
대요괴와 그의 수하들에게 속하지 못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요괴들.
꿀벌녀가 그들을 움직인 키워드는 ‘복수’.
마가놈이 이에 맞선 키워드는 ‘동류’였다.
“영민하신 왕자와 귀부인께서는 이미 진실을 눈치 채셨다. 요괴왕비의 계획이란 대요괴가 했던 일을 다시 한 번 답습 하는 것뿐임을!”
요계에서 인계로 이어지는 통로.
그 수용정원이 몇 명인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는
요괴왕비 본인을 제외하면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러나 해응응이 떠올리고
왕자가 믿어주며
마가놈이 주장하는 의 가설은
투기장의 관중들에게
도저히 지울 수 없는
강한 불신을 심어주었다.
‘왕비가 대요괴와 무엇이 다르지? 감히 복수를 입에 담을 자격이 있는 요괴인가?’
‘요괴왕의 죽음에 관한 구설수도 있는 왕비다. 우리 같은 일반 요괴는 이용해먹고도 남겠지.’
마치 재벌과 정권의 부동산 투기로 시작된
역대급 외화재정난에 맞서
금모으기 운동 열풍을 일으켰던
어떻게든 국가를 살리고자
없는 재산을 삽시일반 모아온 시민들과
그들의 노력을 비웃듯이
그렇게 모인 금을 팔아
사익을 채운 기업들처럼.
‘이번에도 우리를 버리는 건 아닌가?’
‘생계를 위한 마지막 한 푼까지 쥐어짜내려고?’
‘그 꼴은 절대 못 봐!’
꿀벌녀와 요괴왕비를 향한 민심은
더 이상 추락할 곳도 없는 나락 그 자체.
달콤한 꿈.
감언이설에서 깨어난 투기장의 관중들은
더 이상 왕비의 앞잡이인
꿀벌녀를 신뢰하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현실과
달콤한 거짓을 제시하는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약과 파란약이 주어졌다면
이미 한 번
파란약을 골라 배신당한 그들은
더 이상 달콤한 거짓을 고르지 않는다.
“마가놈과 어머님께서 말씀하신 대로다. 네깟 천한 계집의 말은 들어줄 가치도 없다.”
이에 힘을 싣듯이
왕자가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 이번에는 이쪽에서 제안을 하나 하지.”
사방에서 쏟아지는 적대적인 시선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꿀벌녀.
잔뜩 겁에 질린 그녀에게
왕자가 짐짓 은혜라도 베푸는 것처럼
손을 내밀었다.
“그 조그마한 날개를 접고 내 앞에 조아려라. 그러면 기회 정도는 줄 수도 있지.”
“…!”
“네게는 없는 교양을 주입받아 앙앙 거리는 꿀벌교양곡을 부를 기회를. 그 더러운 입에서 나와도 좋은 소리는 오직 그것뿐이다!”
표현만큼은 정중했지만
그 속에는 모든 요괴들을 기만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던 꿀벌녀의 연설.
이에 맞서
노골적인 성희롱을 일삼지만
그 속에는 거짓선지자를 자처했던 꿀벌녀의
사기의도를 낱낱이 폭로하는 왕자의 선언.
투기장과 채팅창에서
그 모든 연설과 선언을 지켜본
요괴들과 시청자들의 마음은
확고하게
사생아 왕자를 향해 기울었다.
“사기꾼 왕비의 앞잡이는 물러나라!”
“물러나라!”
“두 번이나 너희 같은 것들에게 속을까보냐!”
왕자 그는 신인가?
우리는 사생아 왕자의 시대를 살고 있다
꿀벌교양곡ㅋㅋㅋㅋ
찢었다
그에게 주어지는 합격목걸이
점점 격해지는 관중들의 외침은
‘뻔뻔한년’
‘끌어내려’
‘도망친다’를 거쳐
끝내 ‘잡아죽여’로 이어졌으니.
모두의 마음을 속여
편하게 승리를 따내려 했던 꿀벌녀는
자신을 따르는 팀을 믿고
그들의 신뢰를 이용해 맞선 해응응과
그녀를 믿은 왕자,
깨우침을 얻은 마가놈에 의해
간악한 꾀를 역이용당해 비참하게 몰락했다.
“사회자.”
“부, 분부라도 있으십니까, 왕자님.”
“승리선언은 아직인가?”
투기장 대회 결승전.
그 결과는
두 말할 여지도 없는
해응응과 왕자 팀의
압승이었다.
2.
요괴왕비와 요괴장군.
궁궐의 서관과 동관을 나누어가진
두 강대한 요괴는
서로의 힘과 권력이 백중지세,
막상막하임을 깨닫자
외부에서 전력을 더 늘리기 위해
하나의 공통된 합의를 거쳤다.
“궁궐에 들일 수 있는 외부인은 투기장에서 우승한 자와 그의 투사들뿐.”
“허가하마. 요괴란 힘으로 압도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게 해주지.”
두 권력자의 합의 이후
요계에서는 오래도록
그들 중 한 명에게 충성을 바친 요괴들만이
대회에서 우승하였다.
노골적인 영입제안은 기본이요,
암중에서의 선수포섭과 배신종용,
티켓사냥과 투기장진입방해 등등
권력을 이용한 강압적인 수단이
총동원되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대회참가자들이
그 모든 역경을 뚫고
우승의 영예를 차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왕비께서 부르신다. 따라오도록.”
“장군께서 우승자들의 신변을 지키라 명하셨다. 호위는 우리 정예병단이 맡도록 하지.”
그렇기에 더욱
오래도록 유지되었던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 굳건한 아성을 넘어
감히 더러운 발을 들이민 자들에게
두 권력자는 관대하지 않았다.
“대놓고 수작을 부려오는군요. 요괴왕비는 궁궐에서 우리를 만나거든 곧장 죽일 셈이고, 요괴장군도 우리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감시하며 사지에 들여보낼 셈입니다.”
마가놈은 곧바로 조언을 했다.
그러나 왕자는 겁을 먹거나 눈치를 보는 대신
오히려 호탕하게 웃었다.
“투기장의 관중들이 우리와 함께 하거늘, 요괴왕비와 요괴장군이 딴 마음을 먹는다고 한들 무엇이 두려운가?”
그저 죽고 죽이는 일방적인 살육전이 아닌
대요괴에게 당한 설움을 떠올리도록 했던
비열한 사기꾼 꿀벌녀의 간교한 수작을
모조리 간파하고
완벽하게 압도해낸 왕자의 인기는
역대 투기장 우승자들을 통틀어
감히 최고수준이라 자청해도 무방했다.
“와하하하! 앙앙 거리며 짖어라!”
“궁궐을 불태우자!”
“요괴왕비에게 꿀벌교양곡을 부르게 하자!”
“…….”
어째 왕자를 따르는 의도에
불순한 저의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요괴란 본디 그런 존재였다.
욕망에 솔직하고
감정에 순수한 족속들.
요괴장군은 요괴의 힘만을 숭상하고,
요괴왕비는 요괴의 간악함만을 숭상하지만.
사생아왕자는 요괴의 순수함을 기억한다.
네 눈에는 저기 모인 요괴들이 어찌 보이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무서우냐?
무섭지는 않습니다.
너를 배신할까 두려우냐?
두렵기는 합니다.
내게는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다.
그건 아버지께서 더 강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다르다. 내게는 저 녀석들의 순수함이 보이기 때문이다.
요괴왕이 살아있던 무렵.
왕자는 그에게 한 가지 가르침을 받았다.
요괴는 욕망에 솔직하다.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힘을 숭배하고 꾀에 의지할 뿐. 그 본질은 결국 하나다.
순수함.
기억해라. 네가 그들의 순수함을 바라보는 날, 요괴들도 비로소 순수하게 너를 따를 것이니.
천한 인간의 피가 섞인
요계의 수치라 업신여김 당했던
목숨만을 간신히 건져 궁궐에서 빠져나온
혈혈단신의 미래조차 없던
사생아 왕자.
그는 지금
천여 마리의 투기장 관중들과
그 인파에 이끌려 모여든
수천 마리 요괴들을 모두 거느린 채
한때 그가 쫓겨났던 궁궐 앞에
다시금 두 발로 마주섰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
“어머니의 믿음이 아니었다면 제가 이 궁궐에 다시 들어오는 일 따위, 평생 없었을 겁니다.”
사생아 왕자의 이름을 연호하며
환호하는 민중들.
열띤 얼굴로 감격에 벅찬 마가놈이나
자신을 향한 암컷들의 구애요청에
부쩍 쑥스러워하는 웬디고.
변함없이 속을 알 수 없는
옷장 속의 부기맨.
투사팀의 모두에게도 고마움은 있지만
묵언검객을 향한 감사의 마음에
비할 바는 아니다.
“비록 어머니께서 뜻하신 바는 아니었을지라도, 덕분에 저는 더럽혀진 명예를 되찾고 다시금 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를 감시하고자 모였던
죽을 자리로 이끌고자 마중나왔던
요괴장군의 정예병단과
요괴왕비의 수족들도
요계수도의 모든 요괴들이 모여든 건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엄청난 구경꾼들의 행렬에
잔뜩 기가 죽어
감히 무례를 범하지 못하는 상황.
“만일 왕비와 장군과의 대면에서 살아남는다면.”
왕자가 그녀만이 들을 수 있는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물었다.
“앞으로도 저와 함께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한없이 진지한
어쩐지 사춘기 소년을 떠올리도록 만드는
마가놈과는 다른 의미로 상기된 얼굴.
해응응은 그 순수한 얼굴을
왕자의 욕망을
말없이 얼마간 바라보다가
검집을 들어 궁궐을 가리켰다.
“훗, 그렇군요. 훗날을 도모하기에는 가장 큰 산이 남아있으니 아직은 이런 대화를 나누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거겠죠.”
요계수도.
그 방대한 필드에서의 끝을 알릴
마지막 무대.
요괴왕의 궁궐을 향해
군중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왕자의 투사팀이 입성하였다.
* * *